NT는 1-1백nm(나노미터, 1nm=10-9m) 수준에서 물질을 자유자재로 가공해 새로운 특성과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하는 기술이다. 이런 까닭에 NT는 나노라는 공통점으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이 참여하고 기존 학문분야로 분류되지 않는다. 나노 수준의 물질 세계 탐험이면 모두 해당되는 융합기술 분야다.
BT도 생명 연구가 분자 차원으로 내려오면서 이를 활용하기 위해 점점 융합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유전자, 단백질 등 각종 생체 분자들이 보여주는 생명현상을 밝혀내 의학, 농업 등에 활용되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BT에서 기존의 생명과학뿐 아니라 기초과학과 각종 공학분야가 참여하고 있는 학제간 연구분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생체 환경에서 하나의 분자만 분석
그렇다면 이 둘이 서로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NT의 관점에서는 생체물질을 다루는 BT가 별개의 분야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DNA, RNA, 유전자, 단백질 등 생체물질의 크기가 수-수십nm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편 BT의 경우는 이들 생체물질들을 나노수준에서 측정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들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생명공학 시스템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두 기술은 나노라는 끈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NT와 BT가 융합하면(NBT) 어떤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NBT 연구기술을 살펴보자.
NBT의 대표적인 예로는 나노수준의 생체분자가 가진 특성을 규명하고 기능을 밝히는 나노생체분석기술이 있다.
DNA 폴리머라제라는 효소는 ‘복제하라’는 생체신호를 받으면 모양을 변형시켜 DNA 이중나선의 한가닥에 붙는다. 그런 다음에는 DNA를 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DNA 폴리머라제는 ATP에서 화학에너지를 공급받아 기계적인 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스스로 움직인다.
DNA 폴리머라제처럼 생체분자들이 실시간으로 어떻게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푸는 일은 BT뿐 아니라 NT에서도 중요 과제다. 특히 NT에서는 DNA 폴리머라제와 같은 모터 단백질의 응용에 관심을 갖고 있다. 모터 단백질은 화학에너지를 기계적인 일로 전환하는 효율이 100%에 가깝다. 때문에 NT에서는 이것의 작동원리를 모방해 나노기계를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복잡한 생체 환경에서 알고자 하는 분자만의 움직임과 반응을 독립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가지 기술이 동원된다.
구체적으로 생체 환경에서 원하는 분자만을 형광물질로 표시하는 기술, 분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나노기술인 미세조작 기술, 분자가 형성하는 약한 신호를 감지하는 신호 측정과 증폭 기술, 그리고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 Electro-Mechanical System) 기술이 결합한 단일 분자 측정용 랩온어칩 기술 등이 관여한다.
현재는 단일 생체분자의 움직임을 분석하는데 주로 주사탐침현미경(SPM, Scanning Probe Technology)이 쓰인다. SPM은 원자가 고작 몇개 정도에 불과한 침을 갖고 있다. 이 침을 분석시료에 가까이 가져가면 시료를 구성하는 원자와 침 사이에 미약한 힘이 발생한다. 이 힘을 측정하면 시료의 표면을 원자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체환경에서 분자의 움직임과 반응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실시간으로 검진하는 나노바이오센서
나노생체분석기술은 나노바이오센서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바이오센서는 다양한 생체 대사물질과 화학물질을 분석·측정·진단·검출하는 과정을 수행하는 기술로, 1970년대부터 첫 상품이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BT의 중점연구개발과제다.
지금까지 바이오센서를 개발하기 위해 IT의 실리콘 칩 기술을 기반으로 전자, 화학, 광학 등 다양한 기술들이 참여해 왔다. 이 결과 현재는 혈액분석기, 포도당측정기 등 여러 의료용 바이오센서가 개발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센서의 크기를 줄이는데 MEMS의 미세공정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과학기술자들이 궁극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바이오센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다. 최고의 바이오센서는 아주 적은 양의 물질, 심지어 하나의 생체분자만 있어도 어디서든지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분석해낼 수 있어야 한다. 즉 나노바이오센서의 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NT에 기반한 바이오센서는 시작단계에 접어들었다. 하나의 생체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NT의 원자·분자 검출과 조작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한편 나노 크기의 바이오센서를 만들기 위해 그 수준의 재료, 즉 소재 개발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이오센서 외에도 나노수준에서 기능을 갖는 새로운 장치를 개발하려면 이에 적합한 소재가 필요하다. 결국 나노소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노소재개발은 또다른 NBT의 연구과제다.
NBT 소재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그 자체가 단백질, DNA, RNA, 지질, 다당류 등 생체물질로, 이를 이용해 나노시스템에 응용하려는 분자모터, 나노캡슐, 나노와이어 등의 나노소재가 있다. 이를 바이오-나노 소재라고 한다.
또다른 하나는 나노-바이오 소재다. 이것은 생체물질은 아니지만 기존의 나노소재로 생물학적 응용을 목적으로 개발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분석에 응용되는 가로, 세로, 높이가 약 20nm의 미세공간으로 개개의 전자를 담을 수 있는 양자점, 약물전달 시스템 개발에 쓰이는 나노입자, 그리고 인공관절이나 인공장기용으로 쓰이는 나노소재가 있다. 현재 생물학적 시스템에 적용되는 거의 대부분 나노크기의 소재들이 이 나노-바이오 소재의 범주에 든다.
미래의 최적산업으로 각광
나노시스템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되는 바이오-나노 소재에 대한 연구는 전통적으로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 등 NT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들을 나노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인 바이오-나노 소재는 단백질이다. 단백질의 종류에는 생체의 물질이동에 관여하는 여러 모터 단백질이 있다. 근육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길이 1백60nm, 지름 2nm의 성냥개비 모양의 미오신, 최근 정자가 꼬리로 헤엄치며 난자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밝혀진 다이네인, 세포 내에서 물질들을 운반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물차인 키네신 등이 모터 단백질이다. 이들 모터 단백질의 생체 내 기능을 나노소재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이 외에도 DNA 자체를 하나의 소재로 개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DNA가 갖는 전기적 성질을 이용한 나노트랜지스터가 연구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기술에 접목돼 새로운 형태의 융합기술 제품개발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노-바이오 소재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약물전달용 나노소재다. 약물전달용 나노소재는 항암제, 단백질, 유전자 등의 치료용 약물을 생체조직 내로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약물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생체적합성 신소재를 디자인하고, 생체조직과 합성소재 계면상에서의 상호작용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최적의 나노전달체를 개발하기 위한 ‘약물전달시스템’이 가능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약물전달체로서의 나노입자는 특정 목표부위에 약물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줌으로써 약물의 효능을 높이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연구의 주요 목표는 약리학적으로 적절한 전달 속도와 양을 특정 신체부위에 방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인류의 건강과 풍족한 먹거리, 그리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산업이 미래의 최적 산업으로 각광받을 것이 자명하므로, 나노기술과 융합한 바이오기술을 통해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는 학문 간 고유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다학제 연구를 통해 한계점을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신기술이 도출될 수 있다. 따라서 기술 간 교류를 활발하게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쟁체제보다는 협력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대화의 장과 협력창구를 개설하는데 우선해야 한다. 또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초 연구분야와 응용성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분야가 동시에 지원돼야 한다. 과감한 기술도입과 집중적인 육성을 통해 SF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이 실현될 수 있는 독창성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