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게임, 굿즈로 20년 이상 사랑을 받아온 포켓몬스터 캐릭터들이 최초로 실사화 돼 스크린에 등장했다. 5월 9일 개봉한 영화 ‘명탐정 피카츄’에는 피카츄를 비롯해 리자몽, 고라파덕, 이상해씨, 잠만보, 개굴닌자, 뮤츠 등 인기 포켓몬들이 대거 출동해 액션을 펼친다. 현실의 수많은 포켓몬 마스터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특히 물리학자인 필자는 실사판 포켓몬들의 몸집과 움직임에 주목했다.
독자가 포켓몬 마스터라면 잘 알겠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포켓몬 도감이 있다. 포켓몬을 잡으면 그 정보가 자동으로 도감에 저장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포켓몬이 수록된 백과사전 같은 큰 도감도 있다. 인터넷에서 ‘포켓몬 전국도감’을 검색해 보라. 수많은 포켓몬들의 속성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심지어 키와 몸무게까지도 말이다.
대표적인 포켓몬의 키와 몸무게 몸무게
키와 몸무게의 분포가 매우 넓은 것을 알 수 있다.
체질량지수는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눠 구했다.
키 0.4m, 몸무게 6kg 피카츄의 체질량지수
그중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은 피카츄의 키는 0.4m이고 몸무게는 6kg이다. 만화나 영화에서처럼 어깨에 올려놓고 다니기에는 다소 무거운 체구다. 수년 내로 주인공들에게 척추변형이나 어깨 관절염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지만 키와 몸무게만으로 피카츄를 뚱뚱하다고 속단하긴 어렵다. 애초에 포켓몬의 몸집을 사람의 몸집과 똑같이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포켓몬들과 비교해서 답해야 한다.
보통 사람의 몸무게가 적정한 지 판단할 때는 체질량지수(BMI·Body-mass index)를 계산한다. 체질량지수는 미터(m)와 킬로그램(kg)을 단위로 키(H)와 몸무게(M)를 각각 구하고,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눠 얻는다(BMI=M/H2).
여러 사람의 체질량지수로 확률분포를 구해보면 종 모양의 정규분포가 얻어진다. 정규분포는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값(최빈값)이 평균값과 같고, 최빈값에서 크고 작은 방향으로 멀어질수록 확률 값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이용해 어떤 사람의 체중이 정상범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체질량지수가 18.5~25에 해당하면 체중이 정상이라고 본다. 이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체질량지수가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이 구간에 들어있다는 뜻이다. 비례상수 a를 이용해 사람들의 몸무게를 M=aH2로 적으면, 대부분의 경우 a의 값이 크게 다르지 않다. 물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근사적인 비례 관계를 물결무늬(~)를 이용해 표시하고는 한다. 현실 사람의 경우 M~H2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속한 연구팀은 스웨덴 어린이들이 키가 60cm를 넘기기 시작하면 M~Hp(p=2.1)의 꼴을 잘 따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두 발로 서서 직립보행 하는 동물은 p값이 2와 유사하다(p≈2)는 결론을 내리고 이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했다(아래 그래프).
doi: 10.1038/s41598-017-03961-w
키가 크면 날씬해 보인다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은 p값이 다르다. 한 예로 우리나라 하천의 민물고기인 피라미의 데이터를 보면 M~Hp(p=3.1)으로 p값이 3에 근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차이는 무척 중요하다. 사람의 몸무게가 적정한지 알기 위해선 M/H2를 구해야 하지만, 피라미와 같은 물고기의 몸무게가 적정한 지는 M/H3을 계산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부피는 가로, 세로, 높이 세 방향의 길이를 곱한 값이다.
p≈3인 피라미의 경우 몸집이 커질 때,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비례해 늘어난다. 즉, 크나 작으나 모양이 똑같다는 얘기다. 낚시로 잡은 손가락만한 물고기를 비교 대상 없이 사진으로만 보여주면 팔뚝만한 월척을 낚았다고 속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의 몸집은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고, 물고기는 세제곱에 비례할까. 사람의 몸을 원기둥이라고 생각해보자. 물론 사람의 몸이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원기둥과 정확히 같지는 않다. 복잡한 현실을 생략 없이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때 가능한 단순한 모형에서 출발하는, 물리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어림방법이다. 물리학자인 필자의 눈에는 사람을 반지름 R, 높이 H인 원기둥으로 어림하는 것은 상당히 그럴 듯 해 보인다.
원기둥으로 대응시킨 사람의 부피(V)는 반지름(R)의 제곱에 비례하는 밑면적(A)에 높이(H)를 곱한 값이므로 V~R2H로 쓸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현실 사람의 경우 M~H2인데, 사람의 질량(M)은 부피(V)에 비례하니(이때의 비례상수가 바로 사람 몸의 밀도다), V~H2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두 식 V~R2H와 V~H2으로부터 R2H~H2이므로 R~H1/2을 얻는다. 사람의 몸을 원기둥으로 어림하면 사람의 허리둘레도 R에 비례하므로, ‘사람의 허리둘레는 키의 제곱근에 비례한다’는 흥미로운 결론을 얻게 된다.
쉽게 말해 체질량지수가 같은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때 한 사람의 키는 다른 사람의 두 배라고 가정해보자. 키가 두 배 큰 사람의 허리둘레가 키가 작은 사람의 두 배라면, 물고기가 그렇듯이 크기는 달라도 둘의 모습은 똑같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키가 두 배인 사람의 허리둘레는 기껏해야 키가 작은 사람의 1.4(≈21/2)배 정도다. 독사진을 찍어 나란히 비교하면 당연히 키가 큰 사람이 날씬해 보인다. 패션모델 중에 키 큰 사람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키 큰 사람이 날씬하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은, 사람의 체질량지수 계산법 M/H2으로부터 나오는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 영화에서 피카츄와 한판승을 벌이는 리자몽은 화염방사가 특기다. 키 1.7m, 몸무게 90.5kg인 리자몽은 체질량지수가 31.3으로 비만인 편에 속한다.
헉, 피카츄가 고도비만?!
자, 이제 다시 포켓몬의 체질량지수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포켓몬의 체질량지수를 이야기하려면 그 계산법(M/Hp)에 등장하는 p의 값이 얼마인지 실제 데이터로 먼저 확인해야한다.
필자는 인터넷에서 포켓몬의 키와 몸무게가 담긴 데이터 파일을 찾아 포켓몬 660종의 키와 몸무게의 상관관계를 계산했다. 사람과 물고기의 데이터에 비해 값들이 훨씬 넓게 분포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p값이 2.0 부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한 결론을 위해 키가 같은 포켓몬들만 따로 모아서 몸무게의 평균값(H)을 구해 다시금 키와 몸무게의 상관관계를 그렸다(아래 그래프).
결과는 포켓몬의 키와 몸무게는 근사적으로 M~H2임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사람의 체질량지수를 M/H2으로 구하듯, 포켓몬의 체질량지수도 마찬가지로 M/H2로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사람의 체질량지수표를 포켓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주 잘못된 결과를 주지는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고우스트와 가보리는 각각 체질량지수의 최솟값, 최댓값을 보여준다.
요약해보자. 필자가 속한 연구팀의 엉뚱한(?) 물리학 연구에 따르면 포켓몬은 사람처럼 몸무게가 키의 제곱에 비례하기에 직립보행을 할 수 있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에서 포켓몬들이 두발로 걸어 다니는 것은 과학적으로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피카츄가 뚱뚱한지 아닌지에 대한 답도 이제는 쉽게 내릴 수 있다. 피카츄의 체질량지수는 37.5로 고도비만이다. 이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날렵한 액션 연기를 펼치는 피카츄가 더욱 대단해 보일 것이다.
▲ 닌자처럼 재빠른 움직임이 특기인 개굴닌자. 키가 1.5m, 몸무게가 40kg으로 호리호리한 편이다. 포켓몬들은 몸무게가 키의 제곱과 근사적으로 비례하므로 사람처럼 키가 클수록 날씬해 보인다.
글. 김범준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성균관대에 재직 중이다. 한국복잡계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저서 ‘세상물정의 물리학’으로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언론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물리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beomjun@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