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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은 3세 이전부터 증세가 나타난다.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표정 변화에 반응이 없고 언어 발달이 더디며 놀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자폐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하지만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고 모두 자폐증은 아니다. 자폐증에는 3가지 주요 증세가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 장애, 커뮤니케이션 장애, 제한된 관심과 행동의 반복이다. 3가지 증상이 모두 나타나야 자폐증이다.

먼저 사회적 상호작용 장애란 아기가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웃어도 반응하지 않는 등 외부자극에 무감각한 증상을 말한다. 커뮤니케이션 장애란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말을 배우는 속도도 느릴 뿐더러 매사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자폐증이 있는 아이는 ‘속임수’를 쓸 줄 모르고, 소꿉놀이 같은 상상력(속임수)에 기반한 놀이도 할 줄 모른다. 마지막으로 관심과 행동 반복이란 블록이나 캔 등을 계속해서 쌓는 행동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늘날 미국식품의약청(FDA) 인증을 받아 널리 쓰고 있는 자폐증 치료제로는 리스페리돈과 아리피프라졸이 있다. 두 약은 환자의 반복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커뮤니케이션 문제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반복행동을 막는 효과가 있지만 왜 이런 효과가 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다 나은 치료방법은 없을까.


자폐증의 원인부터 알아보자. 김은준 교수는 “자폐증 환자의 90%는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나머지 10%는 환경적 요인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환경적 요인이란 태아의 뇌가 발달할 시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위험요소를 뜻한다. 예를 들어 산모의 스트레스, 영양실조, 약물 부작용,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감염도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 약물 부작용으로는 1905년대에 입덧 완화제, 진정제로 썼던 화학물질인 탈리도마이드, 간질 치료제로 쓰는 밸프로산 등이 악명이 높다. 자폐증 위험률을 높이는 바이러스로는 풍진을 일으키는 루벨라 바이러스 등이 있다.

다시 유전자를 보자. 유전자가 100%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어느 한 쪽이 자폐 증세를 보일 때 다른 한 쪽도 함께 보일 확률은 90%가 넘는다. 이란성 쌍둥이거나 형제자매일 경우에도 그 확률이 10%가 넘는다. 이는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십중팔구 자폐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기억이 뇌 속에 분산돼 있는 것처럼 자폐증을 일으키는 회로도 뇌 속에 분산돼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뇌의 어느 한 부분이나 특정 시냅스(신경세포의 연결부위)의 고장이 곧장 자폐증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란 뜻이다. 김 교수는 “뇌에서 성격과 관련이 크다고 알려진 전두엽뿐만 아니라 선조체, 소뇌, 편도체도 자폐증에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뇌는 이전까지 운동 기능만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과학자들이 자폐증 메커니즘의 큰 그림을 보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유전자에 문제가 있을 때 자폐증이 생기고, 어느 신경회로의 문제가 치명적인지는 알고 있다. 자폐증은 신경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에서 수용체가 신경전달물질에 과민반응하거나 둔감하게 반응할 때 나타난다.

김 교수가 강봉균 서울대 교수, 이민구 연세대 교수와 함께 연구한 생크2(Shank2 ) 유전자 돌연변이는 신경전달회로를 둔감하게 만든다. 생크2 유전자는 이전까지 장(腸)기능에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였다. 본래 장을 연구하던 이민구 교수는 생크2 유전자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용 쥐에서 그 유전자를 제거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유전자를 잃어버린 어미 쥐가 새끼 쥐를 보살피지 않았다. 자폐증에 걸린 쥐들에게 나타나는 사회적 상호작용 장애의 한 형태다.

연구팀은 추가실험을 통해 생크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NMDA 수용체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수용체에 문제가 생겼으니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연구팀은 CDPPB라는 약물을 넣어 다른 수용체를 자극했다. 그 결과 NMDA 수용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이 약물을 넣은 어미 쥐는 정상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까지 치료할 수 없던 자폐증의 주요 증세인 사회적 상호작용 장애를 약물로 치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실험 결과는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 6월 14일자에 소개됐다. 김 교수는 “현재 개발 중인 사회적 상호작용 장애 치료제 신약 10종 중 3종이 이번 연구 내용과 관계가 깊다”고 그 의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자폐증 아이에게 개발하고 있는 신약을 투여한다고 병이 치료될까. 김 교수는 “약이 제대로 들을 확률은 1%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 자폐증에는 수백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수용체 문제로 일어난 자폐증이라도 신경전달물질에 둔감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감해서 나타났을 수도 있다. 이처럼 너무나 다양한 원인이라는 난관을 극복해야 자폐증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현재 자폐증 치료의 근본적인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유전자 맞춤 치료’다. 개인의 DNA를 분석해 어떤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지, 어느 신경전달 회로에서 어떤 식으로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내면 그에 맞는 약물을 이용해 치료할 수 있다.

오늘날 500만 원이면 개인의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 자폐증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만 모아서 선별적으로 분석하면 비용은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다.

지난해 ‘사이언스’지 12월 21일자에는 ‘자폐증 유전자, 계속해서 또’라는 기사가 났다. 기사 제목처럼 자폐증 유전자에 대한 논문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앞으로 10년이면 자폐증과 관련한 모든 유전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여기에 각각의 원인에 맞는 약이 개발된다면 자폐증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201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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