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이소연이 만난 우주인] 중국 최초 우주인 과학선생님 '왕야핑'

▲중국의 두 번째 여성 우주인 왕야핑, 중국국가항천국(CNSA) 소속으로 2012년 선저우 9호의 예비 우주인이었고, 이듬해 선저우 10호에 탑승해 우주인의 꿈을 이뤘다.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매달 연재하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최대한 다양한 우주인을 소개해서 독자가 우주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름의 노력으로 여성 우주인과 남성 우주인을 한 달씩 번갈아 소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여성 우주인이면서, 우주인 커뮤니티에서 극소수인 아시아 출신 우주인인 왕야핑(王亞平·Wang Yaping)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전 세계의 여성 우주인은 몇 명이나 될까? 왕야핑에 대한 글을 준비하며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우주인에 대한 글을 매달 쓰다보니 전에는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궁금해지고, 글로 써내는 내용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고민하게 된다). 

 

찾아본 결과 우주 비행의 정의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국제 우주비행사 모임인 우주탐험가협회(ASE)에서 회원 자격으로 삼는 ‘궤도 비행’을 기준으로 할 경우 전 세계 우주인은 559명이고, 그 중 여성 우주인은 63명으로 10%가 조금 넘는다. 여성 우주인 중 아시아 출신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미국이나 러시아 출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학(ISU)의 여름 ‘우주교육 프로그램(SSP)’은 다른 해보다 조금 더 특별했다. 우주인 패널로 참여한 우주인이 모두 여성인 데다, 처음으로 중국 우주인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패널은 모두 4명으로, 필자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의 섀넌 워커(Shannon Walker), 캐나다 우주인 줄리 파옛(Julie Payette), 그리고 왕야핑이었다. 같은 패널인 섀넌마저도 내게 “이번엔 중국 여성 우주인도 온다면서?”라고 말할 정도로 우주 활동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인 중국 우주인의 등장은 큰 이슈였다. 

 

 

 

우주에서 생방송 과학 실험 수업 진행 


 

왕야핑은 중국의 두 번째 여성 우주인이다. 2010년 중국의 두 번째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훈련 우주인으로 선발됐다. 2012년 선저우 9호를 타고 중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 된 류양(劉洋·Liu Yang)의 예비 우주인이기도 했다. 


2003년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Yang Liwei)가 중국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이후, 중국은 약 15년 동안 11명의 우주인을 배출했다. 러시아와 미국이 협력해 굵직한 우주 역사를 이뤄가는 과정에 함께 하지 못한 탓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우주 기술은 아주 짧은 기간에 우주 선진국들을 따라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참석했던 우주인 모임에서 중국 최초 우주인인 양리웨이를 포함해 중국 우주인 몇 명을 만나긴 했었다. 하지만 발표와 대화가 대부분 러시아어나 영어로 이뤄지다보니 중국 우주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웠다(이는 중국 우주인들이 영어나 러시아어를 하지 않고 모국어만으로도 비행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야핑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나이도 필자와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또래였다. 


왕야핑은 비록 중국의 두 번째 여성 우주인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유명 인사였다. 아마도 중국 유인 우주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중국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우주과학교실을 그가 맡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왕야핑은 2013년 6월 선저우 10호에 탑승해 중국의 우주정거장인 천궁(天宮) 1호에서 15일간 체류했다. 그 때 우주에서 질량 측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진자나 물방울의 움직임이 지구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과학 실험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아래 QR코드 스캔). 

 


필자 또한 우주 비행 11일간 18가지 우주과학 실험을 진행했고, 이 가운데 과학 교육용 실험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캐나다에서 열린 우주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중들의 질문도 왕야핑에게 집중됐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우주에서 했던 실험 중 가장 좋았던 실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왕야핑의 답변이었다. 왕야핑은 “가장 좋았던 실험은 꼽기 어렵다”며 “가장 힘들었던 실험은 물을 이용한 실험이었다”고 답했다. 


듣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 또한 여러 번 답한 적이 있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실험이 좋은지는 내게도 항상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나하나가 담당 연구자들의 열과 성의가 가득 담긴 소중한 실험들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가장 힘들었던 실험으로 답을 대신한다. 실제로 물은 국제우주정거장 내 각종 장비에 들어가면 고장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다. 


문화적인 차이가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대개 국제우주대학 행사에 참여하는 유럽이나 미국 우주인들은 청중의 관심사에 따라 강연에 설명을 추가하기도 하고, 정해진 주제 이외의 이야기도 편하게 하는 편인데, 왕야핑은 준비해 온 내용을 그대로 읽는 방식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질문과 답변도 우주정거장에서 수행한 우주과학교실에 대한 것으로 극히 제한적이었다. 패널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화는 함께 있는 중국국가항천국(CNSA) 관계자와 논의 후 통역을 거쳐 이뤄졌다. 

 

 

 

 

중국 독자 우주정거장 건설에 참여 

 

2018년 왕야핑은 중국의 입법부인 전국인민대표회의의 새로운 의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전국인민대표회의 개회 전 인터뷰에서 그는 “우주에서 했던 과학교실 이후 아주 많은 학생들에게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에는 우주인이 꿈이라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그 아이들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왕야핑은 현재 중국국가항천국 소속 우주인으로 새로 건설될 우주정거장 임무에도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우주 개발에 연간 9조 원 가량의 예산을 투입하며 ‘우주 굴기’라는 목표에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다. 지난해 한 해에만 로켓을 39차례나 쏘아 올렸고(미국은 31회), 올해 1월에는 탐사선 창어 4호를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켰다. 2022년부터는 세 번째 독자적인 우주정거장을 운영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첫 번째 우주정거장인 천궁 1호에서 체류했던 왕야핑의 경험이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새로 건설되는 중국 우주정거장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학생들에게 좀 더 많은 실험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왕야핑에게 질문을 던지는 건 꽤나 조심스러웠다. 입법부의 의원으로, 또 중국국가항천국 우주인으로 개인적인 활동에 제약이 많은 친구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최근 e메일에서도 짧은 안부로만 마음을 전했다.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그에게 지난해 봄 유명을 달리한 천궁 1호에 대해 묻고 싶다. 과학적이거나 정책적인 이야기가 아닌, 직접 체류하고 과학교실도 열었던 곳이 사라진 데 대한 개인적인 소감을 말이다. 


2001년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가 폐기됐을 때나, 2011년 NASA의 우주왕복선이 은퇴했을 때는 관련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우주인들의 감상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천궁에 대한 중국 우주인들의 의견은 찾기 힘들었다. 중국에서 우주과학기술 분야 교수로 재직 중인 지인을 통해 중국 내 언론 매체의 보도를 검색한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컸다.

 

“달 표면 걷는 여성 우주인 되고파”

 

 

중국은 2030년까지 우주인을 달 기지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왕야핑은 최근 인터뷰에서 “언젠가 중국이 유인 달 임무를 수행할 때, 달 표면을 걷게 될 중국 우주인 중 한 명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고 말했다.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었다. 필자 또한 과거 비행에서 하지 못한 선외비행 임무에 대한 막연한 바람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선배 우주인들이 재조명되면서 부러운 마음이 크다. 


왕야핑도 처음부터 달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어릴 적엔 감히 우주인이 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초기 러시아, 미국 우주인들이 모두 해군, 공군, 해병대 출신 조종사들이었던 것처럼 중국도 지금까지 비행한 모든 우주인이 군 조종사 출신이다. 왕야핑도 비행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 전략지원부대 소속 조종사였다. 과학 실험을 수행한 것은 나와 같지만, 바로 이 부분이 필자와 왕야핑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를 동경하고 별자리를 찾아보는 ‘우주 소녀’였다. 그러다 창천비행학교에 진학하게 됐고, 공군 조종사가 됐다고 했다.
2003년 그는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의 우주 비행을 지켜보며, 언제쯤 중국 여성 우주인이 비행하게 될까 궁금했단다. ‘중국에서 남자 조종사가 먼저 배출되긴 했지만 나와 같은 여성 조종사도 있듯이, 남자 우주인이 우주 비행을 했으니 언젠가 여성 우주인도 우주를 비행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그런 왕야핑에게 우주 비행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을 것이다. 이후로 그는 항상 우주과학의 미래인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과학자나 연구자도 우주인으로 선발될 수 있다고 공식 석상에서 말하곤 했다. 여성 우주인이 당당히 달 위를 걸을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염원 또한 필자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소연

2008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온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전 세계적으로는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로 우주에 다녀왔다. KAIST에서 기계공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마치고, 동대학 바이오시스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공학도 출신이다. 현재는 미국 실리콘밸리 우주 관련 스타트업 로프트 오비탈(Loft Orbital)에서 전략기획 및 국제협력 담당으로, 미국 워싱턴대 공대에서 자문위원 및 겸직교수로 일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우주인으로서 열정과 사명감을 갖고 우주산업 시대에 맞춰 과학 대중화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mcax17@gmail.com

201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소연 로프트 오비탈(Loft Orbital) 전략기획 및 국제협력 담당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항공·우주공학
  • 물리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