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제조공장인 베타세포를 죽이는 T세포를 무력화시킴으로써…
호주 멜버른에 사는 8명의 당뇨병 환자는 요즘 마음이 무척 가볍다. 몸에 부담이 적지 않았던 인슐린을 조금만 복용해도 당뇨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대신 그들은 자기 피로 만든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흔히 당뇨병은 성인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8명의 연령은 11~35세로 비교적 젊은 편이다. 또 이들은 모두 인슐린의존성 당뇨병(insulin defendent diabetes, IDD)환자들이다. 일반적으로 당뇨병에 걸렸다 하면 먼저 인슐린 치료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인슐린 치료가 가능한 경우(IDD환자)가 있고 인슐린이 거의 무용지물인 경우(IID환자)도 있다. IDD환자란 몸안의 혈당(blood glucose)수준을 조절하는데 필수적인 호르몬인 인슐린의 생산능력이 점차 떨어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멜버른의 8명의 환자들은 약간의 인슐린 생산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18개월 전까지만 해도 매일 30〜40단위의 인슐린을 투여받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딱 절반으로 인슐린 투여량을 줄였으나 혈당치는 순조롭게 잘 조절돼 거의 정상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알다시피 IDD는 일종의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이다. 비유컨대 '제 살 깎아먹는'병인 것이다. 실제로 IDD는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 엉뚱하게도 정상세포인 베타(β)세포를 '적'으로 오인, 무차별 공격함으로써 발병하게 된다.
췌장의 랑겔한스섬에 몰려 있는 베타세포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다. 따라서 이 세포가 공격을 받으면 인슐린분비량이 떨어져 IDD을 유발하게 된다. 이때 베타세포를 죽이는데 앞장 서는 공격대장은 백혈구의 하나인 T세포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 외부 침입자를 막아내는 면역계의 선봉장, T세포가 피아를 구별하지 못하고 날뛰는 바람에 IDD환자가 발생하는 것.
IDD는 성인 뿐아니라 어린이나 젊은이에게도 자주 나타난다. 서양에서는 7백명의 어린이중 1명 꼴로 발병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영양과잉에 따른 어린이 당뇨병환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베타세포중 90%는 이미 잃은 상태라고 봐야 한다.
호주의 월터 엘리자 홀 의학연구소와 로열 멜버른병원의 연구원들은 앞에서 말한 8명의 환자에게 적용한 새로운 치료법을 IDD 광이동요법(photophoresis)이라고 이름붙였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광이동요법은 1982년에 자외선(ultraviolet)과 빛에 민감한 약물을 결합시켜 피부암을 치료한 미국 예일대의 리처드 에델슨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연구자들은 먼저 나일강의 잡초에서 추출한 성분인 8-메톡시프소라렌(8-MOP)를 IDD환자에게 먹였다. 90분 후 환자의 혈액을 뽑아 이를 백혈구와 적혈구로 분리했다. 그리고 백혈구중 베타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 등을 자외선으로 제거시켰다. 다시 말해 백혈구에 자외선을 쬐주면 먼저 주입됐던 8-MOP와 백혈구의 DNA가 화학적으로 결합, 백혈구를 무력화시키게 된다. 그러면 T세포는 더 이상 베타세포를 공격할 수 없게 되고 환자의 인슐린 수준도 정상으로 회복된다.
이렇게 따로 처리한 백혈구를 적혈구 및 혈장과 재결합시켜 환자에게 되돌려 보내는 것으로 IDD 광이동요법은 완료된다.
이때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주요한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T세포를 인위적으로 제거하면 다른 병에 걸리기 쉬워진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홀의학연구소의 렌 해리슨은 "몇주가 지나면 환자의 면역기능이 정상으로 환원된다. 오직 베타세포를 파괴하는 T세포만이 계속 억제될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광이동요법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앞으로 더 많은 환자에게 적용해 봐야 치료효과를 보다 자신있게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조심스러움을 보였다. 그들은 곧 광이동요법을 20명의 환자에게 적용해 적어도 2년간 면밀히 관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