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뜨거운 물주머니를 대고 책상에 엎드려 괴로워하는 여학생의 모습을 본 적 있나요? 한 달에 한 번 생리통이 찾아오면 많은 여학생들이 며칠 동안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통증이 심해 수업도 못 듣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습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 밤새 한숨도 못자, 다음날 하루 종일 무기력한 친구들도 많습니다.
자궁 수축시키는 프로스타글란딘이 생리통 유발
청소년의 상당수가 생리통이 있을 때 진통제를 구매합니다. 2017년 대한약사회 서울지부 강서분회가 개국약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청소년 진통제 복용 관련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국을 찾는 청소년의 70%가 진통제를 구입했고, 이중 50%가 생리통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생리통이 있을 때 진통제의 올바른 복용법을 몰라 오남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겁니다. 효과가 더 좋을 거라는 생각에 여러 가지 진통제를 한꺼번에 먹거나,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해 과다 복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식후에 먹어야 하는 소염진통제를 공복에 복용해 속 쓰림에 시달리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진통제를 복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약국이 아닌 편의점에서 비상상비약으로 진통제를 구입하면 복약 지도를 들을 수 없어 오남용의 위험이 더욱 커집니다.
생리통을 줄이기 위한 올바른 진통제 복용법은 뭘까요. 우선 생리통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합니다. 생리통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일차성(원발성) 생리통과 이차성(속발성) 생리통입니다.
대부분의 청소년이 겪는 생리통은 일차성 생리통으로, 생리 시작 전에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화학물질이 과도하게 자궁을 수축시켜 통증을 유발합니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생리통뿐만 아니라 복부 경련, 두통, 설사, 속 울렁거림 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반면 이차성 생리통은 골반 주변 장기(난소, 자궁 등)의 질환으로 생기며, 청소년에게는 드물게 나타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일반적으로 여학생이 겪는 일차성 생리통에 대해서만 다루겠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 vs. 이부프로펜
일차성 생리통이 있을 때 복용할 수 있는 진통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진통제입니다. 타이레놀이 대표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염진통제로 불리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입니다.
생리통이 심하지 않고, 위가 약해 속이 쉽게 쓰리다면 타이레놀과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진통제는 밥을 먹지 않고 공복에 먹어도 속 쓰림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통 효과는 조금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계속 복용해서는 안 됩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하루에 4g 이상 복용할 경우 간 독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생리통이 시작되면 하루에 6~8시간 간격으로 약을 복용하는 게 좋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하루에 최대 6정만 복용해야 문제가 없습니다.
생리통이 매우 심한 경우에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 이 약의 경우 생리를 시작하기 전 미리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생리통을 유발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해 생리통을 줄여줍니다. 그런데 프로스타글란딘은 생리 시작 12~36시간 전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에 약을 미리 복용해야 통증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우리 위를 보호하는 이로운 역할도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공복에 먹으면 굉장히 속이 쓰릴 수 있으니, 반드시 식사를 한 뒤에 먹어야 합니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성분으로는 이부프로펜, 덱시부프로펜, 나프록센 등이 있습니다. 성분과 용량에 따라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최대량과 복용 간격이 정해져 있습니다. 또 사람마다 진통 효과가 잘 나타나는 성분이 다릅니다. 이부프로펜 성분의 약을 복용했을 때는 진통 효과가 없다가 나프록센 성분을 복용하면 효과가 좋은 경우도 있으니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성분을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생리통에 다른 증상들이 동반된다면 복합제를 복용할 수 있습니다. 생리통에 배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나 설사가 동반된다면 스코폴라민이라는 성분이 함께 들어있는 약(부스코판플러스정 등)을, 생리통이 있으면서 몸이 잘 붓는다면 몸의 수분을 빼주는 이뇨제 성분인 파마브롬 성분이 포함된 약(이지엔6이브 연질캡슐, 펜잘레이디정 등)을 복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통제는 성분에 따라 복용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이 12세, 15세 등으로 다르고, 연령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도 체중 기준에 미달이면 양을 줄여서 복용해야 하므로 반드시 약사와 상의 후에 복용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약국에서 약을 구매할 때 ‘○○○ 주세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약사에게 생리통의 증상이 어떤지 자세히 설명하고 증상에 맞는 약을 추천받는 게 좋습니다. 친구에게 효과가 좋은 진통제가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하나 더, 카페인은 불면과 속쓰림을 유발하기 때문에 청소년에게는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은 진통제를 추천합니다.
모든 약이 그렇듯 진통제 또한 제대로 복용하면 약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됩니다. 집에 오래된 진통제가 있을 경우 유효기간이 지나지는 않았는지도 제대로 살펴야겠습니다.
이소정. 고려대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약학대학원 물리약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약학 정보를 쉽게 널리 알리기 위해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개인 맞춤형 건강서비스 스타트업인 ‘마스터큐어’ 대표약사로 있다. mastercure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