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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움직이는 자북, 이러다 혹시 지자기 역전?

매년 55km, 빨라진 자북의 이동속도


지구 자기장을 예측하는 모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세계자기장모델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산하 국가환경정보센터(NCEI)와 영국지질조사국(BGS)이 공동으로 개발한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민간에서도 선박 항해의 기준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는 모델이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아이폰에도 설치돼 정확한 위치를 보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과 영국지질조사국 연구팀은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지상 관측소와, 2013년 유럽우주국(ESA)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웜(Swarm)’이 관측한 지구 자기장의 자료를 모아 5년마다 한 번씩 세계자기장모델을 업데이트 해왔다. 
그런데 2018년 초부터 문제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1년 마다 모델의 유효성을 체크하던 중, 북극 부근에서 모델의 오차가 예상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을 발견했다. 지구 자기장의 북극(자북)이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다.
자북은 지구 자기장이 수직 아래 방향으로 가리키는 지표면의 지점을 말한다. 나침반이 실제로 가리키는 북쪽이다. 북극해의 가운데에 있는, 지구 자전축의 북쪽 끝을 가리키는 지리적인 북극(진북)과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지구 자기장이 수시로 변하는 만큼 자북은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다. 
사실 자북이 움직인다는 건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자북은 꾸준히 움직였다. 키어런 배건 영국지질조사국 연구원은 2019년 2월 5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400년 전 선박들의 항해 기록을 분석한 결과, 자북은 1900년대까지 캐나다 북쪽 주변을 10km 이내로 맴돌며 움직였다”고 말했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북은 시베리아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북위 70도 부근이었던 자북은 2001년에는 그린란드 근처의 북위 80도를 넘어 북극해까지 움직였다. 지난해에는 북극점을 넘어 점점 더 동쪽으로 이동하며 시베리아에 가까워지고 있다. 
문제는 이 속도가 점점 빨라져 과학자들이 자북의 위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은 캐나다와 프랑스 국제 공동 연구팀이 최근의 자북 이동 속도를 추정한 결과, 연간 약 55km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는 해마다 약 15km의 속도로 이동했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최근에는 3배 이상 빨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르노 출리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연구원은 2019년 1월 9일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예상보다 속도가 빨라져 기존 모델과 현재 지구 자기장 사이의 오차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5년 주기가 아니라 수시로 자기장 모델을 업데이트해야 할 상황이다.

 

캐나다와 시베리아 자기장의 줄다리기
그렇다면 자북은 왜 움직이는 걸까. 또 갑자기 이렇게 빨리 움직이게 된 이유는 뭘까. 
지구 자기장은 지구 내부에 있는 액체 상태의 외핵에 의해 만들어진다. 전기 전도도가 큰 철과 니켈로 이뤄진 외핵은 대류현상으로 움직인다. 이 외핵의 대류운동과 함께 지구의 자전 운동으로 유도전류가 만들어지고, 자기장이 생긴다. 
그런데 외핵뿐만 아니라 지구 자기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더 있다. 도성재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지구 자기장의 80~90%가 지구 자전과 외핵의 대류 운동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외의 여러 요인들도 자기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바다에 큰 해류가 있고 작은 해류가 있는 것처럼, 외핵 속에도 커다란 대류 현상과 여러 개의 작은 소용돌이들이 있다. 
우선 외핵이 고체로 이뤄진 맨틀과 내핵에 부딪치면서 소용돌이가 생기는 경우다. 맨틀과 지각의 경계가 매끈하지 않은 것처럼, 맨틀과 외핵, 외핵과 내핵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울퉁불퉁한 경계에서 마찰이 일어나면 그 부분만 국지적으로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지구 자기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외핵 내에서도 크고 작은 대류 운동이 일어난다. 외핵과 내핵의 경계에서 액체가 고체로 변하면서 상태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열이 방출되는데, 그 열로 주변이 데워지면서 밀도가 낮아져 위로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차가운 위쪽의 유체는 아래로 움직여서 대류 현상이 일어난다. 외핵에 있는 무거운 원소와 가벼운 원소가 대류하기도 한다.
함량이 아주 작지만 외핵에는 방사성 물질도 있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나오는 열로 또 다른 대류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도 교수는 “이렇게 여러 요인들에 의해 자기장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기장은 계속 바뀌고, 그에 따라 자북과 자남도 수시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지역마다 자기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달라 자기장의 강도도 지역에 따라 다르고, 자북과 자남도 이론처럼 정확히 180도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자북의 위치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추정된다. 2018년 12월 10~1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지구물리학회에서 필 리버모어 영국 리즈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자북의 위치는 캐나다 북부와 시베리아 아래에 있는 자기장의 영향을 각각 받는데, 캐나다 쪽의 자기장이 약해져 시베리아 자기장과의 줄다리기 시합에서 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 자북의 빠른 이동에 따른 세계자기장모델의 수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배건 연구원은 “수정된 모델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55도 이하의 위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도 교수도 “일반인에게는 큰 문제가 없지만, 북극을 항해하는 선박이나 군대, 탐험가나 북극 항로를 지나가는 비행기 등에는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쓰지만 나침반이 필요한 상황이 있어 최신 자기장 모델이 필요하다. 

78만 년 전 지자기 역전 나타나
만약 자북이 계속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면 자북과 자남이 뒤바뀌는 ‘자기장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을까. 실제로 지구 자기장은 불규칙하긴 하지만 평균 25만 년을 주기로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자성을 띠는 광물이 포함된 암석들을 근거로 과거 지구 자기장의 방향과 세기 등을 역추적한 결과다. 가장 최근에 지자기 역전 현상이 일어났던 때는 78만 년 전이었다. 
도 교수는 “지자기 역전 현상은 사실 자북의 이동보다는 자기장의 강도와 관련이 더 많다”며 “자기장의 강도가 점점 줄어들었다가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는 게 지자기 역전”이라고 설명했다. 
1600년대 영국 런던에서 지구 자기장 관측을 처음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매년 0.05%씩 지구 자기장의 강도가 줄어들고 있다. 도 교수는 “외핵의 변화가 누적돼 자기장의 세기에 영향을 미치면 지자기 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장이 역전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0~1만 년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난해 중국, 대만, 호주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중국 구이저우성 산싱 동굴의 석순에 포함된 자기장 기록을 분석한 결과, 10만7000년 전에서 9만1000년 전에는 100~200년의 짧은 시간에도 지자기 역전이 일어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미래에 이런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다면 인공위성이나 지구 생명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doi:10.1073/pnas.1720404115
지자기 역전 현상으로 인한 지구 멸망은 재난 영화의 단골손님이다. 하지만 도 교수는 “자기장의 세기가 약해질수록 해로운 방사선이 더 많이 들어오고, 자기장을 이용하는 생물들에게도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자기장이 아예 소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난 영화처럼 멸종 위기가 오는 등의 극단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 교수는 또 “외핵을 직접 관측할 수 없는 만큼 지구 자기장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며 “자기장의 세기와 자북의 이동 속도는 줄어들었다가 다시 커질 수도 있고, 일시적인 현상인지, 앞으로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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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오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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