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대구 지역 수돗물에서 과불화헥산술폰산(PFHxS), 과불화옥탄산(PFOA) 등 과불화화합물이 높은 농도로 검출돼 파장이 일었습니다(과학동아 8월호 ‘대구 덮친 과불화화합물 공포’ 참조).
환경부는 즉각 과불화화합물의 오염 원인을 차단했습니다. 이후 해당 하수처리시설에서 과불화화합물의 농도는 감소했지만, 과거에 이 물질들에 얼마나 많이 노출됐는지 알 수 없는 대구 주민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불화화합물은 특유의 화학적 성질 덕분에 물과 기름에 모두 잘 섞일 수 있고, 이 물질로 고분자화합물을 만들면 물이나 기름에 반발력이 커집니다. 등산화와 비옷이 물에 잘 젖지 않고, 프라이팬이나 햄버거 포장지에 음식이 잘 달라붙지 않는 것도 과불화화합물이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3장 반 논문이 과불화화합물 연구 열어
인류가 이런 과불화화합물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양한 생활 용품과 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인 3M은 1940~1950년대에 이 물질이 꽤 쓸모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여러 가지 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여러 회사에서 과불화화합물을 이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불화화합물이 환경과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독성 연구는 2000년대 들어서야 시작됐습니다. 환경독성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존 기지 당시 미국 미시간주립대 환경독성연구소 교수(현 캐나다 서스캐처원대 교수)와, 같은 연구소에서 일했던 쿠룬타칼람 칸난 박사(현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야생동물의 생체 시료에서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인 과불화옥탄술폰산(PFOS)을 검출한 결과를 2001년 보고했습니다. doi:10.1021/es001834k
논문에 따르면 여러 종류의 야생동물에서 PFOS가 검출됐고, 사람의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극지의 북극곰과 펭귄에서도 PFOS가 검출됐습니다. 세 장 반으로 이뤄진 이 짧은 논문이 환경독성학계에서 과불화화합물 연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논문은 짧은 길이 외에 특이한 점이 또 있습니다.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에는 연구비의 출처를 명시하게 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 연구는 공익적인 성격이 강한 만큼 정부 연구비를 받아 수행되는 경우가 많아 정부 기관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논문에는 과불화화합물을 생산하는 당사자인 3M이 연구비 출처로 기재돼 있습니다. 3M은 자신들이 만든 화학물질이 전 세계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지 교수의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3M이 생산한 환경오염 물질을 3M이 지원한 연구비로 밝혀낸,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최근 3M은 과불화화합물 오염과 관련해 거액의 배상금을 물기도 했지만, 3M이 연구비를 지원한 덕분에 과불화화합물의 독성에 경각심을 갖게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린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 증가 위험
이 논문을 시작으로 과불화화합물이 호수, 강, 흙 등 자연환경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혈액에서도 검출된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필자가 속한 연구팀은 2008년부터 한국인의 혈액 샘플을 수집해 과불화화합물의 농도를 측정해왔습니다.
2012년에는 이미 혈중 PFOA 농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된 대구와, 공장이 많아 과불화화합물의 노출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 경기 시흥시 주민의 혈중 과불화화합물 농도를 조사했습니다. doi:10.1016/j.envint.2012.03.007, doi:10.1016/j.scitotenv.2012.08.007 그 결과 PFOA 농도는 시흥에 비해 대구에서 높게 나타났습니다. 국내 다른 지역에서 보고된 기존 결과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치였습니다.
임신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혈액 속 과불화화합물이 태반을 거쳐 태아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doi:10.1021/es202408a
과불화화합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습니다. 과불화화합물은 갑상선호르몬 교란, 생식 이상, 지질대사 이상, 신장 독성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영향은 PFOA와 PFOS를 포함해 여러 종류의 과불화화합물에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경기도 시흥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서는 혈중 과불화테트라데칸산(PFTrDA)의 농도가 갑상선호르몬의 농도 감소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이 결과를 토대로 물고기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해 수컷 물고기가 120일 동안 PFTrDA에 노출됐을 때 여성호르몬이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PFTrDA가 생식 이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doi:10.1016/j.chemosphere.2014.01.080 이런 PFTrDA의 영향은 PFOS와 PFOA에 노출된 물고기의 암수 쌍에서 산란수가 감소한 영향과 유사한 결과입니다. doi:10.1897/07-523.1
최근에는 국내 어린이와 청소년(3~18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과불화운데칸산(PFUnDA)에 노출됐을 때 혈중 콜레스테롤이 증가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doi:10.1016/j.scitotenv.2018.07.177
PFOA는 ‘스톡홀름 협약’에 포함 안 돼
200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는 3M 등 PFOS를 제조한 회사들이 이 물질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를 인지하고 환경청(EPA)과 협의해 자발적으로 PFOS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미국인의 PFOS 노출은 가파르게 감소했습니다. 2년마다 진행되는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혈중 PFOS를 측정한 결과, 그 농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만 이 물질의 사용을 줄인다고 해서 전 세계적인 오염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혈중 PFOS 농도가 매년 눈에 띄게 감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특히 PFOS처럼 환경 중 잔류성이 큰 물질들은 대기와 바다의 순환을 따라 전 지구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 물질의 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합니다.
환경 중 잔류성이 크고 생체 내에 축적되면서 독성이 강한 물질들은 ‘스톡홀름 협약’이라는 국제협약에서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로 지정해 사용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PFOS도 2009년 POPs로 지정됐습니다. 스톡홀름 협약에 의해, 일부 목적을 제외하면 PFOS는 세계적으로 사용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대구 수돗물에서 높은 농도로 검출됐던 PFOA와 PFHxS는 아직 스톡홀름 협약의 관리 대상 물질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별다른 제재 없이 이 물질들이 하수로 배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 두 물질들이 스톡홀름 협약의 신규 관리 대상으로 제안된 만큼 조만간 이들 물질도 POPs로 지정돼 관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과불화화합물을 오랫동안 생산해온 듀폰이 1984년부터 인근 지역으로 PFOA를 배출하면서 2002년 웨스트버지니아주와 오하이오주 일부 지역에서 식수가 PFOA에 오염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듀폰에 대한 소송으로 번졌고, 듀폰에는 기금을 마련해 해당 지역의 PFOA를 제거하고 지역주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관련 교육을 진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PFOA의 노출과 질병 간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C8 건강 프로젝트(C8 Health Project)’도 2005년 이 기금을 토대로 시작됐습니다. doi:10.1289/ehp.0800379 PFOA 오염에 영향을 받은 주민의 대다수인 약 6만90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고농도 PFOA에 노출된 사람들의 혈중 콜레스테롤이 증가했고 갑상선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동물실험으로 확인했던 PFOA의 독성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한 연구였습니다.
이 사건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분명히 불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으로 끝내지 않고 과불화화합물의 저감 노력에 힘을 실어줄 중요한 연구 결과를 생산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대구 과불화화합물 수돗물 사건도 이런 식의 해결 방법이 모색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