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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식 전 한국환경기술개발원장·국과과학기술자문회의위원


나는 어머님 등에 업혀 나들이할 때마다 새로운 사물을 보면 으레 어머님께 따지며 여쭈었다고 한다. 또 그런 물음에 만족할 만큼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 않으면 어머님의 머리채를 잡아 끌며 더 많은 설명을 재촉했다고 한다.

이러한 나의 탐구심 때문이었는지 모르나 부모님께서는 내게 의사가 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뜻을 어기고 물리학을 택했다.

지금은 아파트 건물로 꽉 들어차 있는 서울 청량리 소재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것도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클라스 메이트들과 나는 모두 뉴턴의 후예가 되자고 다짐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대학 재학중에 만난 6·25동란은 우리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한창 열을 올리며 공부해야 할 때 전쟁이 발발했으니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다. 아마 전쟁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세계의 석학이 됐을 것이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 우리들은 학문을 좀 더 연마하기 위해 외국유학을 떠났다. 그 결과 이영근 박사(미국 존스 홉킨스대 교수·춘원 이광수의 장남)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핵물리학을, 김종오 박사(고려대 명예교수)는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고에너지물리학을, 이수호박사(서울대 명예교수)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이론입자물리학을, 장보현 박사(중앙대 명예교수)는 일본 도쿄 대학에서 반도체물리학을, 그리고 나는 영국 런던 대학에서 대기확산론을 전공했다.

나름대로 뜻 있는 과학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은 70년대 초부터 매년 한번씩 부부 동반으로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지 47년째가 되는 올해에도 벌써부터 한마당을 갖자고 야단들인데, 정년퇴임 후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뛰고 있는 동창들보다 아내들간의 제2의 '과학외길'에 대한 대화가 더 잦다.

따라서 만남의 주도권이 오히려 아내들에게 넘어간 셈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여성상위 시대를 대변하는 경우가 아님을 우리 모두가 공감하기에 그 분위기가 싫지는 않다. 〈오리엔트時計 제공〉
 

지난92년 7월 마침 귀국중이던 이영근 박사를 맞이해 부부동반으로 경기도 양평에 나들이를 나갔다. 남자들만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이영근 박사, 김종오 박사, 이수호 박사, 장보현 박사, 필자, 박영일씨(6·25동란중 전과(轉科)·현재 출판사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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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노재식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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