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부산 해운대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윤창호 씨가 11월 9일 끝내 숨졌다. 안타까운 그의 사고로 음주 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국민청원은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고, 법무부는 음주운전 범죄를 엄벌하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음주운전 처벌 기준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는 물론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필수다. 혈중알코올농도에 대한 과학적 쟁점 4가지를 짚어봤다.
● 쟁점 1 ‘술에 취한 상태’의 기준, 왜 0.05%인가
드라마 속 술자리에는 ‘나 하나도 안 취했다’며 혀가 꼬부라져 말하는 캐릭터가 한 명씩 등장한다. 실제로 혈중알코올농도와 운전자 본인이 생각하는 취기의 정도는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운전이 금지되는 술에 취한 상태의 기준은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5퍼센트 이상인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제44조 4항). 혈중알코올농도 0.05%는 일반적으로 소주 2잔(50mL), 또는 맥주 2잔(250mL) 정도를 마시고 1시간이 지난 상태에 해당한다.
술은 시공간의 지각 능력과 판단력을 떨어뜨린다. 반응속도도 느려진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일 때는 반응이 0.4초, 0.1%일 때는 1초 지연된다. 반응속도가 지연되면 정지거리가 길어져 사고 위험성이 높아진다.
음주운전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0.05%인 현재의 기준을 0.03%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현재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최종 결정되기 때문이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0.05%를 음주운전 단속 최소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미국은 (21세 이상의 운전자의 경우) 이보다 완화된 0.08%를 단속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 쟁점 2 날숨? 혈액? 무엇으로 측정할까
음주운전의 기준을 설정한 뒤 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도 중요한 쟁점이다.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표본 혈액을 추출해서 알코올 농도를 직접 재는 일명 ‘혈액 측정법’이 있고, 내쉬는 숨에서 알코올 분자량을 측정해 혈중알코올농도를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호흡 측정법’이 있다.
혈액 측정법은 정확도가 높지만 침습적이고 시간과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경찰에서는 주로 호흡 측정법을 사용한다. 날숨 속에 알코올 분자가 1개 있으면 혈액 속에는 알코올 분자 2100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1:2100 혈액-호흡 분배비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이는 개인에 따라 편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전자가 날숨 대신 혈액 측정을 요구하면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 혈액을 측정하고, 두 결과의 차이가 큰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적용한다.
배균섭 서울아산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혈중알코올농도와 호기중의 알코올 농도는 거의 정비례의 관계지만, 입안에 알코올 또는 알코올 유사물질이 있거나 과호흡을 할 경우 혼동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배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구강청결제, 피로해소제 등에 포함된 소량의 알코올 성분이 음주측정기에 감지되기도 한다. 배 교수는 “검출 기기의 정확성을 높이고, 측정 호흡량을 정량화하는 등 검사의 객관성을 높여 한계를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쟁점 3 사건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어떻게 추정할까
음주운전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현장에서 곧바로 측정하기는 어려우므로 ‘위드마크(Widmark) 공식’으로 추정한다. 단속 시 측정된 혈중알코올농도를 위드마크 공식에 넣어 그보다 1시간 또는 2시간 전의 알코올농도를 알아내는 것이다.
위드마크 공식은 1930년대 스웨덴 생리학자인 에릭 위드마크가 처음 제안했다. 운전자가 사고 당시 마신 술의 종류, 운전자의 체중, 성별 등의 변수를 대입해 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하는 것이 공식의 핵심이다.
체내에 들어온 알코올은 흡수, 확산, 분해, 대사, 배출의 과정을 거친다. 위드마크 공식은 흡수된 알코올이 전신으로 퍼져 음주 후 30~90분에 혈중알코올농도가 최고치에 이르고, 시간당 0.008~0.03%(평균 0.015%)씩 감소한다고 본다.
그러나 위드마크 공식에는 두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는 알코올이 흡수되고 분해되는 과정의 개인차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드마크 공식은 백색인종인 코카시안 성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공식인데,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이들보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도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배 교수는 “평균적으로는 시간당 8g의 알코올(술 1잔)을 분해할 수 있지만, 시간당 39g을 분해하는 사람도 보고 돼 있다”고 말했다.
한성필 서울아산병원 임상약리학과 전문의는 “위드마크 공식은 흡수모형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지적했다. 위드마크 공식으로 혈중알코올농도가 하강하는 구간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음주 후 약 90분간 알코올 흡수가 얼마나 이뤄지며, 혈중알코올농도가 시간당 어느 비율로 상승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혈중알코올농도의 상승 정도를 알지 못하면 사건 당시의 알코올 농도를 추정할 때 추정값이 훨씬 낮게 나온다.
실제로 대구지방법원은 2014년 2월 “호흡측정을 한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치로는 혈중알코올농도가 최고치에 도달한 이후 하강기에 해당하는 구간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할 수 있을 뿐 상승기에 해당하는 구간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산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한 전제사실에 따라”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대구지방법원 2014. 2. 13. 선고 2013노2309 판결). 음주운전을 엄벌하기 어려운 이유다.
음주 후 시간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 그래프 위드마크 공식 vs. 베이즈 방법
한성필 서울아산병원 임상약리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2012년 발생한 실제 음주 운전 사건을 재구성해 피의자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위드마크 공식과 베이즈 방법으로 각각 분석했다. 이 경우 판결의 핵심은 사고가 발생한 오후 9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다. 하지만 위드마크 공식으로는 이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기 어렵다. 반면 베이즈 방법으로는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단속 기준(0.05%)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온다.
● 쟁점 4 한국형 혈중알코올농도 추정법 나올까
이렇듯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위드마크 공식을 대체하기 위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한국판 위드마크 공식’ 개발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배 교수가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임형석 서울아산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와 함께 2017년 대한임상약리학회 학술지 ‘TCP’에 게재한 연구다. doi:10.12793/tcp.2017.25.1.5
연구팀은 알코올 흡수 및 대사 능력, 혈중알코올농도의 개인차를 고려해 농도 상승기와 하강기를 모두 추정할 수 있는 ‘베이즈 방법’을 사용했다. 배 교수는 “베이즈 방법은 이전 사람의 데이터를 이용해 새로운 사람의 값을 추정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동전 던지기에 빗대보자. 동전 던지기를 할 때 전통적인 통계에서는 이전 값에 상관없이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을 각각 2분의 1로 계산한다. 여기에 동전이 비뚤어지지 않았다는 전제 등 실험 환경도 완벽하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동전을 20번 던졌을 때 앞면이 19번 나오고 뒷면이 1번 나왔다면, 21번째 던지는 동전은 앞면이 나올 확률이 높은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추정 방식을 정량화한 것이 베이즈 방법이다.
베이즈 방법을 혈중알코올농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연구팀은 건강한 한국 성인 남성 24명을 대상으로 35mg의 알코올을 투여한 뒤, 10시간 동안 날숨을 측정해 혈중알코올농도 그래프를 그렸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데이터로 수학적 관계식을 세워 새로운 측정 대상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 전문의는 “한국인의 경우 새로운 모형이 위드마크 공식보다 높은 정확도로 혈중알코올농도를 예측할 수 있다”며 “경찰이 현장에서 성별, 체중, 연령대를 입력해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할 수 있도록 음주단속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승 연구위원 역시 “공동연구를 통해 한 단계 더 발전한 한국형 혈중알코올농도 추정법을 도출할 수 있다면, 죄질에 따라 적절한 형량을 도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