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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잠을 흉내내는 기술

냉동인간은 살아날 것인가

일상적인 수면과는 다르지만 곧잘 수면현상과 연관지어 생각되는 몇가지 현상들이 있다. 그 중에서 최면과 마취는 인간의 뇌활동에 관련된 것으로 수면상태와 밀접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동물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자신읜 대사량을 조절해 살아남는 동면현상을 인간에 응용하려는 인공동면이나 인체동결기술 등도 수면과 관련돼 있다.

최면 - 의식 집중일뿐 잠은 아니다

최면(Hypnosis)이라는 용어가 원래 라틴어에서는 '잠'을 뜻하는 말이었듯이, 오랫동안 최면은 수면과 같은 현상으로 생각돼왔다. 졸거나 잠을 잘 때 주변을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최면상태에서도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약 1백여년 전까지도 최면을 수면과 구분하지 않았다. 생리적인 면에서도 최면상태에서는 심장박동과 호흡수가 줄고, 혈압이 낮아지고, 체온이 증가하는 변화를 보인다. 몸이 이완된 상태이므로 당연히 대사율이 약간 저하된다. 그리고 최면시의 특징들은 대체로 수면시에 나타나는 생리적인 변화와 유사하다.

그러나 최면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최면은 수면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최면전문가들에 따르면, 최면은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엔가 강하게 집중해서 주변인식이 배제된 고도의 각성상태이다. 공부를 열심히 집중해서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가 불러도 모르듯이 최면은 어느 한가지에 집중한 무아지경의 상태이지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최면의학 전문의 변영돈 박사에 따르면, 최면과 수면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뇌파 라고 한다. 최면시의 뇌파는 베타파를 중심으로 하는 보통의 각성상태와 같고 다만 각성시 보다 알파파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알파파는 심신이 이완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 일 뿐 최면이 의식상태가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수면시에는 느린 알파파가 집중적으로 나 타나는 상태로 각성시의 뇌파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최면과 수면시 생리적인 변화의 유사성은 두 상태가 모두 신체가 이완된 상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유사성일 뿐, 최면과 수면은 확실히 구별되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면이 수면과 다른 현상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고 뇌의 기전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불면증 환자에게 최면으로 잠을 유 도하거나 최면시 잠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최면으로 몸이 이완된 상태가 수면과 관계가 있을 것 이라는 개연성을 추측하는 수준에서 별로 진전돼 있지 못하다. 그 만큼 뇌의 활동에 관한 연구는 복잡하고 어렵다.

마취 - 겉모습보다는 뇌파로 구별해야

구토나 어지럼증 등 깨어났을 때 부작용이 없는 마취의 경우 잠에서 깨어난 듯하다는 환자들이 있 다. 이처럼 마취는 뇌의 활동측면에서 수면상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전신마취 상 태는 의식이 없다, 통증이 없다, 반사가 소실된다, 근육이 이완된다는 4가지의 요소로 특징지어진 다. 흔히 깊은 수면 상태에서 옆사람이 깨우거나 꼬집어도 별로 의식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이 것은 깊은 수면상태가 마취상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대병원 이상철 교수(마취과)에 따르면, 전신마취는 깊은 잠의 상태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수면 과 마취는 몇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전신마취는 마취제로 뇌의 작용을 억제해 뇌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기 때문에 마취 상태에서는 주변 의식이 없고 반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때 문에 깊은 마취상태에 있는 사람은 외적인 특징으로만 보면 깊은 수면상태에 있는 사람과 구별하 기 어렵다. 그러나 얕은 수면상태에서는 자극이 주어졌을 때 통증, 반사, 의식, 근육수축이 즉각적 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일반적인 잠의 상태는 의식이나 반사작용이 전혀 없는 마취상태와는 다르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국소마취나 얕은 마취의 경우는 뇌의 기능에 별 영향이 없이 특정부 위 신경의 자극전달 경로를 막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은 완전히 깨어있으면서 특정부위의 감각만 없어지는 것이다.

뇌활동의 측면에서 보면, 마취상태는 수면 상태와 더욱 확연히 구분된다. 인하대 신경과 이일근 교 수에 따르면, 수면시의 뇌파는 마취상태의 뇌파와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마취상태에 서는 델타파와 테타파를 주로 하는 매우 느린 뇌파가 검출된다. 그러나 수면시에는 느린 알파파를 주로 하면서 여러 굴곡이 나타나는 뇌파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수면상태의 하나인 렘 수면상태에 서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뇌활동이 오히려 활발한 것으로 나타난다. 꿈을 꾸는 것도 수면시에 뇌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볼 때 마취는 육체적인 상태에서는 깊은 수면과 비슷하지만, 뇌활동의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상태인 것이다.


저체온수술법에서 인체를 저온상태로 유지하면서 대사량을 줄이는 방법은 동물들의 동면과 유사하다.
 

인공동면 - 이제 겨우 1시간, 저체온 수술에서 활용

동물들은 동면시 체온이 내려가고 대사량이 급격히 줄면서도 생명은 계속 유지된다. 이 원리를 인체에 적용해 최소한의 대사만을 유지하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미래에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이를 적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동물의 동면을 흉내내는 인공동면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

아직 동물들의 동면과 동일한 인체의 상태를 유지하는 기술은 나오지 못했지만 제한적으로 인간도 동면이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고 있다. 이미 심장수술과 같은 외과 수술에서는 저체온수술 법이라는 유사한 기술이 쓰이고 있다. 체온을 낮추면 대사가 거의 멈추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일 정시간 동안 피의 흐름을 멈추어도 세포의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다. 이때 수술을 하면 피를 전혀 흘리지 않고 깨끗이 수술을 마칠 수 있다.

체온이 30℃도 안팎으로 떨어지면 심장박동이 정지하고, 18-20℃에서는 뇌의 대사기능도 거의 멈추는 '순환정지상태'에 이르게 된다. 특히 체온이 20℃가 되면 인체대사에 필요한 산소공급이 불필 요하기 때문에 '심장은 뛰지 않는데 살아있는' 일종의 가사상태가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동면상태를 상당 시간 지속시키지는 못한다. 20℃ 이하의 저체온상태에서 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뇌와 심장, 간 등 인체의 주요 장기의 세포들이 손상되거나 죽어버리기 때 문이다. 서울중앙병원 서동만박사(흉부외과)에 따르면, 현재까지 20℃ 정도의 저체온수술에서 약 1 시간 정도가 안전한 시간이라고 한다. 물론 체온을 더욱 낮춰 11℃ 정도의 초저체온상태로 유지하 면 순환정지상태를 조금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지만, 안전한 시간은 그리 많이 늘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저온이라 하더라도 세포가 산소와 영양물질을 공급받지 못한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 문이다. 또한 신장은 저온상태로 2-3일을 보관할 수 있지만, 심장은 겨우 몇시간에 불과한 것처럼 인체 각 부분의 내한성이 다르기 때문에 저온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크게 제약을 받는다.

만일 이러한 제약들을 극복하고 저온상태에서 완벽하게 대사조절이 가능해진다면 인공동면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1시간을 넘긴 인공동면 기술. 자유자재로 대사를 조절할 수 있는 날은 먼 미래일 것이다.

인체냉동 - 자면서 우주여행?

영화 '데몰리션 맨'은 1990년대 냉동인간으로 보존된 한 경찰(실베스타 스탤론)이 2032년에 생환해 활약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 '로스트 인 스페이스'에서도 새로운 터전을 찾아 냉동상태로 우주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이 나온다. 이러한 냉동 인간은 인간의 생명활동을 일시 정지했다가 다시 활동하도록 하는 미래 기술의 전형이다.

그런데 공상과학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러한 인간 냉동기술이 최근의 연구개발로 가능성이 높게 제 기되고 있다. 현재의 동결기술은 일부 포유류에 대한 동결과 해동이 성공하고 있는 단계까지 발전 했다. 세포 1개를 동결했다 해동하는 것은 일찍부터 실험돼왔다. 먼저 삼투압을 이용해 세포내의 수분을 빼내고 대신 동결보호제를 투입해 동결시킨다. 그리고 다시 재생할 때 이를 역으로 해주면 세포는 다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동결 대상이 수정란 수준으로만 올라가도 세포가 크고 복잡해 져서 동결기술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1970년대에야 수정란의 동결기술이 완성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세포 1개를 동결하는 것도 어려운데 구조가 크고 복잡한 생물개체를 동결시키는 것은 얼마나 어려 운 일일까.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에 따르면, 세포를 아무 처치 없이 동결시킬 경우 세포내 의 수분이 얼음결정체를 형성해 조직을 파괴하기 때문에 이를 해동시킬 경우 되살리지 못다고 한 다. 때문에 동결기술의 핵심은 이 얼음결정의 형성을 막는 것이다. 황교수는 "현재 인류의 동결기 술 수준을 정확히 논하기는 어렵지만, 포유류인 토끼를 동결했다 되살리는 실험이 성공했다는 보 고가 있는 것처럼 미래에는 인간의 동결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33명의 냉동인간 보존

한편 미국에서는 냉동인간이 공상과학이 아닌 현실이 돼 있다. 이미 1967년 심리학자 베드포드(당 시 75세)박사가 사망 직전 냉동상태에 돌입함으로써 냉동인간 1호를 기록했다. 그는 체내의 피를 전부 빼내고 대신 동결보호제를 체내에 주입해 액체질소로 영하 196℃를 유지하는 금속 탱크에 넣어졌다. 그 후 많은 냉동인간 후보들이 자원을 했고, 현재 미국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에는 냉동캡슐 에 33명의 냉동인간이 보존돼 있다고 한다.

현재의 냉동인간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심장이 멈추는 순간 서서히 체온을 내려 30분 이내에 3℃ 정도까지 내린다. 다음에는 혈액 등 신체의 수분을 제거한다. 12시간 정도 걸 려 혈액을 서서히 모두 빼내고, 동결방지제를 주입해 동결시 세포를 파괴하는 빙정이 형성되는 것 을 막는다. 동결방지제가 주입된 인체는 급속냉동으로 영하 79℃까지 온도가 내려가고, 마지막으로 장기보존을 위해 영하 196℃의 액체질소 캡슐에 넣어져 보관된다.

그러나 영하 1백96℃로 보존된 인체들이 미래에 해동돼 다시 생명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들은 2030년쯤 해동되기로 계획돼 있지만 아직 기술진보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이들을 동결시킨 현재의 냉동 방식에 문제가 있을 경우 세포가 이미 회복불능으로 파괴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냉동인간들은 살아날 것인가. 미래의 후손들에게 성공을 기대해보기로 하자.

<;냉동인간 만드는 방법>;

심장이 멈추는 순간 체온을 내려 30분 내에 영하 3℃까지 내린다.
⇒ 12시간 정도 걸려 혈액을 모두 빼내고 동결방지제를 주입한다.
⇒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급속냉동으로 영하 79℃까지 내린다.
⇒ 장기 보존을 위해 영하 1백96℃의 질소탱크에 보관한다.
 

냉동인간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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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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