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블랙홀은 존재하는가'를 묻는 시대는 지나가고 태양의 수억배 질량을 갖는 거대 블랙홀을 생각해야 하는 때가 도래했다.
블랙홀은 천체물리학계의 '괴물'인가? 사실 지난 70년대 초반만 해도 블랙홀은 '거대한 중력으로 인하여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곳' 또는 '모든 물리학이 붕괴되는 시공간의 표면'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느 천체보다 연구 활발
그러나 1974년 영국의 '호킹'(Hawking)이 블랙홀도 여느 천체와 마찬가지로 복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한 이후, 블랙홀에 대한 천체물리학자들의 태도는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즉 블랙홀이 비록 우리의 '이웃'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과거에 생각해 왔던 것처럼 '괴물'과 같은 존재도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블랙홀은 천체물리학의 세계에서 미운 오리새끼 같은 처지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마침내 어떠한 천체보다도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존재로서 새로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블랙홀은 과연 존재하는가'하는 식의 의구심을 품던 시대는 지나, 태양정도의 질량을 갖는 것으로부터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 수억 배가 되는 거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블랙홀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갖는 블랙홀에 관하여는 서울대 현정준교수가 과학동아 86년 4월호에서 치밀하게 다루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주로 여러 은하의 중앙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거대한 블랙홀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0억개의 은하를 1년간 밝힐 에너지
거대한 블랙홀이 천체물리학자들의 강한 흥미를 끌게 된 첫째 이유는 그 내부에 저장된 어마어마한 에너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블랙홀에 저장된 에너지란 어떠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블랙홀의 물리적 특성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정지해 있는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의 '슈바르쯔실트'(Schwarzschild) 해(解)를 그리고 자전하고 있는 것은 '커'(Kerr) 해를 각각 만족하기 때문에 천체물리학자들은 흔히 앞의 것을 슈바르쯔실트 블랙홀, 나중 것을 커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슈바르쯔실트 블랙홀의 경우 호킹 복사와 같은 양자물리학적인 방법 이외에는 어떠한 고전적 방법으로도 그 질량을 추출할 수 없다. 그러나 커 블랙홀의 경우는 슈바르쯔실트 블랙홀과는 달리 총질량의 29% 이내의 값을 갖는 '회전 질량'이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 데, 이것은 고전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추출 가능하다는 것이 1969년 영국의 '펜로즈'(Penrose)에 의해서 최초로 제안되었다.
펜로즈에 의하면 (그림1)과 같이 커 블랙홀 주위에 E₁의 초기 에너지를 가지고 접근한 물체가 둘로 갈라져 한 조각이 블랙홀로 떨어져 버리고 다른 한 조각이 블랙홀로부터 E₂의 에너지를 가지고 탈출하는 경우, 회전 질량의 추출에 의하여 E₂가 E₁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천체물리학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펜로즈 과정'(Penrose Process)이라 부른다.
추출된 질량은 아이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²(E는 에너지, m은 추출된 질량, c는 광속도=3×${10}^{10}$cm/sec)을 통하여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으므로 거대한 커 블랙홀은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보고 그 자체인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질량의 1억배가 되는 거대한 블랙홀을 생각하여 보자. 추출 가능한 회전 질량이 총질량의 10%에 이른다고 가정하면 m=0.1×${10}^{8}$×태양질량(2×${10}^{33}$g)≈2×${10}^{40}$g이고, E=(2×${10}^{40}$g)c²≈2×${10}^{61}$erg가 된다. 이 에너지의 크기는 약 ${10}^{20}$개의 태양 또는 약 ${10}^{9}$개의 은하를 1년 동안 빛나게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값이 된다! 항성의 에너지원인 핵융합이 총 수소의 1% 미만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을 비교하여 보더라도 블랙홀의 에너지 추출 과정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거대 블랙홀은 물과 비슷한 밀도
거대한 블랙홀이 태양 질량 정도의 블랙홀과 명확히 구분되는 물리적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평균 밀도의 크기에 있다 하겠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갖는 블랙홀의 평균 밀도는 원자핵의 밀도(약 ${10}^{14}$g/㎤)를 넘는 매우 치밀한 것이다.
반면에 거대한 블랙홀의 평균 밀도는 놀랍게도 대략 물의 밀도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앞서 예로 든 태양 질량의 1억 배 짜리 블랙홀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블랙홀의 반경 ${R}_{G}$는 질량에 비례하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량을 갖는 블랙홀이 ${R}_{G}$=3㎞(슈바르쯔실트 반경)라는 사실로부터 예로 든 거대한 블랙홀은 ${R}_{G}$=3×${10}^{8}$㎞의 값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구와 태양까지의 평균 거리가 1.5×${10}^{8}$㎞정도(1천문단위)이므로 예로 든 거대한 블랙홀은 대략 우리 태양계 내의 행성 궤도 정도의 크기를 갖는 셈이다. 따라서 부피는 대략 ${10}^{41}$㎤이 되고 질량은 ${10}^{8}$×태양질량=2×${10}^{41}$g이 되므로 이 경우 거대란 블랙홀의 평균 밀도는 2g/㎤가 된다.
이 거대한 블랙홀은 가장 빨리 자전하는 경우 하루에 약 7바퀴를 돌 수 있는데, 이 때 블랙홀의 가장자리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를 갖게 된다.
쌍동이 형제의 패러독스
쌍동이 형제가 있어 그 중 더욱 용감한 형이 동생이 바라보는 가운데 블랙홀의 밖으로부터 안쪽을 향하여 자유 낙하를 시도한다고 하자. 형은 자기의 맥박으로 시간을 재면서 아무런 시간 간격의 변화를 느끼지 않은 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블랙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밖에서 바라보는 동생의 입장에서는 형이 블랙홀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점점 낙하속도가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마침내 블랙홀의 표면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멈춘듯이 보이게 된다.
즉 동생은 일생 동안 기다려도 형이 블랙홀의 표면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결코 볼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반경 ${R}_{G}$의 구면을 '사상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중력의 세기는 블랙홀의 주변에서 매우 크기 때문에 쌍동이형이 꼿꼿하게 수직으로 떨어지는 경우 머리 부분과 발 부분에 작용하는 중력의 세기 차에 의해 몸이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첨언해 두고자 한다.
앞에서 쌍동이로 인용된 두 관측자는 제각기 다른 블랙홀의 물리학을 기술하게 되는 데 이론적으로 적합한 관측자는 될 수 없다. 따라서 천체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의 부근에서 일정한 각속도로 블랙홀을 공전하며 자신의 관성계를 유지하는 관측자를 주로 많이 고용하고 있다. 우리는 블랙홀에 관한 글이나 책을 읽을 때, 위의 세 관측자 중 어떠한 관측자의 입장에서 기술되고 있는 지 항상 먼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자유낙하하는 관측자에게는 블랙홀을 공전하고 있는 물체가 광속에 가깝게 블랙홀로부터 탈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다무어'(Damour), '내직'(Znajek)은 호킹의 블랙홀 복사 이론에 힘입어 '블랙홀 전기역학'(black hole electrodynamics)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을 개척하였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위의 공전하는 관측자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의 표면에는 전류도 흐르고 저항도 걸리게 되며 자기장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블랙홀 전기역학에서 말하는 블랙홀의 표면이란 사상의 지평선 그 자체가 아니고, 지평선 조금 밖에 위치한 '연장된 사상의 지평선'(stretched event horizon)을 말한다. 그러나 관측자가 연장된 사상의 지평선 밖에 존재하는 한 관측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호킹 복사는 블랙홀 표면에서의 온도와 엔트로피를 정의 가능하게 하므로 이제 블랙홀은 다른 천체와 똑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블랙홀의 열역학'(black hole thermodynamics)이라는 분야도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이르러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앞서 말한 온도와 엔트로피가 정의되면서 비롯되었다. 블랙홀의 열역학에는 일반 열역학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해당되는 '표면적 증가의 법칙'이 있다. 즉 표면적이 A₁인 블랙홀이 표면적이 A₂인 블랙홀과 충돌하여 다시 표면적이 A인 하나의 새로운 블랙홀을 생성하는 경우 A는 절대로 A₁+A₂보다 작을 수 없다는 것이다.
블랙홀 주변의 유입물질 원반
여기서 잠깐 블랙홀을 떠나 블랙홀 주위로 눈을 돌리기로 하자. 블랙홀 주위에 있는 물질은 언제나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끌려 들어가기 마련이다. 각운동량을 가지고 커 블랙홀에 끌려 들어가는 물질들은 블랙홀의 적도면에서 얇은 원반을 형성하게 된다.
백조 자리 X-1 같은 X선원이나 신성, 왜신성과 같이 쌍성(쌍동이별)의 진화와 관련된 천체들은 모두 얇은 유입물질원반(accretion disk)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유입물질원반은 일찍부터 천체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거대한 블랙홀 주위에 형성되는 유입물질원반도 규모만 다를 뿐 그 내부의 물리학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거대한 블랙홀 주변의 유입물질원반이 쌍성계의 작은 유입물질원반과 명확히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부 압력이 증가함에 따라 두꺼운 원환체(torus)의 모양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천체물리학의 세계에는 주로 2가지 종류의 압력이 등장하게 되는데 하나는 입자들의 고온에서의 운동에 의한 기체 압력이고 또 하나는 광자들에 의한 복사압력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은 기체 압력에 의해 유지되는 원환체를 이온원환체(ion torus), 복사 압력에 의해 유지되는 원환체를 복사원환체(radiation torus)라 부른다.
1985년 미국의 '베겔만'(Begelman)과 '블랜퍼드'(Blandford)는 이러한 거대한 블랙홀 주위의 유입물질원반과 유입물질원환체를 이용하여 비정상적으로 밝은 핵을 갖는 은하들을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퀘이사'(Quasar) 같은 천체는 복사원반체를 가진 거대한 블랙홀에 의하여, 그리고 보통의 전파 은하핵은 이온원환체를 가진 거대한 검은 구멍에 의하여, 그리고 광도를 비교할 때 앞의 것 둘의 중간인 '시퍼트'(Seyfert)은하의 핵같은 것들은 얇은 원반을 가진 거대한 블랙홀에 의하여 관측된 스펙트럼이 잘 설명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은하핵들이 내는 막대한 에너지는 대부분이 중앙의 거대한 블랙홀의 회전질량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퀘이사의 수수께끼도 풀려
특히 퀘이사의 물리학에 관하여는 1963년 발견된 직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퀘이사들이 보여주는 엄청난 적색편이는 대부분 수십억 광년의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으므로, 이 수수께끼의 천체들은 한 은하의 총 광도만큼이나 밝아야만 했다. 그리하여 거대한 블랙홀의 이론 이외에도 초신성 모델, 성단 모델, 화이트 홀(white hole) 모델, 심지어 새로운 물리학의 가능성 등 많은 이론의 후보들이 난립하여 3파전, 4파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선거'는 끝나서 영국의 '리즈'(Rees)와 미국의 '쏜'(Thorne)이 주축이 된 거대한 블랙홀의 이론이 올바른 것으로 '당선' 확정되었다.
최근의 정밀한 관측 자료들은 우리 은하 그리고 이웃인 안드로메다(Andromeda) 은하의 중심에도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 이르는 블랙홀이 존재함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 은하 중심에 태양 질량의 1백만~1억배에 이르는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차츰 기정사실화 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거대한 블랙홀에서부터 회전질량을 추출할 수 있는 지 알아보기로 하자.
전자회로로 설명한 블랙홀 에너지
펜로즈 과정이 제창되자마자 많은 천체물리학자들은 역학적인 방법을 이용한 블랙홀 에너지의 추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거대한 블랙홀 주위로 접근한 항성이 기조력(앞서 쌍동이의 형을 늘인 힘)에 의해 파괴되어 펜로즈 과정을 거치는 식이다. 그러나 1972년 '바딘'(Bardeen), '프레스'(Press), '튜콜스키'(Teukolsky)는 그들의 블랙홀에 관한 고전적 논문에서 항성의 속도가 광속도에 가까울 때만이 비로소 이러한 방법이 천체물리학적으로 흥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역학적인 방법은 기대하기 힘들게 되어버린 셈이었다.
1977년 블랜퍼드와 내직은 영국의 천문학 학술지에 믿을 만한 전자기학적 블랙홀의 에너지 추출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이론이 발표된 후에도 이렇다할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자 '맥도날드'(Macdonald)와 쏜은 1982년 이 이론을 전자회로에 비유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다. 맥도날드와 쏜의 기지에 찬 전자공학적 해석을 이제까지 기술한 거대한 블랙홀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그림2)에는 거대한 블랙홀과 그 주위 유입물질원반의 안쪽 끝부분이 검정색으로 나타내져 있고, 그리고 포물선 모양의 자기력선도 그려져있다. 자기력선들은 블랙홀과 유입물질원반에 걸려있는 데, 시간이 지나도 서로 꼬이거나 엉키지 않게 된다. 블랜퍼드-내직 이론은 이처럼 블랙홀과 유입물질원반이 자기장을 띠고 있을 때만이 성립 된다.
플라즈마 조건에 따르면 그림에서 블랙홀 주변의 노란 지역에서는 자기장의 세기가 크기 때문에 전자나 양성자같은 전하를 갖는 입자들이 자기력선을 넘나들지 못하게 되어 있다. 즉 이들 입자들은 오로지 자기력선을 따라서만 운동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블랙홀로부터 충분히 먼 붉은 지역에서는 입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어 꼭 자기력선을 따라 움직일 필요는 없게 된다.
그림에서 ABCD와 같은 임의의 폐쇄 전자회로를 생각할 때 구간 AB와 CD는 입자들의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는 노란 지역에 주로 위치하고 있으므로 훌륭한 도체와 같다. 붉은 지역에 있는 구간 BC에서도 마치 소금물 속의 이온들이 전류를 흐르게 하듯 전하의 이동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간에서는 입자들의 충돌이 빈번히 일어나므로 AB, CD처럼 도체로 생각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구간 BC를 저항 R´가 끼어 있는 전자회로로 대체한다.
막지막으로 블랙홀 표면상의 구간 AB는 앞서 기술한 블랙홀 전기역학에 의존하게 된다. 여기서 블랙홀은 마치 기전력 V를 가진 전지처럼 행동하게 되며 고유의 저항 R이 여기에 걸리게 된다.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자기장이 걸려있는 경우 블랙홀의 표면에서는 위쪽 극으로부터 아래쪽 극으로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폐쇄 회로 내의 전체적인 전류 방향은 그림과 같이 된다. 실제로 거대한 블랙홀의 자기권 내에서 전하를 지닌 입자들의 대국적인 운동은 이러한 전류의 방향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직렬 연결된 두 저항 R, R´과 기전력 V에 의해 회로내 전류 i는V/(R+R´)로 주어지고, 저항 R´이 회로에서 발생시키는 일률은 i²R´이 된다. 즉 블랙홀로부터 전자기적인 방법으로 추출된 에너지는 붉은 지역에 이렇게 운반되는 것이다. 블랙홀의 기전력은 회전 질량에 의해서 공급되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블랙홀의 자전속도는 차차 느려지게 된다. 실제 천체물리학적 계산에 따르면 거대한 블랙홀로부터 이렇게 추출된 에너지는 퀘이사를 수억 년 동안 밝게 빛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판명된다. 따라서 퀘이사의 수수께끼는 이제 거대한 블랙홀 이론에 의하여 풀린 셈이다.
우주로 눈을 돌려야
금세기 초반 양자물리학에 기반을 둔 핵융합 이론이 등장했을 무렵 그 이론이 천문학의 한 분야가 되리라고는 거의 아무도 예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오늘날 고등학교 지구과학 교과 내의 천문학 강좌 내에서도 항성의 에너지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등장하여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천체물리학 세계의 괴물과도 같은 블랙홀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퀘이사를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앞의 예와 무언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나는 21세기의 천체물리학도 결국은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일반상대론, 입자물리학과 같은 물리학은 곧 21세기의 천체물리학 특히 이론천체물리학과 우주론 분야의 '언어'가 되어서 우리를 또 다른 놀라운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현대의 은하형성론은 한 좋은 예가 되겠다. 은하가 중력불안정에 의해 자란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현대의 우주론 모델들은 초기 은하 형성의 '씨앗'을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관측되지 않는 암흑물질(dark matter: 질량을 갖는 뉴트리노는 여기에 해당된다)을 기반으로 한 은하형성이론, 인플레이션 우주초기의 위상적 결함(topological defect)을 이용한 은하형성이론 등 기상천외한 이론들이 난립하여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물리학의 발달에 따라 거기에 기반을 둔 새 이론들이 속속 나타났던 것이다.
여기에 광자(전자기파)만을 관측하는 일을 떠나서 뉴트리노나 중력자(중력파)에 까지 관측의 힘이 미치게 되면 천체물리학의 세계는 엄청난 변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단지 우주망원경(space telescope)을 통한 전파장에 걸친 전자기파의 관측만으로도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을 예측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21세기의 천체물리학을 위해서는 지금의 천문학 전공 학생들은 기초물리학 지식의 습득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줄로 믿는다.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지구 상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의 한계는 자명한 만큼 우주로 눈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 될 것이다. 실제로 많은 물리학자들이 광속에 의해 묶여있는 금세기 물리학의 패러다임이 천체 현상에서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고체물리학이 중성자성의 내부를 설명하게 될 지, 새로운 입자물리학이 다시 우주론을 어떻게 바꾸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세계 1백여개의 국가 중 유일하게 우주를 상징하는 국기인 태극기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이, 특히 이론천체물리학이나 우주론에 재질이 있는 민족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독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