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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기생생물 현실에도 있을까? ‘베놈’ vs. ‘창궐’

숙주에 굶주린 그들을 파헤친다

10월 3일 개봉한 영화 ‘베놈’과 25일 개봉한 영화 ‘창궐’. 전자는 악당인 ‘안티 히어로’가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이고, 후자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영화다.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두 영화.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인간을 감염시켜 숙주로 삼는 미지의 기생 생명체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영화로 봐야겠지만, 현실에서 이런 기생 생명체는 없을까.


 

 

먼저 베놈부터 살펴보자. 베놈은 마블 코믹스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스파이더맨’에 나왔던 악당 베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사실 베놈은 악인을 벌한다는 점에서 악당이라기보다는 안티 히어로(악당이지만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복잡한 면모의 캐릭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기자였던 주인공이 안티 히어로인 베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심비오트(symbiote)’라는 외계 생물 때문이다. 심비오트는 공생체 생물을 뜻하는 말로, 이 외계 생물은 우주를 떠돌며 인간 등 여러 숙주에 기생해 살아간다. 물론 심비오트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생물이지만 영화는 현실에 상상을 더해 만드는 것. 그렇다면 지금부터 현실 속 ‘심비오트’를 찾아보자.

 

연가시, 숙주 조종하는 ‘심비오트’ 후보

영화에서는 심비오트에 감염되면 숙주의 신체 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며, 촉수나 신체 변형 등 다양한 특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심비오트는 숙주의 뇌를 읽어 정신을 공유할 수 있으며, 숙주의 정신을 지배하거나 숙주를 통제하려고 하기도 한다. 
일단 심비오트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묘사되는 숙주의 정신 지배부터 따져보자. 영화에서 심비오트는 주인공의 정신을 지배하고 육체의 통제권을 얻으려고 한다. 기생 생물이 명령을 내려 숙주의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런 생명체가 지구상에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연가시가 있다. 연가시는 곤충에 기생하는 생물로, 물속에서 번식과 산란을 한다. 곤충의 몸속에서 기생했다가 성충이 되면 숙주를 조종해 물속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숙주의 자살을 유도하는 셈이다. 2012년 약 4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연가시’도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이는 실험적으로도 관찰됐다. ‘진화 생물학 저널’ 2002년 4월 30일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년간 야외 수영장을 관찰한 결과 9종의 곤충이 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doi:10.1046/j.1420-9101.2002.00410.x 연구팀은 물에 뛰어든 곤충 가운데 귀뚜라미를 이용해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Y자 형태의 미로를 만든 뒤 한쪽에는 물그릇을 놔둬 습한 환경을, 반대쪽에는 건조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후 미로 내에서 귀뚜라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연가시에 감염된 귀뚜라미와 그렇지 않은 귀뚜라미의 행동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감염된 개체와 감염되지 않은 개체 모두 행동에서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습한 환경에서는 두 집단이 서로 달랐다. 연가시에 감염된 귀뚜라미 15마리는 습한 환경에 머문 반면, 감염되지 않은 개체는 12마리 중 1마리만 머물렀다. 연가시에 감염된 귀뚜라미가 그렇지 않은 귀뚜라미보다 물에 더 친화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연가시 외에 톡소포자충(toxoplasma)도 심비오트 후보로 올릴 만하다. 톡소포자충은 고양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동물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이다. 고양이의 대변에 알이 섞여 나오면 이를 섭취한 다른 동물의 체내에서 부화한다. 이후 이 동물을 다시 고양이가 잡아먹으면 체내에서 성충으로 성장해 번식한다. 
톡소포자충은 동물의 행동 양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쥐의 경우 고양이에 대한 공포심이 매우 강한데,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에 대한 공포심이 줄어들어 고양이와 접촉할 확률이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이 쥐는 고양이에 잡아먹히고 톡소포자충은 번식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기생충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될 경우 간질이나 조현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doi:10.17219/acem/61435
식물 중에도 ‘파이토플라스마(phytoplasma)라는 심비오트 후보가 있다. 이 세균은 식물의 체관에 기생하면서 식물이 꽃 대신 잎을 만들게 한다. 김지현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파이토플라스마에겐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만들 수 있는 잎이 꽃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며 “더 많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 꽃의 발현을 막고 잎을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내미생물은 숙주와 공생관계

영화가 진행되면서 심비오트와 주인공은 서로 합의를 한다. 브록은 심비오트의 힘을 빌려 강한 신체와 특수한 능력을 얻고, 심비오트는 인간을 잡아먹음으로써 자신의 식욕을 채운다. 이들은 인간을 먹고 싶으면 악당만 공격해 잡아먹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규칙도 세운다.
이는 자연계에서는 기생이라기보다는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공생관계에는 남세균과 곰팡이의 복합체인 지의류가 있다. 남세균은 광합성이 가능해 자체적으로 양분을 생산할 수 있다. 곰팡이는 남세균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대신, 남세균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셈이다. 
식물 중에서도 공생관계를 통해 양분을 얻는 경우가 있다. 콩과 식물들이 대표적이다. 콩과 식물들의 뿌리에는 혹처럼 불룩 튀어나온 곳이 있는데, 뿌리혹세균 때문이다. 뿌리혹세균은 질소고정세균으로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해 암모니아로 바꿀 수 있다. 뿌리혹세균은 질소 자원인 암모니아를 식물에 제공하는 댓가로 콩 뿌리에서 공생한다. 
실제로는 동물도 다양한 미생물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는 소와 같은 초식동물이다. 초식동물은 식물 속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당분을 얻는다. 하지만 이들의 소화기관은 셀룰로오스 분해 효소를 분비할 수 없다. 이 효소의 역할을 장내 미생물이 대신하고 있다. 
때로는 공생을 통해 외부의 적과 싸우기도 한다. 인간을 비롯한 여러 동물의 장내 미생물이 외부 세균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최근 김 교수팀은 이런 공생관계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토마토가 식물 전염병인 풋마름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플라보박테리아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명공학’ 10월 8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doi:10.1038/nbt.4232 김 교수는 “동물의 장내 미생물의 역할과 유사한 개념”이라며 “식물의 프로바이오틱스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잠복기 짧은 ‘좀비 바이러스’는 없어 

이번엔 따끈따끈한 신작, 영화 ‘창궐’을 살펴보자. 창궐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픽션 사극으로, 조선에 ‘야귀(夜鬼)’라는 존재가 창궐하면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영화에서 야귀는 원래 사람이었다가 괴물로 변한 것으로 묘사된다. 햇빛을 견디지 못해 밤에만 활동하며, 눈은 충혈 돼있고, 혈관이 도드라지며, 송곳니가 돋아 있는 등 인간의 외형에서 변화가 생긴 것으로 나온다. 야귀는 이성을 잃고 사람을 공격해 살을 물어뜯고 피를 빨아먹으며, 야귀에 물린 사람은 수 시간 내에 야귀가 된다.
영화의 설정을 보면 야귀에서는 ‘한국판 흡혈귀’나 좀비의 냄새가 풍긴다. 그간 대부분의 좀비 영화나 드라마에서 좀비의 감염 매개체는 바이러스나 세균 등 우리 몸에서 번식할 수 있는 생명체인 경우가 많았다. 
야귀의 특성만 놓고 보면 야귀를 매개하는 병원체는 상처를 통해 감염되며 단시간 내에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잠복기가 매우 짧아야 한다. 또 감염됐을 때 감염자는 강한 공격성을 표출해야 한다. 현실에서도 야귀와 비슷한 성질을 보이는 병원체가 몇 종 있다.
우선 상처를 통한 감염부터 보자. 상처를 통해 감염된다는 점은 상처 등을 통해 체액이 직접 교환돼야 감염된다는 것이다. 이런 병원체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나 매독균 등 성병 관련 병원체가 있다. 이들은 주로 체액 등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통해 감염된다. 
다만 이는 야귀의 특징인 짧은 잠복기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HIV는 감염 이후 길게는 수년의 잠복기가 있고, 매독 또한 1차 증상인 경성하감(균이 침입한 자리에 발생하는 딱딱한 궤양)이 생길 때까지 약 3~4주의 시간이 걸린다.
잠복기가 야귀처럼 극단적으로 짧은 병원체는 그리 많지 않다. 김봉영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급성위장염을 유발하는 노로바이러스(1~2일)나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2~3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바이러스성 질환은 잠복기가 최소 5~10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노로바이러스는 주로 음식물 섭취로 감염되는 만큼 물려야 감염되는 야귀의 특성에 딱 들어맞는 후보는 아니다”라며 “그나마 세균성 질환이 바이러스성 질환보다는 잠복기가 짧은 편이기 때문에 비슷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귀처럼 감염되면 공격성을 나타낼 만한 바이러스로는 광견병 바이러스가 있다. 급성 뇌질환의 일종인 광견병은 발병하면 극도의 공격성을 표출하는 경우가 있으며, 한번 발병하면 거의 무조건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좀비 바이러스 후보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광견병 외에도 일본뇌염이나 뇌수막염처럼 뇌에 침입하는 병원체가 이상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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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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