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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료계의 혁명 수혈기술 개발

혈액형이 가장 중요시되는 분야는 수혈. 이 수혈도 직접수혈에서 간접수혈, 전혈수혈에서 성분수혈 등으로 과학발전과 함께 변화해왔다. 냉동혈액 인공혈액 등도 이미 개발된 상태다

수혈(transfusion)이란 다른 사람의 혈액을 뽑아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행위나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아주 단순한 것으로, 실제로는 여러 갈래의 수혈 양식이 있다.

인류 사상 최초의 수혈행위는 1492년에 이루어졌다. 당시 병에 걸린 교황 이노센트 7세를 치유하기 위해 세 젊은이의 혈액를 뽑아 수혈한 기록이 그것인데, 교황을 포함한 네 사람 모두 사망하였다. 교황은 혈액형이 같지 않은 혈액을 수혈받아 생긴 용혈성 수혈부작용으로 사망했을 것이며, 세 젊은이는 피를 너무 많이 뽑아 혈액량 부족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에 와서는 혈액형이 같은 사람의 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혈액형이 발견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이러한 사건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혈액형 발견에 따라 비약적 발전

이후로도 수혈에 대한 시도는 간간이 있어 왔으나 거의가 실패로 끝났다. 주된 원인은 채혈된 피가 환자에게 주입되기 전에 응고되어 버렸기 때문. 그러다가 1869년 피를 굳지 않게 하는 항응고제 인산나트륨(sodium phosphate)이 개발되었다. 1900년 ABO식 혈액형이 발견된 데 이어 다른 계통의 혈액형들도 잇따라 발견되면서, 수혈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사람을 살상하는 전쟁이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의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혈액보존 연구에 큰 기여를 한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부상사의 치료를 위해 많은 양의 혈액이 수송되어야 했고, 수송하는 동안 혈액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혈액을 보존할 수 있는 항응고제의 개발이 필요했던 것이다. 현재까지 사용되는 대부분의 혈액보존용 항응고제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5년을 전후하여 개발되었다. 당시 채혈용 용기로는 유리병이 쓰였는데, 1958년이 되면서 요즈음 흔히 보는 플라스틱제제인 1회용 채혈액이 등장했다. 또한 세균의 오염을 방지하는 무균 채혈 개념도 도입되어 수혈의 성공률이 매우 높아지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세계적으로 수혈의학이 정립하게 된 분기점이라 한다면 우리나라는 6·25 전후가 그 시기가 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직접수혈에서 간접수혈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직접수혈이란 항응고제가 들어 있는 주사기에 헌혈자로부터 50-1백ml씩 반복 채혈하여 즉시 환자에게 주사해주는 방식이며, 간접수혈이란 3백ml 이상을 한번에 채혈하여 용기에 보관, 필요시 수혈하는 방식이다. 6·25 동란 중 한국군의관들은 미국에서 채혈하여 냉장 수송되어온 유리병에 담긴 전혈을 사용하는 경험을 얻게 되고, 이후 해군에는 혈액고, 육군에는 수혈부가 창설된다. 일반병원에는 1956년 세브란스병원을 시초로 하여 대학병원 등에 많은 혈액은행(blood bank)이 생기게 된다.


혈액형에 따라 분류돼 냉장보관되고 있는 적혈구 농축액. 혈액을 보관할 때는 1-6℃를 유지해주어야 한다.
 

전혈수혈에서 성분수혈, 자가수혈로 발전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간에 수혈에 있어서 의학적인 질의 차이는 없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 혈액형의 분포 등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고 할 수 있고, 또 도덕성이 높아 혈액으로 전파될 수 있는 질병이 선진국에 비해 적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한 수혈이 시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헌혈된 혈액은 환자에게 수혈하기 전 몇가지 검사를 거치도록 혈액관리법에 규정되어 있다. ABO 혈액형, Rh혈액형, 매독검사, B형 간염 항원검사, C형 간염 항체검사, ALT(alanine aminotransferase, 간 효소의 일종)검사, HIV 항체검사(에이즈 검사)들이 그것인데, 이러한 검사를 필했다 해도 1백% 안전한 것은 아니다. 검사상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면역항체 등 환자의 몸에 들어가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교차시험을 거쳐야 된다. 교차시험이란 헌혈혈액과 환자의 혈액을 반응시켜 보는 것으로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환자에게 수혈할 수 있다.

우리나라 혈액관리법은 1회 채혈량을 3백20ml와 4백ml 두가지 단위로 정하고 있다. 이렇게 건강인으로부터 채혈된 혈액 자체를 전혈(whole blood)이라고 한다. 단시간내에 대량의 출혈이 있는 환자 등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전혈수혈(whole blood transfusion)은 시행하지 않는다.

전혈은 원심분리하여 적혈구 농축액(packed red cell), 혈소판 농축액(platelet concentrate), 신선동 결혈장(fresh frozen plasma)의 세 성분으로 나누어 쓰인다. 이렇게 전혈이 아닌 부분적 성분을 분리하여 수혈하는 것을 성분수혈(component hemotherapy)이라 한다. 성분수혈은, 첫째 환자에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서 줄 수 있고(예를 들어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액응고인자 중 하나 혹은 두가지), 둘째 필요없는 성분이 환자의 몸에 들어가 생길 수 있는 수혈부작용을 줄일 수 있으며, 셋째 한사람의 혈액을 각 성분으로 나누어 여러 환자에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철결핍성 빈혈이나 악성 빈혈 환자에는 적혈구 농축액을,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환자에는 혈소판농축액을, 혈우병에는 혈액응고인자를 많이 함유하는 신선동결혈장을 수혈하여 치료하는 것이다.

만일 혈우병환자에 전혈을 사용하여 치료하고자 한다면, 치료에 충분한 응고인자를 얻기 위해 아주 많은 전혈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환자 몸속에 너무 많은 양의 혈액이 들어가면 위험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전혈을 쓸 수 없다. 이와 같이 전혈을 수혈하는 것은 여러가지 단점이 있어, 현재는 성분수혈이 수혈 행위의 기본 방법으로 일반화되어 있는데,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기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다.

현대에 들어와 널리 시술되는 성분수혈방식에 혈액분반술이 있다. 혈액분반술(apheresis)이란 건강한 헌혈자에서 채혈되는 혈액을 혈액분반기(cell separator)라는 기계를 통하게 하여 혈소판이나 백혈구 등 환자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용기에 담고, 나머지 성분은 다시 헌혈자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을 말한다.

혈소판 수혈이 필요한 경우 효과있는 농도의 혈소판을 만들어 주려면 전혈로는 6유니트 이상을 사용해야 하나, 혈액분반기를 이용하면 필요한 농소의 혈소판액을 단 한사람의 헌혈자로부터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시술은 대개의 대학병원이나 적십자혈액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가족공혈 또는 지정공혈에 의한 수혈도 있으나 그리 많이 시행되지는 않는 편이다. 15-16년전만 해도 돈을 받고 혈액을 파는 매혈행위가 있었으나 근래에는 1백% 헌혈에 의해 혈액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수혈로 인한 에이즈 환자가 발생함에 따라 남의 혈액을 수혈받기 꺼리는 환자들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환자들은 가족이나 친지의 혈액은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들의 혈액을 수혈받기를 원하는데, 이렇게 헌혈자가 특정한 환자를 위하여 혈액을 제공하는 형태를 지정공혈이라고 하여 헌혈과는 다른 개념으로 취급한다.

지정공혈된 혈액이 일반 헌혈혈액보다 안전할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수혈전 검사를 해 보면, 지정공혈된 혈액에서 수혈 전 검사 양성률이 일반 헌혈혈액에서보다 결코 낮지 않아 더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뿐만 아니라 직계 가족간의 수혈에서는 이식편대숙주반응(GVHR : Graft Versus Host Reaction)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일반 헌혈혈액을 수혈했을 때보다 높다는 보고도 있다. 물론 직계가족간에 수혈이 이루어질 때 혈액에 방사선을 쬐어 그 발생률을 낮출 수 있기는 하다.

최근 가장 각광을 받는 수혈방식은 수술 전 자기혈액을 뽑아두었다가 수술 중이나 수술 후 수혈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하는 자가수혈(autologous transfusion)이다. 이 수혈방법은 헌혈혈액 내에 있으면서도 검사로는 발견할 수 없는 문제 물질이 수혈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에이즈 등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받아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최근 수술환자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채혈된 혈액 보존 기간이 35일까지이므로, 예정된 수술일에서 한달쯤 전부터 매주마다 1유니트씩, 총 3-4유니트의 혈액을 채혈하여 냉장 보관한 후 수술시 사용하게 된다.

자가수혈은 나이에 제한없이 시행될 수 있으며, 심장수술이나 정형외과 수술, 치과의 구강성형수술 등에 적합하다. 그러나 빈혈이 심한 경우에는 불가능하며, 협심증이나 울혈성 심부전증 등의 환자는 반드시 의사와 상의한 수 시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 경부터 대학병원급에서 자가수혈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1993년도 3월부터 보험급여가 인정되어 의료보험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형태의 자가수혈 방법에는, 수술중 흘러나온 피를 셀 세이버(cell saver)라는 기기를 통해 모아 두었다가 수술 중이나 수술 후에 다시 되돌려 수혈해주는 방법도 있다. 심장 수술같이 출혈이 많은 수술에서 쓰이는 방식으로, 위의 자가수혈방법과 병행하여 이용된다. 그러나 혈액이 오염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따라야 하고 수술실에서 그 시술이 이루어져야 하는 등 한계가 있다.


헌혈된 혈액은 환자에게 수혈하기 전 ABO혈액형, Rh혈액형, 매독, B형간염 HIV항체검사 등을 거친다.
 

내동혈액, 인공혈액 등이 미래형 수혈 형태로

현재의 혈액보존 기간인 35일보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미 1960년대에 탈글리세롤법(deglycerolization)이 개발되었는데, 이는 적혈구를 냉동하여 보관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냉동적혈구(frozen red blood cell)는 희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의 혈액이나 자가수혈용 혈액의 장기보존을 위해 선진국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이 방법은 혈액이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이 되지만, 수혈이 필요한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낭비가 되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이 사회문제화되자 이러한 냉동적혈구의 예치를 권장한 적이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비용만 많이 들 뿐 실용성이 없어 더 이상 권장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Rh 음성 혈액의 확보문제와 자가혈액의 장기보존에 대한 요구로 인해 혈액냉동 보존 기술이 도입돼 있다. 그러나 미국의 예에서와 같이 혈액의 냉동과정이나 보존에 드는 경비 등이 장애요인이 되어 실용화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 국가의 보조 등 경제성이 있게 되면 많은 이용이 예상되는 수혈방법이다.

한편 인위적으로 일부의 혈액기능을 갖게 만든 합성제제를 인공혈액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은 그 활용이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하여 현재 국내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도 실제 환자에는 거의 사용치 않고 있다. 극히 제한적인 경우, 예를 들어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절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나 아주 희귀한 혈액형을 가져 수혈에 적합한 혈액을 찾지 못한 환자 등에 주로 시도되고 있다.

인공혈액의 개발은 우선은 여러 혈액성분중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지닌 산소운반 능력을 대신할 수 있는 제제를 만드는 것이 첫번째 목표로 되어 있다. 현재까지 몇몇 제제가 연구되어 발표되어 있지만,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가장 최근의 연구로는 유전공학을 이용하여 사람의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대장균에 접합시켜 다량의 재조합 헤모글로빈(recombinant hemoglobin)을 만드는 기술의 개발이다. 이의 실질적인 이용이 이루어지기에는 부작용의 해결 등 많은 실험결과가 필요하다. 인공혈액은 현재까지 미국의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나 일본 후생성의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상 수혈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현재가 과거의 연장이듯이 미래는 현재가 있어서 존재한다. 수혈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자세히 알아봄으로써 미래의 수혈방식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최신 혈액분반기를 이용, 헌혈하는 모습
 

199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권오헌 혈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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