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석유와 같은 에너지와 금, 은, 철 등의 자원을 개발하는 광업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의 주요 산업이었습니다. 학과의 역사도 100년이 넘습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7년 지질조사소가 설립되고 그와 함께 경성고등공업학교에 ‘광산과’가 설립된 뒤 1939년 경성광산전문학교로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1946년 서울대가 생기면서 공대로 통합됐죠.”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장은 100년이 넘은 학과와 산업의 역사를 이같이 설명했다. 에너지자원공학과는 석탄과 석유, 금, 은, 철 등 전통적인 에너지자원은 물론 신재생에너지와 리튬 등 새로운 에너지자원도 다루고 있어 전공이 세분화돼 있다.
[교수진] 슈퍼컴퓨터 사용량 가장 많은 최첨단 분야
에너지자원공학과에서 연구하는 분야는 크게 탐사, 개발공학, 석유가스공학, 자원재활용, 그리고 에너지자원경제 등 5개로 나눌 수 있다.
물리탐사와 지구화학탐사 등 탐사 분야는 물리 및 화학 이론을 활용해 지하에 묻혀 있는 에너지자원의 정보를 분석한다. 시추와 암반공학을 연구하는 개발공학 분야는 땅속 암반을 연구해 암반에 터널을 뚫거나 암반 속의 변화를 분석하고, 지하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시추하는 기술을 연구한다.
자원재활용 및 에너지자원경제는 앞의 세 분야와 조금 다르다. 자원재활용은 개발된 자원에서 실제 필요한 부분을 분리해 순도를 높이는 기술을 다루며, 에너지자원경제는 에너지와 자원을 경영·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다. 허 학과장은 “에너지자원산업은 여러 기술과 자원을 동원해 공장이 아닌 광산이나 유전 등에서 광물과 석유 등을 채취하는 일종의 운영업”이라며 “현장을 운영하고 국제시장의 동향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자원공학 분야는 천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이 연구에서도 앞선 경우가 많지만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구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가 석유탐사 데이터 시각화 알고리즘이다. 신창수 교수팀은 지하 물리탐사 데이터를 정밀한 3차원 영상으로 변환시키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2005년 미국 석유탐사전문기업에 40만 달러(약 4억4668만 원)를 받고 수출했다. 2016년에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기존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지하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종근 교수팀은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을 위해 땅속을 파는 시추 기술 연구에서 독보적이다. 최 교수팀은 미국 연구진과 공동으로 3000m 깊이의 심해에서 석유를 뽑아 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2002년 국제특허를 취득했다. 이 기술은 활용 가능한 석유 자원의 양을 획기적으로 늘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 학과장은 “에너지자원공학이라고 하면 석탄 채굴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세계적으로 슈퍼컴퓨터 사용 시간과 데이터량이 가장 많은 최첨단 분야”라고 말했다.
[교육 프로그램] 연간 최소 1회 현장 교육 진행
에너지자원공학과는 연구 분야의 폭이 넓은 만큼 다양한 교과목을 가르친다. 지구과학은 물론이고 수학과 물리, 화학, 생물학, 지리정보시스템(GIS), 경영, 경제 등 교과목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분야별로 개설된 강의도 있지만, 기초를 다지는 1학년의 경우 교과목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자원역학, 자원재료학 등 지구과학을 중심으로 각 분야를 융합한 교과과정을 개발했다. 2~4학년 때는 각 교수들의 전공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한다.
허 학과장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1년에 한 번씩은 자원개발 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현장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에너지자원공학과는 재학생 전원이 국내 자원개발 현장을 경험하면서 자원개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부 학생에게는 외국의 자원개발 현장을 체험할 기회도 주어진다.
단기 연구의 기회도 있다. 교수마다 연구 주제를 정하고 학부생을 모집한 뒤 단기간 팀을 이뤄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허 학과장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해 보거나 심화학습을 하는 등 단기 연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진로 지원] 세계 무대 진출 적극 후원
“에너지자원공학은 많은 자본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관련 산업이 다국적기업이나 국내 대기업, 정부가 투자한 공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따라서 졸업생 대다수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거나 학계로 진출합니다.”
허 학과장은 졸업 후 진로가 비교적 안정적이며,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많다는 점을 에너지자원공학과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또 “에너지 관련 전공 중에서도 교과 스펙트럼이 넓어 국가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책임자들 가운데 동문 출신들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들은 더 많은 졸업생들이 해외 다국적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업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가령 에너지자원공학과 졸업생은 일본 미쓰비시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기업인 사우디아람코, 세계적인 석유개발 기업인 슐럼버저 등 다양한 기업에 졸업생들이 진출하고 있다.
[인재상] 학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확인해야
“종종 학과에서 뭘 배우는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지원한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허 학과장은 에너지자원공학과에 관심 있는 수험생이라면 최소한 홈페이지라도 살펴보고 에너지자원공학과에 대해 꼼꼼히 알아본 뒤 지원하라고 조언했다. 에너지자원공학과에서 배우는 내용과 연구에 흥미를 느낀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교과와 성향에 맞춰 다양한 진로가 열려있기 때문에 누구든 에너지 분야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허 학과장의 생각이다.
가령 수학이나 물리학에 흥미가 있는 학생이라면 물리탐사나 수치해석을 전공할 수 있다. 또 화학이나 생물학을 좋아하면 에너지자원처리, 지구환경화학 연구실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경영·경제에 관심이 있다면 허 학과장이 맡고 있는 지구환경경제연구실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다만 허 학과장은 에너지자원공학의 어느 분야를 전공하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 중심의 거친 문화가 녹아 있는 산업이라 사람과 관계를 잘 맺고 사람들을 잘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언] 두려워하지 말고 조언 구해야
“역학 문제를 도저히 못 풀겠더라고요. 그래서 진로를 바꿨습니다.”
허 학과장은 에너지자원공학과에 입학한 뒤 2년 동안 공부하면서 공학도의 길이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진로를 찾기 위해 들었던 산업공학과 수업은 성적이 잘 나왔지만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4학년 때 새로 학과에 부임한 김태유 교수가 에너지경영·경제 분야를 전공했다는 얘기를 듣고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에서 경영·경제 분야가 적성에 맞는다고 느낀 허 학과장은 그제야 진로를 분명히 정할 수 있었다.
허 학과장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하라”고 강조했다. 교사나 교수들에게 진로와 관련된 고민을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하는 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진로를 두세 번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그 때문에 조언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