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에서는 대부분 신경세포(뉴런)가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손상된 뉴런을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기가 어렵다. 치매나 뇌졸중 등 뇌질환을 완치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에서는 뉴런이 새로 생성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20년 전 이런 사실이 밝혀진 뒤 최근까지도 이는 정설로 굳어져 있었다.
그런데 3월 초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이를 뒤집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해마를 비롯해, 성인의 뇌 모든 부위에서 새로운 뉴런이 절대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 과학계가 이 연구결과에 뜨거운 관심을 보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4월 초 국제학술지 ‘셀 스템셀’에는 ‘네이처’의 연구결과를 반박하는 논문이 실렸다. 나이가 들면서 그 수가 급감하는 건 맞지만, 분명히 성인의 해마에서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뉴런 계속 생긴다 O]
성인 해마, 매일 700개씩 생성
뉴런이 새로 생성되는 현상을 전문가들은 ‘신경 생성(neurogenesis)’이라고 부른다. 피부와 뼈, 근육, 장기, 혈액 등에서 일부 조직이 손상됐을 때 성체줄기세포가 필요한 세포로 분화해 그 자리를 메우는 것처럼, 신경계에서도 줄기세포로부터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성인의 뇌에도 성체줄기세포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뉴런이 아닌, 뉴런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교세포로 분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미국 솔크연구소의 프레드 게이지 박사팀은 1960 ~1970년대 당시 암 치료를 위해 브로모데옥시우리딘(Bromodeoxyuridine·BrdU)는 정맥 주사로 투여한 환자 5명의 뇌를 관찰했다. BrdU는 DNA를 이루는 염기 중 하나인 티민(T)과 닮은 물질로, 세포분열 시 새로 합성되는 DNA에 티민 대신 섞여 들어갈 수 있다. 정맥 주사를 맞은 뒤에 새롭게 합성된 DNA에는 BrdU가 남아 있는 셈이다.
연구팀은 BrdU가 섞인 DNA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에만 특이적으로 붙을 수 있는 항체를 찾아내 이를 이용했다. 만약 해마에 이 항체가 들러붙는다면, 이는 새로 만들어진 뉴런이라는 증거가 된다. 연구팀은 이들 환자의 뇌 속 해마의 치아이랑에서 항체가 몇몇 뉴런에 붙어 있는 것을 관찰했다. 항체에서 특유의 빛이 발하도록 만든 결과다. 이 연구로 게이지 박사팀은 뇌에서 유일하게 해마에서만 일생 동안 뉴런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doi:10.1038/3305
2013년 요나스 프리센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박사팀은 방사성 탄소동위원소를 이용해 성인의 해마에서 새로운 뉴런이 날마다 700개씩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핵실험이 금지되기 전인 1963년 이전에는 대기 중에 탄소동위원소인 C-14가 많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숨을 쉬거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람도 C-14를 흡입한 셈이다. C-14는 일반 탄소(C-12)에 비해 불안정해 시간이 흐를수록 양이 줄어든다.
연구팀은 1963년 이전에 사망한 시신 55구를 대상으로 해마의 뉴런에서 C-14의 잔존 비율을 분석했다. 그 결과 뉴런마다 C-14의 비율, 즉 ‘뉴런의 나이’가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각 뉴런이 탄생한 시기가 각기 다르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탄소동위원소 반감기를 이용해 뉴런의 나이를 계산했다. 이를 통해 뉴런이 날마다 700개씩 생겨나고, 일생에 걸쳐 해마의 약 3분의 1이 새로운 뉴런으로 대체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doi:10.1016/j.cell.2013.05.002
현재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마카크(macaque) 원숭이의 뇌에 BrdU를 직접 주사하거나, 살아 있는 쥐에게 다양한 항체 마커를 주입해 해마에서 뉴런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관찰되지 않았다.
선웅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실험을 통해 동물의 해마에서 평생 새로운 뉴런이 생긴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사실로 확인됐다”면서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안전성 여부나 윤리적인 이유로 마커를 주입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만 확인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진단용 뇌 촬영 장비로 뉴런의 생성 과정을 관찰할 수는 없을까. 선 교수는 “현재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장치(MRI)의 해상도는 수백 마이크로미터(μm) 수준”이라며 “뉴런을 관찰하려면 적어도 수 μm 수준으로 고해상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런을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분화 단계를 거치고 있는지 눈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다.
[뉴런 안 생긴다 X]
59명 뇌 조사, 만 19세 이상 뉴런 0개
올해 3월 7일 ‘네이처’에는 도발적인 연구결과가 실렸다. 아르투로 알바레스부이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의대 신경외과 교수팀이 태아부터 77세까지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거나, 이미 사망한 사람 59명의 뇌를 조사한 결과 성인의 해마에서 뉴런의 생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줄기세포에서 뉴런까지 분화 단계별로 세포의 비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했다. 뉴런은 가장 원시적인 상태인 ‘휴지 줄기세포’로부터, ‘중간 신경 전구세포 I’ ‘중간 신경 전구세포 II’ ‘중간 신경 전구세포 III’ 등 네 단계를 거쳐 분화한다.
이후 ‘미성숙한 뉴런’이 됐다가 마지막으로 ‘성숙한 뉴런’이 된다. 성인의 해마에서 휴지 줄기세포와, 중간 단계의 신경 전구세포들이 발견된다면 뉴런이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팀은 단계마다 세포에 붙을 수 있는 항체 마커를 이용했다. 어떤 마커가 붙는지에 따라 발광 색을 다르게 했다. 그 결과 휴지 줄기세포는 태어난 지 1년 동안 급격히 감소했다. 이후 13세까지 휴지 줄기세포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다가, 19세 이상이 되자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분화하고 있는 중간 단계의 신경세포도 관찰했다. 신생아의 해마에서는 이 세포가 1mm2 당 평균 약 1618개 발견됐다. 만 1세는 평균 약 292.9개, 만 7세는 평균 약 12.4개가 발견됐지만, 만 13세는 평균 약 2.4개로 급격히 감소했다. 만 19~35세는 0개였다. 즉, 성인의 해마에서는 뉴런의 생성 작용이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연구팀의 숀 소렐스 박사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1998년 솔크연구소의 연구에서는 마커가 BrdU 단 하나뿐이며, BrdU가 붙은 세포가 뉴런인지 교세포인지 명확하지 않았다”며 “고작 다섯 명의 뇌를 관찰했다는 점도 한계”라고 말했다.
반면 UCSF 연구팀은 59명의 뇌 조직에서 세포분열이 활발한 조직(Ki-67), 휴지 줄기세포(SOX1과 SOX2)와 중간 단계 신경세포(DCX와 PSA-NCAM), 이미 분화가 끝난 성숙한 뉴런(NEUN)을 각각 확인할 수 있는 마커를 여러 개 사용했다. 소렐 박사는 또 “BrdU는 새로 합성된 DNA뿐 아니라 DNA의 일부를 고치는 과정 중에도 섞여 들어갈 수 있다”며 “BrdU의 존재만으로 새로운 뉴런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가 신경세포 생성에서 정설로 인정받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오우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은 “실험 과정이나 논문 내용만 봐서는 흠 잡을 데가 없다”면서도 “다른 연구 그룹들이 비슷한 결과를 계속 발표해야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 역시 이 논문이 실린 호에 “이미 동물실험에서 밝혀진 현상이 왜 사람의 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지 추가적으로 밝혀내야 할 것”이라는 제이슨 스나이더 캐나다 브리티시컬롬비아대 교수의 리뷰를 같이 실었다.
해마에서 신경세포가 생성되지 않아도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오 소장은 “새로운 기억의 저장은 뉴런의 생성이 아니라 뉴런과 뉴런의 연결, 즉 새로운신경회로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런 계속 생긴다 O]
나이 들면 급속히 줄어도 생성은 계속
‘네이처’ 논문이 발표된 지 한 달쯤 지난 올해 4월 5일, 국제학술지 ‘셀 스템셀’에는 UCSF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반박하는 논문이 실렸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우울증이나 뇌전증 등 뇌 질환이 없이 건강하고, 사망한 지 26시간이 지나지 않은 14~79세 사람 28명의 뇌를 관찰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컬럼비아대 연구 결과 65세 이상 나이가 들어도 치아이랑의 부피와 여기에 있는 뉴런과 교세포의 양, 분화 중인 중간 단계의 세포와 미성숙한 뉴런의 수는 젊었을 때와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휴지 줄기세포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해마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뉴런은 나이가 들면서 급격히 감소하지만, 성장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생성된다는 결론을 내렸다.doi:10.1016/j.stem.2018.03.015
연구팀은 또 뉴런의 생성량이 급감하면서 혈관의 생성(angiogenesis)도 줄어들고, 결국 수많은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새로운 뉴런이 조금이라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만큼 인지기능 장애가 있거나, 신경정신질환을 겪거나, 이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는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이가 들어서도 어느 정도 인지능력이나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논문 말미에서 “운동이나 식습관, 약 복용 여부 등 생활습관이 인지능력과 감정 같은 뇌 기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선 교수는 “이 연구를 이끈 르네 헨 교수는 동물 실험을 통해 우울증이 뉴런 생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며 “그래서 우울증이나 뇌전증을 앓았던 사람의 뇌는 연구 대상에서 제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 교수는 UCSF 연구팀과 컬럼비아대 연구팀의 논문을 비교한 결과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두 연구는 공통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뉴런 생성량이 급감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분석 방법이 다르다.
UCSF 연구팀은 태아에서 신생아, 3주, 1개월, 6개월, 1세, 35세 이후를 기준으로 단위면적(1mm2)당 뉴런의 수를 조사했다. 반면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20세, 40세, 60세, 80세를 기준으로 해마 한 개당 신생 뉴런의 수를 분석했다. 선 교수는 “결국 어느 구간을 어떤 크기로 분석했는지에 따라 결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셈”이라며 “두 연구 모두 얇게 자른 뇌 조직에 항체 마커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관찰한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