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 두 차례나 ‘땅꺼짐’ 현상이 발생해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8월 31일 오전 4시 금천구 가산동에서 수십 m 길이의 도로가 6m 깊이로 가라앉은 데 이어, 9월 6일 오후 11시에는 동작구 상도동에서 땅이 꺼지면서 유치원이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두 사건 모두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일어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1. 왜 갑자기 땅이 꺼졌나
두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공사현장이 근처에 있었다는 점이다. 가산동 현장 바로 옆에서는 오피스텔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상도동 현장에서는 상도유치원 아래에서 공동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렇다면 공사와 땅꺼짐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가산동 땅꺼짐 현장 조사에 참여한 권오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지반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0월 말까지 정밀 안전진단을 수행하면서 지반 붕괴, 배수 시스템, 당시 기상상황 등 외부적 요인과 시공, 설계, 계측 오류 등 내부적 요인을 모두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확답을 할 수는 없다”면서도 “굴착에 의한 지반 침몰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보인다”고 말했다.
상도유치원 붕괴 현장을 조사한 이종현 KICT 복합재난대응연구단 수석연구원은 “공사를 위해 깎아낸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유치원도 함께 무너져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백용 KICT 복합재난대응연구단장은 “가산동 땅꺼짐과 상도유치원 붕괴는 수직 굴착이 진행된 지반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 현장 모두 인근에서 공사를 위해 땅을 수직으로 뚫거나(가산동) 깎았다는(상도동) 것이다. 백 단장은 “다만 가산동의 경우에는 오피스텔을 짓기 위해 4면 굴착이, 상도유치원의 경우 건설 면적을 넓히기 위한 단면 굴착이 진행됐다는 차이는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가산동 현장을 살펴보자. 보통 오피스텔처럼 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뼈대를 심기 위해 10m 이상 땅을 굴착해야 한다. 가산동 현장 역시 12m 깊이의 땅을 4면으로 굴착해 건물의 터를 잡았다.
그런데 땅을 파내면 흙이 구덩이 안쪽으로 쏠리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벽을 세운다. 하지만 벽만으로는 흙의 무게를 이겨낼 수 없어 추가 조치를 한다. 보통은 벽 반대쪽으로 20m가량 앵커를 박아 벽에 실리는 흙의 무게를 분산하는데, 이를 ‘앵커링’이라고 부른다. 앵커는 벽 반대쪽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박은 뒤 이를 지름 10cm의 두꺼운 철근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치한다(38쪽 그림 참고).
하지만 가산동 현장의 경우 앵커링을 하지 못하고 벽 뒤로 보조 벽만 세웠다(40쪽 그림 참고). 결국 벽이 흙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백 단장은 “앵커링을 하기 위해서는 앵커를 박아야 할 땅의 소유권이 있어야 한다”며 “땅의 소유권 문제로 앵커링 작업을 하지 못하고 부벽으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엔 상도동 현장을 보자. 상도유치원은 상도초등학교 부지에 지어진 유치원으로, 상도초등학교는 다른 지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지어져 있다. 그 아래쪽에서는 한창 공동주택을 짓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문제는 그냥 공동주택을 짓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 수석연구원은 “주택이 들어올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상도유치원 아래쪽 옹벽 일부를 수직으로 깎아냈다”며 “이 공사가 지반이 무너져 내린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 단장은 “상도유치원 현장의 경우에는 앵커링이 아닌 ‘네일링’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네일링이란 굴착한 부위 곳곳에 말뚝을 박아 지반의 무게를 분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상도유치원 현장의 경우 굴착한 옹벽 표면에 4m 길이의 말뚝을 박은 뒤 시멘트로 덮는 네일링이 진행됐다.
백 단장은 “지반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네일링보다 지탱하는 힘이 더 큰 앵커링을 채택했을 것”이라며 “굴착이 단계별로 제대로 이뤄졌는지, 네일링은 제대로 진행됐는지 등 앞으로 지반이 꺼진 원인에 대해 면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8월 말에 내린 집중 호우로 지반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백 단장은 “상도유치원 사건 당시에는 땅꺼짐이 발생할 만큼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며 “가산동 현장도 현재로서는 폭우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2. 과거 땅꺼짐 사건과 어떻게 다른가
가산동과 상도동 사건은 2014년 석촌동 땅꺼짐과 비슷한 듯 다르다. 2014년 8월 5일 서울 송파구 석촌역 인근 도로에서 가로 1m, 세로 1.5m, 깊이 3m가량의 땅꺼짐이 발생했는데, 복구공사를 한 지 이틀 만에 같은 위치에 다시 땅꺼짐이 발생했다. 이후 조사 결과 땅꺼짐이 발생한 인근 지하차도 밑으로 길이 70m, 깊이 5m에 이르는 대형 공동(空洞)이 발견됐다.
석촌동 땅꺼짐과 가산동 땅꺼짐, 상도유치원 붕괴 사건은 그 원인이 굴착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석촌동 땅꺼짐의 경우 지하철 9호선을 연장하기 위한 굴착 공사가 원인이 됐다. 하지만 굴착방향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다. 가산동과 상도동의 경우 수직으로 깎아내는 수직 굴착이 진행된 공사현장에서 땅꺼짐이 발생한 반면, 석촌동의 경우 지하에서 수평으로 파고드는 수평 굴착이 시행된 곳에서 땅꺼짐이 발생했다.
권 수석연구원은 “석촌동은 과거 한강의 본류였던 지역이어서 주변 지반이 하천퇴적물로 이뤄져 있어 약한 편”이라며 “터널굴착기가 터널을 파내는 과정에서 일부 지반이 무너져 내려 공동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단장은 “그나마 터널형으로 이뤄진 지하차도의 특성 덕분에 붕괴 등의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만약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석촌동 땅꺼짐 사고 이후 2015년 12월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올해부터 시행됐다. 공사를 진행할 때 10m 이상 굴착이 필요한 경우 공사 허가를 신청하기 전 반드시 지하안전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가산동 오피스텔 공사현장의 경우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 사업 승인을 받아 지하안전영향평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권 수석연구원은 “지하안전영향평가는 굴착 이후 주변 지반과 건축물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는 작업”이라며 “국토교통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서 영향평가에 대한 기준과 관련 기술을 개발했고, 현재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 추가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3. 싱크홀과 어떻게 다른가
가산동 땅꺼짐이 발생하자 ‘싱크홀’로 도로가 무너졌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당시 인터넷 검색사이트를 점령한 실시간 검색어 또한 ‘가산동 싱크홀’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엄밀히 말해 싱크홀이라는 표현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싱크홀은 석회암 지대에서 발생하는 지반 함몰 현상을 가리키는 지질학 용어다. 석회암은 주성분이 탄산칼슘으로 이뤄진 퇴적암으로, 지하수 속 이산화탄소에 의해 용해된다. 오랜 시간 지하수에 의해 영향을 받아 석회암 지반이 약해지면 땅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싱크홀이다.
국내에서는 경북 영월과 문경, 강원 평창 등에서 싱크홀로 만들어진 움푹한 지형인 ‘돌리네’를 볼 수 있다. 권 수석연구원은 “서울의 경우 지반이 주로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이뤄져 있다”며 “화강암과 편마암은 지하수에 용해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싱크홀이 발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산동과 상도동의 땅꺼짐도 정확하게는 지반 함몰 현상이다. 지반 함몰이란 지표면이 일시에 붕괴해 수직으로 내려앉는 현상을 가리킨다. 백 단장은 “오랜 시간 서서히 가라앉는 지반 침하나 빗물로 인해 도로 표면만 파이는 포트홀(pothole)과는 달리, 지반 자체가 갑자기 내려앉아 그 충격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산동에서는 사건 발생 당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지반 함몰로 인한 진동을 느껴 급히 밖으로 대피했다.
4. 땅꺼짐 막는 기술 어디까지 왔나
국내에서 지반 함몰 현상은 2010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6월 발표한 ‘5년간 지반 침하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3~2017년 땅꺼짐은 총 4580회 발생했으며, 이중 서울에서만 3581건이 발생했다. 인구와 건물, 도로가 밀집된 서울에서 땅꺼짐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땅꺼짐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은 하수도다. 5년간 하수도 손상으로 땅꺼짐이 발생한 횟수는 3027건으로 전체의 약 66%를 차지했다. 권 수석연구원은 “하수관이 손상되면 주변 토사가 하수관으로 유입돼 땅꺼짐이 발생할 수 있다”며 “40년 이상 지난 낡은 하수관이 많기 때문에 교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늘어나는 지반 함몰 사건을 조기에 진단하고 예방하기 위해 2016년 지반안전연구단(공식 명칭은 ‘지반함몰 발생 및 피해저감을 위한 지반 안정성 평가 및 굴착·보강기술 개발 연구단’)을 꾸려 5개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백 단장이 지반안전연구단장도 맡고 있다.
땅꺼짐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반의 안정성을 검토하는 지반 평가 기술은 연구단의 주요 연구 과제 중 하나다. 특히 지하수의 흐름을 분석해 지반을 평가하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백 단장은 “지하수의 흐름을 파악하면 지반 함몰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며 “국내 지반에 맞는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땅꺼짐이 발생한 지하를 탐사하기 위한 탐사 기법도 개발 중이다. 류기정 한국지반공학회 지반공학연구소장은 “고주파를 이용한 기존의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는 3m 이상 지하를 탐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며 “전기를 이용한 전기비저항 검사나 진동을 이용한 표면파 탐사법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10m 이상의 지하를 탐사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상도동 공사처럼 네일링을 이용해 지반을 고정해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 기존 시멘트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도 개발 중이다. 백 단장은 “현재 물을 차단하는 차수 기능과 방수 기능을 가지면서도 지반을 고정하는 효과가 있는 새로운 후보 물질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석촌동처럼 이미 공동이 발생한 경우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기존에는 시멘트를 넣어 공동을 메웠지만, 지하수로 인해 시멘트가 굳기 전에 유실되는 경우가 잦았다. 지반안전연구단은 길이 20~30mm인 캡슐 안에 시멘트를 넣어 시멘트가 유실되지 않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개발을 담당한 한중근 중앙대 건설환경플랜트공학과 교수는 “수용성 폴리머로 캡슐을 제작해 캡슐이 서서히 녹는다”며 “시멘트가 굳을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공법을 개선한 굴착 공법도 함께 개발 중이다. 수직 굴착 공사현장에는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지지하는 금속 H빔이 설치돼 있는데, 이 H빔의 겉을 시멘트로 감싼 뒤 8개 단위로 묶어 공사에 사용함으로써 H빔에 실리는 하중을 분산할 수 있다. 백 단장은 “기존 공법보다 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사 기간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