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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만드는 양자컴퓨터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주축을 이루는 양자역학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기존의 물리학과 상당히 달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뉴턴역학을 고전역학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얼마나 기존 물리학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레이저, 스마트폰의 작은 칩 등을 탄생시켰습니다. 그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양자 기술은 양자컴퓨터입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암호체계를 무너뜨리거나, 차세대 인공지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됩니다. 

 

 

 

죽어 있기도, 살아 있기도 한 양자중첩 


양자역학은 고전역학과 달리 상태와 측정값이 서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 공이 움직이는 속도와 위치를 알면 우리는 그 공이 어디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측정값은 물리상태이며, 뭔가 측정하는 행위는 알려지지 않은 값을 얻는 과정일 뿐입니다.


반면 양자역학에서는 공이 파동함수의 형태로 넓은 공간에 분포하며, 위치를 측정하는 순간 확률에 의해 측정값이 정해집니다. 측정하는 탓에(?) 파동함수가 붕괴되고 공의 상태가 변합니다. 즉, 양자역학에서 측정값은 물리상태의 일부 정보이고, 측정은 물리상태를 변화시키는 행위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려 볼까요.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서 상자 안에 독극물을 퍼뜨리는 장치를 해둡니다. 방사성 물질의 붕괴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고양이는 절반의 확률로 죽어 있거나 살아 있겠지요. 


고전역학에서는 고양이의 생사는 상자를 열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으며, 상자를 여는 행위를 함으로써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양자역학에서는 고양이는 죽어 있는 상태이자 살아 있는 상태이며(양자중첩), 상자를 여는 순간 둘 중 하나의 측정값을 얻게 됩니다. 상자를 여는 사람이 의도치 않게 고양이를 죽이거나 살리는 셈입니다. 


이번에는 상자에 고양이 두 마리를 넣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 고양이들이 양자중첩 상태에 놓였을 때 고양이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마찬가지로 상자를 여는 순간 고양이들의 생사가 결정됩니다. 상자의 한 쪽만 열어 한 마리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면 다른 쪽의 생사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양자중첩 상태에 놓인 두 물리계 사이의 관계를 ‘양자얽힘’이라고 부릅니다. 

 

 

 

양자컴퓨터용 범용 논리회로 구현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은 양자컴퓨터의 핵심원리입니다. 기존 컴퓨터는 이진법을 기반으로 0 또는 1의 값을 가지는 기본 연산단위(비트·bit)를 사용합니다. 반면 양자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양자 비트인 ‘큐비트’는 0과 1의 중첩상태를 허용합니다. 


두 가지의 값만 가지는 비트와 달리 큐비트는 이론적으로 무한히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큐비트 사이의 양자얽힘도 가능하므로 적은 수의 큐비트로도 매우 많은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자컴퓨터의 핵심은 수많은 정보를 양자상태에 코딩해 연산을 병렬적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199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양자컴퓨터를 활발히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데이비드 와인랜드 미국표준기술연구소 박사는 이온 트랩을 이용해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합니다. 전자기장을 이용해 진공 속 이온 하나를 공중에서 포획한 뒤 레이저로 냉각시켜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로 만드는 기술입니다. 물질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 즉 절대영도(0K)를 갖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를 기반으로 1995년 발표한 논문에서 와인랜드 박사팀은 이온 트랩을 이용해 범용 양자 논리회로를 구현했다고 밝혔습니다. 컴퓨터를 구현하려면 입력 비트로 연산해 출력 비트를 내놓는 연산장치, 즉 논리회로가 필요합니다. 


기존 컴퓨터에서 쓰이는 가장 기초적인 논리회로는  낸드(NAND) 회로입니다. 두 개의 입력비트가 모두 1일 때만 0을 출력하고, 나머지 경우에는 1을 출력하는 연산을 말합니다. NAND 회로를 조합하면 컴퓨터에 필요한 모든 논리회로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회로를 범용 논리회로라고도 부릅니다.


양자컴퓨터는 비트가 아닌 큐비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양자 논리회로가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범용 양자 논리회로는 C-NOT 회로입니다. 제어하는 큐비트의 상태가 0이면 목표한 큐비트의 상태를 그대로 두고, 제어 큐비트가 1이면 목표 큐비트의 상태를 뒤집습니다. 이 회로를 이용하면 두 큐비트 사이의 양자얽힘을 만들 수도 있고, 개별 큐비트를 조합해 모든 양자 논리회로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와인랜드 박사팀은 원자 내 전자가 공전하는 궤도(내부상태)와 원자가 가지고 있는 운동 상태(외부상태)를 두 개의 큐비트 상태로 정의하고, 이 두 상태 사이에서 C-NOT 회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양자컴퓨터의 가장 기초가 되는 기술을 구현한 셈입니다. 이후 와인랜드 박사는 양자컴퓨터 기술을 포함한 양자역학 연구에 대한 전반적인 업적을 인정 받아 201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큐비트 제어하고 결맞음 풀림 해결해야


기존 컴퓨터보다 양자컴퓨터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양자상태가 매우 섬세하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측정에 따라 상태가 변할 수 있으므로, 한 큐비트의 상태를 오류 없이 유지하려면 주변 환경으로부터 완벽히 고립돼야 합니다. 주위에 전자기파 등 원하지 않는 노이즈가 있다면 중첩이나 얽힘 상태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결맞음 풀림 현상이라고 합니다. 


또한 비트가 0과 1 두 가지 뿐인 기존 컴퓨터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큐비트가 셀 수 없이 많아 오류가 생길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매우 많아집니다. 이렇게 양자컴퓨터가 탄생하려면 다수의 큐비트를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결맞음 풀림 현상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글은 올해 초 72큐비트 프로세서를 제작 중이며, IBM은 누구나 클라우드 서비스로 사용가능한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양자 알고리즘을 테스트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먼로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와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공동 설립한 스타트업(IonQ)에서는 현재 이온 트랩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온 트랩을 이용한 양자컴퓨팅은 현재 각광받고 있는 초전도 큐비트(극저온에서 전기저항이 0인 초전도 현상을 이용한 큐비트)에 비해 큐비트 수는 적지만, 연산 오류율이 낮고 큐비트 간 연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서울대, KAIST, POSTECH 등에서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SK텔레콤이 양자통신 및 이온 트랩 양자중계기에 대한 독자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간 필자는 SK텔레콤과 함께 이온 트랩 양자중계기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 기술은 양자통신을 상용화하는 데 핵심적이며, 향후 양자컴퓨터 기술로도 활용될 전망입니다. 


양자컴퓨터를 사람의 일생에 비교하자면 아직 성장기입니다. 지난 20년간 이론과 실험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다르게 말하면, 양자컴퓨터는 아직 성장 가능성이 크며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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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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