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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년 동안 1초도 안 틀리는 광시계로 더 정확해진 초

[과학동아 X KRISS]인류 최고의 발명품, 단위의 탄생

‘세슘-133 원자의 바닥상태에 있는 두 초미세 준위간의 전이에 대응하는 복사선의 9 192 631 770 주기의 지속시간.’


1967년 제13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 재정의된 현재  ‘초(단위 s)’ 의 정의다. 이처럼 세슘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할 때 걸리는 시간을 1초로 한 세슘원자시계는 3X10-16 수준의 불확도를 나타낸다. 


이 값은 1억 년에 1초도 틀리지 않는 값이다. 시간 표준은 7개 기본단위 중 가장 정확한 측정 표준으로 꼽힌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10-18 불확도의 광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전세계 주요 국가 표준기관은 다양한 이온과 중성원자(양성자의 수와 전자의 수가 같은 원자)의 광주파수로 초를 재정의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시간 단위의 연구개발 역사를 살펴봤다.

 

 

 

태양의 움직임에서 시간을 보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시간을 측정해왔다. 기원전 3500년 전, 수메르인들이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1초를 평균태양일의 8만6400분의 1로 정의했다. 여기서 평균태양일은 태양이 정남쪽에 와 있을 때(남중)부터 지구가 자전해 다음 번 남중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평균태양일을 24등분한 것이 시간(hour), 시간을 60등분한 것이 분(minute), 분을 60등분하면 초(second)가 된다. ‘second’는 ‘두 번째 분할’이라는 뜻이다. 


조상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이 달라지는 해시계를 발명했다. 해시계의 바늘을 위도만큼 북쪽으로 기울이고 그림자가 표시되는 면을 바늘과 수직으로 세운 ‘적도 해시계’, 그림자가 표시되는 면을 바닥과 수평으로 두고 해시계의 바늘을 지면으로부터 북쪽으로 위도만큼 기울인 ‘수평 해시계’ 등 다양한 해시계가 개발됐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해시계는 6~7세기경 제작된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와 백제에 ‘일자’ ‘일관’이라는 관원이 있다고 나오는데, 시간과 관련된 업무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시계는 조선시대 세종 때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오목한 형태의 ‘앙부일구’가 가장 널리 쓰였고 그밖에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 ‘규표’ 등의 해시계도 제작됐다. 흐린 날이나 밤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자격루’ ‘옥루’와 같은 물시계 역시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전세계 시간의 기준을 영국에 맞추다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를 때를 정오로 삼는 것은 지역 간 시차를 유발했다. 특히 철도와 증기선이 개발된 뒤 나라 간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시차는 큰 골칫거리였다. 이에 1884년 전세계 25개국 41명의 대표단은 미국 워싱턴DC에 모여 세계 표준시를 정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예루살렘의 사원을 기준으로 삼자거나, 또는 갈릴레이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기준으로 하자는 의견 등이 나왔다. 


그러나 결국은 당시 세계 선박의 72%가 지도와 시간의 표준으로 삼고 있던 영국의 ‘그리니치 자오선’이 본초자오선(경도가 0도인 지점)으로 정해졌다. 1792~1798년 그보다 먼저 파리 자오선(파리 천문대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연구했던 프랑스는 이 결정에 반발해 1911년까지 파리 자오선을 경도가 0인 지점으로 사용했다.

 

 

 

천체 대신 원자로 시간을 재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지구 자전이 불규칙하며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과 지구 사이의 인력이 지구의 자전을 방해해 지구 자전 속도가 미세하게 늘어났던 것이다(이를 보상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1년에 1초를 더하거나 빼는 ‘윤초’ 개념이 나왔다).


1960년 제11차 국제도량형총회는 태양의 자전 주기 대신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한 ‘역표초’를 시간의 정의로 채택했다. 즉 1초를 ‘1900년 1월 0일 12시에 대한 태양년의 1/31556925.9747’로 정의했다. 역표초는 자전의 불규칙성으로 인한 불확도는 없었지만 불변의 값은 아니었다. 또 정확한 값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수년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1967년 제13차 국제도량형총회는 세슘원자의 고유 진동수를 기준 주파수로 시간을 재정의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천체의 움직임이 아닌, 원자가 시간 단위의 표준으로 등장했다.

 
원자시계는 변하지 않는 진동수를 가진 원자, 주파수 발생기, 주파수를 측정하는 주파수 계수기로 구성된다. 원자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고유 진동수를 기준으로 삼아 주파수 발생기의 주파수를 일치시키고, 이렇게 얻은 일정한 주기의 신호를 시계로 동작하도록 만든다. 현재 시간 표준으로 사용되는 세슘원자시계는 약 9.2 GHz(기가헤르츠)의 고유 진동수에 마이크로파 주파수 발생기의 출력을 일치시켜 만들어진다. 


과학기술이 진보하면서 과학자들은 세슘원자시계보다 1만~10만 배 이상 높은 가시광선 또는 자외선 영역의 주파수를 이용해 1초를 세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수백 THz(테라헤르츠·1 THz는 1012 Hz)에 이르는 원자나 이온의 복사선에 주파수 발생기의 주파수를 일치시켜 불확도가 10-18 수준인 ‘광시계’를 개발 중이다. 초의 정확도가 100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불확도 10-18 광시계,  독자 기술로 개발할 것 - 유대혁

 

“한국은 2034년까지 한국형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구축하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터븀 광시계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시계 개발 기술로 한국 위성에 독자적인 원자시계를 실어 올릴 겁니다.”


유대혁 KRISS 물리표준본부 시간표준센터장은 광시계 개발 기술이 GPS, 통신, 인공위성 레이저 추적(SLR)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센터장이 이끄는 물리표준본부 시간표준센터는 2014년 ‘이터븀(Yb)-171ʼ 원자를 이용해 불확도가 10-16 즉, 3억 년 동안 1초의 오차를 갖는 광시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였다. 올해 목표는 3x10-17 수준의 불확도를 달성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강대국들은 세슘 외 다른 원자를 이용해 시간을 새롭게 정의하는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슘보다 고유 진동수가 훨씬 큰 수은(Hg), 이터븀(Yb), 스트론튬(Sr), 인듐(In), 칼슘(Ca), 알루미늄(Al) 등의 이온 또는 원자들을 이용해 세슘원자시계보다 더 정밀한 시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가시광선, 자외선 영역인 수백 THz의 주파수를 가져 특별히 ‘광시계’ 라 불린다. 현재까지 보고된 가장 정확한 광시계는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와 볼더 콜로라도대의 공동연구소인 ‘질라(JILA)ʼ가 2015년 이터븀 원자로 개발한 것이다. 이 광시계는 불확도가 2x10-18, 오차가 약 150억 년에 1초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라고 한다면 우주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1초도 틀리지 않는 시계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이터븀을 이용해 광시계 개발에 뛰어 들었다. 이터븀은 고유 진동수가 초당 약 518조2958억3659만864번으로, 세슘보다 5만6000배 이상 크다. 연구팀은 이터븀 원자의 높은 고유 진동수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레이저를 이용한  ‘광격자 포획 기술’ 을 사용했다. 


광격자 포획 기술은 레이저를 여섯 방향에서 쏴 원자를 냉각한 뒤 또 다른 레이저로 만든 가상의 상자 속에 가두는 기술이다. 이렇게 포획된 이터븀 원자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는 주파수 값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터븀 원자의 고유 진동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기장, 자기장 등 외부 환경 요인을 모두 제거해야 했습니다. 특히 흑체복사 문제를 극복하는 게 관건이었죠.” 


흑체복사는 모든 물질이 온도에 따라 빛을 내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2014년 개발한 첫 번째 이터븀 광시계의 약점이  ‘열’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특수한 진공조를 설계해 현재 두 번째 이터븀 광시계를 개발 중이다. 


안정하고 정확한 광시계가 개발되면 새로운 초의 정의가 탄생할 수 있다. 전 세계 서로 다른 표준기관 세 곳에서 제작한 광시계가 모두 10-18 수준의 불확도를 가지고, 상호 비교 시 차이가 5×10-18 미만일 경우 재정의를 위한 정확도 조건이 충족된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가 대략 2026년 이후일 것으로 예상한다. 


유 센터장은 시간 표준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이나 광섬유를 이용해 우리나라의 광시계를 다른 나라의 그것과 비교하는 기술 또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광시계는 제자리에서 1 cm만 들어올려도 중력 변화로 10-18 만큼의 영향을 받고, 움직이면 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간이 느려진다. 


유 센터장은 “광시계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물리법칙을 연구할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2020년까지 불확도를 10-18로 낮춘 광시계를 독자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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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 및 글

    이영혜 기자 기자
  • 기획 및 글

    공동기획 한국표준과학연구원 (KRISS)
  • 기타

    일러스트 정은우
  • 사진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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