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핵공학과를 지망하는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입시 경험을 나누는 인터뷰에 무려 일곱 명이 신청을 했다. 자신이 다니는 학과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게 애틋한(?) 학생들은 처음이었다. 지면이 부족해 안타깝게도 인터뷰에는 여섯 명만 담았다. 서울대 입시에 합격한 학생을 인터뷰에 탈락시킨(?) 묘한 경험을 하면서, 학과에 대한 이들의 남다른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고 낙방, 반면교사로 삼아 - 18학번 김예성
서울 이화여대부속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한 김예성 씨는 “작년에 입시를 앞두고 제가 지망하는 학과를 듣더니 담임선생님이 걱정을 하셨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국가의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 정책 방향을 원자력발전 축소로 잡았기 때문에 앞으로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고, 결과적으로 원자핵공학과 출신의 진로가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김 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원자핵공학과에서 배우는 내용이 원자력에너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의 목표는 핵융합에너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원자력발전 산업에 대한 생각도 담임선생님과는 달랐다. 김 씨는 “원자력에너지에 문제가 있다고 그걸 회피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공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중학교 때부터 이공계로 진로를 정하고 2학년이 되면서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다. 비록 낙방했지만 준비했던 것들이 대학 입시 준비에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우선 수학과 과학 등 고등학교 내신 성적에 도움이 됐다. 또 과학고 입시 준비가 상대적으로 늦어 불합격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1학년때부터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두고 생활했다.
김 씨는 내신 성적을 관리하면서 지망 학과와 관련된 활동도 했다. 예컨대 홈페이지를 검색해 원자핵공학과에서 플라스마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플라스마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자기학과 유체역학에 관련된 지식을 쌓았다. 김 씨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전공과 연관된 활동을 하려고 노력한 점이 합격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주 5시간 스터디로 면접 준비 - 18학번 손민서
영재학교인 광주과학고를 졸업한 손민서 씨는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했다. 손 씨 역시 주변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원자핵공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한 경우다.
그는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 4차 산업혁명이 사회적인 화두였는데, 그 밑바탕은 에너지라고 생각했다”며 “전력 서비스와 인공지능을 융합한 스마트 그리드를 연구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 씨가 지원한 수시 일반전형은 1차 서류전형을 통해 지원자를 추린 뒤 수학 문제를 푸는 면접 및 구술고사를 거쳐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그는 이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자신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3학년 1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매주 두 번씩 문제를 풀고 서로 피드백을 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모일 때마다 각자 직접 만든 문제를 다섯 개씩 풀었는데, 한 번 스터디를 하면 두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손 씨는 “문제는 하나지만 푸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점을 느꼈다”며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매주 다섯 시간씩 1년 가까이 문제 풀이를 훈련하면서 실제 시험장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손 씨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과학고나 영재학교 학생들에게는 스터디가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다만 스터디가 원래 목표대로 이뤄지려면 멤버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엄격하게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민을 통한 성장, 자기소개서에 기술 - 18학번 곽승민
세종시에 위치한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의 첫 졸업생인 곽승민 씨는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16년 말, 지진과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소재로한 영화 ‘판도라’가 개봉하면서 에너지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곽 씨는 “나라의 에너지 문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원자핵공학과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소개서에 자신이 어떤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담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이 했던 활동에 대해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만큼 자기소개서에는 그보다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느끼고, 성장한 자신의 내면을 녹여내기 위해 애썼다.
곽 씨는 “자기소개서에 제 실적이나 연구를 구체적으로 쓰기는 아깝다고 생각했다”며 “활동이나 실험을 하면서 뭘 느꼈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잘 준비돼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곽 씨의 전략은 마치 씨줄과 날줄로 무늬를 엮어내듯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자신의 활동 내용과 자기소개서에 담긴 자신의 내면으로 자신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3년 간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예컨대 곽 씨는 1학년 때 전교 학생회 부회장을 맡았고, 2학년 때는 기숙사 자치회장으로 활동했다.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가 신설 학교인 만큼 학교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모든 과정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의 의견을 조율하거나, 교사 등 어른들과 회의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자기소개서에 고스란히 담았다.
곽 씨는 “독서활동 기록은 ‘전공 관련 책 두 권에 교양 책한 권’이 마치 일종의 공식처럼 알려져 있는데, 내 경우에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한 내용과 관련된 책과 거기서 배운점을 썼다”고 말했다.
엉뚱한 질문 가득한 아이디어 노트 - 17학번 김건우
영재학교인 대전과학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한 김건우 씨는 “고등학교 재학 중 미국프린스턴대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핵융합 연구 시설을 접한 뒤 원자핵공학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수시 일반전형의 1차 관문인 서류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학업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집중력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표현했던 것을 언급했다. 그는 자기소개서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작성한 자신만의 아이디어 노트에 대해 적었다. ‘4차원이란 뭘까’ ‘물방울이 수면에 떨어지면 왜 왕관 모양으로 물이 튈까’ ‘어떤 기름이 더 잘 탈까’ 등 엉뚱하거나 재미있는 생각이 들 때마다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해 뒀다.
영재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노트에 적어 뒀던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실제로 연구를 했다. 초등학교 때 적었던 ‘분필을 떨어트리면 어느 지점이 부러질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실제로 실험했다. 김 씨는 분필 낙하 기계를 제작하고 각도를 다르게 하면서 분필 4000개를 떨어트리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분필에서 충격에 취약한 부위를 알아냈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연구였지만 실생활에도 적용해 봤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육교에 가해지는 충격이 분필을 수평으로 떨어트렸을 때 받는 힘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부위가 취약한지 알아본 것이다. 김 씨는 “길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점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육교를 보강할 때 3분의 1 지점을 집중적으로 보강하는 게 효과적일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험과 원자핵공학의 연결고리 - 17학번 손성현
경남 진주에 위치한 경남과학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한 손성현 씨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작성 요소들은 다르더라도 지원하는 학과에 대한 본인의 관심을 잘 녹여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록 지망하는 학과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활동이 아니더라도 그 학문에 대한 열정과 연결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원자핵공학과 관련 없는 실험에서도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학교에서 과제연구로 파동을 슬릿에 통과시켰을 때 어떤 회절 무늬가 나타나는지 예측해서 알려주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 경험이 원자핵공학을 공부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어필한 것이다. 단서는 서울대 공대의 ‘청소년 공학 프런티어 캠프’에서 발견했다. 원자핵공학과에서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손 씨는 “내 연구와 연결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원자핵공학과 2학년인 손 씨는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점과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원자핵공학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공부하면 할수록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실한 내신 관리 - 16학번 김민교
인터뷰에 참여한 학생 중 최고학번인 김민교 씨는 일반고인 인천 학익고를 졸업하고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입학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보면서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에 대해 고민하던 중 핵융합발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참가한 ‘청소년 공학 프런티어 캠프’에서 원자핵공학과로 진로를 정한 김 씨는 학교에서 두 명만 뽑는 지역균형선발전형 추천 대상으로 선정되기 위해 내신성적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모든 과목에서 내신 성적 1등급을 받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 씨는 “내신과 수능을 동시에 챙겨야했던 고3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내신에는 수능에 반영되지 않는 과목들도 있는데, 일분일초가 아까운 수험생 시절 수능과 관련 없는 과목을 공부하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김 씨가 생각한 방법은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수능과 관련 없는 수업 시간에는 다른 공부를 하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바빴지만 김 씨는 열심히 선생님 강의를 듣고 공부했다. 그 결과 내신과 수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