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월급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나뉘는 것은 진화의 결과다? 당연한 말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한 속설들. 하지만 상당수가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는데…. 소득 불균형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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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기분 나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어릴 적에 겪은 가난이 그 사람의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며(이
를 ‘유전자 각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면역 등 건강 상태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내용이다(과학동아 11월호 과학뉴스 참조).
이 연구는 가난이 몸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건강과도 관련이 된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연구가 폭로한 현상, 즉 ‘아주 어릴 적 가난이 성인이 된 이후의 건강 상태를 좌우한다’는 것은 의학과 생물학계에서 오래 전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다.
사실 의학계가 먼저 주목했던 것은 유아기도 아니고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즉 태아기다. 이 때의 가난과 굶주림은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태아의 체질을 이런 영양 부족 환경에 적응하도록 뒤바꾼다(이를 ‘대사성 각인’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현상이 태아가 성인이 된 후에 여러 가지 질병 발생률을 높인다는 점이다.
태아기의 대사성 각인이 일생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하다. 만약 태아기에 가난때문에 임신 중인 어머니가 제대로 영양섭취를 못 했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갑자기 로또에 당첨됐다고 해보자.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호사스런 집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됐다. 하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얻은 각인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한다. 수잔 오전 영국 캠브리지대 임상생화학과 교수팀이 2004년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그 예다. 수컷 쥐에게 태아 상태에서 충분한 단백질을 준 경우와 주지 않은 경우, 그리고 젖먹이 단계에서 단백질을 충분히 준 경우와 주지 않은 경우를 나눠서 비교해본 결과, 태아 때 영양이 부족했던 쥐는 태어난 뒤 아무리 잘 먹여도 수명이 다른 쥐의 최고 79%밖에 되지 않았다. 태아 때의 영양이 수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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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에서 굶주린 아기 일찍 죽는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사실이 여럿 보고돼 있다. 장 피에르 몽타니 스위스 프라이부르크대 의대 교수팀이 2006년 국제비만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태아 또는 유년기에 심한 굶주림을 겪은 아이는 커서 비만과 2형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브라질, 러시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비만에 걸릴 위험은 2~8배 높았다.
굶주린 채 태어나 어린 시절에 영양을 회복해 급격히 체중을 회복한 경우 건강 위험도 증가했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문제는 아니었다. 2세에서 11세 사이의 어린이 시절이 위험했다. 데이비드 바커 영국 사우스햄스턴대 의대 교수팀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8760명의 남녀를 유아 때부터 11세까지 추적해 병 발생 여부를 기록해봤더니, 심장 질환이 특히 많이 나타난 어린이들은 이 시기에 몸무게를 급격히 늘린 경우가 많았다. 어린이 사이에서 체중 회복이 언제 일어나느냐가 건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2005년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실린 연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비만과 당뇨병이 늘어나는 건 바뀐 체질 탓이다. 임산부가 겪은 굶주림은 태아에게 ‘세상은 굶주릴 위험에 노출된 곳이다, 그러니 먹을 게 들어오면 악착같이 저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몸은 이 명령에 따라 먹을 것을 아끼고 저장하도록 재프로그래밍된다. 그 결과 태어나서 먹을 것이 풍족한 환경으로 변해도 계속 몸에 영양분을 축적한다. 그 결과가 비만과 대사성 질병이다. 엄마 뱃속에서 경험한 가난이 평생 건강까지 좌우한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우울하다. 하지만 보다 우울한 이야기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로버트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교수의 책 ‘스트레스’에 따르면, 이런 체질은 심지어 그 다음 세대(3대)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다. 대사성 각인에 따라, 잘 못 먹고 자란 어머니는 임신기에 자신도 모르게 태아에게 보낼 영양분마저 가로채 자신의 몸에 축적한다. 그 결과 태아는 먹을 게 풍족한 세상에서도 본의 아니게 굶주림을 겪고, 대사성 각인을 겪은 저체중 태아가 돼 세상에 발을 내디딘다. 혹시 잘 먹고 사는데도 집안 대대로 아기의 몸집이 작아 고민이라면 혹시 구한말이나 일제시대에 조상이 큰 가난을 겪었는지 생각해보자. 어쩌면 암울한 시대를 살던 조상이 격렬한 가난과 그로 인한 영양결핍에 맞서 싸운 영웅적인 분투의 흔적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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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는 생존율과 연관된다?
태아 때 느낀 굶주림이 대를 잇는 ‘저질 체질’을 만든다는 결론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 뱃속에서 접한 정보만으로 일생을 살아갈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하는 태아 입장에서는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짧게는 10만 년, 길게는 수백만, 수천만 년에 걸쳐 이어진 인류와 영장류의 역사상 이런 선택이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수렵 채집 시대에 인류가 축적할 수 있는 재산은 많지 않았고 먹을 것도 아주 풍족한 편은 아니었다. 인류는 만성적인 가벼운 공복에 적응했다.
이후 농사가 시작되면서 재산과 먹거리 축적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전보다 가난해졌고 평생 심각한 굶주림 에 시달리게 됐다(과학동아 11월호 ‘농사는 인류를 부자로 만들었을까?’ 참조). 사회적 계급도 생겼다. 계급은 빈부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됐고 불평등은 사회,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곳으로 확산됐다. 이 상황에서 생물학적 대물림이 시작됐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은 영양 면에서 풍요로운 경우가 많았고, 앞서 밝힌 연구대로라면 상대적으로 체구도 크게 태어났으며, 성인이 돼서도 건강할 확률이 높았다. 수명도 길고 심지어 후손도 크고 건강할 가능성이 높다.
2006년 ‘종양학회보’에 실린 연구 결과는 사망률을 비교한 대표적인 연구다. 연구팀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의 암 환자 생존률을 추적한 연구 논문 46개를 분석했는데, 소득, 학력 등의 지표가 낮을 때 5년 내 사망율도 1.3~1.5배 정도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캐나다 환자 7816명을 대상으로 1년 내 사망률을 알아본 2012년 ‘미국신경학회지’의 연구 결과는 오직 수입만 비교했다. 여기에서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18%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치료도 마찬가지다. 미국심장협회가 발간하는 의학 저널 ‘뇌졸중’지의 2011년 논문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덴마크의 뇌졸중 환자 1만 4545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연금생활자가 전체 치료 과정을 제대로 모두 받을 확률은 고소득, 정규직의 82~83%에 불과했다. 의료 취약층도 예외가 없어서,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이 올해 ‘노화연구’지에 낸 논문을 보면, 학력이 낮은 우리나라 저소득층 노인들은 의료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않았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소득에서 중요한 것이 절대액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공평한 분배가 가져온 소득불균형과 그로 인한 주관적인 박탈감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에드 디너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2003년 심리학 리뷰 연보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소득이 조금 올랐을 때의 ‘주관적 복지감(행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은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에서 더 쉽게 높아진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저소득층은 소득이 줄 경우 적은 금액에도 행복감을 박탈당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새폴스키 교수에 따르면, 소득불균형은 유럽에서 영아 사망률을 예측하고 미국에서는 노인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의 사망률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다. 그만큼 사망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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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자연스럽지 않다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는 대부분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갖고 있으며 점점 그 정 도도 심해지고 있다. 혹시 평등보다는 불평등이 더 우수하기 때문 아닐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데보라 로저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교수는 2011년 미국공공도서관회보(PLoS ONE)에 실은 논문에서 자원이 불평등한 사회가 어떻게 퍼지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불평등한 사회는 크기가 작아도 인구가 불안정해 자꾸만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이 말은 오늘날 대다수 사회가 기존의 평등 사회에서 불평등 사회로 자연스럽게 ‘진화’한 게 아니라, 일부 불평등 사회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그곳에 있던 원래의 평등사회를 대체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유명한 책 ‘인간 불평등 기원론’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므로 (…)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불평등은 이성과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부산물이며 자연스럽지도 않다. 오늘날의 소득불균형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줄이는 노력은 법과 제도 외에 과학과 의학에서도 급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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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기분 나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어릴 적에 겪은 가난이 그 사람의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며(이
를 ‘유전자 각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면역 등 건강 상태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내용이다(과학동아 11월호 과학뉴스 참조).
이 연구는 가난이 몸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건강과도 관련이 된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연구가 폭로한 현상, 즉 ‘아주 어릴 적 가난이 성인이 된 이후의 건강 상태를 좌우한다’는 것은 의학과 생물학계에서 오래 전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다.
사실 의학계가 먼저 주목했던 것은 유아기도 아니고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즉 태아기다. 이 때의 가난과 굶주림은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태아의 체질을 이런 영양 부족 환경에 적응하도록 뒤바꾼다(이를 ‘대사성 각인’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현상이 태아가 성인이 된 후에 여러 가지 질병 발생률을 높인다는 점이다.
태아기의 대사성 각인이 일생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하다. 만약 태아기에 가난때문에 임신 중인 어머니가 제대로 영양섭취를 못 했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갑자기 로또에 당첨됐다고 해보자.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호사스런 집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됐다. 하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얻은 각인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한다. 수잔 오전 영국 캠브리지대 임상생화학과 교수팀이 2004년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그 예다. 수컷 쥐에게 태아 상태에서 충분한 단백질을 준 경우와 주지 않은 경우, 그리고 젖먹이 단계에서 단백질을 충분히 준 경우와 주지 않은 경우를 나눠서 비교해본 결과, 태아 때 영양이 부족했던 쥐는 태어난 뒤 아무리 잘 먹여도 수명이 다른 쥐의 최고 79%밖에 되지 않았다. 태아 때의 영양이 수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엄마 뱃속에서 굶주린 아기 일찍 죽는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사실이 여럿 보고돼 있다. 장 피에르 몽타니 스위스 프라이부르크대 의대 교수팀이 2006년 국제비만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태아 또는 유년기에 심한 굶주림을 겪은 아이는 커서 비만과 2형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브라질, 러시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비만에 걸릴 위험은 2~8배 높았다.
굶주린 채 태어나 어린 시절에 영양을 회복해 급격히 체중을 회복한 경우 건강 위험도 증가했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문제는 아니었다. 2세에서 11세 사이의 어린이 시절이 위험했다. 데이비드 바커 영국 사우스햄스턴대 의대 교수팀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8760명의 남녀를 유아 때부터 11세까지 추적해 병 발생 여부를 기록해봤더니, 심장 질환이 특히 많이 나타난 어린이들은 이 시기에 몸무게를 급격히 늘린 경우가 많았다. 어린이 사이에서 체중 회복이 언제 일어나느냐가 건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2005년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실린 연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비만과 당뇨병이 늘어나는 건 바뀐 체질 탓이다. 임산부가 겪은 굶주림은 태아에게 ‘세상은 굶주릴 위험에 노출된 곳이다, 그러니 먹을 게 들어오면 악착같이 저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몸은 이 명령에 따라 먹을 것을 아끼고 저장하도록 재프로그래밍된다. 그 결과 태어나서 먹을 것이 풍족한 환경으로 변해도 계속 몸에 영양분을 축적한다. 그 결과가 비만과 대사성 질병이다. 엄마 뱃속에서 경험한 가난이 평생 건강까지 좌우한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우울하다. 하지만 보다 우울한 이야기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로버트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교수의 책 ‘스트레스’에 따르면, 이런 체질은 심지어 그 다음 세대(3대)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다. 대사성 각인에 따라, 잘 못 먹고 자란 어머니는 임신기에 자신도 모르게 태아에게 보낼 영양분마저 가로채 자신의 몸에 축적한다. 그 결과 태아는 먹을 게 풍족한 세상에서도 본의 아니게 굶주림을 겪고, 대사성 각인을 겪은 저체중 태아가 돼 세상에 발을 내디딘다. 혹시 잘 먹고 사는데도 집안 대대로 아기의 몸집이 작아 고민이라면 혹시 구한말이나 일제시대에 조상이 큰 가난을 겪었는지 생각해보자. 어쩌면 암울한 시대를 살던 조상이 격렬한 가난과 그로 인한 영양결핍에 맞서 싸운 영웅적인 분투의 흔적일지 모르니까.
부귀영화는 생존율과 연관된다?
태아 때 느낀 굶주림이 대를 잇는 ‘저질 체질’을 만든다는 결론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 뱃속에서 접한 정보만으로 일생을 살아갈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하는 태아 입장에서는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짧게는 10만 년, 길게는 수백만, 수천만 년에 걸쳐 이어진 인류와 영장류의 역사상 이런 선택이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수렵 채집 시대에 인류가 축적할 수 있는 재산은 많지 않았고 먹을 것도 아주 풍족한 편은 아니었다. 인류는 만성적인 가벼운 공복에 적응했다.
이후 농사가 시작되면서 재산과 먹거리 축적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전보다 가난해졌고 평생 심각한 굶주림 에 시달리게 됐다(과학동아 11월호 ‘농사는 인류를 부자로 만들었을까?’ 참조). 사회적 계급도 생겼다. 계급은 빈부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됐고 불평등은 사회,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곳으로 확산됐다. 이 상황에서 생물학적 대물림이 시작됐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은 영양 면에서 풍요로운 경우가 많았고, 앞서 밝힌 연구대로라면 상대적으로 체구도 크게 태어났으며, 성인이 돼서도 건강할 확률이 높았다. 수명도 길고 심지어 후손도 크고 건강할 가능성이 높다.
2006년 ‘종양학회보’에 실린 연구 결과는 사망률을 비교한 대표적인 연구다. 연구팀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의 암 환자 생존률을 추적한 연구 논문 46개를 분석했는데, 소득, 학력 등의 지표가 낮을 때 5년 내 사망율도 1.3~1.5배 정도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캐나다 환자 7816명을 대상으로 1년 내 사망률을 알아본 2012년 ‘미국신경학회지’의 연구 결과는 오직 수입만 비교했다. 여기에서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18%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치료도 마찬가지다. 미국심장협회가 발간하는 의학 저널 ‘뇌졸중’지의 2011년 논문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덴마크의 뇌졸중 환자 1만 4545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연금생활자가 전체 치료 과정을 제대로 모두 받을 확률은 고소득, 정규직의 82~83%에 불과했다. 의료 취약층도 예외가 없어서,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이 올해 ‘노화연구’지에 낸 논문을 보면, 학력이 낮은 우리나라 저소득층 노인들은 의료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않았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소득에서 중요한 것이 절대액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공평한 분배가 가져온 소득불균형과 그로 인한 주관적인 박탈감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에드 디너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2003년 심리학 리뷰 연보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소득이 조금 올랐을 때의 ‘주관적 복지감(행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은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에서 더 쉽게 높아진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저소득층은 소득이 줄 경우 적은 금액에도 행복감을 박탈당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새폴스키 교수에 따르면, 소득불균형은 유럽에서 영아 사망률을 예측하고 미국에서는 노인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의 사망률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다. 그만큼 사망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불평등은 자연스럽지 않다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는 대부분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갖고 있으며 점점 그 정 도도 심해지고 있다. 혹시 평등보다는 불평등이 더 우수하기 때문 아닐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데보라 로저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교수는 2011년 미국공공도서관회보(PLoS ONE)에 실은 논문에서 자원이 불평등한 사회가 어떻게 퍼지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불평등한 사회는 크기가 작아도 인구가 불안정해 자꾸만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이 말은 오늘날 대다수 사회가 기존의 평등 사회에서 불평등 사회로 자연스럽게 ‘진화’한 게 아니라, 일부 불평등 사회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그곳에 있던 원래의 평등사회를 대체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유명한 책 ‘인간 불평등 기원론’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므로 (…)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불평등은 이성과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부산물이며 자연스럽지도 않다. 오늘날의 소득불균형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줄이는 노력은 법과 제도 외에 과학과 의학에서도 급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