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발표된 2017년 출산율 통계는 또 한 번의 쇼크였다. 출생아 수가 35만7700명으로 전년보다 4만8500명(11.9%) 감소했고, 합계출산율이 1.05명을 기록하며 2005년에 기록했던 사상 최저치(1.08명)를 하회했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 출산율 급락에 놀란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해,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추진 중이다. 참고로 제1차 계획(2006~2010년)에서 19조7000억 원이, 제2차 계획(2011~2015년)에서는 60조5000억 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지만 저출산 흐름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합계출산율
한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예상되는 평균 자녀의 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68명으로(2015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된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라 투입된 80조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자금은 대체 어디에 지급된 걸까. 역대 정부의 저출산 대책 내역을 살펴보면 정책의 초점은 배우자가 있는 ‘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을 높이는데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바로 위 계층에 해당하는) 차상위계층에 대한 양육수당 지급 및 보육료 전액 면제조치를 취했고, 이명박 정부도 양육수당을 인상하는 한편 보육비 전액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이런 기조는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여서, 보육비 전액지원 대상을 기존 ‘소득 하위 70%’에서 전국민으로 확대하고 임신 및 출산 진료비 지원을 확대했다.
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은 상승, 그러나…
하지만 유배우 여성에 대한 출산 지원 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교수는 2016년 발간한 ‘저출산 대책의 효과성 평가’ 보고서를 통해 유배우 여성의 출산율은 꽤 안정적으로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이미 결혼한 여성들의 출산율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 영향으로 꽤 높은 수준까지 상승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2년까지만 해도 유배우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1.5명 전후에 불과했지만, 이후 급격히 상승해 2014년에는 2.2명을 기록했다.
"한국의 출산율이 하락한 진짜 이유는 결혼하지 않는
여성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들은 왜 결혼을 기피할까"
출산율 하락의 또 다른 이유
그런데 왜 한국의 출산율은 하락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유배우 여성의 비율 하락, 다른 말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 20~49세 여성의 유배우 비율은 2005년 62%가 넘었지만, 2014년에는 그 비율이 54%까지 떨어졌다.
만일 2000년의 유배우 비율이 계속 유지됐다면, 한국의 출산율은 2.0명 전후를 유지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결국 한국의 출산율 하락은 유배우 여성이 출산을 기피해서가 아니라, 결혼 자체가 줄어든 데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여성들은 결혼을 기피할까. 문화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경제학자의 입장에서는 여성의 연령대별 경제활동참가율 흐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주요 선진국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비교해 보면,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대까지는 다른 선진국 여성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30~40대에 들어 급격히 낮아진다. 그리고 이후 다시 선진국 수준을 회복한다.
즉 다른 선진국 여성은 20대에 높아진 경제활동 참가율이 50대까지 꾸준히 이어지다가 60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하락하는 반면, 한국은 30~40대에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하락하는 이른바 ‘M-커브’ 현상이 나타난다(위 그래프).
사회생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30~40대에 경제활동참가율이 떨어지는 것은 한국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아무리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이 생기면 생애 소득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직장을 그만 둔 이후 재취업할 때에는 이전보다 더 낮은 소득의 일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결혼과 출산으로 한국 여성의 생애 소득은 줄어들 위험이 커지고, 특히 최근처럼 이혼 건수가 결혼건수의 40%에 육박하는 시대에는 여성들의 생애 소득 감소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생기면 생애 소득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직장을 그만 둔 이후 재취업할 때에는 이전보다 더 낮은 소득의 일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결혼과 출산으로 한국 여성의 생애 소득은 줄어들 위험이 커지고, 특히 최근처럼 이혼 건수가 결혼건수의 40%에 육박하는 시대에는 여성들의 생애 소득 감소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취업난, 출산율 더 떨어뜨려
이 두려움에 맞서 한국 여성들은 크게 두 가지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첫 번째 대응은 다소 학업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좋은 직장을 찾는 방식이다. 즉 출산과 양육 이후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직장, 예를 들어 공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시험에 몰두하는 식이다. 국가공무원 중 여성 공무원의 비율이 올해 들어 역대 처음으로 50%를 초과했다는 신문 보도가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여성들의 두 번째 대응은 아예 결혼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혼 건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시대에 자칫 ‘돌싱’이 될 위험을 안고 사느니, 좋은 결혼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 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간한 자료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13세 이상 여성의 비율은 2010년 59.1%에서 2016년 47.5%로 감소했다.
문제는 현재 여건이 출산율을 더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있다. 2030세대의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선호하는 좋은 직장을 둘러싼 경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며 ‘취업 예비군’으로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성의 미혼율을 높아지고, 출산율은 떨어진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방향도 기존과 달라질 필요가 있다. 유배우 여성에 대한 출산 지원 정책을 지속하는 한편, 2030세대의 취업난을 해소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함께 시행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홍춘욱
1993년 12월부터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환율의 미래’ ‘인구와 투자의 미래’등 다양한 책을 통해 경제 지식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키움증권투자전략팀장이며, 블로그(blog.naver.com/hong8706)를 통해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hong87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