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인간은 태양이 떠 있는 시간에만 야외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고 뒤이어 형광등이 개발되면서, 인류는 낮과 밤 구분 없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말하자면 인류는 인공조명의 탄생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적, 산업적 발전을 이룩해 온 셈입니다.
하지만 백열전구와 형광등의 밝은 빛 이면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백열전구는 수명이 짧고 에너지의 95%가 열로 손실된다는 단점이 있고, 형광등은 진공관 속에 수은을 채워 넣어 만들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크고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무엇보다 밝은 빛을 내기 위해 친환경 고효율 광원인 발광다이오드(LED·Light Emitting Diodes)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2014년 노벨 물리학상 거머쥔 청색 LED
LED 조명, LED 가로등, LED TV, LED 신호등, LED 전광판…. 이미 우리 생활에서 LED는 매우 친숙한 단어가 됐습니다. LED는 백열등이나 형광등 같은 기존 광원에 비해 빛이 훨씬 밝으면서도 소비 전력이 낮아 효율이 높습니다. 또한 친환경적이며 수명이 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LED가 차세대 광원이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LED는 전류를 흘려주면 빛을 내는 반도체 소자입니다. 일반적으로 ‘n형 반도체층’과 ‘p형 반도체층’, 그리고 빛을 내는 ‘발광층’ 등 3개 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LED에 전류를 흘려주면 n형 반도체에서는 전자가, p형 반도체에서는 정공이 발광층으로 공급됩니다. 이때 높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전자가 낮은 에너지 상태의 정공과 결합하면서, LED에서는 두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갖는 빛이 나옵니다.
이 에너지 차이가 빛의 파장, 즉 LED의 색을 결정합니다. 상대적으로 에너지 차이가 작은 인화알루미늄갈륨인듐(AlGaInP) 계열 반도체에서는 파장이 긴 노란 빛부터 붉은 빛(550~700nm)까지 나오고, 에너지 차이가 큰 질화인듐갈륨(InGaN) 계열 반도체에서는 이보다 파장이 짧은 푸른빛(400~550nm)이 나옵니다.
이 중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푸른빛을 내는 청색 LED입니다. 아카사키 이사무 일본 메이조대교수,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아카사키연구센터장), 나카무라 슈지 미국 UC샌타바버라 교수는 바로 이 청색 LED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공로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노벨상위원회는 “그들이 청색 LED를 개발한 덕분에 빛의 3원색에 해당하는 적색과 녹색, 청색을 마침내 LED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통해 백색 LED도 개발할 수 있게 돼 세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빛의 3원색을 적절히 혼합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색 LED에 노란색 형광물질을 입히면 백색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청색 LED로 빛의 3원색 완성
적색 LED는 1950년대에, 녹색 LED는 1960년대 말에 각각 개발됐지만 청색 LED는 개발이 쉽지 않았습니다. 청색 LED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색과 녹색보다 상대적으로 에너지 차이가 큰 반도체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청색 LED 개발 초기에는 세계 주요 연구기관에서 셀레늄화아연(ZnSe)이나 탄화규소(SiC)를 재료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셀레늄화아연으로 만든 LED는 화학적, 기계적으로 안정하지 못해서 수명이 무척 짧았고, 1993년 탄화규소로 청색 LED를 개발했지만 효율이 약 0.03%에 불과해 사실상 상용화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고효율 청색 LED를 만들 수 있는 재료로 질화인듐갈륨 같은 3족 질화물 반도체가 유력한 후보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기판으로 사용되는 사파이어와 질화갈륨 사이에 물성 차이가 커 높은 품질의 질화갈륨 층을 형성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또한 LED 소자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p형 질화갈륨 반도체층을 만들기도 기술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명은 결함 밀도가 낮은 질화갈륨 층을 제작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p형 질화갈륨 반도체층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아카사키 교수와 아마노 교수는 사파이어 기판 위에 수십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 두께의 질화알루미늄(AlN) 완충층을 먼저 쌓고, 그 위에 고품질 질화갈륨 층을 형성하기 위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1989년 아연(Zn)이나 마그네슘(Mg)이 도핑된 질화갈륨 층에 저에너지 전자빔을 쪼여주는 방법으로 p형 질화갈륨 반도체층을 세계 최초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질화갈륨 기반 청색 LED의 실용화에 한 발짝 다가서는 토대가 됐습니다.
당시 일본 니치아 화학공업의 엔지니어였던 나카무라 연구원(현재 UC샌타바버라 교수)은 아카사키 교수와 아마노 교수의 연구결과에서 힌트를 얻어, p형 질화갈륨 반도체층을 더욱 쉽게 만들 수 있는 후속 열처리 공정을 고안했습니다. 이 방법은 대량 생산에 매우 효율적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나카무라 교수는 질화알루미늄 완충층 대신 저온 질화갈륨 완충층을 도입했고, 질화갈륨 층을 성장하는 유기금속화학기상증착법(MOCVD) 반응기를 직접 설계해 결함 밀도가 낮은 높은 품질의 질화갈륨 층을 얻었습니다.
결국 1993년 p형 질화갈륨/n형 질화인듐갈륨/n형 질화갈륨의 이중 이종접합 구조를 이용한 고효율 청색 LED를 세계 최초로 보고했고,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니치아 화학공업은 청색 LED와 백색 LED를 상용화했습니다.
구조물 삽입해 LED 효율 높여
청색 LED와 이를 활용한 백색 LED는 현재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청색 LED의 발광 효율을 올리기 위한 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청색 LED 제작에 주로 이용하는 사파이어 기판과 질화갈륨 사이에 격자 상수 차이가 15% 정도 발생해 질화갈륨 층 내에는 여전히 결함이 많이 생기고 이로 인해 발광 효율이 떨어집니다.
또 두 물질의 열팽창 계수가 달라 질화갈륨 층에 큰 응력이 가해지면서 기판이 휘는 문제도 있습니다. 기판이 휘어지는 문제는 대면적 기판에서 LED 소자를 제작할 때 공정에 문제를 일으켜 수율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질화갈륨과 공기 사이의 큰 굴절률 차이도 문제입니다. 많은 양의 빛이 LED 소자 외부로 나가지 못하고 소자 내에서 흡수돼 손실되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속한 윤의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팀은 수십 나노미터 두께의 얇은 알루미나 박막을 활용해 속이 비어 있는 구조물을 삽입한 사파이어 기판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질화갈륨 층의 결정성을 향상시키고, 기판이 휘는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또한 내부에 삽입된 구조물이 LED 소자 내부에서 발생한 빛을 효율적으로 외부로 빠져나가게 한다는 사실을 이론적, 실험적으로 밝혀냈습니다.
doi:10.1016/j.jcrysgro.2015.08.011
차세대 디스플레이 노리는 ‘마이크로 LED’
전문가들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용 소재로 ‘마이크로 LED’를 꼽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LED 기술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일반적으로 100×100μm2 이하의 초소형 LED를 마이크로 LED라고 부르는데, 작은 LED 소자 한 개가 디스플레이의 픽셀이 되면 초고화질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 LED는 기존 디스플레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액정표시장치(LCD)나 유기발광다이오드
(OLED)에 비해 밝기가 뛰어나고, 소비 전력이 낮으며, 응답 속도가 빠른데다, 수명이 길고, 대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특히 최근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디스플레이로는 사실적인 장면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마이크로 LED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세계 주요 IT기업들은 마이크로 LED 전문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LED 제품의 상용화는 아직 멀었습니다.
마이크로 LED의 효율을 개선하고 디스플레이용 기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전사 기술이나 색 변환 기술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속한 연구팀도 마이크로 LED를 디스플레이용 기판으로 옮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백열전구와 형광등을 대신해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LED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또 한번 획기적인 ‘빛의 시대’를 열지 기대해볼 만합니다.
김종명
서울대 화합물반도체 에피성장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있다. 사파이어 나노멤브레인을 설계해, 고효율 편광 LED와 마이크로 LED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