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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는 6천5백만년 전, 멀리는 2억년 전의 공룡화석을 직접 발굴하는 것은 가슴이 뛰는 일이다. 이 글은 지난해 미국 와이오밍주 중생대 쥐라기 층에서 공룡화석 사냥에 나섰던 한 한국인의 체험일기이다. 공룡화석 사냥터에서 있었던 생생한 경험을 들어보자.


박물관으로 화석들을 옮기기위해 석고로 만든 필드자켓들.


1998년 6월 5일. 캔자스주립자연사박물관의 공룡탐사팀의 일원이 돼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모리슨층(미국 중생대 쥐라기층으로 많은 공룡화석이 나옴)으로 탐사를 떠나는 날 아침부터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지난 5년 동안 신생대와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 수십차례 화석을 발굴해 봤지만 쥐라기 지층은 처음이라 긴장감과 묘한 흥분이 교차했다.

이번에 찾아가는 와이오밍주 탐사지역은 지난해 1차 조사에서 여러개의 골격화석들이 발견돼 이번 탐사에 거는 기대는 그만큼 컸다. 한편 캔자스주 문화관광청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기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결의가 한사람 한사람에게 굳게 서렸다. 우리는 15년이나 된 고물 밴을 끌고 화석발굴 예정지까지 17시간을 달렸다.

화석발굴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3개월간 숙소로 지낼 여관에서 창고를 빌려 현미경, 화석 보존처리용 화학약품, 각종 도구들을 정리해 ‘임시 표본정리실’을 만들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문득 1백년 전 이 지역으로 찾아왔던 선배 고생물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1894년부터 1898년까지 와이오밍주로 공룡사냥하러 왔던 사람들은 이른바 ‘공룡발굴 드림팀’. 캔자스박물관의 윌리스턴박사를 팀장으로 미국 최초의 티라노사우루스를 발견한 바넘 브라운과 영화 ‘쥬라기공원’에 등장하는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발견한 엘머 릭스가 참여한 발굴팀이었다. 세 사람은 미국 공룡화석 발굴에 앞장섰으며 오늘날 공룡화석 연구의 기초를 다진 개척자들이었다.

후에 윌리스턴 박사는 시카고대학에서 새로운 척추고생물학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릭스는 미국 3대 자연사박물관 중의 하나인 시카고 필드박물관에 척추고생물학실을 창설했고, 역사상 가장 많은 공룡화석들을 사냥한 브라운은 세계 최대의 뉴욕 자연사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이 미국 중생대 지층을 돌며 많은 공룡화석들을 찾아내던 때로부터 1백년이 지난 후에 내가 새로운 역사에 도전한다고 생각하니 자부심과 설레임으로 잠이 오질 않았다.

트리세라톱스의 갈비뼈

6월 8일. 화석발굴지역에 도착했지만 이틀에 걸쳐 내린 폭우로 도저히 발굴현장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들떠 있던 탐사대원들도 실망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한숨만 쉬었다. 이때 와이오밍주에서 15년 이상 화석을 발굴해온 부팀장 크렉이 대원들의 귀를 쫑긋하게 세울 만한 제안을 했다. 3시간 정도 남쪽으로 가면 랜스층(중생대 백악기층으로 공룡이 많이 발견됨)이 있으니 토지 주인과 상의해보자는 것.

미국에서는 사유지에서 화석을 발굴할 경우 반드시 토지 주인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침입이 되므로 형사처벌은 물론 주인의 총에 맞아 죽더라도 항의할 수가 없다. 다행히 토지 주인은 허락해주었다. 더구나 몇군데에서 공룡 골격으로 보이는 뼈조각이 나왔다는 토지 주인의 말은 탐사대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탐사팀은 도착 즉시 산기슭을 타고 내려가면서 노출된 지형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모든 대원들은 투덜거리며 차안으로 피해야 했다.

나도 비를 피하기 위해 차를 향해 달렸다. 그때 무심코 쳐다본 땅바닥에 흙과 식물이 아닌 핑크빛 돌조각이 두눈에 들어왔다. 비가 내려 흙은 진한 갈색으로 바뀌고 풀들이 녹색빛으로 더욱 빛나면서 핑크빛 조각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보이는 것이었다.

재빨리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파편조각들을 보는 순간, 온몸이 경직되는 동시에 심장이 뛰었다. 확실한 공룡뼈였던 것이다. 이를 보자 나는 놀라 펄쩍 주저앉고 말았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천둥소리와 번개가 하늘이 찢어지도록 내리쳤다. 그러나 나는 온몸이 젖는 줄도 모르고 가방에서 모종삽과 붓을 꺼내어 뼈를 덮고있는 풀과 흙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다른 탐사대원들도 달려왔다.

한시간 반 가량 붓과 끌을 이용한 ‘뼈 노출’ 작업을 계속한 결과 내가 발견된 골격화석의 실체가 드러났다. ‘갈비뼈’ 한대였다. 비가 그치자 다른 지역으로 탐색을 떠났던 나머지 대원들도 합류해 우리들이 발견한 화석들을 동정한 결과 트리세라톱스의 것임을 알아냈다. 생전 처음 내 손으로 중생대 백악기층에서 초식공룡인 트리세라톱스의 갈비뼈를 발견한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마치 아득한 중생대의 한 장면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흥분을 느꼈다.

뿔을 가진 공룡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트리세라톱스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번성했으며, 뿔을 가진 공룡 중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몸집을 가졌다. 최대 길이는 9m, 몸무게는 5t까지 되는 것도 있었다. 현생 아프리카코끼리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다. 트리세라톱스는 현재까지 미국의 와이오밍주, 사우스다코타주, 몬태나주, 콜로라도주와 캐나다에서 발견되고 있다. 뿔과 갈기를 가지고 있어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공룡화석이다.

우리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공룡화석을 실험실로 운반하기 위해 플래스터(회반죽)로 필드재킷을 만들었다. 이 과정은 운동을 하다 뼈에 금이 가거나 손상을 입었을 때에 깁스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노출된 갈비뼈는 비교적 많이 손상돼 조그만 건드려도 우수수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흩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시간 가량 필드재킷을 만들고, 뜨거운 햇살에 잘 말려 지프 안에 실었다. 돌아오는 지프 안에서 바라보는 들판에는 영양떼들이 뛰노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온몸과 신발에 차갑게 젖어든 빗방울을 느끼지 못함은 공룡뼈를 발굴하는 동안의 숨막히는 긴장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트리세라톱스는 뿔과 갈기가 있어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공룡화석이다.


카마라사우루스와 앨로사우루스

6월 10일,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선 1억4천만년 전의 모리슨층에 대한 탐색작업은 오후 늦게까지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비가 온 뒤라 등산화가 진흙탕에 푹푹 빠지고 하루종일 땅만 보니 허리도 아팠다. 온통 진흙으로 도배한 바지를 털고 있을 때, 반대쪽 언덕밑에서 갑자기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고등학교 과학교사인 린다였다. 생전 처음 화석을 발견했는데, 공룡뼈인지 또 공룡이라면 어떤 부위의 뼈인지 몰라 주위에 흩어진 대원들을 불렀던 것이다. 순식간에 모여든 탐사대원들은 벌어진 입들을 다물지 못했다. 바로 초식공룡인 카마라사우루스의 이빨이었던 것이다.

카마라사우루스는 쥐라기 후기에 미국의 열대평원에서 살았던 목이 긴 초식공룡이다. 이빨이 숟가락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고 주로 고사리류나 속새류와 같은 식물들을 먹고 살았다. 몸길이는 18m. 열마리의 코끼리와 맞먹는 몸무게를 지닌 카마라사우루스는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식물을 먹었을 것이다. 이들은 그 많은 양의 먹이를 소화해내기 위해 이빨뿐 아니라 ‘위석’(stomach stones)이라는 자갈들을 삼켰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현생 조류의 모래주머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6월 25일, 고된 노동과 음식 문제로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연이어 발견되는 카마라사우루스의 골격화석 때문에 모두들 열심히 발굴에 임했다. 카마라사우루스의 앞다리, 특히 상완골과 손을 이루는 손가락 마디뼈들은 놀랄 정도로 잘 보존돼 있었다. 이를 보자 지금까지의 피로가 한순간에 가시는 듯했다. 또 공룡뼈 외에도 거북, 악어, 어류, 식물화석들도 함께 나와 이 지역의 고생태학 분석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이번 탐사에는 유난히 석양에 많은 것들이 발견됐다. 이날도 해질 무렵 쥐라기의 육식공룡인 앨로사우루스의 이빨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백악기에 전성했던 티라노사우루스와 비슷하게 생긴 앨로사우루스는 티라노사우루스보다는 작지만, 생활양식이나 먹이들은 거의 같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발견된 앨로사우루스의 이빨도 전형적인 육식공룡의 이빨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빨의 위쪽으로 갈수록 좁고 날카로우며 약간 비스듬히 뒤틀려 있고, 이빨 표면에는 예리한 톱니가 배열돼 있었다. 이러한 이빨은 먹잇감을 사냥할 때 먹이를 좀더 빨리 죽일 수 있고 살점을 뜯어내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오늘 발견된 앨로사우루스의 이빨은 고생태학적 해석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지금까지 발견해낸 카마라사우루스는 어미로 보이는 두마리의 골격화석과 한마리의 새끼 골격화석이었다. 그런데 새끼 카마라사우루스의 다리뼈에 앨로사우루스의 이빨자국으로 보이는 구멍이 몇개 발견됐다. 이점으로 미뤄볼 때 육식공룡인 앨로사우루스가 새끼 카마라사우루스를 공격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새끼 카마라사우루스를 보호하기 위해 어미 두마리가 옆에서 지켜주었다는 ‘부모양육’(Parental Care)이라는 행동양식의 부분적인 증거가 된다. 이러한 부모양육의 직접적 단서를 제시해주는 공룡화석 발굴은 매우 드문 것이었다.

6월 29일, 오늘은 나에게 행운이 따랐다. 작업 중이던 갈비뼈와 경추(목뼈)의 옆에서 두 개골의 일부로 보이는 뼈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영어 알파벳 T자 모양으로 눈(eye lens)이 들어 있는 눈구멍(orbit)을 구성하는 뼈로 보인다. 두개골을 구성하는 뼈들은 매우 약하고 부서지기가 쉬워서 보존이 잘 되지 않으므로 발견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내가 이 뼈를 발견하자 대원들이 몰려와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톰과 제리

7월 1일, 매일 아침에 해야 하는 첫 작업은 전날 작업을 마치고 화석들 위에 덮어 놓았던 비닐 커버를 벗기는 일이다. 당번을 맡은 나는 칠레에서 유학온 라드와 함께 졸린 눈을 비비며 차를 몰고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한편의 ‘동물의 왕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덮어놓았던 덮개를 들추자, 10여 마리의 들쥐들이 지프라기와 휴지조각으로 둥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뭉쳐서 자고 있었다. 비를 피해 공룡 다리뼈들 사이로 들어가 간밤에 새끼를 낳은 것이다. 마치 만화영화 ‘톰과 제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옆에 있던 라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빗자루와 삽으로 이들을 내쫓으려고 했다. 그러나 새끼들이 허둥대는 모습이 너무도 불쌍해 라드에게 스스로 도망갈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새끼손가락의 반도 안 되는 작은 생쥐들이 마지막 한 마리까지 다 떠난 후 그들이 물고와 거처를 만드는데 사용했던 휴지조각들을 치웠다. 비록 쥐지만 새끼들이 태어날 때 차가운 바닥에서 뒹굴지 않도록 사람들이 쓰고 버린 휴지조각들을 모아 깐 어미쥐를 생각하면서.

어제 목장주인으로부터 젖소떼가 발굴현장 근처로 이동하니 각별히 유의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오늘 할 일은 여기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만일 한마리의 소라도 발굴지역으로 통과하는 날에는 그동안 작업해왔던 화석들이 순식간에 박살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임시로 전기보호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발굴지역 주위에 보호대를 설치하고 코일을 감아 전기를 흐르게 하면 되는데, 소들이 오다가 앞장선 소가 보호대를 건드리고 전기가 흐른다는 것을 알면 방향을 바꾸어 가므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7월 2일. 어제까지 화석발굴 첫단계가 끝났다. 화석발굴은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첫단계는 화석을 찾아내 뼈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노출시키는 것이고, 둘째단계는 노출된 골격화석을 필드재킷으로 씌워서 박물관으로 운반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특수차량을 이용해 박물관의 연구실로 안전하게 운반한 후 표본 정리작업을 하는 것. 따라서 이제부터 더 이상 뼈를 찾는 작업을 하지 않고 발견한 골격화석들을 차례차례 필드재킷으로 씌우는 과정을 시작한다.

오후 작업 때에는 발굴단이 작업하는 광경을 홍보필름에 담기 위해 촬영팀이 도착했다. 공룡의 대중적 인기를 감안해 이번 발굴과정을 단계별로 촬영하고, 주요한 발견내용을 뉴스시간에 소개하기 위해서다. 촬영한 필름은 캔자스대학, 캔자스자연사박물관, 캔자스주의 홍보자료와 관광안내영화에 넣을 계획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룡전시실에 공룡들을 전시할 때 발굴과정을 단계별로 모니터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보여줄 예정이다.

수십년간에 걸쳐 전시될 공룡화석을 내 손으로 직접 발굴하고, 하루종일 방영될 전시실 모니터에 내 모습이 나올 생각을 하니 굉장한 인물이 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4시간이 넘도록 뜨거운 햇살 아래서 촬영하는데도 힘이 드는 줄 몰랐다. 다른 대원들도 그동안의 발굴과정을 단계별로 멋지게 연출해냈다.

문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척추고생물학이 뿌리를 내리고 화석발굴이 활성화돼 미국에 못지않는 연구들을 수행할 때가 왔으면 하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화석연구는 현장에서의 발굴경험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자연사 박물관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교육할 때도 현장 경험은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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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임종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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