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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X KRISS] 아보가드로 상수로 더 명확해진 몰(Mol)

인류 최고의 발명품, 단위의 탄생

‘몰은 탄소-12 0.012 킬로그램에 있는 원자의 개수와 같은 수의 구성요소를 갖는 어떤 계의 물질의 양이다. 몰의 기호는 ‘mol’ 이다. 몰을 사용할 때는 구성요소를 반드시 명시해야 하며, 이 구성요소는 원자, 분자, 이온, 전자, 기타 입자 혹은 입자들의 특정한 집합체가 될 수 있다. ’


물질의 양을 나타내기 위한 기본단위인 몰(영문: mole, 기호: mol)의 현재 정의다. 이처럼 몰은 다른 기본단위인 질량에 의존해 왔다. 또 구성요소의 개수를 통해서 양을 정의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수가 얼마인지는 명시돼있지 않았다. 따라서 질량의 정의가 바뀌게 되면 그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될 뿐만 아니라(과학동아 2018년 5월호 참조), 누가 어떤 방법으로 세는지에 따라 1 몰에 해당 하 는 개수가 조금 씩 달라질 수 있다 는 문제가 있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측정 불확도’ 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1 몰의 물질의 양에 들어있는 원자의 수인 아보가드로 상수(NA)를 최대한 정확히 측정한 다음 그 수(6.022 140 76×1023 mol-1)를 변하지 않는 상수로 고정해 몰을 정의하기로 했다. 계란 30개를 한 판이라고 하듯, 특정 입자 6.022 140 76×1023개로 구성된 어떤 물질의 양을 1 몰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새로운 정의는 올해 11월 확정돼 내년 5월 20일부터 적용된다.

 

 

화학 반응의 양적 관계를 탐구하다


인류는 문자가 만들어지기도 전인 아주 오래 전부터 화학 반응으로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다. 그러나 화학 반응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난 18세기 후반이었다.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어떤 물질의 화학반응 전과 후의 전체 질량이 동일하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1774년 발표했다.


또 프랑스의 화학자 프루스트는 인공과 천연 탄산 구리(CuCO₃)의 조성을 비교해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소의 질량비는 항상 일정하다는 ‘일정 성분비의 법칙’을 1779년 밝혔다.


영국 출신의 돌턴은 이 두 법칙을 1803년 원자론으로 설명했다. 화합물이 두 가지 이상 원자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지고, 화학 반응은 이런 원자들의 재배열이라는 원자론을 이용해 돌턴은 원자들의 상대적 질량(원자량)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돌턴의 계산에는 오류가 있었다. 물(H₂O)의 화학식을 HO로, 암모니아(NH₃)의 화학식을 NH로 가정하는 바람에 산소의 원자량을 8, 질소의 원자량을 5로 계산한 것이다(실제는 16과 14).


이것을 실제와 근사하게 수정한 사람이 이탈리아의 화학자 아보가드로였다. 아보가드로는 ‘같은 온도, 압력에서 같은 부피 속에 존재하는 기체 입자(분자)의 수는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같다’는 가설을 1811년 발표하며, 이를 통해 산소와 질소의 원자량을 각각 15, 13으로 계산했다.

 

 

 

아보가드로 상수를 최초로 구하다


19세기 후반 기체의 성질을 연구하던 화학자들은 물질의 양을 구성요소의 수로 나타낼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입자 한 개의 질량은 너무 작아 측정하기 어렵고, 그 수는 너무 많아 세기 어렵기에 입자의 묶음이라는 몰(mole) 개념을 만들어냈다. 몰(mole)이라는 명칭은 독일의 화학자 빌헬름 오스왈드가 1894년 독일어의 Molekul에서 ‘Mol’을 따서 만든 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오늘날 ‘아보가드로 상수’는 1909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페랭이 최초로 실험을 통해 계산해냈다. 페랭은 미세한 입자의 브라운 운동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이것이 볼츠만의 기체운동 이론(PV=NkBT, P는 압력, V는 부피, N은 분자 개수, kB는 볼츠만 상수, T는 절대온도)을 성립하려면 분자의 개수(N )가 몇 몰이어야 하는지 계산했다.


페랭이 추산한 1 몰의 입자 개수는 7.05×1023개였다. 페랭은 아보가드로의 업적을 기려 이 숫자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페랭은 물질의 불연속적인 구조에 관한 연구로 192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순도 100% 실리콘 구를 만들다


몰은 1971년 국제단위계 기본단위로 지정됐다. 미터(m), 킬로그램(kg), 초(s), 칸델라(cd), 암페어(A), 켈빈(K)에 이어 마지막 승차였다. 과학자들은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를 통해 1 몰을 소수점 7, 8번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구했다.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는 실리콘으로 완벽한 구를 제작해 내부에 몇 개의 입자(실리콘 원자)가 들어있는지를 측정했다(측정된 입자 수를 1 몰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으로 아보가드로 상수를 구하는 방법 중 하나다).

 

반도체의 주원료인 실리콘은 제작 기술이 발전해 있고, 순도가 높아 단결정을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독일, 이탈리아, 미국, 호주, 일본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10년이 넘는 연구 끝에 2015년 아보가드로 상수를 NA=6.022 140 76×1023 mol-1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처음에 실리콘의 동위원소 농축작업은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러시아에서 맡았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핵폭탄의 주원료인 우라늄-235를 농축하는 고도의 원심분리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이것으로 실리콘 동위원소 중 순수하게 실리콘-28만을 추출하는 데 기여했다.

 

 

[Interview] 

 

“화학·바이오분야 측정 불확도 줄일 것”_이경석

 

“몰을 아보가드로 상수를 사용해 다시 정의하더라도 측정값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원자나 분자 단위의 측정이 중요해지는 첨단과학, 특히 화학과 바이오 분야에서는 측정의 불확도를 줄일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경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분석화학표준센터 책임연구원은 몰의 재정의가 미칠 영향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그는 몰의 측정소급성(metrological traceability· 비교의 연결고리를 통해 명확한 기준에 연관시킬 수 있는 측정결과의 특성)을 본격적으로 이어주기 위한 연구에 열정을 내비쳤다.


이를 위해서는 몰질량(molar mass, 단위 kg/mol)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보가드로 상수를 결정할 때에도 과학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문제가 실리콘의 몰질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분석화학표준센터는 몰의 재정의에 따른 측정소급성을 제공하기 위해 표준물질 등을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해 이경석 책임연구원이 몰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아보가드로 상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완벽에 가까운 실리콘 단결정 구를 만든다. X선으로 격자 상수를 정확히 측정해 단위격자의 부피를 얻으면, 이것으로 실리콘 구의 부피를 나눠 실리콘 원자의 수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구의 질량과 실리콘의 몰질량을 정확히 측정하면 실리콘이 몇 몰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실리콘 1 몰이 실리콘 원자 몇 개인지, 즉 아보가드로 상수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개념은 간단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실리콘-28을 농축하고(실리콘에는 안정한 3가지 동위원소가 있다) 실리콘 결정을 키워서 구 형태로 깎아내야 하는데, 실제로 완벽한 구가 아니고, 결정구조도 완벽하지 않으며, 불순물 원소가 70종 넘게 섞여 있다. 게다가 표면은 산화막으로 덮여 있다. 단결정의 불완전성 측정, 극미량 불순물 원소 각각의 정량 분석, 수백 나노미터 두께의 산화막에 대한 표면 분석 등을 10-9 수준의 불확도로 수행해야만 한다.

 

이 책임연구원은 “하나의 표준기관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여러 나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협력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아쉽게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지원이 미뤄지며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아보가드로 상수 측정 과정에서 실리콘 동위원소 비율이 균질한지 등을 측정했고, 실리콘의 몰질량 측정에 대한 국제적인 비교 실험에도 참여했다. 측정 결과의 정확도가 10년 이상 관련 연구를 진행한 다른 나라 국제 표준기관들 수준으로 높아(상대불확도 5×10-9 이하) 관심을 모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국가 측정표준 대표기관입니다. 몰 단위로의 측정소급성을 가진 국가 측정표준을 제공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연구를 계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 책임연구원은 시험 분석기관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현재 널리 사용되는 표준용액, 인증표준물질 등의 인증값을 몰 단위로 함께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 몰질량을 결정하기 위한 정밀한 동위원소비 측정 연구를 진행 중이다.


몰 단위의 측정소급성이 확보되면 실생활이 어떻게 바뀔까. 이 책임연구원은 “화학, 생물 분야에서 불명확성을 제거해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세포나 단백질 등을 이용해 제조하는 의약품인 바이오 시밀러를 예로 들었다.


바이오시밀러는 단순히 질량으로 표기하기가 어렵다. 실제 약효를 발휘하는 분자의 개수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효 분자의 수를 펨토몰(fmol·1 fmol은 10-15 mol), 피코몰(pmol·1pmol은 10-12 mol) 단위로 측정한다.

 

그 외에 혈액 속에 작은 단백질이 몇 개가 들어 있는지, 공기 중에 미세먼지 입자가 몇 개나 떠다니는지 수치를 매길 때도 몰 단위의 측정이 필수다. 이 책임연구원은 “아보가드로 상수로 새로운 표준이 정해진 만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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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 기획

    [공동기획]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 사진

    이서연
  • 기타

    [일러스트] 정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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