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우박이 떨어졌던 5월 3일. 서울대 정밀기계설계 공동연구소 1층에 위치한 휴게실에서 여섯 명의 우주항공공학전공 학생들을 만났다. 17학번과 18학번인 이들은 출신 학교와 지역이 모두 달랐지만, 우주와 물리, 항공기와 로켓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내신 4등급 받아도 포기 안해_18학번 유재석
“저보다 성적이 좋은 전교 1~5등 친구들은 서울대 수시 모집 전형에서 떨어졌는데 제가 합격한 걸 보면, 본인의 준비에 따라서 내신 성적의 열세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고인 경기 양서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유재석 씨는 학교에서 자신보다 내신 성적이 뛰어난 친구들을 제치고 서울대에 입학한 케이스다. 물론 지원 학과는 달랐지만, 내신 성적의 차이를 다른 요소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의 내신 성적은 1학년 때 가장 나빴다. 4등급이 나온 과목도 있었다. 서울대 지원은 ‘언감생심’인 성적이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내신이나 수능 중 하나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던 3학년 때, 그는 내신과 수능 둘 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했다.
내신 성적 만회를 위한 노력과 함께 유 씨는 다양한 경험 쌓기에 주력했다. 교내에 없던 천체관측 동아리를 만들고, 연구 논문을 쓰고, 수학 개념을 설명하는 강의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영어 말하기대회에도 참가했다.
물론 이런 경험이 직접적으로 우주항공공학과 연관된것은 아니지만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우주항공공학과의 연관성을 살려 기술했다. 예컨대 강의 동영상 촬영 경험은 우주항공공학을 대중에게 잘 알릴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씨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자신이 놓인 환경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어디까지 노력했는지를 잘 기술하는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3학년 때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유 씨는 꿈꾸던 서울대 우주항공공학전공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그간의 활동을 잘 정리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구술고사도 잘 치러서 합격의 기쁨을 거머쥐었다. 유 씨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지망하는 전공을 정말 좋아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면 성적이 조금 낮아도 합격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학년 때 미리 써 본 자기소개서_18학번 이지원
일반고인 서울 은광여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이지원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미리 써 본 자기소개서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천문학자를 꿈꾸다가 2학년 때 참여한 서울대 공대 공학프런티어캠프에서 우주항공공학에 매력을 느낀 이 씨는 2학년 겨울에 모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해본 뒤 자신에게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점검했다.
우주항공공학과 관련해 자신을 소개할 요소들이 부족하다고 느낀 이 씨는 3학년 이라는 부담이 있었지만 우주항공과 관련한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가령 지구과학2 과목에서 배운 여러 종류의 바람이 항공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를 한 뒤 논문을 썼고, 그 내용을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에 반영했다.
이 씨도 3학년 때 내신 성적을 포기하지 않고 관리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다. 이 씨는 미래의 후배들에게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보라”며 “자기가 지망하는 전공 관련 활동이 부족한 경우에는 3학년 때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말고 꿈을 향해 도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항공우주 활동에 ‘올인’_18학번 이민희
전남 백운고를 졸업한 이민희 씨는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서울대에서 진행하는 미래인재학교라는 프로그램에서 서울대 우주항공공학전공 재학생의 멘토링을 받은 이 씨는 “지상의 기계와 달리 하늘 위의 극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항공기를 알아가는 학문”이라는 선배의 말에 매력을 느껴 우주항공공학전공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항공우주 관련 책과 논문을 찾아보고, 관련 연구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특히 항공우주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 대다수가 역사적인 내용이거나 전공 교과 수준의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어 극과 극이었던 반면, 장조원 한국항공대 교수가 쓴 ‘하늘에 도전하다’라는 책은 내용이 읽기 쉬우면서도 항공기의 상세한 부분까지 잘 설명돼 있어서 도움이 됐다. 이 씨는 이런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기술했다.
책 읽기 외에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의 사회공헌 활동인 색동나래교실에 참가해 항공 엔지니어로부터 항공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가오리연을 이용해 꼬리 길이에 따른 비행 안정성을 실험해 논문도 썼다. 이 씨는 “항공우주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알아보려는 자세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스터디로 구술고사 준비 18학번_박주형
과학영재학교인 대전과학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박주형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KAIST 교수의 강연을 듣고 항공우주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제논, 아르곤 등의 원자를 이온 상태로 만들어 우주에서 추진력을 얻는 ‘이온엔진’으로 쓴다는 설명을 듣고 추진장치의 매력에 빠졌다. 관련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비싸고 거대한 실험기기들이 필요한 분야여서 결국 실험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항공우주라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입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박 씨는 내신 성적 관리에 최선을 다하면서 1학년 때부터 학교생활기록부 관리를 꼼꼼히 했다. 가령 독서활동을 할 때마다 내용을 정리해서 선생님께 제출해 관련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전형의 경우 45분 동안 수학 문제를 풀고 15분간 면접관들 앞에서 그 내용을 설명하는 구술고사를 치러야 하는데, 박 씨는 이를 대비해 친구들과 했던 스터디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친구 3~4명과 함께 문제를 풀고 서로 발표하는 방식으로 스터디를 진행했다.
스터디를 하면서 문제를 푸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앞에서 풀이를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느꼈다. 하지만 스터디를 반복하면서 긴장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게 됐고, 실제 면접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박 씨는 “돌이켜보면 입시 준비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합격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떨쳐버리고 최선을 다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덕질’ 만큼 성적도 관리_17학번 조용현
서울 인헌고를 졸업하고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입학한 조용현 씨는 어렸을 때부터 ‘로켓 덕후’였다. 2012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착륙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뒤부터 본격적인 ‘덕질’을 시작했다.
NASA에서 개설한 유튜브 채널을 매일 챙겨봤고, 때로는 질문을 남겨 답변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2, 3학년 때는 서울대 우주항공공학전공 동아리들이 개최하는 ‘항공전’을 보러 갔고, 당시 선배들에게 “나중에 꼭 이 동아리에 들어가겠다”며 ‘예약’을 하기도 했다.
그가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관심에 성적까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소위 ‘덕질’에 빠진 청소년 중에는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 씨는 학교에서 진행했던 진로탐색의 날 행사에 참가한 경험을 계기로 내신 성적 관리에 신경을 썼다. 자신의 꿈과 관련해 한국항공대 교수님과 면담한 뒤 “고등학교 때 너무 깊이 빠져들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조언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다.
조 씨는 내신 성적 관리를 중심에 두고 우주탐사와 로켓 관련 활동에 ‘올인’했고, 결국 서울대 우주항공공학전공에 지원할 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조 씨는 “대학에 입학한 뒤 원했던 로켓 동아리에 들어와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며 “무엇이든 부딪혀 보면서 진로를 찾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나로호’ 보며 꿈 정해_17학번 이창훈
울산 학성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이창훈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 장면을 보면서 우주항공공학도의 꿈을 키웠다. 굉음을 내며 하늘로 멀리 사라져가는 나로호를 보면서 성공한 줄만 알았는데 며칠 뒤 실패했다는 뉴스를 보고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품었고, ‘언젠가 나도 로켓을 발사하는 데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뒤 울산 근처의 천문대를 방문하는 등 우주항공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차곡차곡 관련 경험을 쌓은 뒤 고등학교 때는 내신 관리와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에 담을 내용을 만들어 나가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가령 서울대의 인재상이 어떤지 찾아보고 ‘융복합 인재’라는 키워드에 맞춰서 인문학자인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와 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대화를 정리한 ‘대담’이라는 책을 읽고 거기서 느낀 점을 자기소개서에 썼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을 갖고 조금씩 미래를 준비해 온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수능 시험 일주일 뒤에 치른 구술고사였다. 그는 “다른 친구들은 수능 시험이 끝나서 마냥 즐겁게 놀았지만 한쪽 구석에서 기출문제를 풀면서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만 더 버티자’ ‘지금까지 노력한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조금만 더 힘을 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은 끝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신을 믿고 밀고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