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명의 젊은이가 만든 벤처.선마이크로시스템즈.현재 독점분할로 흔들리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는 기업이다.대학 캠퍼스 같은 문화를 가진 이 기업의 성공비결을 살펴보자.
인터넷과 전자상거래에 이르는 모든 출입구를 소유한 마이크로소프트사(MS)는 인터넷 접속방법에 대해서도 독점적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은 마치 제너럴모터스가 여러분의 자동차에 어떤 연료를 넣고 어떤 고속도로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모두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줄여서 ‘선’이라고 칭함)의 최고경영자 스콧 맥닐리는 작년 8월 미국 상원의 컴퓨터산업 독점에 관한 청문회에 출석, 이처럼 MS를 신랄하게 공격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의 증언은 컴퓨터황제 빌 게이츠가 이끄는 MS가 미국 법원으로부터 반독점 판결을 받는데 결정타가 됐다.
미국의 유력 경제잡지 ‘포천’은 금년 4월 12일자에서 “MS가 반독점 판결로 주춤함에 따라 경쟁업체인 선의 부상이 기대되고 있다”며 “스콧 맥닐리를 진두로 독자적 기술개발에 성공한 선이 MS의 독주를 막을 가장 강력한 도전자”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잡지는 “MS가 올해초 윈도2000을 출시하면서 선의 솔라리스(운영체제의 일종)를 위협하고 나섰지만 데이터 처리속도에서 솔라리스에 미치지 못한다”는 정보통신기술 전문가들의 평가가 쏟아진다고 소개했다.
6페이지 사업계획서로 시작
세계 컴퓨터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MS를 견제할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선. 과연 어떤 회사일까.
선은 워크스테이션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컴퓨터 등의 하드웨어 제품과 운영체제인 솔라리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스타오피스 등 소프트웨어로도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1999년, 매출액 1백10억달러(약 12조원)에 10억달러(약 1조1천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1백70여개국에 3만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인텔, 휴렛팩커드, 시스코, 야후, 애플 등과 함께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정보통신 기업이다.
선은 1982년 4명의 창업자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한명인 인도인 비노드 코슬러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당시는 애플과 휴렛팩커드가 차고에서 설립돼 떠오르는 기업으로 각광을 받던 단계였고, 스탠퍼드와 버클리의 컴퓨터 연구실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벤처의 꿈’을 안고 기술을 연마하던 시기였다. 요즘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코슬러는 1980년대초 데이지시스템이라는 CAD(컴퓨터이용설계)회사의 창립에 참여했으나 이 회사가 망하자 그 경험을 어디에 써먹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는 데이지시스템에서 CAD를 다룰 수 있는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당시 널리 쓰이던 미니컴퓨터의 한계를 깨달았다.
‘1대의 미니컴퓨터를 여러명의 엔지니어가 공유하거나 교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혼자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미니컴퓨터가 수행했던 복잡한 작업을 다루는 퍼스널컴퓨터(PC) 수준의 워크스테이션이 앞으로 큰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스탠퍼드 재학 시절 엔지니어들이 사용하던 이더넷이란 네트워크로 워크스테이션들을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도 착안한다.
그러던 중 앤디 벡톨샤임이란 독일인이 그를 찾아온다. 벡톨샤임은 ‘스탠퍼드 대학 네트워크’(Stanford University Network)의 약자, 선(SUN)이라 부르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던 대학원생이었다. 코슬러는 벡톨샤임과 서로 다른 액센트의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한눈에 간파한다.
벡톨샤임은 자신의 디자인을 기업체에 1만달러 정도 받고 파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황금알을 낳는 기업’을 만들어보자는 코슬러의 설득에 승복하고 만다. 결국 벡톨샤임은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며칠밤을 새워 코슬러와 함께 6페이지짜리 사업계획서를 만든다. 회사 이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스탠퍼드대학을 상징하는 선(SUN)으로 정한다. 이들은 사업계획서와 함께 스탠퍼드대에서 가동중인 이들이 만든 제품을 내세워 사업설명회를 가진지 5일만에 벤처캐피탈로부터 28만달러를 투자받는다.
코슬러는 자본금을 확보하자 스탠퍼드 동창생으로 산호세의 오닉스라는 유닉스 회사에 근무하는 스콧 맥닐리를 생각해낸다.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 맥닐리를 만난 코슬러는 “언제 회사를 관두고 우리와 합류할거야”라고 묻는다. 그러자 맥닐리는 “넌 아직 내게 제의도 하지 않았잖아”라고 되물었다. 이렇게 해서 젊고 모험심이 강한 맥닐리가 제조담당 부사장으로 선에 참여한다.
엔지니어가 컴퓨터 마음껏 사용하도록 배려
마지막으로 합류한 인물은 버클리 유닉스의 전문가인 빌 조이. 그는 스탠퍼드 출신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만 건너편 버클리의 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생이었다. 부시시한 머리의 안경낀 천재인 그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3명이 한꺼번에 찾아와 “같이 일하자”고 조르자 하룻밤만에 승낙해버린다. 이렇게 해서 4명의 드림팀이 ‘선워크스테이션’이란 제품으로 경쟁이 심한 컴퓨터업계에 뛰어들게 된다.
이들중 아직 선에 남아있는 인물은 맥닐리와 조이 2명뿐. 초창기에 선을 이끌던 코슬러는 1980년대 중반 주위 사람들과 불화 때문에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현재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라는 벤처캐피털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벡톨샤임도 시스코의 기술담당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맥닐리는 여전히 선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이는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아스펜의 연구소에 근무하지만 선의 중요한 기술적인 결정에는 반드시 참여한다.
선은 설립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선은 1982년말 최초의 제품인 ‘선-2’를 출시했다. 조이의 버클리 유닉스와 벡톨샤임의 하드웨어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이 제품은, 가격에 비해 속도가 빨랐고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유닉스에 익숙했기 때문에 사용이 쉬웠다. 또한 엔지니어들의 워크스테이션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데다 스탠퍼드대학이란 명성이 선의 기술력에 보증을 서주었다. 코슬러가 사업계획서에서 추정한 2년간 매출은 1983년 4백만달러, 1984년 1천만달러였지만, 실제로는 사업 첫해에 8백60만달러(약 9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그 다음해에는 매출이 3천9백만달러(약 4백30억원)로 늘었다.
초창기에 컴퓨터비전과 맺은 계약은 선의 도약에 큰 도움을 주었다. 당시 최고 수준의 CAD업체였던 컴퓨터비전이 미니컴퓨터를 버리고 가격이 저렴한 워크스테이션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자 워크스테이션업체들은 컴퓨터비전과 손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신생기업이던 선도 여기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보스턴에 위치한 컴퓨터비전은 역시 동부의 전통적인 워크스테이션업체인 아폴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코슬러와 맥닐리는 밤 비행기로 보스턴까지 날아간다. 컴퓨터비전 로비에서 몇시간 동안 끈질기게 기다린 끝에 바렛사장을 만나 결정을 돌려놓는다. 컴퓨터비전에 3년간 4백만달러 어치 계약을 맺음으로써 선은 초기에 안정적인 기업운영을 할 수 있었다.
선의 성공요인을 보면 우선 엔지니어들이 과거에 누리지 못하던 컴퓨터 사용의 자유를 주었다는 점이다. 모든 사용자의 책상에 컴퓨터를 한대씩 배치함으로써 엔지니어들이 줄을 서거나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책상에서 자신만의 컴퓨터로 여러가지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갖춘 대형 모니터도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다 선은 모든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묶어 엔지니어들이 다른 사용자들과 공동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유닉스를 운영체제로 선택한 것과 영업이나 기업운영에 서부 특유의 과감한 승부근성을 보여준 것도 선이 단시일에 일어설 수 있는 비결이다.
건달 복장의 괴짜 경영자, 스콧 맥닐리
스콧 맥닐리(46)는 선의 최고경영자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꽤 인기있는 스타 경영자이다. 친구인 코슬러의 권유로 선의 공동창업자로 참여한 맥닐리는 초기에 제조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다 1984년 최고경영자로 발탁된 후 16년간 ‘장기집권’을 하면서 선을 단단한 반석에 올려놓았다. 미남형으로 잘생긴 외모에다 골프, 아이스하키 등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체질, 타고난 친화력, 한가지 목표를 정하면 종교적일 정도로 헌신하는 정열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매료되곤 한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소문난 괴짜다. 좀처럼 정장을 하는 법이 없이 건달 같은 복장으로 돌아다니며 양주보다는 맥주를 즐기고 맥도날드에서 직원들과 떠들면서 식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스하키광인 그는 일주일에 두번은 만사를 제쳐놓고 아이스하키 게임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작년 ‘골프다이제스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맥닐리는 핸디캡이 3일 정도로 미국내 최고경영자 가운데 가장 골프를 잘 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64)과는 20여년 나이 차를 넘어 필드에서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다.
이처럼 놀기를 좋아하지만 일에 관해서는 철저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맥닐리 자신이 16년간 광적으로 회사일에 집착했을 뿐 아니라 임원들과 직원들에게도 장시간 일을 요구했다. 그는 선의 최고경영자 일을 사랑하고 항상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자세로 업무를 추진해간다. 그러나 가식이 없고 주위 사람을 편안하게 배려해준다. 단 자신처럼 경쟁을 좋아하며 스포츠와 사업을 이해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맥닐리가 일단 마음을 먹은 일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동의하면 전념하라, 동의하지 않아도 전념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가라”는 맥닐리의 말은 선의 모토가 됐다.
맥닐리는 여러가지 면에서 빌 게이츠와 대조적인 인물로 꼽힌다. 게이츠가 귀족적이고 독선적인 인상을 주는 반면, 맥닐리는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게이츠의 별명은 ‘악어’인데 비해 맥닐리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는 뜻에서 ‘상어’로 불린다. 맥닐리는 MS와 게이츠에 대해 신경질적일 정도로 공격적이다. 맥닐리가 나오는 모든 연설에서 MS가 도마에 오르지 않는 예는 없다. 그는 컴덱스 같은 전시회에서도 자사의 제품을 소개하기보다 MS와 게이츠를 헐뜯는데 더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청중으로부터 “만약 입장을 바꾼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만약 내가 MS를 경영해도 게이츠와 비슷한 전략을 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CEO는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맥닐리는 20대 후반에 선의 최고경영자가 됐고 현재 재산이 3억달러, 작년 한해 수입만 3백70만달러를 벌었지만 여전히 검소하게 지낸다. 동료들이 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지만 그는 고물차에 만족하고 10년째 침실 3개짜리 집에서 거주하며 외국에 출장갈 때도 2등석이나 밤 비행기를 고집한다.
대학 캠퍼스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
선의 직원들은 실리콘밸리 멘로파크에 있는 본사를 ‘멘로파크 캠퍼스’라 부른다. 건물 주위로 나무가 있고, 그 사이로 벤치들이 있다. 중앙에는 2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잔디가 깔린 야외공연장도 있다. 건물마다 캐주얼한 복장의 남녀직원들이 자유롭게 얘기를 주고받고 마치 대학 캠퍼스 같은 분위기에서 근무를 한다. 금요일 저녁이면 맥닐리도 가끔 참석하는 맥주파티가 열린다.매년 4월1일 만우절에는 선의 독특한 행사가 벌어진다.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장난꾸러기들이 간부 가운데 1명을 골라 장난을 치는 것. 맥닐리와 다른 간부의 사무실 벽을 헐어 1홀짜리 골프코스를 만드는가 하면 빌 조이의 페라리 자동차를 연못 중앙의 플랫폼에 올려놓아 마치 자동차가 연못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처럼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기업문화는 직원들로 하여금 매사에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도록 해준다.
선은 인터넷시대의 최강자를 꿈꾼다.맥닐리는 "우리는 창업당시부터 '네트워크가 컴퓨터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네트워크를 강조해왔다"고 말한다.워크스테이션 자체가 분산형 컴퓨터 환경을 기본으로 한 것이고 사용자들끼리의 네트워크 구성은 선이 가장 노력해온 기술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시대를 좌우할 선의 기술로는 '자바'가 꼽힌다.자바는 운영체제(OS)나 중앙처리장치(CPU)에 관계 없이 어떤 환경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선의 경쟁자인 MS도 채용해 사용하고 있을 정도.그러나 프로그램의 속도가 다른 언어에 비해 느려 일반 어플리케이션보다는 웹기반 프로그램에 주로 쓰인다.
맥닐리는 "몇년 이내에 PC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네트워크컴퓨터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어디서든지 수행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구태여 PC에 저장장치나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없이 자신이 원하는 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해 확보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쓰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맥닐리의 장담과는 달리 네트워크컴퓨터가 PC에 비해 사람들로부터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통신망이 잘 갖춰진 미국에서조차도 사람들은 네트워크에 의존하기보다 중요한 정보와 프로그램은 자신의 PC에 넣어두고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1982년 선의 사업초기에 하드웨어를 제조하는 선과 소프트웨어 특히 운영체제를 만드는 MS가 서로 부딪칠 일은 없었다.그러나 최근 선이 솔라리스 운영체제와 자바 언어,스타오피스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 분야와 인터넷사업에 진출하고,MS는 윈도NT와 윈도2000을 통해 서버시장에 뛰어들면서 두 회사 간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21세기 가장 각광받는 분야인 인터넷과 전자상거래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선과 MS의 격돌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