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가장 큰 에너지원인 화석 연료는 식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된 것입니다. 식물은 햇빛을 이용해 물(H2O)과 이산화탄소(CO2)를 당(C6H12O6)으로 전환하는 광합성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생장합니다. 광합성은 공기 중 탄소를 지상에 저장하는, 자연계에서 유일한 탄소 저장 도구입니다. 결국 화석 연료는 광합성을 기반으로 한 ‘고도로 밀집된 태양에너지’인 셈입니다.
인류는 수천만 년 전 식물이 축적해놓은 탄소 연료를 이용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탄소 균형을 흔드는 결과도 가져왔습니다. 화석 연료를 소모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지구온난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광화학 분야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화학자 자코모 치아미치안은 1912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서 ‘축척된 화석 태양연료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유일한 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식물이 광합성을 하듯 빛으로부터 깨끗한 연료를 생산하는 ‘유리관 숲’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doi: 10.1126/science.36.926.385.
이 주장은 최근 과학자들이 광합성을 모방해 청정에너지 전환 기술을 개발하는 ‘인공광합성’의 모태가 됐습니다. 현재 인공광합성 연구는 더 이상 미래의 비전이 아닌, 현대의 필수 기술이 됐습니다.
햇빛에서 전기 생산, 광합성 명반응
광합성은 크게 두 가지 과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햇빛을 전기화학에너지로 변환하는 ‘명반응’과 생성된 전기화학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당으로 전환하는 ‘암반응’입니다. 이 중에서 과학자들이 인공광합성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주목하는 과정은 명반응입니다.
식물의 잎에서는 ‘광계(photosystem)’라는 단백질에서 명반응이 일어납니다. 이 단백질은 빛을 받으면 활성화합니다. 즉 빛을 모아 높은 에너지를 가진 전자로 바뀌는데, 이 전자들은 나중에 물을 산소로 바꾸는 산화반응과 당을 생산하는 환원반응에 쓰입니다. 이렇게 식물이 햇빛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명반응의 효율은 약 28%입니다.
그렇다면 인공광합성 시스템에서는 어떤 것이 광계를 대신해 빛을 전기에너지로 바꿀까요. 광계와 마찬가지로 빛을 쪼이면 활성화하는 특성을 가진 반도체를 사용합니다. 1972년 혼다 켄이치 일본 도쿄대 산업과학부 교수와 후지시마 아키라 당시 일본 가나가와대 응용화학과 교수는 이산화티타늄(TiO2)을 사용해 빛으로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공적인 전기화학반응기에서 빛을 이용해 물을 분해할 수 있음을 최초로 밝혀낸 것입니다. 이 기법은 두 교수의 성을 따 ‘후지시마-혼다 효과’라고 부릅니다. doi:10.1038/238037a0.
이후 비스무스 바나데이트(BiVO4)라는 반도체 물질도 물을 광분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 반도체 위에 보조 촉매를 올려 광분해 효율을 향상시키는 연구도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햇빛으로 물을 광분해하는 데 기술적으로 큰 장벽이 있습니다. 물을 분해하려면 1.23V(볼트) 이상의 큰 전압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고에너지를 가진 자외선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햇빛의 스펙트럼에서 자외선 영역은 비율이 높지 않습니다. 스펙트럼의 대부분은 가시광선과 적외선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에너지가 작습니다.
식물은 광계 두 가지를 연속적으로 사용해 이런 한계를 영리하게 해결합니다. 가시광선만으로도 아주 높은 에너지를 얻어내는 것이죠. 이는 한 번에 올라가기 힘든 가파른 경사면에 계단을 놓아 중턱에서 한 번 쉰 뒤, 두 번에 걸쳐 올라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식물은 순차적으로 전자를 전달하는데, 이 과정을 ‘Z-체계(Z-scheme)’라고 합니다.
인공광합성 시스템도 이 과정을 모방합니다. 두 개의 반도체 물질을 사용해 ‘인공 Z-체계’를 구현하는 것이지요. 다나카 코지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교수팀은 이산화티타늄과 황화카드뮴을 금 입자로 연결한 인공 Z-체계를 개발해 2006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빛 흡수과정이 두 번 연속 일어나 효율이 높습니다. 반도체 물질 하나만 사용했을 때보다 광합성 효율이 약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doi:10.1038/nmat1734
필자가 속한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팀은 2015년 세계 최초로 반도체와 광계 단백질을 직접 연결한 ‘하이브리드 Z-체계’를 개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공광합성에서는 반도체 물질 두 종을 사용하는 반면, 하이브리드 Z-체계에서는 하나는 반도체로, 하나는 실제 식물(시금치)에서 추출한 광계 단백질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단백질과 반도체를 동시에 광합성에 활용한 최초의 모델입니다.
하이브리드 Z-체계는 가시광선 영역의 빛만으로도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기존의 단백질만 가지고 수소를 생산하던 시스템보다 효율이 5배 증가했습니다.
doi: 10.1002/adfm.201404556
촉매 모방한 망간 산화나노입자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촉매 모방 연구를 통한 인공 광합성 연구도 있습니다. 2011년 카미야 노부오 일본 오사카대 화학과 교수팀은 광계 단백질의 구조를 약 1.9Å 해상도로 세밀하게 밝혀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식물의 광 계 단 백질에서는 망 간 칼슘 산화 물(Mn4CaO5)로 이뤄진 단백질 복합체가 물에서 산소분해를 돕는 촉매 역할을 합니다. 카미야 교수팀은 망간 복합체와 주변 물 분자들이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 밝혀냈습니다. 이 복합체는 그 어떤 인공광합성촉매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물 산화 효율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인공광합성 연구자들은 이를 모방한 망간촉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2011년 테오더 아가피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화학공학과 교수팀은 망간 이온과 유기물을 결합해 망간칼슘산화물 구조를 흉내 낸 망간 촉매를 만들었습니다. 2015년에는 홀저 다우 독일 베를린대 물리학과 교수팀이 지금까지 보고된 복합체 중 광계와 가장 비슷한 구조를 가진 망간 촉매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현재 남기태 교수팀은 망간을 기반으로 한 망간 산화나노입자를 합성하고, 이 입자로 물을 분해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망간 산화나노입자는 일반 망간산화물에 비해 300mV(밀리볼트) 정도 더 낮은 전압에서도 물을 쉽게 산화시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탄소 연료로 전환
식물은 명반응에서 생성된 전기화학에너지를 암반응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당으로 고정하는 데 사용합니다.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탄소 연료를 만드는 셈입니다. 인공광합성도 이와 비슷합니다. 햇빛에서 얻은 전기화학에너지를 매개로 이산화탄소를 탄소 연료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방출하지 않고, 오히려 온실가스에서 연료를 얻는 지속가능한 친환경에너지인 셈입니다.
이산화탄소에 전압을 가해 전기화학적 환원을 유도하면, 이산화탄소는 일산화탄소와 메탄올, 포름산 등 유용한 탄소 연료로 재탄생됩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전기화학 전극의 특성을 조절하면 프로판처럼 훨씬 에너지 밀도가 높은 다중탄소연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다른 탄화수소 반응체와 결합해(카르복시화) 기존 탄화수소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 연구는 최종적으로 탄소 고분자 복합체인 플라스틱이나 섬유 등을 생산하는 데 활용될 전망입니다.
2010년 미국 에너지부(DOE)에 인공광합성공동연구센터(JCAP)가 설립되면서 인공광합성 연구는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 센터를 통해 태양과 물로부터 자동차의 연료를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해질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지금껏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이유로 망가트린 자연순환의 고리를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인류는 겸손한 자세로 다시 자연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과학기술은 자연으로부터 나오며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잃지 않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김영혜
서울대 생체분자나노재료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있다. 식물 광합성을 모델로 이산화탄소를 전기화학적으로 전환하고 고부가가치의 탄소 연료를 생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