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우주 역사에 길이 남을 두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는 미국발(發), 하나는 중국발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인류 역사상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천체를 근접 관측하는 데 성공했고, 중국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 뒷면에 무인 우주선을 착륙시켰다.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의 업적을 치켜세우면서도 서로의 성과를 격려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실상은 1960년대 냉전시대 미소 우주경쟁에 이어, 21세기 미중 우주경쟁의 서막이었다.
美, 지구에서 가장 먼 우주 도달
미국이 한 발 빨랐다. 올해 1월 1일 0시 33분(현지시각) NASA는 무인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태양계 최외곽에 있는 천체인 2014 MU69(일명 ‘울티마 툴레’)를 근접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울티마 툴레는 관측 당시 태양으로부터 약 43.4AU(약 65억km · 1AU는 태양과 지구의 평균 거리로 약 1억5000만km) 떨어져 있었다. 뉴호라이즌스호는 울티마 툴레에 3500km까지 접근한 뒤 지구로 신호를 보냈으며, 이 신호는 약 6시간 8분을 날아와 스페인 마드리드의 대형 안테나에 닿았다. 앨런 스턴 NASA 뉴호라이즌스호 책임연구원은 기자회견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곳을 탐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울티마 툴레는 ‘카이퍼 벨트’에 있는 천체 중 하나다. 태양으로부터 30~50AU의 거리에 소행성이나 혜성 등 수많은 천체들이 모여 태양계 주위를 돌고 있는데, 이를 카이퍼 벨트라고 부른다. NASA는 명왕성 탐사 이후 탐사 대상으로 카이퍼 벨트에 있는 천체 중 하나를 관측하기로 정했다.
김주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달탐사사업단 선임연구원은 “미국 국립연구위원회(NRC·National Research Council)는 10년마다 행성과학의 연구 방향을 정하는데, 2013~2022년 주요계획 중 하나가 태양계 생성과 진화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라며 “카이퍼 벨트에 있는 천체들은 태양계 생성 초기 모습과 그 이후 변화의 흔적이 잘 남아있어서 기존 계획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카이퍼 벨트 내 천체 중 5개가 탐사 후보로 올랐다. 그중 2014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발견된 울티마 툴레가 뉴호라이즌스호에 남아 있는 연료와 궤적 변경 기술을 고려했을 때 가장 적절한 대상으로 발탁됐다.
그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존재만 확인됐던 울티마 툴레는 이번 뉴호라이즌스호의 관측 덕분에 그 형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울티마 툴레는 두 개의 천체가 딱 붙어있는 눈사람 모양이었다. 김 선임연구원은 “두 개의 천체가 충돌해 하나의 천체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울티마 툴레의 표면도 오랜 기간 우주 풍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태양계 천체들은 태양풍이라는 고에너지 입자에 부딪쳐 표면이 붉게 변하는 우주 풍화 현상을 겪는데, 이를 이용하면 천체의 구성 성분이나 생성 시기 등을 추정할 수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뉴호라이즌스호에는 분광기와 온도 측정 장비, 태양풍과 먼지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가 탑재돼 있다”며 “앞으로 20개월에 걸쳐 울티마 툴레와 그 주변의 우주 환경에 대한 많은 정보를 보내 올 것”이라고 말했다.
中, 미국도 못 간 달 뒷면 최초 탐사
NASA 발표 이틀 뒤인 1월 3일 10시 26분(현지시각), 중국은 자국의 무인 달 탐사선 ‘창어(嫦娥) 4호’가 달 뒷면의 ‘폰 카르만(Von Karman)’ 크레이터에 착륙했다고 발표했다. 인류 역사상 달 뒷면에 착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입장에서 창어 4호는 과학적인 성과와 기술적인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훌륭한 임무였다. 우선 달 뒷면은 앞면과는 다른 지질학적 역사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크레이터다.
1959년 옛 소련의 ‘루나 3호’가 달 뒷면의 사진을 찍어왔는데, 앞면보다 크레이터의 수가 더 많았고 형태도 달랐다. 달 앞면의 크레이터들은 운석과 충돌한 뒤 용암에 묻혀 어두운 현무암질의 넓고 편평한 지대가 됐다.
하지만 달 뒷면의 크레이터에는 용암이 적게 흘렀고, 그 결과 크레이터 발생 당시의 초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어 4호가 착륙한 폰 카르만 크레이터는 남극-에이트켄 크레이터라는 더 큰 크레이터 내에 있는데, 남극-에이트켄 크레이터는 지름이 무려 2500km로 달에서 가장 큰 크레이터다. 달 역사상 가장 큰 천체가 부딪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폰 카르만 크레이터의 지질학적 특징을 분석해 달 생성의 핵심 원리와 진화 과정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창어 4호의 착륙 지점은 달에서 물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남극 근처다. 이곳의 지하를 탐사해 달에 물과 공기가 존재했는지, 또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지 밝힐 예정이다.
이런 과학적인 연구 성과에 대한 기대와는 별개로 창어 4호는 달 뒷면과 통신을 했다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달은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약 27.3일로 같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같은 면만 보인다. 그래서 달 뒷면은 지구와 직접 통신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중국은 지난해 6월 통신중계위성을 별도로 쏘아 올려 이 문제를 해결했다. ‘오작교’라는 뜻의 ‘췌차오’ 위성은 달에서 약 6만5000km 떨어진 헤일로 궤도에 안착했다. 이 궤도에서는 위성이 지구와 달 뒷면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고정된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 췌차오 위성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관제센터와 창어 4호의 교신을 중계한다.
창어 4호의 달 탐사차(로버)인 ‘위투(玉兎·옥토끼라는 뜻) 2호’는 앞으로 3개월간 지질층 및 지하수를 분석하고, 달 표면과 태양 활동 간의 상호작용을 밝히기 위해 방사선을 측정하는 등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그중 하나로 애기장대씨, 감자씨 등 식물 생육 실험을 진행했으나 대부분 발아하지 못했고, 그나마 발아한 면화씨는 달의 밤주기가 시작되자 낮은 기온 탓에 이내 죽고 말았다.
美-中 달 탐사 경쟁 계속될 듯
중국은 창어 4호의 성공으로 한껏 고무돼있다. 지금까지 우주 개발에서 중국은 미국이 닦아놓은 길을 뒤따라 온 셈이었다. 하지만 창어 4호의 성공으로 중국은 미국이 하지 못한 새로운 성과를 거두며 진정한 의미에서 미국과 대등한 우주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의 우주 기술은 급작스럽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국은 오랜 기간 우주 기술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부침도 있었다. 1970년 첫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지만, 우주선을 이용한 다음 비행 계획은 보류됐다. 1978년 당시 덩샤오핑 중국 주석이 중국의 우주 정책에 대해 “개발도상국으로서 중국은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은 통신, 원격 감지, 기상관측 등이 가능한 위성과 발사체 개발에 집중했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평화 분위기가 조성될 즈음인 1992년, 중국은 갑작스럽게 유인우주선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3년 유인우주선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에는 승승장구였다. 2007년 달 탐사선의 달 궤도 진입 성공, 2011년 우주정거장 ‘톈궁(天宮)’ 발사, 2013년 무인 탐사선 달 착륙 등 중국의 우주 굴기는 계속됐다.
김 선임연구원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특성상 정부의 통제 하에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가 이뤄져 가능한 결과”라며 “중국의 유인탐사와 다른 천체 탐사는 국방 분야는 물론이고 우주산업 분야, 특히 우주 자원 활용과 우주 영토 개척을 통해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려는 중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우주경쟁은 ‘최초 경쟁’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소 우주경쟁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냉전시대에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중요했기 때문에 ‘일단 먼저 가고 보자’는 식이었다”며 “반면 미중 우주경쟁은 탐사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경쟁을 통해 획득한 정보가 전 세계에 공유된다는 사실도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폐쇄적인 우주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경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은 달에 기지를 짓고 자원을 개발하는 등 다음 단계인 화성 탐사를 위해 계속 우주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