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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체육대회 묵시록

지구 충돌 위험 소행성 감시 20주년 | 특별 SF 소설

 

※ 편집자주 - 이 글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방위(Spaceguard) 프로그램’ 20주년을 맞아 최근 과학자들이 논의 중인 소행성 충돌 방어 시나리오를 토대로 집필한 SF 소설임을 알려드립니다.

 

 

박사가 근무하고 있는 연구소의 이름은 NEOT였다. 영문 명칭의 알파벳 약자를 땄을 때, 그것을 발음할 수 있으면 그 이름은 멋있다고 생각하는 순박한 사람들이 지은 이름이었다. 지구 가까이 있는 물체를 연구하는 팀이라는 뜻인, ‘Near Earth Object Team’의 약자였는데, 혹시 지구에 부딪혀서 위험할지 모르는 우주의 소행성 따위를 연구하는 곳이었다. 이름을 지으신 분들은 연구소 이름을 ‘네오트’처럼 발음하기를 원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 연구소 사람들은 다들 ‘녓’이라고 발음하고 있었다.

 

김 박사는 녓의 대외교섭실 소속이었다. 국제 소행성 방어 협회에 자료나 의견서를 보내는 것이 김 박사의 역할이었다. 금년에는 국제 소행성 방어 협회 소속 연구소들이 계산 결과 자료로 올린 숫자들을 검토해 보고, 의심스러운 것들이 있으면 의심스럽다고 의견을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 지난 달에 총무실로 올려 보낸 김 박사의 금년 성과 목표에는 1년 동안 의심 의견 세 건을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 만약 의심 의견 네 건을 올리면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 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이날 김 박사가 보고 있었던 것은 어제 저녁 퇴근하기 직전에 눈에 띈 자료였다.

 

자료에 나오는 소행성은 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은 10퍼센트에서 50퍼센트 사이라서 ‘위험’ 등급으로 분류 되어 있었다. 협회에서는 이 소행성에 미리 핵미사일을 발사해서 그 충격으로 소행성을 지구에 부딪히지 않는 방향으로 비튼다는 계획을 발표해 둔 상태였다. 그 때문에 관심도 많고 인기도 많은 소행성이었다. 해외토픽 뉴스에도 몇 번 소개된 적이 있었다.

 

김 박사는 핵미사일로 소행성의 방향을 튼다는 계획을 의심스럽게 여겼다. 협회에서는 소행성이 동그란 모양이라고 가정하고 어느 정도 위력의 핵미사일을 언제 명중시키면 지구를 빗겨 나가도록 소행성이 튕겨나갈 거라고 계산했다. 그런데, 김 박사가 보기에는 소행성이 그다지 많이 동그랗지 않을 수도 있지 싶었다. 그러면 계산이 어긋난다. 핵폭탄은 터지는 곳의 모양에 따라서 위력과 충격이 달라질 수 있다.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보다 위력은 강했지만, 나가사키의 지형이 울퉁불퉁해서 그 피해가 덜 퍼졌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은 문제였다. 힘들게 우주 멀리 핵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예상했던 만큼 소행성을 움직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계산과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소행성이 틀어질 지도 모른다. 혹시 지구로 더 빨리, 더 위험한 방향으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김 박사는 소행성에 대한 관측 수치들을 보고, 소행성의 동그란 정도를 직접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로 많이 울퉁불퉁하면 안 될 텐데.

 

그런데 그때, 갑자기 컴퓨터 화면에 메시지 송수신 프로그램이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그룹장님이 회의 소집하셨습니다. 3분 내로 대회의실로 전원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박사는 하던 계산만 마무리 짓고 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계산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3분 내에 계산을 끝내고 대회의실까지 걸어 가기는 무리 같았다.


“김 박사 회의 안 가?”

 

박 박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 박사는 계산 하던 중간 자료를 저장하면서 엉거주춤하니 책상 앞에 서 있다가 한 걸음씩 발부터 먼저 움직였다. 저장 화면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김 박사는 재빨리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가 보니 곗돈 떼먹기 딱 좋은 날 계모임에 계주가 이상하게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펼쳐져 있었다. 김 박사는 그래도 그럭저럭 밝은 표정을 지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곧 그보다 훨씬 더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룹장이 나타났다.

 

“내일이 정부 중앙 부처 중에 안전대책부 연찬회 날인 거 아시죠? 연찬회 행사로 오후에 체육대회를 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안전대책부 산하 기관들 직원들도 가능하면 다 참가하라고 협조전이 내려 왔어요. 그러니까 다들 내일 체육대회에는 꼭 참석하도록 합시다.”

 

그러면서 그룹장은 안전대책부에서 보낸 협조전 e메일을 빔프로젝터로 스크린에 크게 보여 주려고 했다. 그런데, 빔 프로젝터 각도가 안 맞아서 화면이 일그러져 보였다. 빔 프로젝터가 한쪽이 기울어져 있어서 그것을 맞추는데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회의실 한 구석에 꽂혀 있는 ‘국민 안전 대책 기본 핵심 계획’이라는 두꺼운 보고서를 빔 프로젝터 한 쪽에 받쳤더니 화면이 똑바로 나왔다. 김 박사는 왜 하필 저 두꺼운 보고서가 대회의실에 비치 되어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룹장은 e메일 내용을 읽었다.


“여기 조직도를 보시면, 안전대책부 밑에 안전기술청이라는 게 있죠? 이게 우리 ‘청’이고, 청 밑에 연구원이 세 개가 있는데, 그 중에 종합안전기술원이라는 게 있고, 그 산하 기관이 두 군데가 있는데 그 중에 한 군데가 국제연구협력단이죠. 국제연구협력단이 국내 대기업에서 투자를 받아서 같이 창설한 연구소가 ‘녓’이죠. 그래서 우리도 안전대책부 밑에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 정도 관계면 저희는 안대부 ‘산하’기관은 아니지 않나요?”

 

박사의 질문이 나오자, 그룹장 대신 총무실 실장이 대답했다. 뭐라고 길게 설명을 했지만, 어차피 아무 내용은 없는 이야기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그룹장은 e메일 다음 부분을 읽었다. 그 다음 부분에는 안대부 연찬회 일정이 나왔다. 연구원들은 “연찬회가 뭐죠?” “연찬회 뜻이 뭐야?” “인터넷에서 찾아 봐” “그런데 왜 이런 행사를 연찬회라고 하지?” 등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나 그 역시 핵심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핵심은 오전 일정인 성과 보고나 중점 업무 계획 발표 등의 순서에는 회장이 좁기 때문에 산하기관 직원들은 와서는 안 되고, 점심 시간 후에 열리는 체육 대회 시간에 맞춰서 산하기관 직원들이 전부 다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 이거 보세요. ‘특히 여자 직원들은 전원 필히 참석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죠. 우리는 여직원들이 누가 있죠?”


그룹장이 훑어 보는 눈이 김 박사 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김 박사는 느꼈다.

 

“여직원들 정말 꼭 참석해야 돼요. 이게, 남녀 직원을 차별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요. 안대부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 왔어요. 문제가 뭐냐면 안대부 중앙 공무원들 중에 여자 공무원들이 너무 적어요. 그러다 보니까, 항상 체육대회할 때마다 여자 공무원들은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여자 공무원들은 배려도 잘 안 되고, 행사의 중심이 안 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이제 여성 비율을 좀 높여서, 여직원들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그리고 또 행사 내용도 여성 친화적으로, 이렇게, 성평등적인 행사로 꾸미려고 하거든요. 이번에 신임 장관님이 이런 쪽으로 참 깨어 있으신 분이라서, 특히 이런 쪽에 관심이 많다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체육대회에 여성 참여 시간도 대폭 늘이려고 하고 있고, 그렇다 보니까 아무래도 여자 참여자 숫자를 늘려야 되니까, 산하 기관에서는 여자 직원 위주로 와 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김 박사는 다른 여성 직원들의 눈빛을 짧게 살폈다. 다들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이야, 참으로 혁신적인 개소리구나’라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참여 못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사람은 각자 소속실장에게 보고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끝났다. 다들 곗돈을 날린 듯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흩어졌다.

 

자리로 돌아 온 김 박사는 실장에게 e메일을 썼다. 내일까지가 소행성 방어 협회 전산망 사용 마감이기 때문에, 소행성 방어 협회에 관한 일을 지금 급하게 꼭 해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내일 반드시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에 체육대회는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덧붙여서 중대한 계산 오류로 의심되는 사항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똑바로 확인 되면 녓의 전체 실적에도 도움이 되는 큰 건이라고 밝혔다.

 

김 박사는 그리고 나서 다시 전에 하던 계산으로 돌아가 보려고 했다. 저장해 둔 숫자와 표시해 둔 자료를 다시 살펴 봤다. 금방 뭐였는지 바로 떠오르지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살펴 보면서 아까 하던 계산을 따라갔다. 그렇지, 이게 회전 관성이고, 이게 질량 적분 값이고, 이게 궤도 계산 행렬 고유 값이고, 그러면 소행성 형체는? 그렇지. 한참 만에 김 박사는 아까 하던 계산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숫자를 처음 계산한 사람은 소행성의 관측 수치를 바탕으로 그 모양의 동그란 정도를 짐작할 때, 달의 중력은 무시하고 계산했던 것 같다. 대체로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다. 그런데, 이 소행성의 궤도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특별한 경우인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가끔 드물게 발생하는 실수인 셈이었다. 자주하는 실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모른다. 김 박사조차도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한 번 검증을 해 볼까?

 

만약 김 박사의 상상이 맞아 떨어진다면, 이 소행성을 핵미사일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레이저 빔 같은 것으로 소행성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 맞다. 그러면 소행성의 모양이 변하고 잘라내고 남은 덩어리의 질량이 변한다. 그러면 소행성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방향도 달라진다. 그렇게 해서 지구에 충돌하지 않고 빗나가게 만들 수 있다. 그 방식을 택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핵미사일을 쓰면 안 된다. 대신 최대한 빨리 레이저 빔 무기도 만들고 정밀하게 레이저 빔을 조준할 수 있는 우주선도 만들어야겠지. 정말 일을 그렇게 크게 벌이게 될까?

 

 

김 박사는 자신의 상상이 맞는 지 아닌 지 확인하기 위한 계산식을 떠올렸다. 대충 계산식을 만들고 부호와 단위가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행렬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계산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다. 그런 만큼 처음부터 식이 정확해야 했다. 김 박사는 계산식을 종이에 손으로 옮겨 썼다. 그리고 다시 찬찬히 살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때, 다시 메시지 프로그램이 컴퓨터 화면에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김 박사님, 실장님이 지금 부르시네요.”


김 박사는 실장에게 가기 전에 계산식을 완성하고 컴퓨터에서 계산을 실행시킨 뒤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실장과 대화하는 동안에 컴퓨터는 계산을 할테고, 대화를 마치고 돌아 오면 계산이 끝나 있겠지. 그러면 질퍽한 오늘 하루 일과가 약간은 상쾌해질 지도 모른다.

 

김 박사는 급하게 계산식을 입력하고 실행 아이콘을 눌렀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4분이나 지나 있었다.

 

김 박사는 자신을 기다리는 실장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겁을 내며 평소 보다 세 배 빠른 걸음으로 실장의 방에 갔다.


“응, 김 박사. 김 박사가 e메일 보낸 것 봤는데.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일, 그거 정말 급해?”


김 박사는 정말 급한 일이 있으면 가짜로 급한 일도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김 박사가 대답에 사용할 수식어와 수사법을 마음 속으로 고르고 있는 동안, 실장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김 박사도 이제 우리 연구소에서 선배 뻘이잖아. 우리 연구소 사정 잘 알죠? 다들 자기 몫보다 백이십 프로, 백오십 프로 일 하면서 고생하고 있는 거 알잖아요? 다들 바쁜데 누군들 안대부 체육대회에 가고 싶겠어? 요즘 가뜩이나 이것저것 일도 많은데. 안대부 체육대회 가서, 와 재밌다, 와 신난다, 기념품으로 수건 두 장이나 받았으니까 너무 기분 좋아서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싶네, 이런 사람 누가 있겠냐고.”


실장은 사실 더러운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혹시 김 박사가 기분 나빠하는지 잠깐 눈치를 살폈다. 실장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이게 이번에는 정말 꼭 가야 하는 행사라고 하거든. 이거 안대부 사무관 하나, 주무관 하나, 두 사람이 아예 지난주부터 일주일 내내 이거만 준비하고 있어. 그 담당 사무관이 하루 종일 산하 기관 여기 저기 전화하면서, 거기는 체육 대회 몇 명 와요, 여기는 체육 대회 몇 명 와요, 여자는 몇 명이에요, 그거 챙기는 게 일이래. 그것만 지금 일주일 째 하고 있다고. 그 사무관이라고 종일 그런 일 하는 게 막 신나고 흥겹겠냐고. 그 사람도 어렵게 고시 공부해서 사무관 됐을 텐데.”

 

그러면서 실장은 녓 전체를 책임지는 녓 전체 팀장은 심지어 지금 인도 출장 중인데 출장 일정을 당겨서 내일 새벽 비행기로 와서는 체육대회에 참석할 거라고 했다. 그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게, 우리 녓은 인원수 자체가 적잖아. 그래서 사람이 안 오면 금방 표시가 난다고. 거기다가 다른 산하 기관들은 다 지방으로 이전했는데 우리는 이전을 안 했잖아. 체육대회를 세종시에서 하는데, 우리만 세종시에 안 온 게 딱 티가 나 봐. 그러면 또 분명히 녓을 고깝게 보는 그런 시선이 생긴다고. 어, 쟤네들 왜 저래. 쟤네들도 빨리 어디로 이전시켜야겠다. 그런 생각 괜히 하지 않겠어? 그러면 또 힘들어지잖아.”

 

실장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실장은 연구기관 이전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는 것을 가장 겁내고 있었다. 지난 번에 나온 ‘연구 기관 이전 시 직원 지원 방안’이란 것은 생계를 맡고 있는 가장 한 명과 전업주부 한 명이 있는 가정을 상상하면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실장은 그 지원 방안을 보여 주며, 아내에게 당신 직장은 그만 두고 다른 도시로 이사 가자고 말할 배짱은 없었다.

 

대화를 마친 김 박사는 자리로 돌아 왔다. 컴퓨터에서 실행시킨 계산이라도 끝났을까 잠시 기대했다. 그러나 화면에는 계산 결과 대신에 “수치가 범위를 벗어 나 있습니다. 정말로 계산을 시작하겠습니까?”라는 확인 메시지만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컴퓨터는 실장과 대화를 하는 동안 부지런히 계산을 하는 대신, “정말로 할래?”라는 말을 표시한 채 답을 기다리면서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다. 김 박사는 힘이 빠졌다.

 

김 박사는 오늘 밤새 계산을 하면 내일 오전까지는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어림짐작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 점심 때 KTX를 타고 재빨리 세종시로 내려 가면 체육대회 시작 전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수없이 그래야겠다고 생각하고, 김 박사는 다시 실장에게 “실장님, 저 체육대회에 가긴 갈 텐데 따로 출발해서 오후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가겠습니다”라고 e메일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e메일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려다가 말고, 문득 무슨 수치가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뭐길래 계산을 하기 전에 컴퓨터 프로그램이 확인 메시지까지 보여 준 것인가? 김 박사는 실장과 대화하기 전에 세웠던 계산식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exp로 발산”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뭐 이런 말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기 좋으라고 옆에 해설로 자신이 메모해 놓기도 했었는데, 딴 고민을 하다가 다시 보니, 왜 그런 말을 써 놓았는지 기억 나지가 않았다.

 

김 박사는 다시 계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세운 계산식을 살폈다. 그렇지, 그렇지, 어? 이건 왜 이렇게 했지. 아, 내가 실수했나. 이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어, 아닌데? 아, 맞다, 맞다. 내가 처음에 했던 게 맞네. 그렇지, 아까 제대로 생각했네. 그렇지.

 

그런 식으로 김 박사는 계산을 다시 돌아 보았다. 한참 만에 김 박사는 아까 만들었던 수식을 다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왜 컴퓨터가 범위에서 벗어난 식이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수식대로 계산을 실행시키면 컴퓨터가 바로 답을 찾아낼 수가 없다. ‘이중 근사 방법’이라는 좀 특수한 방법을 써야 결과가 나오는데, 그렇게 하면 계산에 꼬박 스무 시간은 걸릴 것이다. 그러면, 그 결과를 내일 오전 중에 볼 수가 없고 정리해서 제출할 수도 없다. 그러면 체육대회에 갈 수가 없는데.

 

김 박사는 체육대회에 가기 전에 계산을 끝내기 위해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그렇게 궁리하다 보니, 레이저 빔으로 소행성을 잘라낸다는 방법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일단 그런 강력한 레이저 빔 무기를 만들어서 우주선에 실어 보낸다는 것 자체도 지금으로서는 그저 상상 속의 기술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소행성의 모양에 따라서는 소행성을 적당히 잘라내도, 그냥 잘린 채로 그대로 움직여서 잘린 두 덩어리가 같이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도 제법 있어 보였다는 것이었다. 검증 계산 결과가 없는 지금은 정말 그럴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한 가지 방법은 작은 미사일 같은 것을 수십 개, 수백 개를 동시에 쏘아서 소행성에 동시에 때려 맞히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해서 소행성을 부서지기 쉬운 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작업은 우주선을 수십 척 만들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술적으로 가능은 하지만 돈이 아주 많이 들 것이다. 그런 짓을 할지 말지 결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김 박사는 다시 처음 보던 자료로 돌아갔다. 그냥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 아닐까? 자료가 처음부터 문제 없이 맞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자료에 처음 나와 있는 대로, 핵 미사일로 쏘아서 맞히기만 하면 그냥 소행성은 날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괜히 의심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의 녓 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에 있는 훨씬 더 이름의 어감도 좋은 연구소에서 계산해서 올려 놓은 자료인데, 내가 대충 숫자 몇 개 보고 의심하는 것보다는 더 정확할 가능성이 높겠지. 그걸 내가 굳이 복잡한 계산으로 검증해 보고 의심된다고 지적하는 일에 의미가 있을까.

 

그렇지만, 그래도. 그래도 만약에 자료가 틀렸다면?


그때, 다시 컴퓨터 화면에 메시지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김 박. 너 내일 체육대회 안 가기로 했다면서?”


최 박사였다. 김 박사는 “아직 확실히 안 가기로 한 것은 아니고”로 시작하면서 뭐라고 설명을 할까 싶었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낸 최 박사는 김 박사의 답을 보기 전에 먼저 이어서 메시지를 보냈다.


“어지간하면 김 박이 가면 안돼? 서 박사가 신입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가게 생겼는데, 서 박사는 임신했잖아. 서 박사가 그냥 가서 운동은 안 하고 자리 채우면서, 왔다고 머릿수 세게 앉아만 있다가 온다고 하는데, 그건 좀 아니잖아. 김 박이 가면 어때?”

 

김 박사는 서 박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친절하고 밝은 얼굴. 착한 사람. 일 열심히 하는 사람. 녓의 연구원들이 귀찮고 골치 아픈 일 있으면 매번 부담 없이 찾아 가 일을 떠 넘기는 사람. 안대부 체육대회에 보낼 사람이 없으면 일단 밀어내서 갖다 놓을 수 있는 사람.


최 박사의 메시지가 또 나왔다.


“김 박이 하는 거 소행성 방어 협회 자료 중에 의심 나는 거 골라 내는 거잖아? 그런데 금년 목표 세 건은 벌써 달성한 거 아냐? 그러면 굳이 하나 더 찾아낼 필요는 없잖아. 물론 나도 알아. 목표 초과 달성해서 평가 잘 받으면 연봉도 오르고 승진도 빨리 하겠지. 이번에 보는 거는 핵미사일로 공격할 그 소행성이니까, 아무래도 관심도 많이 받는 거고 하니까 좋은 논문도 쓸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업적도 되고 그렇겠지. 그런데 너무 거기만 매달리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뭐, 이기적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오히려 자기한테도 안 좋은 거야.”

 

김 박사는 최 박사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일단 아까 하던 계산에만 잠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자꾸 서 박사의 얼굴과 체육대회의 풍경과 안절부절하며 한국으로 급히 돌아가서 체육대회에 참여하려는 전체 팀장의 형체가 떠올라서 계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화면이 번쩍거리며 최 박사의 메시지는 이어졌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가 소행성 방어하는 일에 무슨 관심이 있겠냐? 그냥 자선사업 비슷하게 그냥 돈 버리듯이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연구소는 정치인들이 말만 조금 험하게 한다 싶으면 하루 아침에 그냥 확 없애 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 소행성 연구에 누가 신경을 쓰냐고. 그렇게 안 되려면 안대부 사람들하고 최대한 친해지는 수 밖에 없어. 그래서 연구소 없애 버리려고 할 때, 그 사람들한테 ‘거기도 생계가 달려 있고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하는 직장인들인데 갑자기 연구소 없애 버리면 그 사람들은 소행성 연구하다 말고 갑자기 뭐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그런 불쌍한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된다고. 그래야 우리가 살아 남고 계속 연구소를 다닐 수 있지. 결국 멀리 보면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니냐? 이 조그마한 조직에서 실적 하나 더 내서 평가 조금 잘 받는 거 보다, 내가 먼저 승진하니 나중 승진하니 그런 거 보다.”

 

최 박사의 세상사에 대한 한탄과 조직 생활의 지혜를 전수해 주려는 이야기는 그 후로도 길게 이어졌다. 김 박사는 결국 계산식을 잠깐 포기하고 최 박사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 만에 피곤한 대화는 겨우 끝이 났다. 김 박사의 머리 속은 다시 흙먼지와 매연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김 박사는 우선 책상을 깨끗이 치웠다. 그리고 빈 종이 하나를 꺼냈다. 김 박사는 거기에 1, 2, 3 이라고 숫자 세 개를 썼다. 다시 처음부터 차분하게 정리해 보고 싶었다.


1. 자료가 잘못된 것이면 핵미사일 공격으로 소행성을 막지 못한다. 2 잘못 되었는지 검증해 보는 계산을 해야 하는데 계산 결과 중에서 알파 값이 1.0 이상으로 나오면 레이저 빔으로 소행성을 잘라야 한다. 3. 알파 값이 1.0 이하면 작은 미사일 여러 개로 소행성을 공격해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검증 계산식과 계산에서 알파 값을 구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계산하기 위한 컴퓨터에 접속하는 방법. 계산 결과를 다운로드 받는 방법. 그런 것들을 다시 차분하게 정리해서 이해하려고 했다. 일단, 다 잊고, 뭘 어떻게 계산 해야 하는지, 그것만 정리해 놓자.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할지 다시 고민해 보자. 체육대회에 갈지 말지. 언제 갈지. 그냥 간다고 말만 해 놓고 미친 척 하고 안 가고 연구소로 출근해서 소행성 계산이나 할지.

 

다시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무렵, 메시지 프로그램으로 그룹장이 또 연구원 전부를 대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이거 도저히 답이 안 나오더라고. 그런데 지금 담당 사무관이 도대체 왜 자기가 체육대회로 이렇게 스트레스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엄청 짜증난 상태거든. 이제 결론 내야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일 체육대회 참석할 사람은 공평하게 그냥 제비 뽑기로 하기로 했어요. 이게 가장 공평하잖아.”


사람들이 나무젓가락 끄트머리 모습만 보고 반대쪽이 부러져 있을 지 안 부러져 있을 지 짐작하는 기술을 서로 겨루어 내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공평하다는 것인지 김 박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별다른 반론을 재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 박사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제비를 뽑았다. 부러진 나무젓가락이었다. 체육대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서, 김 박사는 모든 것을 잊고 다음날 대한민국 안대부의 체육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체육대회 개회사에서 장관은 자기가 안 그래도 나이가 들어서 몸이 피곤한데 체육대회에 참석하기 참 싫었지만, 준비하느라 수고해 준 많은 직원들을 생각하면 없던 재미도 저절로 생겨서 재밌을 것 같아서 참석했다면서 농담을 했다. 그러자 안전대책부와 산하 기관의 많은 직원들은 일제히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


김 박사가 막상 해 보니, 기이하게도 체육대회 자체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재미있었다. 녓의 연구원들이 소속된 4조는 역대 안전대책부 체육대회 역사상 유래가 없는 어마어마하게 높은 점수로 1위를 달성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년 2개월 뒤 지구에 소행성이 정면 충돌한 뒤에는 그 기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곽재식
화학자 겸 작가. 2006년 웹진 거울 32호에 발표한 단편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 맥주의 마음’이 MBC 베스트극장에서 ‘토끼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등 중단편 소설집과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등의 장편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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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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