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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5천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공룡

-그 특성과 멸종의 이유

공룡이라는 화석동물(化石動物)은 학명으로 '아코소리아(恐龍群)' 아강(亞綱)이나 서양에서는 통칭 '다이노사'(Dinosaur)라 부른다. 이 명칭은 영국의 고생물학자 '리차드 오웬'에 의해 1842년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공포(dino)의 도마뱀(saur)'이라는 뜻으로, 골격화석들이 그 이전에 발견돼온 도마뱀과 비슷하나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너무 크다는 관점에서 유래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공룡'(恐龍)이라는 말은 중국 고생물학자들이 '다이노사'(Dinosaur)를 번역하면서 '공석'(恐蜥)이라 하지 않고 도마뱀 '석'(蜥) 대신에 '용'(龍)을 사용한 것 도마뱀은 현재 실존하나 용은 실존하지 않는 데에 착안, 현재 살아있지 않고 멸종한 그들을 '공룡'으로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일본도 이 용어를 그대로 따랐다. 공룡화석은 공룡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훨씬 이전에(1787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카스파위스터'박사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또한 중국 북경의 자연사박물관의 자료에 의하면 기원전 494년 춘추전국시대 당시 오(吳)나라가 월(越)나라로부터 노획한 전리품중에 전차 한대 길이만큼 되는 화석뼈가 있어, 오왕이 노(魯)나라의 '공구'(孔子의 본명)에게 감정을 청했으나, 공자는 과학적 감정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공룡의 다리뼈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상의 동물」아니다

사람이나 기타 현생동물이 땅속으로부터 골격이 발굴됐을 땐 그들이 확인가능 하므로 사람이나 동물의 뼈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화석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로부터 공룡과 같은 괴수의 골격화석은 확인할 수 없으므로 믿을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흔히 받는다. 즉 소위 공룡골격이라 부르는 화석들이 실제 공룡골격이 아니라 무기물이 우연히 동물골격 형태를 이루었거나 생명이 없었던 골격형태의 무기물이라는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

이 물음에 대한 공룡학자들의 답변은 어떤 것일까? 공룡학자들은 이들 화석골격들이 우연한 형태의 돌이거나 생명이 없었던 무의미한 형체가 아니라 이들은 현재의 척추동물과 같이 생명을 가진 유기원임을 분명하게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출토된 골격화석을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키놀린(quinoline) 유기색소 다당류 탄수화물 지방산 각질 단백질 등의 유기물을 추출해내고 현미경을 이용한 골조직검사를 통하여 하버스계(Haversian system)를 관찰, 현생척추동물과 동일함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또한 살갗을 포함한 공룡의 미이라가 발굴되기도 한다.
공룡 자체의 유체화석(遺体化石) 외에 공룡의 발자국, 약육강식의 투쟁흔적, 죽음의 고통이나 살을 뜯어먹다가 이빨로 뼈를 긁어 놓은 흔적 등 생흔화석(生痕化石), 배설물, 알이나 알둥지, 부화순간 등의 유물화석(遺物化石) 등이 돌로된 지층으로부터 정확하게 발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룡은 어린이의 장난감이나 전설 혹은 막연한 추상적 상상의 소산이 아니라 고도의 이론과 기술을 도구로 재구성한 과학의 산물인 것이다. 특히 공룡은 다른 어떤 과학보다도 우리들의 머리를 식혀주는 공상과학이나 추리소설의 주인공과 같이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형이상학적 현대과학에 속한다고 하겠다. 돌조각으로부터 마술사와도 같이 빌딩만한 생물을 재현해 보이는 기쁨을 상상한다면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파충류와 유사
 

(그림1) 조류진화의 골격비교


공룡화석은 지금으로부터 2억1천5백만년 전으로부터 6천5백만년 전, 즉 중생대후기 트라이아스기로부터 백악기말기까지 국한된 육성층(陸成層) 중에서 산출되고 그 이전이나 그 이후의 지층에서나 현생생물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공룡화석은 시간적으로 비록 국한되어 발견되고 있으나 1억5천만년 동안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육지에 군림했던 것이다.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공룡은 척추동물로서 골격구조가 파충류에 가장 유사하고, 뇌용량이 포유류보다 적으며 육상에서 난생(卵生)을 한다. 알은 튼튼한 껍질을 가져 육식동물로부터 어느 정도 방어될 수 있었고 건조한 기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양서류는 육상과 물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냉혈동물로서 수중에서 알을 낳고 알껍질이 연약하다. 양서류는 육지에 오른 최초의 척추동물이다. 포유류는 젖빨이 척추동물로서 태생이며, 뇌의 용적이 파충류보다 크므로 지능이 더 높은 것이다. 이렇듯 공룡이 양서류나 포유류가 아님은 명백하다. 중생대에는 공룡 외에도 익룡 어룡 배용류 조치류 거북이 악어 도마뱀 뱀등의 파충류가 번성했으므로 중생대를 파충류의 시대 혹은 '공룡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공룡은 다른 파충류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을 가졌다. 이것은 바로 온혈성(溫血性)이라는 점이다. 공룡이 에너지를 체내에서 생산가능한 내온성(內溫性)이라는 온혈설은 1968년 하버드대학의 '로버트 파카'박사에 의해 제창되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온혈성의 증거로서 △공룡의 자세, 걷는 방법, 달리는 방법 등이 현생의 포유류나 조류에 흡사했으므로 높은 대사속도(代謝速度)를 가졌을 것이라는 것 △포식자(捕食者)와 피식자(被食者)의 구성비율에 있어 공룡은 포유류적 혹은 온혈성적 패턴을 갖는다는 것 △울트라사우루스(Ultrasaurus)와 같은 초대형 공룡은 그 거대한 체구의 온몸에 피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심장의 능력이 온혈 동물성이 아닐 수 없으며 △데이노니쿠스(Deinonychus·恐爪龍)과 같은 민첩발랄한 육식공룡은 그 활동성에 비추어 기필코 온혈성을 띤다는 점 등이다.

공룡의 온혈성에 대한 증거로서 공룡의 범세계적(공룡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산출됨) 분포, 온혈성 시조조가 공룡의 후손, 그리고 현미경하 골조직이 포유류나 새와 유사하기 때문이라고도 하나 이들은 냉혈성과 구별되는 뚜렷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척추동물에 대한 치밀골의 현미경하 골조직 특징은 새 포유류 파충류 사이에 상호 분간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
공룡의 특징으로서 무엇보다 몸집이 크다는 점을 누구나 쉽게 지적할 수 있다. 어떤 공룡은 약 1백40t에 달하는 몸무게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나 성체가 닭만한 크기의 공룡도 있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공룡에는 2발로 걷는 공룡과 4발로 걷는 공룡이 있는데 2발로 걷는 공룡에 꼬리가 없었다면 인간과 얼마나 닮았을 것인가?
악어가 가만히 있을 때는 뱀이나 도마뱀처럼 몸을 땅에 붙이지만 이동할 때는 땅에서 몸을 떼어 전진한다. 공룡은 다리로 몸을 지탱하여 배를 땅에 닿지 않게 할 뿐 아니라 꼬리를 항상 쳐들고 생활했다. 공룡의 달리는 속도는 종류마다 다르나 보통 사람 정도의 속도, 시속 4.3㎞내지 40㎞ 정도로 계측되었다.

공룡과 닭이 같이 교미했으나 날개대신에 앞다리를 활용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악어처럼 산란하고 자연부화되면 일정기간 병아리처럼 새끼들을 보호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공룡의 군서생활(群棲生活)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수명이 다하여 죽을 때는 코끼리처럼 일정한 장소를 택했던 것 같다.

대형 육식공룡은 장시간 혈투한 다음엔 수면과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목이 긴 대형공룡은 휴식할 때 기린과 같이 다리를 착 포개어 허리쪽에 머리를 눕혔을지도 모른다. 혹은 벼랑의 벽면 등에 머리로부터 몸을 기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룡은 시력과 청력이 약했을 것이다. 뱀과 같이 휴식할 때는 턱을 지면에 대고 턱에 전해오는 진동을 느끼고 접근하는 외적을 알았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후기 백악기의 오리주둥이 공룡(하드로사우루스)은 습지가 아니라 침엽수가 자라는 건조한 육지에서 서식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따라서 이들을 잡아먹던 티라노사우루스도 이러한 저지(低地)에서 산 것으로 인정되었다. 하드로사우루스(Hadrosaurus)는 취각이 고도로 발달되었다.
 

(그림2) 포유형파충류의 계통진화


공룡의 후세는 카나리아?

파충류는 양서류중 미치류에서 진화되었으며 공룡은 파충류 중 이가 치조(齒槽)내에서 성장하는 조치류(槽齒類)로부터 진화된 것으로 밝혀져 있다. 최초의 조치류는 도마뱀과 유사한 육식류였으나 차츰 진화하여 몸이 커졌고 포유상 파충류와는 달리 몸무게를 효과적으로 지탱하고 능률적인 동작이 가능하였으며 앞발로 걷는 것을 지양하고 먹이동물을 붙들거나 공중을 지배할 날개와 같은 새로운 구조들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앞발의 특성에 의해 조치류는 공룡과 익룡으로 진화될 수 있었다. 조치류로부터 발생한 원시공룡은 몸집이 컸고 두발로 보행했으며 잡식성이었다.

익룡은 공룡으로부터 진화된 것은 아니고 시조조(如祖鳥)가 골격구조와 온혈성인 점으로 보아 주라기후기에 공룡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추측된다. 현대새는 이들 시조새로부터 진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익룡과 시조새가 동시에 함께 생존했음은 뿌리가 서로 다른 인간과 원숭이가 함께 생존하고 있음과도 같다.

익룡은 박쥐날개와 약간 비슷한 날개를 가져 나는 능력은 시조새보다 우수했으며 큰 것은 한쪽 날개의 길이가 7m에 달했다. 이들은 주로 물고기를 먹이로 했으며 백악기 후기 공룡절멸 직전에 멸종되었다.
시조새는 깃털과 이빨이 있고 앞날개에 금빛 발톱을 가졌으며 새와는 달리 잘 발달된 흉골이나 용골이 없어 잘 날 수 없었다. 공룡 익룡 시조새 및 현대새는 모두 온혈동물로 알려졌다.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공룡의 후손은 현대새이다. 몸집이 빌딩같은 공룡이 오늘날의 카나리아새로 됐다는 뜻이 아니라 공룡중 몸집이 작고 날 수 있는 골격으로 변화되기 쉬운 공룡이 새로 진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새장 안의 카나리아가 1백t이 넘는 공룡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지구상에 살아 있는 동물중 공룡에 유사한 동물로서는 악어를 들 수 있겠으나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단 한 종류의 '옛날도마뱀'이 공룡과 가장 닮아 있다. 이 옛날도마뱀은 그다지 빨리 달리지는 못하나 땅을 기어다니며 곤충이나 벌레를 잡아먹고 산다. 이는 몸이 둔하기 때문에 포유류나 다른 경쟁자가 있었다면 현재까지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다. 뉴질랜드는 그들의 비호소(asylum)가 된 것이다.

포유류(mammal)는 공룡으로부터 진화된 것이 아니라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파충류인 수공류(獸孔類: Therapsida)로부터 진화한 것으로서 초기 원시포유류는 체구가 작고 수가 적었다. 신생대(新生代)가 점차 흘러감에 따라 고래 말 코끼리와 같은 포유류는 두뇌용적의 증가를 보였고 공룡과 같이 거대화(巨大化) 경향을 나타냈다.

공룡은 우리 인간과 함께 생물진화의 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물로 유명하다. 공룡의 출현과 소멸과정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공룡의 특징이나 수량의 평형상태가 수천만년의 장구한 세월을 통하여 아무런 문제없이 안정되어 있다가 그 평형을 파괴하는 변화가 갑작스럽게 수천년 정도로 짧은 시간내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공룡의 경우 그 출현과 멸종이 급격하게 일어났으므로 이는 다윈의 '자연은 결코 비약하지 않는다'는 점진사상(gradualism)에 맞선 이론을 낳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버드대학 '굴드'박사의 평형급변론(Theory of Punctuated Equilibrium)이다. 이는 생물의 변화가 유전적 혁명과 염색체 이상 등 우연하고도 급격한 변화에 기인한다는 사상으로서 어떤 생물에서 다음에 어떤 생물이 출현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다는 이론. 적응에 의한 계속적인 모습변화는 평상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시간에 국한되며 한번 출현한 생물은 평상시의 수백만년간 그 특징이나 형태변화를 보이지 않고 안정을 유지하며, 모체생물과 그로부터 새로이 태어난 별종(別種)의 생물은 어느기간 동안 공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행성 충돌설

공룡 멸종의 원인은 격변적 멸종설과 점진적 멸종설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격변론의 대표적인 것은 소행성충돌과 지구화재설이다. 일단의 천문학자 물리화학자 화학자 및 지질학자들의 연구로 제창된 이 이론은 태양계가 우주를 여행하는 중 어떤 소행성이 갑자기 지구에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공룡과 같은 생물들이 절멸케 되었다는 것이다. 소행성이 돌발적으로 충돌을 일으키면 먼지가 지구를 둘러싸므로 태양의 열과 빛이 차단되어 몇년 정도를 밤이 계속되고 잠시동안이나마 태평양이 얼어 붙을 정도로 추위가 불어닥쳐 공룡이 멸종될 수밖에 없다.

한편 큰 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면 대화재가 전지구적으로 일어나 삽시간에 공룡이 멸종했을 것이라는 것으로 이 이론에는 많은 증거가 제시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과거에 어떤 천문학자들은 초신성(超新星)의 폭발로 인하여 방사선이 과다하게 지구에 흡수되어 생물에 악영향을 끼치고 공룡은 멸종케 되었다고도 하였다.

공룡의 점진적인 멸종설로서 대륙이동론(Continental Drift Theory)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6개 대륙이 한개의 대륙으로 되어 있던 시대에 공룡이 출현 및 번창하다가 현재와 같이 6대륙으로 완전히 분리되자 기후와 자연환경의 변화로 공룡이 멸종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종(種)의 노화론(老化論)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알칼로이드 중독에 의해 공룡이 절멸했다는 것이다. 백악기 초기에 현화식물(現花植物)이 출현하여 이들에 포함되어 있는 알칼로이드라 부르는 유독물질을 공룡이 계속 먹이로 함으로써 체내에 이 물질이 축적되고 그 악영향이 자손에 일거에 나타남으로써 공룡이 절멸했다고 주장한다. 또 공룡이 온혈성이었기 때문에 절멸했다고도 하는데 이는 환경요인과 공룡 자체가 갖는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데 기초한 고찰이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지구가 지자기의 세기가 '0'으로 떨어질 때 생물에 큰 변혁을 가져온다고 했다. 기상학자들은 산성비나 이상기후가 먹이사슬의 변혁을 가져와 공룡이 멸망했다고도 한다. 안과 의사들은 백내장 때문에, 영양학자들은 섬유질과 지방질의 감소 때문이라고 했으니 이렇듯 공룡의 멸종원인은 다변적이며 복합적으로 종합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반도는 공룡의 천국
 

우리나라 공룡모형 위로부터탑리울트라룡(경북의성,120t), 김씨이구아노돈(경남고성,5t)한국공조룡(경북의성,70㎏)


지금으로부터 약 1억년전 한반도는 공룡의 천국였다해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이 땅덩이 좁은 한반도가 백악기 당시에는 세계에서 공룡이 가장 많이 번성하였다는 사실이다. 여러 지점에서 많은 공룡골격을 비롯하여 수천개의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는데, 전자는 경북 의성에 있는 공룡계곡을 비롯하여 합천 진주 군위 등지에서, 후자는 고성해안 함안 진동 통영 울산 경산 등지에서 확인되었다.

한국의 공룡으로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룡은 초식성 용반목(龍盤目) 용각류 뇌룡 공룡인 '울트라사우루스'(Ultrasaurus)와 육식성 수각류 공조룡(恐爪龍)인 '데이노니쿠스'(Deinonychus)이다. 이들은 대표적인 온혈성 공룡이다. 그밖에도 수많은 조반목(鳥盤目) '이구아노돈'공룡을 비롯하여 뇌룡, 중소형 용각류 공룡, 대형 육식공룡 등이 확인되었다.

울트라사우루스 한국공룡은 세계최대급 공룡(몸무게 1백20t 이상)으로서 네발로 걸어다닌 초식뇌룡이며 코가 이마에 달려 있고 발이 코끼리발의 모양을 했다. 발자국의 길이는 1m20cm에 달했다. 거구에 내려쪼이는 태양의 복사열을 이겨내기 위해 큰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며 수중말무리를 먹이로 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먹이의 양은 굉장했겠으나 움직이지 않을 때는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뇌는 작고 활발하지 않았으며 두개골 외에 엉덩이 뼈 속에도 핑퐁크기의 작은 뇌가 있어, 감각을 두개골로 전달하는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룡은 경상도의 중생대 전기 백악기 지층에 국한되어 산출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의 공룡은 중생대 주라기 시대의 공룡이 위주이며 백악기 시대의 공룡도 확인되었다. 한국의 공룡골격 발굴작업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여 몸전체의 완전한 골격은 아직 하나도 없으며 자뼈 늑골 대퇴골 척추골 등 부분골이 지표부근 발굴에서 채취되었다. 경북 의성 탑리의 공룡계곡에는 대량의 공룡골격화석이 매몰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으므로 앞으로의 본격적인 발굴에 기대를 건다. 공룡골격이 준광물화된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같으나 공룡계곡에는 골격이 규화되어 있거나 방해석으로 석화된 경우가 가장 중요한 특색의 하나이다.

한국의 공룡발자국은 큰 것이 특징이고 특히 고성해안가에 대량 산출되고 있다. 그들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특히 이구아노돈(Iguanodon)공룡의 완벽한 발자국은 세계적 자랑거리이다.

한국의 공룡골격이 거대하고 발자국이 최대형이므로 공룡이 거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함에 비추어 볼 때 세계적으로 조기진화의 양상을 띤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에서 발견된 최대의 공룡은 마멘치사우루스(Mamenchisaurus)로 길이 22m, 높이 8m, 무게 30톤 정도이다. 이는 한국의 울트라사우루스에 비해 몸무게는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필자가 발견하여 연구한 공룡중 3종류, 즉 탑리 울트라룡(Ultrasaurus tabriensis), 김씨 이구아노룡(Iguanodon kimi) 및 한국 공조룡(Deinonychus koreanensis)은 축소모형으로 복원제작하여 용인 자연농원 중국공룡전에 출품하였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그렇게나 번성했던 한국의 공룡은 백악기 전기 이후의 지층에서는 왜 확인되지 않을까? 그 이유로 필자는 경상도 지방에 활발했던 화산활동을 들고자 한다. 한국의 공룡은 이들 화산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자 사라지고 말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화산체 주변 지층에서는 아직까지 공룡의 골격이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화산활동으로 인한 독가스들이 공룡의 멸종을 가져왔을 가능성도 다분히 있는 만큼 범세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문제는 많은 연구가 속행되어야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동아프리카의 열곡(Rift valley) 일대에는 화산활동이 많이 일어나서 그 일대에는 독가스의 일출로 동식물이 서식할 수 없게 되었고 주변 호수에도 수서생물이 모두 근절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1월에 처음으로 초대형 공룡의 자뼈(Ulna: 尺骨)화석이 경북 의성군 탑리 부암재에서 발견되었으나 공룡화석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그 본격적인 발굴은 4년 뒤에나 속행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198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향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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