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31일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발표는 한국 주식시장 최대의 화젯거리였다. 액면분할이란, 한 주식을 여러 주식으로 바꿔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1 대 10 액면분할의 경우라면, 300만 원짜리 주식 한 주는 30만 원짜리 주식 10주로 바뀐다. 삼성전자는 1주가 50주로 바뀌는 이른바 ‘1대 50’ 액면분할을 예고했다. 3월 23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최종 통과되면 5월 4일부터 조정된 주가로 거래가 이뤄진다.
삼성전자가 액면분할을 하게 된 이유는 주식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참고로 주식의 절대 가격이 비싸다는 의미이지, 주식이 내재가치에 비해 비싸다는 의미는 아니다.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꾸준히 성장한 결과, 주식의 절대 가격이 200만 원대까지 상승해 개인 투자자들이 매수하기 어려운 주식이 된 것이다.
1 대 50 액면분할을 하면 삼성전자 한 주의 가격이 대략 5만 원 전후에서 형성될 수 있으니, 자금력이 부족한 개인 투자자들도 쉽게 매매할 수 있고, 또 이 덕분에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그간 금융학계의 연구는 이런 기대가 너무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2011년 한국금융공학회 학술발표논문집에 실린 논문인 ‘주식분할의 정보효과’에 따르면 주식을 액면분할한 212개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액면분할이 단기적으로는 주가를 상승시키지만 1개월이 지나면서 주가가 반전돼 이후 오히려 마이너스의 성과를 기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예상 밖의 일이 자주 벌어지는 이유는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액면분할에 대한 기대로 급등했다가, 기업 실적이나 혹은 다른 뉴스가 부정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이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대거 매도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경우 액면분할 이후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까?
산업마다 수익성은 하늘과 땅 차이
삼성전자의 주식 가격이 1년 뒤에도 계속해서 오를지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주식 가격의 장기적인 추세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바로 해당 기업이 속한 산업의 수익성이 높을수록 상승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신시아 A. 몽고메리 교수는 저서 ‘당신은 전략가입니까(The Strategist, Be the leader your business needs)’에서 아주 흥미로운 기업 인수 합병 사례를 통해 산업마다 수익성이 달라지는 이유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 가운데 ‘매스코(Masco)’의 사례를 책에서 일부 발췌했다.
미국의 생활용품 회사 매스코(Masco)는 1986년까지만 해도 살아있는 신화였다. 손잡이 하나로 냉온수를 둘 다 틀 수 있는 수도꼭지로 세계를 석권했다. 금고엔 현금이 넘쳤다. 창업자 리처드 머누지언은 여세를 몰아 가구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의 가구업체들은 2500곳이 넘었지만, 판매의 80%가 400개 업체에서만 이루어지는 등 영세했다. (중략)
매스코는 가구산업에 진출했다. 그것도 아주 과감하게. 매스코는 2년에 걸쳐 세 업체를 각각 3억 달러, 2억 7000만 달러, 그리고 2억 5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세 업체의 매출을 합하자 매스코는 미국 가구 산업 2위의 회사가 되었다. 후속조치로 3개 대륙에서 제조 활동하던 유니버설 퍼니처를 5억 달러를 사들였다. (중략) 그 결과 매스코의 순이익은 30%가 줄어들었고 32년간 이어지던 실적 상승은 끝이 났다. 2년 뒤 가구 사업부의 영업마진은 6%를 기록했지만, 나머지 부문의 영업마진은 무려 15%였다. 여러 해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한 매스코는 마침내 가구사업을 매각할 의사를 밝혔다.
매스코는 경쟁력과 기술력도 강하며, 특히 자금력 면에서 다른 경쟁 기업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었는데 왜 실패했을까. 이에 대해 몽고메리 교수는 매스코가 역사를 무시했다고 지적한다. 매스코 이외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가구산업을 얕잡아 보고 쉽게 뛰어들었지만, 모두 쓴맛을 보고 철수한 전적이 있음을 무시했다는 이야기다. 그럼 왜 가구산업은 새로운 시장 참여자가 수익을 내기 어려운 환경일까?
산업마다 수익성 다른 이유
그 이유는 미국 주요 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오른쪽 그래프). 업종별 ROE를 보면 산업별로 수익성의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매업종이나 소비자 서비스 업종 그리고 담배 업종 등은 수익성이 매우 높은 반면 부동산이나 에너지, 유틸리티 업종 등은 수익성이 매우 낮다. 산업별로 수익성이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이유는 산업의 특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몽고메리 교수는 다섯 가지로 제시했다(아래 박스).
다섯 가지 요인을 가구산업에 적용해보면, 가구산업이 왜 수익성이 낮은 산업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가구산업은 경쟁 기업들이 대단히 많으며, 부품업체들의 세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차별화를 시도하기 힘들어 고객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시장이다. 매스코가 큰 성과를 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상의 기준을 삼성전자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일단 첫째 조건은 맞지 않는다. 독일의 키몬다 그리고 일본의 엘피다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기업들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전 세계 메모리용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이른바 ‘빅3’로 재편된 상황이다. 따라서 치열한 경합이라기보다는 과점 체제로 봐야 마땅할 것 같다.
둘째 조건 역시 삼성전자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반도체 재료나 장비를 공급하는 회사들 입장에서 공급처가 2~3군데로 집약되면, 가격 결정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재료나 장비를 주문하는 쪽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셋째 조건인 고객의 세력 부분은 때마다 다르다. 지금처럼 클라우드 서비스와 관련해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많을 때에는 고객의 세력이 약하지만, 지난 2008년처럼 경기가 나빠질 때에는 고객의 세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수익성 면에서 최상위에 속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넷째와 다섯째 조건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반도체 회사에 유리한 면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학습곡선을 떠올려보자(과학동아 2018년 1월호 참조). 항공기나 반도체 같은 업종은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이나 퇴장이 어렵다. 설비투자 규모가 너무 큰 데다, 먼저 진입한 기업들이 이미 학습곡선을 타며 생산비용을 대폭 절감해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조건인 대체상품의 이용 가능성은 최근 이슈가 되는 자율주행자동차를 통해 설명해보자. 사람이 운전해야 하는 기존 자동차에 비해, 경로만 입력하면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자동차는 매우 혁신적인 제품이며 또 상당한 대체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자율주행자동차 구매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뭘까?
디자인이나 자율주행의 안정성 등 다양한 요인이 고려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가격이다. 예를 들어 가장 판매량이 많은 C세그먼트(아반떼, 크루즈급)의 차량 가격은 대략 2만 달러(약 2140만 원) 내외인데, C세그먼트 자동차에 자율주행 기능을 추가하고 10만 달러(약 1억700만 원)를 책정한다면 대체수요를 자극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관건은 자율주행자동차의 가격이 처음에는 비싸더라도 신속하게 떨어지는, 다시 말해 단위 당 생산 비용을 가파르게 떨어뜨릴 수 있는 능력이다.
학습곡선 가파를수록 수익성 높아
이런 면에서 볼 때, 삼성전자는 대체상품 등장에 따른 위험도는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생산량이 늘어날 때마다 단위 생산비용이 가파르게 절감되는, 다시 말해 가파른 학습곡선을 가진 회사이기 때문이다. 대체상품이 출현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제품의 가격을 인하할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마빈 리버만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등은 가파른 학습곡선을 가진 기업일수록 이익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산업별로 학습곡선의 기울기는 다르며, 그 중 컴퓨터, 의약품, 정유산업의 학습곡선이 가장 가파르다고 말한다. 액면분할 발표 이후 삼성전자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흔들리기는 했지만, 장기적인 전망이 꽤 밝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홍춘욱_hong8706@naver.com
1993년 12월부터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환율의 미래’ ‘인구와 투자의 미래’ 등 다양한 책을 통해 경제 지식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이며, 블로그(blog.naver.com/hong8706)를 통해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