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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전자 지문, 범인 색출·친자감별의 해결사

범죄현장에 남아있는 조그만 흔적만으로 범인을 추적하여 확인해낸다. 모호한 친자관계로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과학의 힘으로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유전자 지문의 세계를 알아보자.
 

유전자 지문, 범인 색출·친자감별의 해결사


미국 최고의 미식축구 영웅인 오제이 심슨이 아내와 그 정부 살인범으로 기소되어 법원의 심리를 받으면서, 미국 전역에서는 유전자지문법이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그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유전자 감식에 의한 신원파악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부산 강주영양 유괴살인사건에 이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자동차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이 과연 누구의 것이냐에 관한 문제가 법정에서 쟁점 중의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법의학 분야에서 최대 관건은 범죄현장에 남아 있는 증거물로부터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다. 1800년대 말 지문이 범죄수사에 이용된 이래, 한세기 만에 인체 염색체를 이루는 DNA 염기서열 중 개인마다 특징적인 염기서열을 갖는 부위를 이용하여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전자지문법이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민사사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친생자감정에도 유전자지문법에 의한 감정이 통용되고 있다. 그동안 널리 쓰였던 ABO식 혈액형검사, 효소형검사, 혈청단백형검사가 표식자의 수가 적어 그 감도(sensitivity)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체 게놈은 30억개의 DNA 염기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70-80%는 DNA 염기서열이 세포내에서 발현되어 생체가 살아가는데 유용한 유전자인데 전사와 복제, 단백질 형성 등에 관여하는 하나의 염기배열(unique sequence)로 이루어진 단일복사 DNA다. 나머지 20-30%는 전사(transcription)를 하지 않는 염기서열로 일정 수의 염기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다중복사 DNA들로 '반복서열(repetitive sequence) DNA'라고 한다.

범죄수사, 친자감별 등에 이용

이들은 일정 수의 염기단위가 가로로 계속 반복되는(tandemly repetitive) 형태를 이루고 있다. 반복되는 염기 단위는 2개부터 수백 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반복되는 수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이를 VNTRs(가로반복서열)라 한다. 이러한 염기서열을 가진 부위는 그 크기가 개인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초위성 부위(minisatellite) 또는 초변이부위(hypervariable region)라 불린다.

개인마다 고유한 크기를 갖는 초위성부위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유전형질은 감수분열시기에 염색체가 분리되면서 1배체 형태의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여 2배체의 염색체가 된다. 이때 유전자재조합이 일어나 자손의 유전형질이 형성된다. 자손의 유전형질 중 하나는 부친으로부터 전래되며 다른 하나는 모친으로부터 유전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손의 유전형질 중 초위성부위는 부친과 모친으로부터 전래된 반복염기서열로 이루어지게 된다. 때문에 자손은 새로운 형태의 유전형질을 갖게 된다. 이를 대립유전자(allele) 개념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부친의 특정 초위성부위의 반복되는 유전인자 크기를 (A, a)로 표기하고 모친의 경우(B, b)로 표기할 때 그 자손의 유전 형질은 (A, B), (A, b), (a, B), (a, b) 중 하나가 된다. 따라서 부, 모 그리고 자식은 계속해서 크기가 다른 유전인자를 갖게 된다. 이러한 특정 유전좌위에 대한 개개인의 고유한 크기를 유전자감식법으로 측정하여 개인식별이나 친생자 감별을 할 수 있다.

1970년대에 스미스 등이 특정 DNA 부위를 인식하여 그 부위를 절단하는 제한효소를 발견하면서 초위성부위에서 길이다형성(length polymorphism) 측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인체 세포로부터 DNA를 분리하여 특정 제한효소로 처리하면 게놈 DNA는 여러 조각으로 절단된다.

이때 제한효소 절단부위가 초위성부위 양 옆에 존재하면 절단된 DNA 조각은 개인마다 반복되는 수에 따라 크기가 다르므로 각기 다른 크기의 제한효소 절단 DNA 조각을 갖게 된다. 이같이 제한효소 처리에 의해 생성된 길이 다형성을 제한효소길이절편다형성(RFLPs, restriction fragment length polymorphism)이라 한다. 이는 멘델의 유전 법칙에 따라 유전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30억 염기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체 게놈상의 제한효소 절단 부위는 무작위로 분포돼 있고 제한효소 절단에 의한 DNA 산물의 크기는 다양하다. 때문에 개인마다 다양한 크기를 갖는 제한효소 절단산물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분자생물학적 기법이 요구된다.

먼저 혈액 혈흔 정자 혹은 범죄현장의 샘플로부터 DNA를 추출한다. 추출한 DNA 중 소량을 전기영동하여 RFLP 분석을 위한 충분한 양의 DNA를 함유하고 있느냐와 얼마나 많이 분해되었는가를 조사한다. 그 다음 특정 제한효소로 DNA를 절단하고 아가로스겔 상에서 전기영동하여 절단된 DNA 조각들을 크기대로 분리시킨다.

이들 DNA 조각들을 아가로스겔로부터 서던 블롯(Southern Blotting) 방법으로 나일론 막으로 옮긴 다음, 개인마다 고유한 크기를 갖는 DNA 조각에 특이적으로 붙는 방사능으로 표지된 탐침으로 처리한다. 이를 다시 X-레이 필름에 감광시키면 특정 위치에 바코드 형태의 밴드가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숙련된 기술과 2-3주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1984년 영국의 제프리 교수는 인간의 미오글로빈 유전자 옆에 존재하는 초위성부위를 발견하고 이 부위가 게놈 DNA 상에서 보이는 특성을 조사하기 위해서 미오글로빈의 초위성 부위를 분리하여 탐침으로 사용하였다.

이 탐침을 사용, 인체 DNA에 대해서 RFLP 방법에 따라 분석하면 바코드 형태의 매우 복잡한 밴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밴드가 개인마다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멘델 유전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바코드형태 DNA 밴드 확인법이 출현함으로써 지문 개발 이래 법의학 분야 최대 혁명이라 일컫는 유전자지문법(DNA fingerprinting)이 탄생한 것이다.
 

아내와 그 정부 살인혐의로 기소된 미식축구영웅 오제이 심슨. 그의 재판에는 유전자 지문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FBI에도 유전자지문 실험실

유전자지문법이 개발됐을 때 제프리 교수는 같은 혈액형을 갖는 두 남성으로부터 특정한 아이의 생물학적 부친을 정확히 판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흥분하였다. 이 방법은 곧 특허를 얻어 전세계로부터 많은 로열티를 받게 되었다. 제프리 교수의 유전자지문법은 영국법정에서 이민자의 판별에 처음 적용된 바 있다.

그뒤 유전자지문법은 친생자감정의 증거로 법원에서 채택되고 있으며, 범죄 수사 경우는 1986년 영국의 앤더비(Enderby) 살인사건에 이용되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각국에서 유전자지문법이 법정 증거자료로 인정되어 상업적인 목적의 실험실이 설립됐다. FBI에서도 1988년 유전자지문 실험실을 세웠다. 이러한 유전자지문법의 빠른 진보는 새로운 종류의 유전자형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유도하였다.

RFLP 방식에 의한 바코드 형태 DNA 밴드를 측정하는데는 특정 DNA 염기서열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DNA 조각을 사용하는데, 이를 탐침이라 한다. 탐침에는 인체의 게놈 DNA 상에 존재하는 다수의 VNTR을 측정하는 다좌위탐침(multilocus probe)과 하나의 VNTR만을 측정하는 단좌위탐침이 있다.

다좌위탐침을 사용하였을 때는 많은 바코드 형태의 밴드가 측정된다. 이것이 엄격한 의미에서 유전자지문법이다. 이 방법에 의해 측정된 다량의 바코드 형태 밴드는 두 사람이 같은 밴드를 가질 확률이 수백만명에서 수천만명 중의 하나이므로 매우 높은 식별력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게놈 DNA가 분해되지 않은 신선하고 많은 양(적어도 ${10}^{-6}$g의 DNA)의 샘플이 요구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단좌위탐침(single locus probe)이 개발되었다. 게놈 DNA 상에 존재하는 한 부위만을 측정하는 단좌위탐침의 경우는 적은양(적어도 ${10}^{-7}$g DNA)의 샘플, 명확한 밴드 형태, 작은 크기의 밴드, 약간 분해된 샘플에서도 측정가능한 점 등 때문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단좌위탐침에 의한 유전자지문은 하나의 유전좌위만을 측정하므로 그 결과가 두 밴드(하나는 부친, 다른 하나는 모친으로부터)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로 인해 유전자지문(DNA fingerprinting)이라는 명칭 대신에 DNA 타이핑(DNA typing)이라 불리고 있다.
 

유전자 감식은 범죄수사, 친자감별 등에 사용된다. 비용이 많이 들고 기간도 꽤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DNA를 크기 순으로 배열하는 전기영동과정.


유전자조작기술 발달따라 더욱 정교화

유전자지문법에 이용되는 탐침은 그 상업적인 유용성 때문에 여러 생명공학회사들이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있으며, 새로운 탐침의 개발과 특허화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좌위탐침을 이용한 DNA 타이핑은 적은 양의 게놈 DNA에서도 감식이 가능하다. 다만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는 미량의 생물학적 검체에서 추출할수 있는 게놈 DNA 양의 한계와 햇빛, 높은 온도, 과도한 습도 등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대부분 분해되어 버린다는 점 때문에 단좌위탐침에 의한 DNA 타이핑 적용이 곤란한 경우가 많이 있다.

1988년 개발되어 노벨상을 받은 효소중합반응(PCR : polymerase chain reaction)법을 이용하면 매우 적은양(${10}^{-9}$g DNA)의 DNA로부터 분석이 기능한 많은 양의 DNA를 증폭시킬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법의학적 분석이 PCR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 다. 오래된 조직표본 담배꽁초 혈흔 타액 비듬 정액흔적 머리카락 수십년 전의 유골, 심지어는 수천년 전의 미라같은 검체로부터도 개인식별을 위한 유전자감식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VNTRs의 크기에 의해서 뿐 아니라 VNTRs내의 염기서열의 특징에 따른 바코드 형태의 밴드를 측정하는 MVR PCR(minisatellite variability repeats PCR)이 개발되어 더 한층 개인식별력을 증가시켰다.

MVR PCR에 의한 개인식별은 그 결과가 AA의 형태인 경우는 1, TT의 경우 2, AT인 경우는 3으로 표기할 수 있어 개인마다 숫자화된 고유 번호를 지정할수 있기 때문에(예를 들면 김:111223123, 이:12323221, 박:23322132 으로 표기가 가능함) 유전자은행을 구성하는데 매우 편리한 시스템을 제공해 준다.

지금까지 PCR분석을 위해 사용된 대부분의 유전좌위는 그 크기가 수백bp에서 1-2kbp인 초위성부위를 이용하여 왔으나 현재 크기가 매우 작은 STR(short tandem repeats)이 발견되어, PCR에 의한 분석 유전좌위가 주로 STR로 바뀌고 있다.

특히 STR 유전좌위는 대립유전자 수가 초위성좌위의 경우보다 많기 때문에 개인간의 식별력(이형접합도)이 높고 그 크기가 작아서 비교적 심하게 손상된 샘플로부터도 PCR이 가능하기 때문에 범죄현장에 남은 생물학적 흔적에 대한 개인식별에 유리하다.

최근에는 STR 계열의 여러 유전좌위 분석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다중 PCR법이 개발되어 더 한층 개인식별력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PCR법의 경우 공기중의 부유물(세균 등), 분석자의 땀, 비듬 등의 오염에 의해 가짜 DNA 증폭이 가능하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밖에 가족관계와 개인식별을 위해 미토콘드리아 DNA(mitochondrial DNA, 이하 mtDNA)의 과변이조절부위(hypervariable control region)를 분석하는 mtDNA 염기서열분석법이 있다.

핵 이외의 세포질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는 하나의 세포에 수백개 이상 존재한다. 미토콘드리아에 존재하는 DNA는 생식세포 형성시 반수체의 상태로 모계로부터만 유전된다. 이 DNA의 일정 부위는 동일모계가 아니면 개인간 염기서열이 다르다. 이같은 mtDNA의 특징은 법의학적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유전적 표지체라 할 수 있다.

또한 세포내에 다량 존재하므로 유골 같이 오래됐거나 극히 미량인 검체로부터도 추출이 가능하다. 핵 DNA에 의한 DNA 타이핑이 곤란한 경우 mtDNA 과변이부위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개인식별이나 가족관계 규명이 가능하다.

최근 월남전에서 실종된 미군이나 1910년 대에 사망한 러시아 마지막 황실인 차르(Tsar Nicholas Ⅱ of Russia) 집안의 가족 관계도 유골에서 추출한 mtDNA의 염기서열분석법에 의해서 확인됐다. 고려대 법의학교실에서도 소유권 분쟁 중인 묘지 유골의 mtDNA 염기서열분석법에 의해 가족관계를 해결한 예가 있다.

그러나 동일 모계계열의 경우 같은 염기서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분이 되지 않는다. 또한 신원파악을 위해 동일모계 계열의 대조 염기서열을 알아야 한다.

프라이버시 문제 등 논란

DNA 타이핑은 지문 개발 이래 법의학분야의 가장 획기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에 지문을 표시하는 것처럼 한 집단내 개개인에 대한 유전자형을 일일이 분석하여 유전자은행에 입력해 둘수 있다면, 범죄현장에 남아 있는 생물학적 증거물로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다.

최근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는 살인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한 마을 주민 전체에 대한 DNA 타이핑을 시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DNA 타이핑을 위한 혈액 등의 채취는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사건일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타액이나 머리카락은 강제로 수거할 수 있다. 따라서 금세기말 경에는 5백만명에 대한 유전자은행을 만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DNA 분석자료는 범죄현장에서 발견되는 생물학적 흔적물의 유전자를 용의자의 유전자와 비교하면 99% 이상의 정확도를 가진 결정적인 증거자료로 인정될 수 있으므로 이 자료만으로도 확실하게 범인을 체포할 수 있다고 경찰관계자는 말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1994년 국회에서 유전자은행 설립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조만간 실행안이 만들어 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에서처럼 한 마을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유전자은행을 설립하려면 많은 논란이 일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에서는 마을 주민 개개인이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어 시민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힐 것이라는 반론에 부닥치고 있으며 인권 옹호론자들의 항의도 강력하다.

그러나 DNA 검사옹호론자들은 비록 강압적일지라도 죄가 없다면 용의대상이나 법정의 강요로부터 제외되어 억압수사나 잘못된 체포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무죄인 사람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199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남용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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