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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속기가 열어온 입자물리학 50년

입자 주기율표 완성 위한 발견의 시대

1995년 3월 2일 미국 시카고 근교에 있는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는 톱 쿼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멘델레예프가 원자들의 주기율표를 완성한지 1백28년만에 원자들을 이루는 기본 입자들의 주기율표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톱 쿼크 발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검출기 CDF.무게가 약 4천5백t,빌딩 2층 높이보다 크다.


우주의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기본입자는 각각 3세대로 이루어진 경입자와 쿼크다. 경입자들은 전자(e)와 전자 중성미자(νe), 뮤온(μ)과 뮤온 중성미자(νμ), 타우(τ)와 타우 중성미자(ντ)가 각각 쌍을 이룬다. 쿼크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입자들로 업(u)-다운(d), 참(c)-스트레인지(s), 톱(t)-바틈(b) 쿼크들이 각각 쌍을 이루고 있다(그림1). 이들 기본입자들은 광자와 같은 게이지 보존(boson)을 주고받음으로써 상호작용을 한다. 게이지 보존의 종류에 따라 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력의 4가지 기본 힘이 작용하며, 이 4가지 기본 힘에 의해 이들 기본입자들은 핵을 이루며, 원자를 구성하고, 더 나아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

이렇게 경이로운 지식의 발전은 가속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0세기 초반, 소립자 물리학의 태동기에 새로운 입자의 발견은 주로 외계로부터 지구로 날아오는 우주선(cosmic ray) 입자를 통해 이뤄졌다. 우주선 입자로부터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는 것이 한계에 달할 즈음 입자가속기가 발명되면서 계속 새로운 입자가 그 존재를 드러냈다.


가속기를 이용한 기본입자의 발견은 톰슨의 전자 발견에서 시작한다.


최초의 입자가속기 TV 브라운관

가속기를 이용한 기본 입자의 발견은 약 1백년 전인 1897년 톰슨(J. J. Thomson)의 전자 발견으로부터 시작한다. 톰슨의 실험장치인 음극선관은 가장 간단한 입자가속기이므로 입자가속기에 의해 첫번째로 발견된 것은 전자라고 할 수 있다. 음극선관이 TV 브라운관의 효시이고 보면 현대의 가정은 입자가속기를 1개 이상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전자보다 2백10배나 더 무거운 뮤온은 1936년 앤더슨과 네데메어에 의해 가속기가 아닌 우주선 입자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35년에 강한 핵력을 설명하기 위해 일본인 유가와에 의해 중간자 이론이 발표되었던 터라 뮤온은 한동안 유가와가 예견한 중간자로 착각되기도 했다.

뮤온보다도 15배나 더 무거운 제3세대의 타우입자는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연구소(SLAC)의 전자-양전자 충돌가속기 실험을 통해서 발견됐다. 한편 질량이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가벼운 중성미자는 핵의 베타 붕괴과정에서 마치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파울리가 1933년에 제안했다. 그러나 중성미자의 존재는 약 30년 후인 1957년에 코완과 레인스가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것을 검출함으로써 비로소 검증됐다. 그 후 레더만, 슈바르츠, 스타인버거 등이 브룩헤이븐의 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뮤온 중성미자를 발견한다.

3세대 쿼크 세상에 모습 드러내다

1962년 이론학자인 겔만은 가속기 실험과 우주선 실험을 통해 발견된 많은 새로운 소립자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3개의 쿼크(u,d,s)로 모든 입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인다. 겔만은 이 모델로 그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입자를 예측하면서 그리스 문자의 마지막에 오는 오메가(Ω)라는 이름을 붙였다(그 입자만 발견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세개의 스트레인지 쿼크로 만들어진 이 입자는 곧바로 1964년 브룩헤이븐연구소의 실험에서 발견되고, 쿼크 모델은 확고하게 굳어진다. 1969년 프리드만, 켄달, 테일러 등 실험학자들은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연구소에서 전자를 양성자에 때리는 실험을 통해 양성자가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돼 있음을 밝혀냈다. 쿼크 모델에 의해 예견됐듯이 양성자가 내부구조를 갖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1974년, 오메가 입자가 끝이 아닌 사건이 일어난다. 미국 동부의 브룩헤이븐연구소와 서부의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연구소에서 동시에 발견된 제이/프사이(J/ψ) 중간자는 새로운 쿼크인 참(c) 쿼크를 추가시켰다. 브룩헤이븐의 실험은 중국인 팅교수가 주도한 실험으로 참 쿼크로 이루어진 새로운 입자를 그의 한자 이름인 정(丁)자를 따서 J입자라고 이름 붙였다. 한편 최근까지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연구소 소장을 지낸 리히터교수가 주도한 연구팀은 입자의 붕괴하는 모양을 본따 프사이(ψ)라고 이름붙였다. 양쪽의 발견을 공평하게 인정하기 위해 이 입자는 J/ψ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1974년 11월에 이루어진 이 발견은 흔히 입자물리학자들에 의해 ‘11월 혁명’이라고 불린다.

그로부터 3년 후에 미국 페르미연구소에서 레더만교수가 주도한 실험 그룹에서 1977년에 웁실론(γ)입자가 발견됨으로써 다섯번째 쿼크인 바틈 쿼크가 발견됐다. 제3세대인 바틈 쿼크의 발견으로 바틈 쿼크와 짝을 이루는 톱 쿼크의 존재가 예견됐다. 그 후 전자-양전자 충돌가속기인 독일 전자가속기연구소의 페트라(PETRA), 미국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연구소의 펩(PEP)가속기, 일본 고에너지연구소의 트리스탄(TRISTAN)가속기들이 건설돼 톱 쿼크를 찾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톱 쿼크는 이들 가속기에서 만들어지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필자가 박사과정으로 트리스탄 가속기에서 실험을 시작하던 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톱 쿼크의 질량은 현재 알려진 것의 6분의 1 정도 밖에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결국은 바틈 쿼크의 발견 후 거의 20년이나 지난 1995년에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의 테바트론가속기에서 톱 쿼크가 발견됨으로써 3세대 6개의 쿼크가 모두 발견됐다. 이로써 표준 모형의 쿼크 모두가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테바트론가속기에서 톱 쿼크를 발견한 연구팀은 시디에프(CDF) 실험 그룹과 디제로(D0) 실험 그룹인데, 이때 한국의 연구진(서울대, 고려대, 경상대)도 D0실험에 참여해 톱 쿼크 발견에 기여했다.

힘을 매개하는 입자 충돌가속기에서 확인

이들 기본 입자들 사이에 힘을 매개하는 것은 게이지 보존이라 부르는 스핀이 정수인 입자들이다. 전자기력은 잘 알려진 광자에 의해 매개되며, 약력은 무거운 게이지 보존인 W, Z 입자에 의해 매개된다. 강한 상호작용은 글루온이라는 입자에 의해 매개된다.

1967년 와인버그와 살람에 의해 독립적으로 제안된 전자기력과 약력의 통일 이론은 전하를 띤 W 입자와 전하가 없는 Z 입자의 게이지 보존의 존재를 예측한다. Z 입자에 의해 매개되는 경우에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중성미자에 의한 반응이 1973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가속기 실험에서 확인돼 이 이론이 받아들여진다.

이 이론의 결정적인 증거는 1983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양성자-반양성자 충돌가속기(Spp-S) 실험에서 W 입자와 Z 입자를 직접적으로 검출하면서 얻어졌다. 이탈리아 출신의 루비아 교수는 이미 그 질량이 예측되어진 이들 입자의 존재를 확신하고 이들 입자를 생성하기에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양성자 가속기(SPS)를 양성자와 반양성자의 충돌가속기(Spp-S)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서로 가속시켜 정면으로 충돌시키면 같은 에너지의 양성자를 표적에다 때리는 경우보다 새로운 입자를 생성할 수 있는 유효에너지가 훨씬 더 커지므로 그 이점을 이용할 수 있다. 달리던 자동차가 정지된 자동차에 충돌하는 경우(보통가속기)와 두대의 달리던 차가 정면충돌하는 경우(충돌가속기)를 비교해보면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반양성자 빔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양성자를 정지 표적에 때려 만들어낸 반양성자 빔이 너무 무질서해서 함께 잘 모아서 가속시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문제를 공학자인 반데미르가 성공적으로 해결한다. 이 공로로 그는 공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루비아교수와 같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한편 강력을 매개하는 글루온은 전자와 양전자의 충돌실험에서 제트 생성 현상을 통해 그 존재가 입증된다.

대칭성 보존의 신앙 깨지다

자연계의 기본 대칭성은 물리학자들이 신앙적으로 믿고 있는 중요한 법칙 중 하나이다. 이러한 기본 대칭성 중의 하나가 패리티대칭성(공간 반전에 대한 대칭성으로 거울을 볼 때 그 이미지가 대칭성을 유지하는 것에 해당된다)이다. 1950년대 가속기 실험을 통해 새로이 발견된 입자들 중에 질량, 스핀, 전하 등 모든 성질이 같은데 패리티만 다른 2개의 입자의 존재는 매우 수수께끼 같은 문제로 입자들의 이름을 따서 타우-세타(τ-θ)퍼즐이라고 불렀다.

이 수수께끼는 리와 양이라는 두 중국인 이론학자들이 ‘사실 이 두 입자는 같은 입자인데 약력에서는 패리티 대칭성이 깨진다’고 하는 가설을 통해 해결된다. 이 예측은 바로 우여사가 핵의 베타 붕괴실험을 통해 검증했고, 물리학자들은 대칭성 보존의 신앙을 포기하게 된다.

그 이후 물리학자들은 공간 반전과 전하 반전을 동시에 행하는 대칭성인 CP대칭성은 약력에서도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했다(CP대칭성의 개념에 대해서는 ‘3. 고에너지가속기가 해결하는 20세기 숙제’ 참고). 그러나 1964년에 브룩헤이븐연구소의 가속기에서 생성된 K-중간자의 붕괴를 측정하던 크로닌과 피치 등에 의해 약한 상호작용에서는 CP대칭성도 깨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주의 초기에 입자와 반입자가 같은 양만큼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우주가 물질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현재 우주론에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CP대칭성이 깨져야 한다. 이것이 입자물리학자들의 믿음이다. 현재 표준 모형은 쿼크들 간의 섞임 현상에 의해 이러한 CP 대칭성이 깨질 수 있음을 예측하고 있다. 표준모형에서의 CP대칭성깨짐 현상의 규명은 21세기 초반 입자물리에서 최대의 관심사 중의 하나이며 이를 위해 B-공장이라는 가속기들이 건설됐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경상대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한국의 연구진은 일본 고에너지물리연구소의 벨(BELLE)실험에 대거 참여해 B-중간자의 붕괴에서 발생하는 CP대칭성깨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2000년대 초반에 확고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입자물리학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이슈는 중성미자의 질량문제이다. 중성미자가 매우 작더라도 질량이 있다면, 중성미자가 다른 중성미자로 바뀌는(예를 들어 뮤온 중성미자가 전자 중성미자로 바뀌는) 중성미자 진동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외부에서 날아온 우주선 입자에 의해 생성된 대기의 중성미자를 지하에서 관측하는 슈퍼카미오칸데 실험에서 그 증거가 관측된 바 있다. 대기의 중성미자를 통한 관측은 우주선 입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비록 그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가속기 실험을 통한 검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속기를 이용해 중성미자를 생성시킨 후 먼 거리 밖에서 이들이 어느 정도 없어지는지를 측정해 중성미자 진동 현상을 관측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그 대표적인 실험 중 하나가 서울대, 고려대, 전남대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한국 연구진이 참여하는 K2K실험. 일본 고에너지연구소(KEK)의 양성자가속기에 의해 생성된 중성미자를 2백50km 떨어진 슈퍼카미오칸데 검출기까지 보내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 실험 역시 2000년대 초반에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입자가속기는 자연계의 기본입자를 발견하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을 정밀히 검증하며, 대칭성깨짐 현상을 발견하는 등 수없이 많은 일을 이뤄냈다. 현재의 이론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자연의 기본 질서에 대한 가장 완벽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에서 쿼크와 경입자, 그리고 게이지 보존들이 질량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힉스입자(그림3)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편 표준 모형에는 입자들의 질량과 같이 실험을 통해 결정해야할 파라미터들이 많아 물리학자들은 표준 모형보다 더 기본적인 이론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현재 가장 가능성 있는 이론으로 초대칭성 이론이 대두되고 있다. 힉스입자의 발견과 초대칭성 이론의 검증을 위해 새로운 가속기가 유럽에서 건설되고 있으며 21세기에도 인류공동의 과제를 풀기 위해 새로운 입자 가속기가 계속 건설될 것이다.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카미오칸데.헌대 입자물리학의 중요한 이슈인 중성미자의 질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하에서 관측하는 슈퍼카미오칸데실험과 가속기 실험이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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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선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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