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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시간 역행, 현실에서 따라잡기

◇ 읽으면천재 | 영화 리뷰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vs. “아는 만큼 재밌다” “N차(다회차) 관람이 답이다”
8월 26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테넷’을 두고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물리학자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난이도 때문이다. 영화 ‘인셉션(2010년)’에서 무의식의 세계를, 영화 ‘인터스텔라(2014년)’로 블랙홀과 우주를 그려낸 놀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시간과 평행 세계를 이야기했다. ‘테넷’을 정복하고 싶은 과학동아 독자들을 위해 KAIST 시간역행반사연구단 연구원이 직접 해설에 나섰다.

 

※ 편집자주

본문은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먼저 작품을 관람하기를 권합니다. 

 

 

테넷은 ‘인버전(inversion)’을 이용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당 사토르와 이에 맞서 비밀임무 ‘테넷’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버전은 우리말로 ‘도치’ ‘위치 반전’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 영화에서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시간을 역행하는 미래 기술로 등장한다. 


미국 CIA 소속의 요원은 사토르의 부인인 캣의 도움을 받아 사토르를 없애려 하지만, 이를 알아챈 사토르가 다른 시간에서 캣에게 총알을 보낸다. 요원은 캣을 구하기 위해 본격적인 시간 역행을 시작한다. 

 

테넷 정복 포인트#1.시간 역행을 이해하라


영화는 주인공들의 시간 역행이 시작되면서 급격히 어려워진다. 그런 만큼 테넷을 이해하기 위해선 인물들의 시간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인버전을 할 때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인버전은 유리문으로 분리된 두 개의 방을 연결하는 회전문을 통해 일어난다. 유리문을 기준으로 한쪽은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고 반대쪽에서는 시간이 반대로 흐른다.


사토르는 시간이 역행하는 반대쪽 방에서 자신을 배신한 아내 캣에게 총을 쏜 뒤 회전문을 통해 도망간다. 이때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방에서 사토르를 지켜보던 요원의 시야에선 사토르가 사라진다. 과연 사토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주인공은 사토르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다고 느꼈지만 실제로 사토르는 시간을 역행하는 중이다. 요원이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사토르와 캣의 모습은 사실 과거의 장면이 현재의 요원에게 재생되는 것이다. 


이때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던 사토르가 회전문을 통해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세계로 돌아온다면 요원과 사토르는 평생 만날 수 없다. 서로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토르는 시간을 역행한 만큼 과거에 존재하고 요원은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사토르는 눈앞에서만 사라진 게 아니라, 요원의 세계에서 아예 없는 사람이 된다. 


물론 인버전을 할 때 인물이 사라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요원이 캣을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에서 요원은 자신이 처음 회전문을 접했을 때의 장면을 다시 마주한다. 영화 초반 요원은 캣의 도움을 받기 위해 비밀창고에 접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회전문을 맞닥뜨린다. 


그런데 이때(과거를 다시 마주할 때) 갑작스럽게 회전문에서 경찰복을 입은 괴한이 등장하며 요원과 격투가 벌어진다. 괴한은 미래에서 인버전된 요원 자신이다. 인버전된 요원이 미래에서 회전문으로 들어가 시간을 뒤집은 뒤 다시 정상적인 시간에서 회전문을 탈출한 것이다. 


이를 과거의 요원 시점으로 보면, 아무도 없던 회전문에서 갑자기 괴한(자신)이 나타나 탈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확장하면, 요원이 만약 미래에 여러 번 인버전을 해 과거를 오가면 특정 시간에 요원이 여러 명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테넷 정복 포인트#2.시간 역행의 핵심은 엔트로피


물론 영화에서 보여주는 물리 법칙의 타당성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장면도 있다. 대표적으로 시간이 역행하는 장면에서 엔트로피(entropy) 오류를 찾을 수 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적으로 열이 온도에 따라 흘러가는 방향성, 통계 역학적으로 수많은 입자의 상태를 나타낸 값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우주의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르면 무조건 증가한다. 또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서,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만 확산하며, 입자들은 최대한 무질서한 방향으로 확산한다.


만약 인버전이 가능하다면 시간이 역행하는 세계는 현실과 반대로 엔트로피가 항상 감소하는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영화에서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시간이 역행됐을 때 차가 폭발하면 차 주변으로 온도가 떨어져 얼어붙는 장면을 넣었다.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인버전된 세계를 과학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문제는 이 장면 전에 기름에 불을 붙였을 때는 멀쩡하게 기름을 따라 뜨거운 불이 붙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역행해 전복된 차가 복원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같은 장면이 시간을 순행하는 관찰자에게도 보인다는 것은 모순이다. 시간을 순행하는 관찰자의 관점에서 무질서도가 감소하기 때문에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하는 셈이다. 이런 모순들은 영화적 허용으로 보인다. 


테넷 정복 포인트#3.영화 속 시간 역행 구현하기


그렇다면 인버전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개념일까. 물리학에는 이런 인버전과 비슷한 개념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빛 입자 파동에 대해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거울을 제작하는 기술이 있다. 필자가 속한 KAIST 물리학과 시간역행반사연구단에서 2015년 개발한 기술이다. 


기존 거울은 점 광원이 입사되면 입사각의 반대 방향으로 빛을 반사시킨다. 그러나 시간 역행 거울은 입사한 빛을 다시 원래 점 광원의 위치로 반사시킨다. 이를 관찰하면 빛 입자는 거울을 향해 진행하다가 마치 인버전이 된 것처럼 시간을 역행해 거꾸로 과거의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시간 역행 거울은 비선형 결정에 강한 레이저를 쏴 만든다. 이를 위상 공액 거울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레이저가 거의 무한대의 에너지를 가질 정도로 강하지 않으면 우리가 만든 거울이 빛을 시간 역행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레이저나 비선형 결정 없이 간단히 빛을 역전시킬 수 있도록 공간광변조기*를 이용한 단일모드 시간 역행 거울 기술을 개발했다. 

 


시간 역행을 따라잡는 현실 기술은 실생활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의료 분야의 광역학 치료(photodynamic therapy)가 있다. 광역학 치료는 암과 같은 질병 부위에 빛에 민감한 치료제를 투여한 뒤 빛을 강하게 입사해 질병 조직을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기술이다. 


기존 광역학 치료는 우리 몸이 빛을 산란시켜 치료용 레이저 빛을 암과 같은 질병 부위에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시간 역행 거울의 특성을 활용하면 입사한 레이저를 질병이 있는 위치에 한 점으로 모을 수 있다. 광역학 치료에 시간 역행 거울을 활용한다면 절제 수술 없이 몸 밖에서 원하는 질병 부위를 선택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테넷은 시간 역행이라는 개념 하나만으로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과학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시간에 대한 퍼즐을 숙제로 남긴다. 인버전에 의해 꼬여버린 시간을 하나씩 풀어헤칠 때마다 영화 속 세계관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탄탄하게 만들어졌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이무성 
KAIST 물리학과 시간역행반사연구단 및 의광학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있다. 고해상도 현미경 기술 개발, 광학 집게를 이용한 세포 역학 연구 등 의광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lkaamo@kaist.ac.kr

 

 

용어정리

* 공간광변조기(Spatial Light Modulator)
영상이나 패턴을 표시하기 위해 빛을 공간에 띄우는 전자소자. 미세거울로 파면의 진폭, 위상을 바꿔 빛의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 주로 홀로그램 영상 등에 사용된다.

202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 에디터

    이병철 기자 기자
  • 디자인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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