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6일, 여전히 폭염의 기세가 남아 있는 서울과 달리 알래스카 최북단 항구도시 배로우(Barrow)의 기온은 5도로 꽤 쌀쌀했다. 약 4500명이 거주하는 배로우는 북극의 섬들을 제외하면 북반구 대륙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세상의 끝(Top of the world)’이라는 이름의 호텔도 있다.
배로우에 다다를 때쯤 비행기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배로우 시가지와 함께 해안에 정박한 붉은색 몸체의 우리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로우에 도착한 한국 극지 연구소 팀은 캐나다, 미국 등 국제공동연구팀 46명과 함께 북극해 해저의 ‘진흙화산(mud volcano)’을 탐사하기 위해 아라온호에 올라탔다. 국내 연구진이 진흙화산을 탐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다 밑 진흙화산 수천 개
지구상에는 깊은 땅속에 묻혀 있는 물질이 다시 땅 위로 올라오는 현상이 많다. 용암을 분출하고 재를 뿜어대는 화산과, 지각이 생성되는 해저 중앙해령의 열수분출구가 대표적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노천 온천이나 용천수에서 물이 솟아나는 현상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최근에는 포항 지진 이후 인근 논과 밭에서 진흙이나 모래 흙탕물이 늪처럼 분출된 액상화 현상이 수십 개나 발견되면서 땅속 물질의 분출 현상에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현상은 지구상에서 널리 발견되는 지질 현상으로, 지각물질의 순환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진흙화산은 진흙, 물, 가스가 섞여 분출되면서 만들어진 지질 구조다. 지하 깊은 곳에 물과 가스(또는 석유)가 섞인 유동성이 큰 진흙층이 생길 경우, 위에 쌓여있는 지층은 엄청난 힘으로 진흙층을 누르게 된다. 큰 압력을 받은 진흙은 이를 견디다 못해 지층 사이의 틈을 따라 지표로 올라와 분출하고, 결국 진흙화산을 만든다. 용암을 분출하는 진짜 화산과는 다르지만, 지하의 물질이 지층을 뚫고 올라와 지표에 비슷한 형태의 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진흙화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진흙화산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석유와 가스가 나오는 지역에서 많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진흙화산이 석유를 찾기 위한 좋은 지표인 셈이다. 또 진흙에는 대량의 메탄가스가 포함돼 있다. 메탄은 온실효과를 내는 강력한 온실가스인 동시에 미래의 청정에너지 자원이다.
진흙화산 주변에는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메탄과 주변 영양분을 먹고 사는 특이한 생물이 많아, 새로운 생명 현상을 연구하기에도 아주 좋은 환경이다.
지금까지 땅에서는 600개 이상의 진흙화산이 발견됐고, 아직 확인된 것은 많지 않지만 바다 밑에는 수천 개의 진흙화산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흙화산의 너비는 수 m에서 10km까지 다양하며, 높이는 1~2m가량인 작은 진흙화산부터 700m에 이르는 거대한 화산도 있다. 한반도 해역에서는 아직까지 진흙화산이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
보퍼트 해, 3개의 진흙화산 발견
진흙화산을 찾아 아라온호가 향한 곳은 캐나다 보퍼트 해의 대륙붕과 대륙사면이다. 탐사 지역은 캐나다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속한 해역인 만큼 대한민국 국적의 아라온호가 이 지역을 탐사하기 위해서는 캐나다 정부와 원주민 사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른나라 연구선이 동해에 들어와 탐사하려면 우리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과 같다.
캐나다 보퍼트 해 대륙사면에는 3개의 대형 진흙화산이 있다. 2009년과 2010년 다중빔 해저지형탐사를 통해 처음으로 수심 280m, 420m, 740m에 위치한 진흙화산이 발견됐다. 북극해에서는 노르웨이 해의 ‘하콘 모스비(Hakon mosby)’ 진흙화산에 이어 두 번째 발견이다.
1. 원격조정탐사정(ROV)의 팔이 진흙화산의 암석을 들어올리고 있다. 진흙화산의 지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시료다.
2. ROV에 달린 카메라를 이용해 선실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모습.
3. 아라온호에서 ROV를 바다로 내리고 있다.
4. 420m 진흙화산의 중심부에서 얻은 시료. 진흙 사이에 하얀색의 얇고 딱딱한 가스하이드레이트 조각이 박혀있다.
한국 극지연구소와 미국 몬터레이만 해양연구소(MBARI), 캐나다 지질조사소(GSC)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2012년, 2013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사전 탐사를 진행했다. 이번 탐사의 목표는 수심 420m와 740m에 위치한 진흙화산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일이었다.
이번 탐사에는 아라온호의 다양한 탐사 장비와 MBARI의 첨단 무인 해저탐사장비가 동원됐다. 진흙화산이 지하 어디에서부터 올라왔는지 알기 위해 아라온호의 다중채널탄성파장비를 이용해 해저 약 5km 깊이까지 지층단면도를 작성했다.
지층단면도를 보면 다른 곳과 달리 420m 깊이의 진흙화산 하부는 반사층이 보이지 않고 하얀 굴뚝처럼 나타난다(위 사진). 그 이유는 진흙에 가스가 가득 차 있어 반사 신호를 대부분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진흙화산 내에서는 반사신호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지층단면도를 보니 약 3km 아래까지 뿌옇게 보였다. 즉, 이 진흙화산은 해저면 지하 약 3km쯤에서 시작됐다는 의미다. 화산 내부 가스는 물에 분출되기도 한다. 수중음향탐지기 화면에는 해저 진흙화산에서 바닷물로 뿜어져 나오는 메탄가스가 해수면까지 도달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포착되기도 했다.
AUV로 지형 조사, ROV 내려 보내 시료 채취
바다 위에 떠 있는 연구선에서 어느 정도 탐사를 마치면, 바다 밑으로 무인 해저탐사장비를 내려 보낸다. 정밀탐사를 하기 위해서다. 비록 사람이 직접 바다 아래로 내려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무인장비가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진흙화산의 상세한 지형을 조사하고 영상에서 확인된 해저의 시료를 채취한다.
이번 탐사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해저탐사 기술을 가진 MBARI의 두 가지 무인탐사장비가 사용됐다. 바로 자율해저탐사정(AUV)과 원격조정탐사정(ROV)이다.
AUV는 길이 6m로 어뢰처럼 생겼다. 한 번에 최대 20시간까지 스스로 잠수해 항해하면서 해저 지형 탐사를 수행한다. 우리는 AUV를 내려 보내 해상도 1m급 해저 지형 자료와 해저면 지질 정보를 얻었다. 연구선에서 얻을 수 있는 해저 지형 자료보다 해상도가 10배나 높다.
ROV는 연구선과 케이블로 연결돼 바다 위에서 조종할 수 있는 장비로, 해저에서 시속 약 4.63km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번 탐사 지역은 수심이 깊지 않아 해저 1500m까지 내려갈 수 있는 ‘미니 ROV’를 이용했다. 이 ROV에는 고해상도 비디오카메라, 로봇 팔, 온도 및 깊이 측정 센서, 퇴적물 시료 채취 장비, 다양한 연구시료를 담을 수 있는 상자들이 장착돼 있다.
아라온호의 조종실에서 숙련된 MBARI 기술자들이 미니 ROV에 달린 카메라를 이용해 생생한 해저 영상을 보면서 원격으로 조종했다. 원하는 암석이나 퇴적물, 생물이 있으면 바로 로봇 팔을 이용해 시료를 채집했다.
시료에서 가스하이드레이트 발견
수심 420m에 있는 진흙화산은 정상부가 매우 평탄한 원통형 지형으로, 지름이 1.1km, 높이는 약 10m에 이르는 큰 진흙화산이다. 반면 수심 740m에 위치한 진흙화산은 지름 3km의 움푹 파인 지형에 3개의 작은 진흙화산이 모여 있는 진흙화산군이다. 남쪽에는 약 500m의 지름을 가진 원통형 진흙화산이 발달해 있고, 북쪽에는 원뿔 형태의 진흙화산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는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진흙화산이 있다.
ROV가 보내온 영상에는 마치 생물이 호흡하는 것처럼 원뿔 진흙화산이 주기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진흙화산이 세차게 끓어오르면서 분출하는 장면은 이번 ROV 탐사의 하이라이트였다. 바로 위 수층의 온도는 0도로 매우 차가웠지만, 로봇 팔을 이용해 측정한 진흙화산 표층의 지온은 25도였다.
낮에는 ROV와 AUV로 탐사를 진행하고, 밤에는 아라온호 선상 장비를 이용해 진흙화산의 해저퇴적물과 해수 시료를 채취하고 지열을 측정했다. 420m 진흙화산 중심부에서 얻은 첫 번째 시료 상자 안에는 진흙 사이에 하얀색의 얇고 딱딱한 가스하이드레이트 조각이 박혀있었다.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가스하이드레이트는 높은 압력과 낮은 온도에서 가스와 물이 결합돼 만들어진 고체 에너지로,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격자 구조 안의 빈 공간에 메탄이나 이산화탄소처럼 작은 기체 분자가 결합된 상태다. 상자가 표층을 뚫고 들어가는 깊이가 60cm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 가스하이드레이트는 진흙화산 안에서 올라온 메탄가스가 해저면 표층에서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진흙화산과 지구온난화의 관계
진흙화산에서는 막대한 양의 메탄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의 약 25배에 해당하는 온실효과를 가진 강력한 온실가스다. 전 세계의 진흙화산에서 방출되는 메탄의 총량은 자연에서 대기 중으로 들어가는 메탄 총량의 3~5%로 추정된다. 진흙화산에서 배출되는 메탄이 지구온난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요소로 꼽히는 이유다.
진흙화산은 가스하이드레이트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가스하이드레이트 한 조각에는 그 부피의 약 160배에 이르는 메탄이 들어있다. 가스하이드레이트가 상온에서 녹으면 막대한 양의 메탄을 방출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지구온난화의 시한폭탄’이 된다. 진흙화산의 위치를 빨리 파악하고 지형을 탐사해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북극은 지구상에서 온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북극해의 경우 이전에는 바다얼음에 덮여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탐사가 가능해지면서 해저 지질 현상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륙붕에서는 얼어있던 해저동토층과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녹아서 메탄이 대량 방출되고 있으며, 대륙사면에서는 대형 진흙화산들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 연구팀은 아라온호를 타고 보퍼트 해, 척치 해, 동시베리아 해에서 북극 해저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 2017년 9월 13일, 점차 다가오는 바다얼음 무리를 뒤로 하고 아라온호는 탐사 지역을 떠났다. 이번 탐사에서 얻은 진흙화산에 대한 새로운 숙제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 2019년 연구팀은 다시 보퍼트 해를 찾을 것이다.
진영근_ykjin@kopri.re.kr
극지연구소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극지해저환경과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연구하고 있다. 매년 여름 북극해에서 수행하는 아라온호 국제공동연구탐사의 수석연구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