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는 공을 빠르게 던지는 것이 관건이다. 타자의 경우도 공을 빠르게 내쳐야 한다. 하지만 투수나 타자나 공을 선택할 권한은 없다. 만약 투수와 타자가 선택권을 가진다면?
무게 1백40여g, 지름 7.23cm 정도인 야구공은 코르크나 고무로 만든 작은 심에 실을 감은 후, 흰색 말가죽이나 쇠가죽 두장을 붉은 실로 꿰매어 만든다. 야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실밥이다. 야구공 표면에는 1백8번이나 꿰맨 실밥이 있어서 표면이 매끄럽지 않다.
야구공 표면의 실밥은 단순히 공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에 불과할까. 혹시 기술의 발달로 실밥 없이 매끈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얼핏 생각해서는 표면이 매끄러울수록 공기저항을 덜 받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실밥을 넣어 표면을 거칠게 해야 공기저항을 적게 받아 더 멀리 날아간다. 야구공의 실밥은 공이 날아가는 동안 공기와의 저항으로 공 표면에 종이장 정도 두께의 얇은 막, 즉 거친 표면으로 인해 교란된 얇은 공기층을 만든다. 공이 회전하면서 이 막도 회전하게 되는데, 결국 야구공이 날아가면서 받는 저항은 실제 공 표면이 아닌 이 교란된 공기층과 공기의 마찰로 인한 것이다.
타자에게 공을 선택하라면?
이는 실제 공 표면과 공기와의 마찰로 인한 것보다 저항을 훨씬 줄여주기 때문에 공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이같은 원리로 골프공의 표면에도 딤플이라는 작은 홈이 많이 파여있는데, 공의 비거리를 길게 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고안한 것이다. 딤플이 있는 공이 2백야드(약 1백80m) 이상을 날아가는 반면, 똑같은 공인데 딤플이 없을 경우는 50야드 밖에 날아가지 못한다.
때문에 투수들은 좀더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공에 흠집을 내거나 첨가물을 붙여서 가능한 표면을 더 거칠게 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반칙이다. 만약 투수에게 공에 어떤 흠집을 내거나 첨가물을 붙여도 된다면 지금보다 더 빠른 공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지만 표면 공기층의 저항 감소 효과는 언제나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시속 2백20km의 속도를 기준으로 이보다 느린 속도에서는 공기 저항의 감소 효과가 있고 더 빠른 속도에서는 표면이 매끄러워야 저항이 작다. 예를 들어 로케트 표면은 매끄럽다. 하지만 야구공이 시속 2백km 이상의 속도를 낼 리는 없으므로 야구공의 실밥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투수가 타자에게 치고 싶은 공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타자는 어떤 공을 선택할까. 어떤 공이 타자에게 유리한 공일까. 야구공을 단단한 바닥에 떨어뜨리면 야구공은 원래의 높이만큼 튀어 오르지 않는다. 물체가 얼마나 잘 튀는지를 나타내는 정도를 탄성계수라고 하는데, 야구공은 탄성계수가 약 0.5 정도다. 이 정도 탄성에서 바닥으로 공을 가만히 떨어뜨리는 경우 공은 떨어진 지점보다 약 4분의 1의 높이만큼 되튀어 오른다. 즉 약간 손실이 큰 용수철인 셈이다.
만약 투수가 타자에게 치고 싶은 공을 고르라고 한다면, 타자는 그냥 단단한 바닥에 떨어뜨려보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할 투수는 없겠지만…. 방망이를 맞았을 때 잘 튀는 공이 멀리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공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튀어오르는 정도가 달라진다. 습도는 공 속에 감긴 모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만약 온도가 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공을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바닥에 튀겨보자. 튀어오르는 정도가 상당히 작아진다. 어쨌든 가장 타자에게 중요한 사실은 타자는 공을 선택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어제의 공보다 오늘의 공이 좀더 잘 튀기를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방망이 무게냐 휘두르는 속도냐
투수의 공을 타자는 방망이로 맞선다. 타자에게 공은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방망이의 경우는 다르다. 한때 야구방망이가 부정방망이냐 아니냐에 대한 해프닝이 있었을 만큼 좋은 야구방망이의 선택은 타자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한국야구위원회가 지정한 프로선수용 방망이는 길이가 1백6.7㎝ 이하, 지름 7㎝ 이하로 제한돼 있으며, 한개의 목재로 만들어져야 한다. 무게는 약 9백g 정도다. 사실 타자들에겐 방망이의 무게말고는 다른 선택권이 없다. 그렇다면 방망이는 무거울수록 좋을까, 아니면 가벼울수록 좋을까. 어떤 타자는 아마 멀리 칠 욕심에 아주 무거운 방망이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가능한 가벼운 것을 고르라고 권하고 싶다. 방망이가 무거울수록 공이 약간 더 많이 튄다. 하지만 무거운 방망이는 휘두르기 힘들어 휘두르는 속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설령 방망이 무게를 9백g에서 1천8백g으로 2배 늘린다고 해도 친 공이 튀는 정도는 1/3 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방망이 무게를 약간만 줄여도 휘두르는 속도가 시속 80km에서 시속 1백30km로 변한다. 즉 너무 무거운 방망이는 득보다 실이 많은 셈이다.
미국 야구의 전설이 된 베이비 루스는 1.2kg의 야구방망이를 썼다. 때문에 무거운 야구방망이가 공이 더 멀리 날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야구 선수들은 무게보다는 빠른 스윙이 공을 멀리 날려보내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발견하고는 무게를 줄였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마크 맥과이어는 약 9백g의 방망이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