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오이드는 아편(opium)을 원료로 하는 유서 깊은 진통제다. 아편은 수천 년 전부터 의료용과 향략적인 목적으로 사용돼 왔다. 대표적인 물질이 모르핀이다. 모르핀은 1800년대 초 독일의 화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약용식물에서 추출한 최초의 진통 물질이었다.
오늘날 오피오이드는 모르핀 같은 천연 아편제제뿐 아니라 유사한 작용을 하는 합성 약물을 통칭한다. 코데인, 펜타닐, 히드로코돈, 옥시코돈 등 국내에서는 16개 성분이 유통되고 있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다.
WHO, 3단계 진통제 사다리 지정
그러나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오피오이드를 처방하는 것은 아니다. 오피오이드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시한 3단계 진통제 사다리에서 상위에 속한다. 1단계로 비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고, 그 다음 2, 3단계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한다. 이 때에도 최저유효용량, 최단기간 기준을 적용해야 하며, 주로 수술 환자나 암 환자에게 처방된다.
1단계 진통제는 우리가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다. 대표적인 성분이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아세트아미노펜이다. 이들은 다시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같은 비스테로이드 소염제(NSAIDs₩엔세이드) 계열과 엔세이드 계열이 아닌 것(아세트아미노펜)으로 나뉜다. 엔세이드 계열은 소염 기능이 있고, 아세트아미노펜은 소염 기능이 없다.
진통제 성분은 다양한 이름의 제품으로 판매된다. 하나의 성분이 여러 제품에 중복 사용되고(타이레놀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게보린, 펜잘, 판피린큐에도 들어있다), 하나의 제품에 3~4가지 진통제 성분이 들어가기도 한다.
타이레놀과 아스피린, 통증 억제 방식 달라
진통제의 기능, 효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통증 경로를 먼저 알아야 한다. 통증은 몸의 각 조직에 있는 감각신경섬유로부터 전달된다. 감각신경섬유는 유해한 자극(심한 압박, 온도 변화, 전기 충격, 자상, 화학적 자극, 염증 등)을 전달하는데,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A 베타’ 섬유는 일상적인 압력 변화를 빨리 감지한다. 두 번째로 ‘A 델타’ 섬유는 강한 압력이나 온도 변화에 빠르게 반응한다. 마지막 ‘C’ 섬유는 압력, 화학물질, 온도 변화에 천천히 반응한다. 새끼발가락이 가구 모서리에 부딪쳤을 때, 처음의 날카로운 고통은 A 섬유가, 그 뒤의 묵직한 아픔은 C 섬유가 전달한다.
C 섬유는 화학적 자극으로 인한 통증도 전달한다. 한 예로 상처나 감염이 생겼을 때 세포가 파괴되면 세포막을 형성하는 인지질에서 ‘프로스타글란딘(PG)’이라는 생리 활성 물질을 만들어낸다. 프로스타글란딘은 C 섬유 말단이 통증 자극에 민감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열이 난다. 프로스타글란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사이클로옥시지네이스(COX·Cyclooxygenase)’라는 효소가 큰 역할을 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수많은 진통제는 이런 통증 경로를 각기 다른 방법으로 공략한다. 아스피린 같은 엔세이드 계열 진통제(소염·해열 진통제)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합성을 저해해 통증을 억제한다. COX 효소의 작용을 전체적으로 억제해 소염 작용을 하기 때문에, 염증을 동반한 통증이나 관절통, 피부 전이 및 뼈 전이 통증에 많이 쓰인다.
그런데 프로스타글란딘은 통증뿐만 아니라 체내에서 위벽을 보호하고, 혈액을 응고하고, 소변량을 유지하는 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엔세이드 계열의 진통제를 먹으면 이 모든 기능에 약간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즉, 속이 쓰리거나 위 점막에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투여량 이상으로 증량해도 ‘천장효과(ceiling effect)’ 때문에 진통 작용은 증가하지 않고 부작용만 늘어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반면 아세트아미노펜(해열 진통제)은 똑같이 COX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데, 중추신경계를 통해 억제한다는 점이 다르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프로스타글란딘의 화학적 신호 전달 물질로서의 역할은 억제하지 않는다. 소염 대신 해열, 진통에 주로 효과가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장기간 과다 복용 시 심각한 간기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천장효과는 동일하다.
오피오이드는 마치 엔돌핀인 척 이런 수용체에 결합해 감각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의 흥분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오피오이드(엔돌핀)가 작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척수에서 수용체와 결합, 신경을 억제해 뇌로 전달되는 통증전달물질 분비를 줄인다. 둘째는 뇌 간의 수도관주위 회색질(periaqueductal gray)이 관여하는 진통 조절에 영향을 준다. 수도관주위 회색질에서 내려온 신경은 솔기핵을 활성화시켜 솔기핵이 척수 부위에 세로토닌을 분비하도록 한다.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은 척수-뇌의 통증 시스템에서도 신호전달물질로 쓰인다. 농도가 증가하면 통증 신호를 억제한다. 오피오이드는 이렇게 뇌간에서 하강하는 통증 조절 경로에 끼어든다.
오피오이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만큼 진통 효과가 강력하다. 수술 후의 통증이나 암으로 인한 심각한 통증, 근골격계의 만성 통증 등에 처방된다. 오피오이드 중 디히드로코데인은 진해거담제로도 사용된다.
※ 진해거담제: 기침, 가래 등의 치료에 사용하는 약물. 디히드로코데인을 함유한 복합제는 12세 미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오피오이드, 내성과 의존성 생겨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환자에게 요구되는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은 개인마다 다르다. 한 예로 암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필요한 모르핀 양은(하루, 경구투여 기준) 통상 30~180mg이지만, 약 1%의 환자에서는 이것이 1000mg을 넘길 수도 있다.
의사의 처방 하에 적정량 복용하면 진통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자칫 과다 복용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오피오이드는 진정 효과가 뛰어나 환자가 통증을 덜 느끼게 하고 환경에 대한 민감성을 낮춘다. 그러나 진정 효과가 지나치면 체온과 혈압이 낮아지면서 무의식 상태로 넘어간다. 심한 경우 호흡이 거의 사라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내성과 의존성도 문제다. 미국에서 오피오이드로 사망한 사람들 대부분은 처방 진통제나 헤로인 같은 불법 오피오이드 남용이 원인이었다. 오피오이드를 남용하게 되는 이유는 내성과 의존성 때문이다.
내성이 있는 약물은 반복적으로 사용할수록 약물 효과가 떨어진다. 더 많은 양을 찾거나 유사한 작용을 내는 대체 약물을 찾게 된다. 의존성을 가진 약물은 투약을 중단하면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오피오이드의 경우 불쾌감, 우울감, 공포, 혈압상승, 동공 확장 등 신체 반응을 보인다. 내성과 의존성은 중추신경계를 강하게 자극하는 마약성 진통제를 규칙적으로 오랫동안 먹었을 때 나타나는 특성이다. 흔히 접하는 고혈압 약이나 1단계 비마약성 진통제는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의학계에서는 오피오이드를 처방할 때 복용량과 복용기간을 세심하게 조절하고 있다. 복용량은 오피오이드를 포함한 모든 진통제를 섭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가령 국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1단계 비마약성 진통제에도 복용량 제한이 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은 약국에서 구입하는 약보다 용량이 적다. 1일 분량을 기준으로 포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월 20일 ‘영국의학저널(BMJ)’에는 오피오이드의 경우 복용량보다는 복용기간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이 2008~2016년 수술 후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투여 받은 환자 56만 명을 분석한 결과, 0.6%가 의존성과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했고 처방기간이 일주일 늘어날 때마다 이런 증상을 겪은 확률은 20%씩 증가했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중추신경계를 강하게 자극하는
마약성 진통제는 장기간 사용하면 내성과 신체적 의존성이 생긴다.
부작용 대비 효용이 클 때만 사용해야 약이 독이 되지 않는다』
반면 환자가 복용한 약물의 양이 의존성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적었다. 복용량만 보면 부작용이 다른 환자의 두 배 이상인 환자들도 2주 이내로 단기 복용할 경우 특별히 더 많은 부작용을 겪지 않았던 것이다. 연구팀은 단, 이 같은 양을 9주 이상 복용할 경우 부작용 위험이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오피오이드 병용 우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마약성 진통제 사용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권경희 동국대 약대 교수팀이 2014년 ‘약학회지’에 발표한 ‘단일 상급종합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의 최근 13년간 사용 경향 조사’ 논문에 따르면 2000년도에는 그 경향이 120.5DDD/1000-HS였던 반면, 2012년에는 197.7DDD/1000-HS으로 64.1% 증가했다.
※ DDD/1000-HS: 세계보건기구(WHO)의 DDD(성인의 주적응증에 사용하는 약물 용량) 기준을 입원기간으로 나눈 것이다. 120.5DDD/1000-HS는 입원한 환자 1000명 중 120명이 하루 동안 성인용량으로 약물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환자마다 오피오이드 사용량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용 총량으로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량 자체가 많은 것은 아니다. 국제마약통제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의 오피오이드 사용량은 전세계 평균에 비해 매우 낮다. 김재환 고려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교수는 “마약성 진통제가 질병의 회복 속도를 더디게 한다거나, 중독성이 생기게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급성 통증이나 암성 통증에 오피오이드를 적게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부적절한 치료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오피오이드 병용 부작용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에서 오피오이드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 또는 오피오이드와 중추신경계 억제제를 병용할 시 호흡곤란, 사망 등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추가로 나왔기 때문이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불안, 불면증 치료, 중추신경계 억제제는 수면제, 근육이완제 등으로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약물과 오피오이드와 병용하는 사례가 느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6년 9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오피오이드인 펜타닐과 히드로모르폰 등 2개 제제를 다른 약물과 병용할 때, 단독 사용하는 경우보다 더 낮은 초기용량을 처방하고, 임상 반응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한다는 안정성 서한을 발표했다. 김광현 식품의약품안전처 대외협력실 주무관은 “오피오이드에 대한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연구결과를 지속적으로 관찰조사하고 있다”며 “필요 시엔 국내에서도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안전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