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출현하기 전에 사라진 공룡. 지금으로부터 6천5백년 전까지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에 대한 관심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을 한번 생각해보자. '공룡은 과연 지구 전역에 퍼져 있었을까.'
공룡이 전시된 자연사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면 공룡이 번성했던 중생대 백악기(1억4천만년-6천5백만년 전) 당시 티라노사우루스나 트리세라톱스 등과 같은 친근한 공룡이 지구 전역에 살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 자연사 박물관의 데일 러셀은 이같은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약 2억년 전인 쥐라기 초기 이후 지구 전역에 퍼진 공룡 식생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러셀과 미국 지질연구소에서 일하는 그의 동료 토마스 홀츠에 따르면 뿔달린 공룡이나 티라노사우루스, 앵키로사우루스, 하드로사우루스 등은 미 대륙 서북부와 동아시아에만 살았다. 두 사람은 전세계 여러 곳에 존재했던 다양한 공룡종 가운데 10% 미만만이 발견된 것으로 파악한다.
미대륙 서북부의 공룡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많은 화석이 발굴된데다 보존 상태도 좋아 집중적으로 연구돼 왔다. 고생물학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종류의 것들은 백악기 당시 널리 퍼져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다.
그러나 두 연구자는 이 같은 가설에 대해 백악기 중기에 미대륙 서북부는 고립된 대륙이었음을 지적하며 반박한다. 이 대륙은 마치 현대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마찬가지로 그 크기와 고립으로 인해 거대한 몸집의 브론토사우루스와 같은 공룡들은 절멸한 대신 많은 특이종들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홀츠의 연구는 어떻게 공룡족들이 연관돼 있는가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들은 브론토사우루스처럼 도마뱀 발을 가진 공룡족(sauropod)이 지구 전역에서 발견되면서도 유독 북미대륙에서만 발견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공룡을 북미와 동아시아에 식생하는 '아시아메리카'와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 호주 인도 남미에 식생하는 '유로곤드와나'의 두 종류로 구분했다. 그리고 그는 "아시아메리카공룡군은 중국을 기원으로 하며 그들은 백악기 초기 베링해가 북미와 중국의 다리가 됐을 때 미대륙 북서부로 이주했다. 이때 뿔이 세 개 달린 트리세라톱스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공룡이 나타나 전 아시아 지역에 퍼졌다"는 가설을 세웠다.
한편 러셀은 대륙이동과 함께 어떻게 한 지역 내의 동물들에게서 다양성이 일어났는지를 연구했다. 공룡은 대부분의 대륙이 판게아라 불리는 거대한 땅덩이에 하나로 붙어있을 때 등장했다. 그러나 이 초대륙은 쥐라기에 쪼개졌다. 그리고 백악기에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이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북미의 멕시코만에서 캐나다 인접 북극에 이르는 바다는 당시 형성된 것이다.
쥐라기 때 중국은 판게아로부터 고립된 첫번째 지역이었고 그 뒤 북미대륙이 고립됐다. 러셀은 중국에서 화석발굴작업을 벌인 결과, 그곳의 공룡이 쥐라기 중엽부터 백악기 초기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시기에 뿔달린 공룡이나 티라노사우루스, 초기 하드로사우루스 등 아시아의 공룡은 베링해를 통해 북미 대륙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최근 북미에서 나온 공룡화석을 분석해보면 유럽과 이외의 지역은 다른 지역의 백악기 공룡들과 확실히 차이점을 나타낸다. 러셀의 설명은 어떻게 공룡족(族)이 남쪽 대륙이 찢어짐에 따라 나누어졌는가를 보여준다. 백악기 세계는 육중한 무게를 지닌 도마뱀발족이 북미 대륙이외의 지역을 지배했다. 도마뱀발족의 화석은 최근 남극대륙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 종류의 공룡이 북미대륙에 비로소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백악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으며 그들은 아마도 남미쪽에서 이주해 왔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주장은 수많은 '공룡설'에 한가지를 덧붙이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룡에 대한 변화된 새 관점은 새로운 차원의 수많은 공룡책을 등장시킬 것이며, 결국 언젠가는 가장 합당한 공룡론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