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털 어떻게 생길까?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멘델의 유전법칙’을 기억할 겁니다. 멘델은 녹색과 황색 완두콩을 서로 교배시키면 1대에는 모두 황색 콩만 생기고, 이것들끼리 다시 교배시키면 2대에는 황색 콩과 녹색 콩이 3대 1의 비율로 나타난다는 것을 실험으로 밝혔습니다. 미리 말해두지만 개의 털 색깔이 완두콩처럼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유사한 경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멘델이 주목했던 것은 대립 형질이었습니다. 개 역시 세포마다 39개의 염색체 쌍을 가지고 있고, 몇몇 부위에 털 색깔을 결정짓는 대립 유전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컷(아빠 개)으로부터 다른 하나는 암컷(엄마 개)으로부터 온 것이죠.
완두콩에 녹색과 황색이라는 형질이 있다면, 개에게는 검은색 멜라닌 색소(유멜라닌·eumelanin)와 붉은색 멜라닌 색소(페오멜라닌·pheomelanin)가 있습니다. 털이 자라는 동안 모낭 속 멜라닌 세포가 어떤 색소를 얼마나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털 색깔이 결정됩니다. 당연히 유멜라닌이 많으면 털 색깔이 어둡습니다. 여기까지는 쉽습니다.
그러나 유멜라닌이 생성되는 양은 여러 가지 유전자의 영향을 받아 아주 복잡하게 달라집니다. 검은색을 내는 유멜라닌이 적게 만들어지면 개의 털이 갈색, 회색, 푸른색, 엷은 갈색 등으로 미묘하게 바뀌죠. 수채화를 그릴 때 먹에 물을 섞어 색을 표현하듯, 유전학에서도 이런 현상을 ‘희석(dilu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페오멜라닌 색소는 주황색, 황금색, 황색, 황갈색까지 다양한 붉은색을 연출합니다. 유전자는 이런 페오멜라닌의 강도를 조절해 색상을 진하게 만들기도 하고 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참고로 페오멜라닌 색소는 털 색깔에만 영향을 주지만, 유멜라닌 색소는 개의 눈과 코의 색깔에도 영향을 줍니다. 코에서 유멜라닌 색소가 생성되지 않으면 코가 분홍색을 띠고, 눈에서 생성되지 않으면 눈이 파란색을 띱니다.
정리하면, 개의 황금색 털은 염색체에 있는 다양한 유전자들이 검은색 유멜라닌과 붉은색 페오멜라닌의 농도를 각각 바꿔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털 색깔과 패턴, 모질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좌(자리)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총 8군데인데, 각각의 유전자가 유멜라닌과 페오멜라닌에 미치는 영향이 또 달라서 매우 다양한 황금색 스펙트럼이 연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확률 상 황금색 털이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한국 전통개는 흰 털이다?
청와대와 백악관을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대다수가 개를 키웠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로 반려견 만한 상대가 없었던 걸까요. 이들을 ‘퍼스트 독(first dog)’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의 퍼스트 독은 유독 흰 털을 가진 한국 고유 품종이 많았습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흰 진돗개 한 마리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구 두 마리를 키웠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에서 태어 난 크림 색깔 풍산개 두 마리를 키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선물로 받은 진돗개 역시 우유빛깔이었고요. 문재인 대통령은 흰 풍산개를 키우면서 검은 털을 가진 믹스견을 입양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쯤 되면 전통개는 흰 털을 가져야 순수한 혈통일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백구를 선호하는 정서 탓이지 과학적으로 큰 이유는 없다고 합니다. 진돗개의 털 색깔도 실은 9가지나 됩니다.
전통개의 유전자 연구는 이제 막 시작단계입니다. 2013년에는 한국의 전통개들이 해외 견종보다 유전적 독창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셰퍼드, 리트리버 등 해외 대표 견종은 이형접합률이 50% 미만인 데 비해, 진돗개는 이형접합률이 61%, 경주개는 70%, 풍산개는 57%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형접합이란 양쪽 부모로부터 서로 다른 형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을 뜻하는데, 이형접합률이 높을수록 해당 품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고 아직 고정되지 않아 개량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의 전통개가 해외의 다른 개들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습니다. 2017년 11월 28일 최봉환 농촌진흥청 동물유전체과 농업 연구사 등 공동연구팀이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 ‘한국 전통개의 다양성과 조상에 대한 게놈 연구’에 따르면, 한국 개의 유전적 다양성은 유럽 개는 물론이고, 인근 아시아 지역의 개들보다 높았습니다. 단적으로 흰 털을 가진 천연기념물 경주개 동경이는 진돗개, 풍산개와는 완전히 다른 유전자 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doi: 10.1371/journal.pone.0188676
그러나 한국 전통개의 유전적 다양성은 최근 들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근친 교배 때문인데요. 최 연구사는 “유전적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한국의 전통개들이 멸종할 수도 있다”며 “개체군을 증가시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개는 황금색을 못 본다?
흔히 개는 흑백만 볼 수 있는 색맹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빛깔의 털을 가졌다고 해도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한다는 뜻이죠.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개가 ‘완전히’ 색맹은 아니거든요.
개는 사람으로 치면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적녹색맹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색상을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색을 원래 색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예를들어 빨간색은 개의 눈에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보입니다. 또 개의 눈에는 노란색뿐만 아니라 주황색, 초록색도 모두 노르스름하게 보입니다. 동네의 웬만한 개는 다 황금 개로 보는 셈입니다. 개는 파란색을 잘 구별하지만 자주색 역시 파란색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황구가 백구보다 사납다?
이건 뭐, 백구를 팔아넘기기 위해 개주인이 퍼뜨린 소문이 아닐까요? 찾아보니 백구나 황구와 달리 검은 털을 가진 흑구나 네눈박이 진돗개가 공격성과 지배욕이 강하다는 소문도 있더군요. 하나같이 과학적인 근거가 희박합니다.
다만 털과 질병과의 연관성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멜라닌 색소를 결정짓는 유전자는 털 색깔뿐 아니라 눈 색깔, 시력, 눈의 형성, 청력 등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개 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니지만 털 색깔이 감각 신경성 난청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개, 고양이, 말, 라마, 알파카 등 종에 관계없이 신경성 청각 장애를 가진 동물들의 털에서 공통적으로 흰색 반점이 여러 개 관찰됐습니다.
말의 경우에는 멜라닌 세포가 선천적인 정지 야맹증과 돌연변이로 흰 털을 가진 새끼가 생후 24시간 내 사망하는 백색치사증후군(Lethal white foal syndrome)과도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Can Vet J. 2010 Jun; 51(6): 653-657). 요즘은 유전자 검사가 워낙 발전해서 털 색깔 정도는 태어나기 전에 미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