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몸속 나노로봇, 돌돌 말리는 디스플레이 가능하려면

21세기 과학기술의 빛



인간의 몸속에서 혈관을 따라 흐르며 암세포를 무찌르는 초소형 나노로봇, 두루마리 휴지처럼 돌돌 말리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대단한 기술이지만 더 이상 새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것들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상상해온 기술이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매일 같이 나노 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소재가 개발돼 이러한 상상이 곧 현실이 될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제품이 나오기까지 앞으로도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왜일까.

나노 소자로 실제 트랜지스터 개발

“나노 소자의 특성을 알아도 그것으로 실제 회로를 구현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잘 작동하던 소자들이 몇 개를 연결시키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이탁희 교수는 나노 기술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성과들이 실제 제품에 적용되기 힘든 이유를 이처럼 설명했다. 이 교수팀은 현재 굵기가 수nm(나노미터, 1nm=10-9m)에서 수십nm인 산화아연 극미세선(나노선)과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초소형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이것을 여러 개 연결해 실제 부품처럼 작동할 수 있도록 논리회로를 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트랜지스터는 전류나 전압을 조절해 스위치나 증폭기 역할을 하는 전자소자로 거의 모든 전자제품의 기본이 되는 부품이다. 나노 소재를 이용해 트랜지스터를 만들면 일반 실리콘 소재로 만들 때보다 훨씬 작고 빠르게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 대신 이런 트랜지스터는 원하는 대로 작동하도록 제어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0~5V 전압을 걸어줬을 때 전원이 켜지고 작동하는데, 나노 소재로 만든 트랜지스터는 켜지는 전압이 일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압을 걸어 원하는 만큼 전류를 흘리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이 교수팀은 초속 5만km 속력으로 양성자가 튀어 나오는 10MeV(메가전자볼트, MeV=106eV)의 양성자 빔을 쪼여 트랜지스터에 흐르는 전류의 양을 조절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강한 양성자 빔을 산화아연 나노선으로 구성된 트랜지스터에 쪼이면, 트랜지스터 경계면에 불순물이 생기면서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원리였다.



연구팀은 또한 트랜지스터 여러 개를 조합해 논리곱(AND), 논리합(OR), 부정(NOT) 등과 같은 신호를 처리할 수 있는 논리회로를 구현했다. 연구 결과는 의료, 우주과학기술 분야에서만 주로 사용되던 양성자 빔을 나노전자소자 분야에 활용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아 재료공학분야 국제학술지인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 6월 5일자 표지논문으로 소개됐다.

자유롭게 휘는 메모리도 가능

불과 3주 뒤인 6월 26일자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에는 이 교수팀의 연구성과가 또 한 번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이번엔 유기 물질을 이용해 젤리처럼 휠 수 있게 메모리 소자를 만든 연구였다. 연구팀은 실리콘으로 만든 트랜지스터에 폴리풀루오렌 계열의 유기 물질을 코팅해 유기 메모리 소자를 제작했다. 이 메모리는 일반 메모리와 달리 비휘발성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모리 소자는 트랜지스터와 커패시터를 연결해 만든다. 메모리 소자는 걸어주는 전압에 따라 커패시터에 전하가 쌓이고 방전되는 양을 기록한다. 커패시터는 전하가 방전되는 속도가 빨라 일정한 전압이 계속 가해져야만 전하(정보)가 유지된다. 따라서 커패시터로 구성된 메모리는 전압이 차단되면 저장했던 정보가 지워지는 휘발성 메모리다.



그런데 연구팀이 만든 유기 메모리는 소재 특성상 한번 전하가 쌓이면 그 상태가 쉽게 변하지 않아 전원을 차단해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 즉 비휘발성 메모리다. 유기 메모리는 가격이 저렴하고 구조가 간단하며 저온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어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이 플렉시블 유기 메모리를 개발하는 데는 꼬박 1년이 걸렸다. 이 교수는 “여러 개의 유기 메모리 소자를 무기 소자인 트랜지스터와 연결해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시행착오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는 트랜지스터도 유기 물질로 만들어 완전히 구부리거나 접을 수 있는 부품을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교수에게 나노 소자와 플렉시블 메모리처럼 서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연구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두 연구 모두 원하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는 소재를 찾는 연구”라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물리(반도체), 전자(전자 회로), 재료(유기 물질) 같은 학문에 골고루 관심을 가져야 새로운 소재가 눈에 더 잘 띈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광주=이영혜 기자 · 사진 김인규

🎓️ 진로 추천

  • 신소재·재료공학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