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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폴더블폰, 그분이 오신다

 

4대 핵심기술 분석

 

벌써 4년째다. 연말이면 마치 양치기 소년처럼 “내년엔 ‘그 분’이 오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그 분은 오시지 않았고, 2017년 말에도 어김없이 소문만 무성했다. 화면이 접히는 스마트폰, 이른바 ‘폴더블폰’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인 것 같다.

 

 

 

2018년 폴더블폰 출시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2017년 일부 업체가 폴더블폰 시제품을 내놨기 때문이다. 중국의 레노버는 반으로 접었을 때 한 손에 들어오는 태블릿PC ‘폴리오’를 2017년 7월 공개했다. 폴리오는 화면 크기가 7.8인치로 일반 태블릿과 다름없다. 하지만 화면을 접으면 5.5인치로 작아진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8’보다 작은 크기다. 시제품을 선보인 뒤 아직까지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폴더블폰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알렸다.

 

두 달 뒤인 9월에는 세계 스마트폰 판매 1위인 삼성전자의 고동진 IM(IT모바일) 부문장(사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갤럭시노트8 출시 간담회에서 “내년 무선사업부 로드맵에 폴더블 스마트폰이 포함 돼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당시 그는 “상품화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몇 가지(문제)가 있다”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변이 없는 한 2018년에는 폴더블폰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제조 기술이 가장 앞서있는 삼성에서 폴더블폰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삼성이 내놓을 폴더블폰은 어떤 모습일까.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소장(부사장)을 지낸 김학선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에게 들어봤다.

 

 

폴더블폰의 열쇠‘ 폴더블 디스플레이’


“폴더블폰이라는 말은 제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2009년 플렉시블(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폴더블폰을 만들기 위한 기술도 이미 완성됐습니다.”

 

2016년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소에서 나와 2017년 UNIST 교수로 부임한 그는 폴더블폰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한 기술은 이미 모두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화면이 접히는 폴더블폰을 만들려면 그 안에 들어가는 메모리 칩과 회로,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여기에 배터리까지 모두 휘어져야 하지 않을까.

 

김 교수는 “폴더블폰은 정해진 일부 부분만 접는 형태여서 디스플레이만 접을 수 있게 만들면 된다”며 “배터리 등의 부품은 접히지 않는 부분에 배치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폴더블폰 출시의 열쇠는 디스플레이를 접었다 펼 수 있게 양산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폴더블폰을 양산하기 위한 기술 개발 과정 전반을 이끌었다. 현재는 안정성과 성능을 향상시켜 시장에 출시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처음 목표는 접었다 펴기를 10만 번 반복해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이었는데, 40만 번까지 요구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접히는 부분의 반지름(둥글게 말리는 부분을 원으로 가정할 때 )도 초기에는 5mm 수준이었는데, 연구 개발을 거듭해 현재는 1mm까지 줄었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히 접히는 상태가 된다.

 

최초의 폴더블폰은 어떤 모습일까. 김 교수는 “폴더블폰의 첫 단계는 현재의 스마트폰을 위아래로 접는 형태와 태블릿을 좌우로 접어서 크기를 줄인 형태가 유력하다”고 예상했다.

 

 

1. 폴더블폰 핵심기술

 

유리만큼 단단한 필름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핵심 기술은 크게 네 가 지다. 첫째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의 최상층에 쓰이는 단단한 유리를 대체할 재료다. 투명하고 휘어질 뿐 아니라 유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경도(단단함)가 높아야 한다.

 

이를 위해 등장한 재료가 휘어지는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이다. 폴리이미드는 고분자 화합물의 일종으로, 영하 273도의 극저온과 400도의 고온에서 물성이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소재다. 특히 현존 플라스틱 중에서 가장 단단하면서도 유연해 인쇄회로기판 등 전자소재로 많이 쓰였다.

 

이런 장점 때문에 폴리이미드는 일찍부터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서 유리를 대체할 소재로 꼽혔다. 하지만 투명하지 않고 노란색을 띤다는 게 문제였다. 색을 제거하고 투명하게 만들면 내열성이 떨어져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3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코오롱인더스트리가 2016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최초로 투명한 폴리이미드 필름을 개발하면서 가능성이 열렸다. 350도의 열을 견딜 뿐 아니라 접힌 부분의 반지름을 3mm로 만들고 20만 번을 접었다 펴도 흔적이 남지 않았다. 또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에 경도를 높여 주는 물질을 코팅한 뒤 연필에 750g의 물체를 얹은 상태로 필름을 긁었을 때 경도가 9H인 연필까지 견뎠다. H는 물질의 단단함을 나타내는 단위로, 연필심의 굳기를 나타낼 때 자주 쓰인다. 유리의 경도는 약 10H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필름 소재를 연구하는 박장웅 UNIST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은 유리에 비해 경도가 약하기 때문에 필름을 만들 때 작은 유리 알갱이들을 넣는 방법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2. 폴더블폰 핵심기술

 

얇게 더 얇게

 

책이든 디스플레이든 얇을수록 접기가 쉽다. 따라서 폴더블폰을 만들려면 디스플레이 두께를 최대한 얇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개 다섯 개 층으로 이뤄진 OLED 디스플레이의 층을 줄일 필요가 있다.

 

현재 OLED 디스플레이는 바닥에서부터 하부 필름층, OLED 패널층, 터치스크린 패널층, 편광자, 유리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각 층은 수십~수백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까지 다양한 두께로 이뤄져 있으며, 점착제를 더해도 전체 두께가 2mm 이하로 얇은 편이다. 하지만 두께가 약 100μm인 종이로 따지면 20장을 겹쳐놓은 것과 같은 두께다. 접기가 쉽지 않다.

 

 

김 교수는 “두께를 최대한 얇게 만들기 위해서 기능을 합치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가령 편광자와 터치스크린 패널을 하나의 층으로 만드는 것이다. 편광자는 외부의 빛이 디스플레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반사돼 나오는 현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OLED 층에서 나오는 빛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준다.

 

터치스크린 패널은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입력 장치로, 촘촘히 배열된 전극에 흐르는 미세 전류가 사용자의 손을 타고 흘러 나가면 연결된 회로에서 그 양을 측정해 터치를 인식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편광 필름 위에 플렉시블 터치스크린 패널 센서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두께를 약 3분의 1로 줄였다. 여기에는 은나노선과 인듐주석산화물(ITO) 등이 쓰였다. 60도와 습도 93% 조건에서 10일 동안 수분 침투 방지와 열 차단 효과를 확인했고, 온도를 영하 40도에서 85도까지 변화시키는 실험을 20차례 반복해도 이상이 없었다.

 

 

 

3. 폴더블폰 핵심기술


접히는 전자회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는 빛이 나오는 부분을 휘어지게 만드는 기술이 가장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빛을 내는 OLED 자체는 유기화합물이라서 오히려 잘 휘어진다. 실제로는 다른 부분을 휘어지게 만들기가 어렵다. 그 중에서도 OLED를 제어하는 박막트랜지스터층을 휘어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스마트폰 OLED에 촘촘히 박혀 있는 수백 만 개의 개별 화소는 모두 박막트랜지스터에 1대 1로 연
결돼 있다. 각 화소가 트랜지스터의 동작 신호에 따라 켜지거나 꺼지면서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트랜지스터를 심는 회로기판은 기존의 불투명한 폴리이미드 등으로 휘어지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트랜지스터인데, 다행히 폴더블폰은 접히는 부분만 휘어지게 만들면 된다. 따라서 단단한 무기물로 만든 트랜지스터를 휘어지게 만들 필요 없이 회로를 설계할 때 접히는 부분에 트랜지스터가 놓이지 않게 배치하면 된다. 트랜지스터 사이를 잇는 전선 역할을 하는 전극만 신축성 있게 만들면 된다. 박장웅 교수는 “전극을 직선으로 만들지 않고 말발굽 형태로 배치해 기판이 휘어질 때 충분히 늘어날 수 있도록 설계하거나, 신축성 있는 소재인 액체금속을 쓰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4. 폴더블폰 핵심기술


강하고 유연한 점착제

 

김 교수는 폴더블폰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기술이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층을 서로 붙여 주는 ‘점착제’라고 말했다. 점착제는 접착 성질이 있어서 붙였다 떼기를 반복할 수 있는 물질이다. 액체에서 고체로 변하면서 접착 능력을 나타내는 본드나 순간접착제 등의 접착제와는 다르다.

 

같은 크기의 종이 여러 장의 끝을 정확히 맞춰놓고 접어보면, 안쪽 종이와 바깥쪽 종이의 휘어지는 정도가 달라서 접고 나면 끝부분이 정확히 포개지지 않는다. 여러 층으로 이뤄진 플렉시블 OLED 디스플레이도 접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데, 점착제가 유연하지 않으면 안쪽 디스플레이가 구겨질 수 있다. 또 수십 만 번 접었다 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외부 온도 변화에 따라 점착제의 물성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 가령 영하에서 점착제가 단단하게 굳거나 갈라져서는 안 된다.

 

 

김 교수는 이런 점착제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휘어지지 않는 OLED 디스플레이에서는 아크릴 계열의 점착제를 썼는데, 실리콘 계열의 점착제를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특히 개발 과정에서 신축성 있는 점착제를 사용하면 디스플레이의 각 층이 휘어질 때 받는 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새로 만든 점착제로 실험한 결과 상온에서 60만 번, 저온과 고온에서 10만 번을 접었다 펴도 디스플레이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폴더블폰을 만들기 위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모두 개발한 게 아니라 11개 대학의 연구진과 협업한 결과”라며 대학과 기업의 협업을 강조했다. 일부는 대학에서 연구한 결과를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진이 생산 공정에 적합하도록 발전시킨 것이다.

 

박 교수는 “폴더블폰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박 교수팀은 나무의 구성 성분인 셀룰로오스로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보다 더 단단한 필름을 개발 중이다. 액체금속을 전극 소재로 사용하기 위해 정밀하게 패터닝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폴더블폰 다음엔 어떤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전자기기가 등장할까. 김 교수는 “둘둘 말 수 있는 롤러블 디스플레이와 섬유처럼 늘어나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 과학자들은 신축성 있는 메모리와 배터리, 트랜지스터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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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울산=최영준 기자
  • 기타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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