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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남극 펭귄 ‘제니’ 관찰카메라 24시

안녕! 나는 남극 킹조지섬의 나레브스키 포인트에서 살고 있는 ‘제니(젠투펭귄)’야. 해마다 옆 마을인 세종과학기지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우리 마을을 방문하지. 2009년에 우리 마을이 남극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로는 허가받은 과학자들만들어올 수 있어.

 

예전에는 몇 명만 들어와서 특별한 장비 없이 둥지 수와 새끼 수만 조사했는데, 2006년부터는 우리도 과학자들의 연구에 참여하게 됐어. 인간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해 주고 있지. 인간들이 가져온 첨단 장비를 몸에 달고 우리 생활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이야.

 

사생활 침해 논란도 있기는 했지만 잘 해결됐어. 지금은 우리 마을 앞마당에 자동모니터링카메라 장비도 세워져 있어. 인간들은 우리에 대해 모르는 게 아직 많아서 그런지 알고 싶은 게 많나 봐. 그럼 지금부터 우리의 활약상을 소개해 볼게.

 

무게 73 g ‘카메라 로거’와의 첫 만남
음~. 아마도 2006년 12월쯤이었던 것 같아. 일본에서 왔다는 과학자들이 우리 몸에 ‘카메라 로거(logger)’라는 장치를 부착해서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조사해 간 적이 있었지. 그때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한국 과학자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김정훈 연구원이라고 했던가. 부러움과 아쉬움이 묻어난 표정이었어. 자신의 연구 지역에서 첨단장비와 기술력을 앞세운 다른 나라 과학자들에게 현장 안내자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처지가 아쉬웠을 거야. 우리는 장비를 달고 열심히 헤엄쳤지. 우리가 찍은 사진 한번 볼래? 멋지진 않지만, 우리 먹이인 크릴도 찍히고 내친구들도 찍혔어(96쪽).

 

부러워하던 그 한국인 과학자는 2009년에 일본사람과 함께 우리 마을을 다시 방문했어. 이번에는 그들과 공동으로 연구를 한다더라고. 한국 사람들과 오지 않았던 걸 보니 준비가 덜 됐었나봐. 한국과 일본 과학자들이 서로 이것저것 열심히 가르쳐주고 배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 이번에는 뭘 알고 싶어서 왔을까 궁금해지더라고. 예전처럼 내 친구들의 등에 위치추적장치(GPS 로거)와 잠수기록계, 가속도계, 카메라 로거 등 다양한 장치를 달아주더라. 내 등에 부착한 기계는 15초 간격으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카메라 로거였어.

 

불편하지 않았냐고? 당연히 불편하지. 그런데 기기의 무게가 몸무게의 3% 이내면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대. 카메라 로거가 73g쯤 됐으니 내몸무게의 1.5%도 안 됐어.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좀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지더라고. 또 기기 때문에 내 소중한 깃털이 상하거나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종이테이프나 잘 떨어지는 플라스틱 접착제를 사용해서 아주 말끔하게 제거할 수 있더라고.

 

크릴 ‘맛집’ 찾아 첨벙첨벙
우리는 물속에서 전적으로 시력에 의존해서 먹이를 찾아. 주로 햇빛이 투과되는 영역인 유광대에서 사냥을 해. 그래서 낮에는 수심이 깊은 곳에서도 사냥을 할 수 있지만, 밤에는 얕은 곳에서 먹이를 찾지.

 

 

고래처럼 초음파라도 쓸 수 있다면 빛이 없는 깊은 곳에서도 먹이를 찾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어. 그래서 카메라 로거는 우리가 주로 사냥하는 밝은 지역의 다양한 생태 정보를 기록해 줄 수 있대. 물론 우리 눈에는 보이지만 카메라에는 어둡게 찍혀서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긴 하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우리가 주로 어디에서 무엇을 사냥하는지가 궁금했나 봐. 우리는 다양한 생물들을 촬영해줬어. 크릴은 보통 먼 바다와 해저 양쪽에서 모두 살지만 멍게와 친척뻘인 살프는 먼 바다에 많이 살고 있어.

 

 

그런데 바다에 사냥감이 많다고 해서 아무거나 먹지는 않아. 우리는 살프 보다는 크릴을 좋아하거든. 그래서 크릴을 찾아 잠수를 많이 하지. 너희들이 맛집으로 소문난 곳을 자주 찾는 것처럼 말이야. 두 사람은 내가 카메라 로거를 달고 촬영해준 사진을 보고나서야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 왜 크릴이 많은 곳에서 잠수를 자주 하는지 이해하더라고.

 

‘여기야, 여기!’ 맛집 찾으면 소리로 알려
2014년에는 뭔가 제대로 준비하고 왔더군. 한눈에 봐도 카메라 로거가 더 커지고 묵직해졌어. 그런데 지난번에 왔던 한국 과학자는 오지 않고 새로운 사람이 지난번 일본 과학자와 함께 나타났네? 이원영 박사라고 하더라고. 듣자하니 이전 사람은 다른 연구 때문에 남극대륙의 장보고기지에 있는 우리 동료들의 서식지를 찾아갔다더라고. 우리를 연구하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하더니 아쉽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우리한테 가져온 ‘신상’ 기계를 짊어져봤는데, 무게가 110g이라서 확실히 예전 것보다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니 괜찮더라고. 이 장치는 동영상을 기록하는 ‘비디오 로거’라고 한대. 이번에는 바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사냥하는지 동영상을 촬영할 거라나. 두 사람은 이 장치로 한 번에 무려 8시간이나 촬영할 수 있다고 자랑했어. 최근에 인간들 기술이 많이 발전하긴 했나봐. 그런데 고작 8시간으로 우리의 생활을 엿보겠다고? 어쨌든 최선을 다해야지 뭐. 감독이나 각본도 없고 그냥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기만 하면 되니까 부담은 없었어.

 

우리는 바다 속에서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해 왔어. 그런데 인간들은 우리가 동영상을 찍어 오기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나 봐. 수많은 크릴 속에서 나랑 친구들이 무리지어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더라고. 그냥 일정한 시간을 두고 찰칵찰칵 촬영하는 카메라 로거로 얻은 사진을 분석해서는 알기 어려웠나 봐.

 

그리고 비디오 로거에는 카메라에는 없는 특수 기능이 있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거라는데, 동영상과 함께 소리까지 녹음되는 거야. 우리끼리는 물속에서 음성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데, 인간들은 그것도 몰랐나 봐. 처음에는 우리들이 물속에서 나눈 대화를 소음이 녹음된 것으로 생각했다더라고. 하긴 인간들이 물속에서 우리들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을테니 그럴 만도 해.

 

먼 바다에서 크릴을 사냥할 때 내가 반복적인 소리를 내고 그에 따라 친구들이 모이는 장면을 본 과학자들을 한 번 더 흥분했다나? 수많은 친구들이 모여 사는 번식지에서 배우자를 확인하거나 새끼를 찾을 때 우리가 다양한 음성신호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대. 그런데 물속에서도 소리로 의사소통 한다는 건 이제야 알았나 봐.

 

남빙양에 크릴이 많다곤 하지만 넓은 바다에서 그 조그맣고 맛있는 녀석들을 찾는 건 맛집에서 퍼져 나오는 군침 도는 냄새를 맡으며 긴 줄을 참고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러니 누군가가 먼저 찾으면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게 당연하겠지? 또 먼 바다에서 친구가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우리만의 신호가 필요하지.

 

 

펭귄 마을에 자동모니터링카메라 시스템을 설치한 뒤 팀 린치 호주연방과학산업 연구기구(CSIRO) 박사(왼쪽)와 김정훈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펭귄 마을 촬영하는 자동모니터링카메라
우리는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동안 혹독한 날씨를 견뎌야 해. 포식자인 도둑갈매기와도 싸워야 해. 가끔 폭설이 내려서 둥지 전체가 눈에 파묻히기도 하거든. 눈이 녹으면 둥지에 물이 고여 알들이 얼어버리는 일도 많지. 우리가 아무리 추위에 적응해왔다고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를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과학자들은 번식 성공률을 산출하기 위해 포란기에 우리들의 둥지 수를 세어가고, 새끼들이 보육원에 들어갈 시기에는 새끼들의 수를 조사해 가지. 그런데 매일 한 번씩 와서 조사해 가도 새끼 생존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알아내지는 못하더라고.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또 다른 형태의 카메라 로거를 가져와서 번식지에서 우리 보금자리를 촬영하더라고. 몸에 부착하는 비디오 로거와 다르게 이 장치는 우리 집 앞마당에 떡하니 자리 잡고 주기적으로 사진을 찍어. 2012년에 처음 봤는데 그때는 장치가 무척 작았어. 카메라 한 대가 둥지 7개 정도밖에 못 찍는 거래. 게다가 한 시간마다 찍는 거라더니 기온이 너무 낮아서 기기가 고장을 일으켰다나? 그래서 불규칙적으로 촬영하는 바람에 과학자들이 난감해 하더라. 그 기기들은 얼마 못가서 사라졌어.

 

이제 우리 동네 엿보기를 포기한 줄 알았는데, 작년 여름에 장보고기지에 갔다던 그 김정훈 박사가 어마어마한 자동모니터링카메라 시스템을 가지고 나타난 거야. 이 카메라는 화질이 굉장히 좋아서 잘 찍히는 거래. 또 머리 부분이 좌우로 움직이면서 광범위한 구역의 사진을 주기적으로 촬영할 수 있다더라고. 각각의 사진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카메라 한 대로 둥지 수백 개를 찍을 수 있대. 지금 이걸로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새끼들이 둥지를 벗어날 때까지 2시간 간격으로 우리 생활을 기록하고 있어.

 

이 기기로 뭘 하려는 거냐고? 내가 살짝 들여다보니 번식 기간 동안 망가지지 않은 둥지가 얼마나 되는지, 각 둥지별로 생존한 새끼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고 있더라. 어떤 둥지에서는 새끼 2마리가 부화해서 둥지를 떠날 때까지 모두 다 생존하는데, 어떤 둥지에서는 한 마리만 살아남기도 해. 안타깝게도 새끼가 모두 죽거나 사라져버리는 상황도 생기지. 갑자기 둥지에서 새끼가 사라졌다면 도둑갈매기에게 잡혀 먹혔을 가능성이 있어. 또 어떤 둥지에서 새끼의 사체가 관찰되면 너무 배가 고파서 죽었을 가능성도 있어.

 

이건 몰랐는데, 수많은 둥지에서 새끼가 집단으로 사망했다면 전날의 기상 변화나 전염병을 의심해 볼 수 있대. 그런데 다행히도 그 과학자 아저씨가 카메라를 가져온 뒤에는 새끼들이 집단으로 죽는 일은 생기지 않았어. 하지만 이런 대형사고는 예고 없이 갑자기 발생하기 때문에 자동모니터링카메라 시스템으로 꾸준히 감시하는 게 좋대.

 

 

펭귄 보호용 연구 필요
수십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이 우리를 연구했지만, 아직 궁금한 게 많은가 봐. 과학자들과 같이 지내보니까, 그래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많은 부분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더라고. 다만 전에는 예측밖에 할 수 없었던 우리의 생활을 카메라와 비디오 등으로 연구하면서 하나씩 밝혀가고 있는 중이래.

 

하지만 앞으로는 단순히 호기심을 해결하는 연구보다는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연구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어. 다들 알다시피 남극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우리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거든. 남극 얼음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먹이인 크릴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들 해.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2100년쯤에는 우리 친척인 황제펭귄의 95%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무서운 일이야.

 

급격한 기상 변화는 우리 번식지에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어. 우리가 카메라로 찍어 준 사진과 영상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 거라 믿어. 과학자들이 그걸 연구해서 우리가 남극에서 어떻게 적응해서 살아왔는지 파악하고, 조사 결과를 이용해서 환경이 변하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함께 고민해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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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정훈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
  • 사진

    극지연구소
  • 에디터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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