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개를 키워서 웬만한 개는 훈련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도저히…, 사람을 물기까지 하더군요. 유명한 훈련사에게 데려갔는데 초크체인(올가미식 개 목줄)과 전기충격목걸이로 훈련을 받더니 공격성이 더 심해졌습니다. 선생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켜야 해요. 꼭 좀 도와주세요.”
동물행동의학과에서 일하다보면 자주 접하는 사연이다. 미국에서 공격성을 보이는 개가 마지막으로 오게 되는 곳이 ‘동물들의 정신과’인 이곳, 동물행동의학과이기 때문이다. 주치의나 훈련사가 의뢰한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안락사를 결정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으러 온 환자,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심각하게 해쳐 고발을 당한 환자도 있다.
이런 환자들이 오면 우리는 개의 공격 대상이 사람인지, 동물인지를 먼저 분류한다. 그리고 만약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라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공격성을 보이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이때 개의 평상시 활동을 촬영한 영상은 개의 공격성을 진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동물은 행동이 곧 언어이기 때문이다(개가 공격성을 보이는 장면을 촬영하겠다고 공격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보호자는 개의 특징과 일상생활, 문제행동 등에 대한 약 15장짜리 설문을 수행해 제출한다. 이런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진단을 하고 치료 계획을 세운다.
흔히 치료는 ‘으르렁대고’ ‘달려들고’ ‘무는’ 하나하나의 행동(증상)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다. 만성적인 설사를 하는 환자에게 무조건 지사제를 먹인다고 병이 완전히 낫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공격성을 보이는 1차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은 두려운 개, 체벌은 역효과
최근 일어난 안타까운 교상 사고들을 보면,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 사람을 공격한 사고들이 많다. 이런 심각한 공격성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한 때는 겁이 많았던 개들이 점점 공격성이 발전하면서 생긴 것이다.
동물정신과에서 바라보는 공격성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두려움이다. ‘두려운데 왜 공격을 할까.’ 의아할 수 있다. 개는 두려움을 느낄 때 보통 세 가지 행동 중 하나를 보인다. 두려운 대상으로부터 도망가거나, 제자리에서 얼어버리거나, 아니면 공격한다. 보통 공격하는 개를 나쁜 개, 가만히 있는 개를 온순한 개라고 착각하지만 그들의 심리 상태는 똑같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개의 공격성은 ‘사다리’에 비유된다. 두려운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면 처음에는 불편함과 두려움의 의사표현을 몸으로 보인다. 이것을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가까이 오면 그 다음엔 으르렁거린다. 으르렁거림은 정상적인 의사 표현이다. 사람의 말로 변환하면 ‘두려우니 다가오지 마세요. 멀리 가세요’ 정도 될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럼에도 두려운 대상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 개는 더욱 강력한 의사 표시로 사람을 문다. 그리고 처음 사람을 물었을 때는 대부분 심각한 상처를 남기지 않지만, 무는 행동이 반복되면 상처를 입힐 정도로 심하게 문다. 사다리처럼 한 단계씩 올라가는 셈이다. 공격성 사다리를 오르는 속도는 개들마다 다르다. 천천히 공격성이 발전하는 개가 있는가 하면, 충동조절장애까지 겹쳐 공격성이 폭증하는 개도 있다.
특히 평소 으르렁거릴 때마다 주인에게 체벌을 당한 개는 두려운 상황에서 으르렁거리지 않고 곧바로 사람에게 달려든다. 체벌에 의해 두려움이라는 원인이 제거되기는커녕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려움으로 인해 공격성을 보이는 개의 행동치료 1원칙은 ‘어떤 형태이든 체벌 금지’다. 초크체인이나 전기충격목걸이로 공격행동을 교정하려다 괜히 개를 예측 불가한 위험한 상태로 내몰 수 있다.
사회화 교육이 답일까?
‘공격적인 개는 사회화 교육이 필요하다’ ‘개가 공격성을 보이는 이유는 집안에서 서열정리가 안 돼서다’.
사람들이 개의 공격성에 대해서 하고 있는 대표적인 오해 두 가지다. 하지만 개의 사회화 시기는 3개월령 즈음에 끝난다. 그 이후에 무조건 다양한 개들과 사람을 만나게 한다고 두려운 대상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3개월 이상인 개는 두려운 대상에 둔감하게 만드는 ‘둔감화역조건화(Desensitization Counterconditioning)’ 이론을 바탕으로 한 행동치료를 해야 한다.
가령 낯선 사람을 무서워하는 개가 있다면 사람이 다가올 때 간식을 주면서 둔감화하는 방법이 있다. 이때 개마다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 시간, 거리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개에 맞게 행동치료를 설계해야 한다. 절대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의 자극부터 서서히 노출시키면서 좋은 보상을 제공한다.
또 서열정리를 위해 개를 억압하는 것도 과학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개의 조상이 늑대라는 것을 이유로 대면서 늑대의 행동을 바탕으로 개의 서열을 논한다. 그러나 수만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각기 다르게 진화해 온 늑대와 개의 행동을 현 시점에서 비교하며 서열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늑대가 과거의 조상 늑대와 똑같은 사회적 행동을 보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관찰하고 연구한 현재의 늑대가 개의 조상은 아니지 않은가.
늑대의 행동과 서열에 대한 연구도 대상 동물군을 잘못 설정한 치명적인 오류가 있어 더 이상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늑대는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데, 당시 연구에 사용됐던 늑대들은 서로 사회적 관계가 없는 늑대들이었다. 사람의 사회적 특성을 연구하겠다고, 서로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좁은 곳에 가두고 한정된 자원을 준 상태에서 관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려견과 사람 사이에 서열은 없다는 것은 학계 정설이다. 동물의 서열이란 한정된 자원(먹이, 쉴 곳, 짝)을 먼저 소유하는 순서이기 때문이다. 또 서열이 높은 동물이 모두 공격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서열이 높다고 아래 서열의 동종 동물들을 모두 공격했다면, 이미 그 종은 멸종했을 것이다.
‘나쁜’ 개가 아니라 ‘아픈’ 개일 수도
개가 사람과 함께 살게 된 지는 1만 년이 훨씬 넘었다. 그 긴 시간을 거치며 개는 사람의 삶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가축화됐다. 사람을 물고 공격하도록 진화했다면 지금처럼 가깝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이 아닌 동물을 대상으로 더욱 흥분된 반응을 보이고, 심하면 공격을 하게끔 개량된 견종
도 있다. 흔히 맹견이라고 분류하는 특정 견종들이 그렇다(맹견이라 부르는 견종들은 보통 중형견 이상이지만, 그렇다고 15kg을 기준으로 삼을 근거는 없다). 하지만 특정 견종에 대해서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견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태어난 지 3개월 이전에 충분한 사회화 교육을 하는 노력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또 정신과적 문제행동을 보인다면 전문가와 상담을 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일부 개들은 정신적으로 ‘아프기’ 때문에 폭발적인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뇌에서 세로토닌과 같은 특정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지면 개들은 충동성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이런 개들은 수의사의 진단을 바탕으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등과 같은 약물치료를 통해서 부족한 신경전달물질들을 높여줘야 한다. 약물로 ‘불안’ ‘공포’ ‘충동성’ ‘흥분성’을 줄이면서 행동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행동치료는 절대 ‘복종훈련’이 아니고, 산책이 무조건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동치료가 가능한 수준까지 약물치료를 하는 중에는 실외 산책보다는 실내 활동들을 추천한다.
공격성 예방법이 ‘입마개’?
입마개가 공격성을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두려움을 느끼는 개가 입마개까지 쓰고 산책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공포심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사실 입마개 교육은 공격성을 보이지 않더라도 세상의 모든 개가 받아야 하는 의무교육에 가깝다. 자동차를 탈 때 조금 불편해도 안전벨트를 매는 것 처럼, 어린이가 찻길을 건널 때 엄마의 손을 잡고 건너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과 그 개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사고는 순간이다. 또 입마개 교육을 해두면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나, 교통사고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할 때도 도움이 된다.
이때 입마개는 ‘수갑’처럼 무언가 억압하기 위해 가르치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평상시에 간식 그릇으로 쓰다가 필요할 때 주둥이에 씌울 수 있는 좋은 기억의 도구가 돼야 한다. 시중에 다양한 모양의 입마개가 판매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개가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고, 간식을 먹고, 물을 마실 수도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형 입마개를 가장 추천한다.
교상 사고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내가 키우는 반려견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의 ‘주인’으로서가 아닌 책임감 있는 ‘보호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겁이 많은 반려견을 키우는 보호자라면 적극적으로 반려견의 마음을 대변해야 한다. 가능하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고, 멀리서 사람을 보면 “우리 개는 겁이 많으니 만지지 마세요” “우리 개는 겁이 많으니 모른 척해 주세요” 등으로 말하고 자리를 피해야 한다.
개를 만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예쁘고 귀여운 아이에게 무조건 인사하거나 만지지 않듯, 개를 무조건 아는 척 하거나 갑자기 만지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겁이 많은 동물들에게는 이것이 위협이 되고, 공격성의 원인이 된다. 이처럼 교상 사고는 개를 키우는 사람과 개를 만나는 사람이 조금만 이해하고 행동하면 예방할 수 있다. 다시는 안타까운 사고가 없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