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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3000t급 잠수함 장보고-III 산실, 육상통합시험장에 가다

3000t급 잠수함 장보고-III 산실, 육상통합시험장에 가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 키의 2배가 넘는 대형 모터였다. 뒤로는 발전기와 배터리, 배전반과 같은 각종 전기장비들이 100m 가까이 연결돼 있었다. 프로펠러만 있었다면 진짜 잠수함 내부인 줄 착각할 뻔 했다. 9일 찾아간 경남 창원의 전기선박 육상통합시험장(LBTS, Land Based Test Site)은 실제 잠수함보다 더 잠수함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기민하게 추진전동기

“여기서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취재하는 동안 같은 지적을 5번도 넘게 들었다. 국내 최초로 독자 기술로 개발하는 3000t급 잠수함 장보고-III에 대한 부품 시험이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추진전동기(모터)를 비롯한 모든 장비가 실제 잠수함에 들어가는 부품인 만큼 ‘군사 기밀(?)’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추진전동기는 잠수함에서 프로펠러를 돌리는 ‘심장’과 같은 중요한 파트였다. 장보고-III의 최대 속력은 20노트(kts, 1노트는 약 1.85km/h). 이 속력을 내기 위해서는 모터의 출력이 6000kW 수준까지 올라야 한다. 어느 도시에서 2000가구가 동시에 사용하는 전체 전기량과 맞먹는다. LBTS에서는 추진전동기의 출력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전압을 높였을 때 전동기가 프로펠러를 충분히 빨리 돌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육상에서, 그것도 프로펠러도 달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정확한 측정을 할 수 있을까.

“발전기를 이용하면 가능하죠.” LBTS의 총책임자인 임근희 한국전기연구원 박사의 답은 명료했다. 실제로 전동기 왼편 프로펠러가 있어야할 자리엔 발전기가 연결돼 있었다. 실제 잠수함에서는 전동기가 프로펠러를 돌리지만 시험장에서는 전동기가 발전기를 돌리게 돼 있다. 발전량을 보면 모터가 프로펠러를 돌리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곳에선 전기선박의 추진전동기와 프로펠러를 아예 합친 ‘포드 추진(POD Propulsion)’ 방식도 시험할 전망이다. 포드 추진방식은 최신 프로펠러 기술로, 전동기가 프로펠러 안에 들어있어 프로펠러가 방향을 360°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재래식 잠수함의 경우 프로펠러와 전동기가 수직축으로 연결돼 선박이 추진 방향을 바꾸려면 크게 선회해야 했지만 포드 추진 방식으로는 잠수함이 훨씬 더 기민하게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전기선박 육상통합시험장(LBTS) 내부. 실제 잠수함에 들어가는 대형 부품을 그대로 가져다 시험한다. 왼쪽에 보이는 발전기와 모터는 사람 키의 2배가 넘는다
[전기선박 육상통합시험장(LBTS) 내부. 실제 잠수함에 들어가는 대형 부품을 그대로 가져다 시험한다. 왼쪽에 보이는 발전기와 모터는 사람 키의 2배가 넘는다.]

추진(발전), 축전

잠수함을 그대로 옮겨 놓은 LBTS (제어)

은밀하게 축전지

추진전동기를 돌리는 힘은 결국 전기에너지다. 잠수함을 100% ‘전기배’라고 부르는 이유다. 기존 선박들은 내부의 디젤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지만 잠수함에선 한계가 있었다. 디젤발전기를 사용해 발전을 하려면 반드시 산소가 필요했던 것. “잠수함은 적군의 눈에 띄지 않고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은밀한 용도로 고안됐습니다. 주기적으로 산소를 흡입하기 위해 물 밖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면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힘들죠.” 임 박사가 설명했다.

실제로 중형급 이상 잠수함 개발의 핵심은 ‘공기가 필요하지 않은 추진체계(Air-independent propulsion, AIP)’를 만드는 것이다. 만약 산소 보충을 위해 떠오르면 발전된 음향 탐지 장비와 레이더 기술 때문에 잠수함이 발각될 확률이 매우 높다. 잠수함은 종류에 따라 발생하는 소음의 특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일단 포착되면 정체가 탄로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떠오를 필요 없이 더 깊이, 더 오랫동안 수중에서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승리 방법이다.

3000t급 중형 잠수함인 장보고-III는 축전지의 용량을 높여 문제를 해결했다. 배에 커다란 배터리를 싣고 출항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양의 전기를 저장한 뒤 작전 기간 동안 주 동력원으로 삼는 방식이다(필요에 따라서는 디젤발전기, 연료전지로 전기를 생산해 보조 동력원으로 쓰기도 한다). 장보고-III에 들어가는 축전지는 실제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500kg짜리 축전지 600여 개가 연결돼 LBTS의 한 구석을 가득 메웠다. 임 박사는 “한 번 충전으로 수만 km를 항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잠수함이 아닌 일반 선박도 최근엔 전기추진방식을 선호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기존의 디젤엔진이나 가스터빈 엔진 방식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면, 전기추진방식은 그보단 작지만 일정한 힘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다. 넓은 해역을 감시 정찰하는 선박의 경우 특별한 때를 제외하곤 최고 속력을 낼 필요가 없다. 전기추진방식은 또 초반 가속력이 디젤엔진보다 높다는 장점이 있다.
 
LBTS에서 시험 중인 연료전지 모사 장비. 연료전지는 산소 없이도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수중에서 은밀한 작업을 수행하는 잠수함의 차세대 동력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LBTS에서 시험 중인 연료전지 모사 장비. 연료전지는 산소 없이도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수중에서 은밀한 작업을 수행하는 잠수함의 차세대 동력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는 배전반을 통해 공급된다. 선박 내 각종 시스템을 켜고 끄는 개폐기와 비상 시 전기 공급을 차단하는 차단기를 갖추고 있다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는 배전반을 통해 공급된다. 선박 내 각종 시스템을 켜고 끄는 개폐기와 비상 시 전기 공급을 차단하는 차단기를 갖추고 있다.]


스마트하게 연료전지

축전지의 한계도 물론 있다. 일단 크고 무겁다. 선체 하부 공간의 5분의 3을 차지하는 데다, 무게 때문에 배수량의 상당을 축전지에 분배해야 한다. 또 장보고-III에 들어가는 납-산 축전지의 경우 충전 과정에서 수소가 발생해 별도의 환기 시설이 필요하다. 발생하는 열을 냉각시키는 것도 일이다. 이날 장보고-III 축전지에는 충전 효율을 높이고 열 생성을 막기 위한 부가장치들이 어지럽게 연결돼 있었다. 임 박사는 “축전지의 온도가 32℃를 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LBTS는 지난 2월 27일 준공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장보고-Ⅲ의 부품 실험에 돌입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1차 실험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LBTS는 지난 2월 27일 준공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장보고-Ⅲ의 부품 실험에 돌입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1차 실험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잠수함은 열어서 고칠 수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기존의 납-산 축전지 대신 리튬이온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기술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연료전지는 외부 공기를 흡입하지 않고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AIP 조건을 만족하면서 동시에 환경오염 문제로부터도 자유롭다.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적 반응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일반 발전기보다 작고 가볍다. 소음이 적고 발전 효율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용량에 한계가 있어서 아직까지는 선박의 보조 동력원으로만 적용하고 있지만, 연료전지의 효율이 향상되면 주 동력원으로도 전망이 밝다. 세계 최첨단 잠수함들의 대부분은 이미 수중 작전 시 필요한 전력과 내부 전원의 일부를 연료전지로 충당하고 있다.

정밀하게 배전반

LBTS에서 시험하는 부품 대부분은 사실 잠수함이 건조된 이후에는 눈으로 보기 힘든 것들이다. 추진전동기와 축전지, 연료전지와 같은 추진기관은 전용 기계실에 설치돼 사실상 무인으로 작동한다. 잠수함에 탄 선원은 배전반 하나만 본다.

거대한 잠수함에선 부품 각각이 좋은 성능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들을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기술이 필수다. 장보고-III의 부품들은 2만5000개의 전선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 축전지에 전기를 저장하고 저장한 전기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추진시스템, 각종 어뢰, 미사일 등을 발사하고 다른 잠수함을 회피할 수 있게 탐지하는 무기통제 시스템, 선박 내 이산화탄소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온도와 습도를 적절하게 맞추는 생활관리 시스템 등이다. 배전반은 이런 선박 내 모든 시스템에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양문 캐비닛을 6~7개 합쳐놓은 모습인 장보고-III의 배전반에는 제어에 필요한 계기와 각종 전선 개폐기, 차단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배전반에서 차단기의 역할은 매우 크다. 임 박사는 “차단기는 전선과 전선을 연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전동기나 축전지와 이어지는 전선의 차단기는 이것들에 합선이 발생했을 때 과전류가 다른 장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막는다. 이들 전선에는 다른 전자기기의 회로가 버틸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합선된 주변 시스템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 선박 내 공기를 정화하고 선원들에게 전기와 물을 공급하는 생활관리 시스템, 통신 시스템도 차단기로 관리한다. 긴급 상황에서도 전기 공급이 끊기면 안 된다. 디젤발전기나 연료전지 같은 별도의 발전기를 돌릴 수 있도록 따로 설계가 돼 있다. LBTS가 전체가 거대한 전자 회로라면 배전반은 정밀한 보호장치인 셈이다.

 

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경남 창원=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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