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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37에 무슨 일이?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항공기 보잉 737

보잉 737의 새로운 기종 맥스 8이 지난해 10월 29일 인도네시아에 이어 올해 3월 10일 에티오피아에서도 추락 사고를 일으키면서 운항이 전면 중단됐습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보잉 737 맥스 8에 새롭게 탑재된 비행제어 소프트웨어인 ‘기동특성증강시스템(MCAS·Maneuvering Characteristics Augmentation System)’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MCAS가 왜 문제인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보잉 737 맥스 시리즈는 역대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여객기입니다.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전 세계 약 90개 항공사로부터 5012대 주문을 받았고, 현재 387대가 인도된 상태입니다. 


이런 보잉 737 맥스 8의 기체 결함 가능성이 제기된 건,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에 발생한 사고가 우연으로 보기엔 공통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소속 보잉 737 맥스 8은 이륙한 지 13분 만에 추락했습니다.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 8 역시 이륙 직후 6분 만에 추락했습니다. 


또한 두 사고 모두 추락 직전 수직속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6개월 간격으로 동일한 기종이 동일한 형태로 사고를 일으킨 셈이죠. 두 사고 모두 승무원과 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데니스 뮬렌버그 보잉 최고경영자는 4월 4일 뒤늦게 성명을 내고 두 사고 여객기에 달린 기동특성증강시스템(MCAS)에 이상이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발단은 엔진 설계 수정 


보잉 737 맥스 8에는 왜 기동특성을 증강하는 시스템이 장착됐을까요. 발단은 엔진이었습니다. 보잉 737 맥스 시리즈는 출력을 높이기 위해 기존 버전인 보잉 737 NG(Next Generation)보다 큰 엔진을 달았습니다. CFM인터내셔널이 개발한 LEAP-1B 엔진을 장착함으로써 연료를 14%나 절약하고자 했죠. 국제선이 한 번 비행할 때마다 연료비가 1억~2억 원씩 드는 것을 생각하면 항공사 입장에서는 아주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운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보잉은 기체의 설계를 변경해야만 했습니다. 새로운 엔진은 기존 엔진보다 지름이 약 20cm 더 크고 무겁기 때문에 비행기 주날개에서 약간 앞쪽으로, 그리고 위로 올려서 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공기가 지상에서 활주할 때 엔진의 가장 밑단이 지면과 닿아 끌릴 테니까요. 


이런 설계 변경은 비행기 주변의 공기 유동을 변화시켰습니다. 일반적으로 항공기에서 엔진은 주날개 하부에 장착돼 공기의 저항인 항력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설계에서는 엔진을 감싸는 구조물인 나셀이 날개의 일부분이 되면서 양력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양력은 항공기를 공중에 띄우는 힘으로 날개에서 발생합니다. 베르누이의 정리에 따라 압력이 높은 쪽(날개 아래)에서 낮은 쪽(날개 위)으로 힘이 작용하죠. 적절한 양력을 받기 위해서는 비행기 날개가 바람을 받는 각도, 즉 ‘받음각(AOA·Angle of attack)’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셀 형상의 설계 변경은 무게중심보다 앞쪽에서 양력을 추가로 발생시켜 기체 머리가 들리는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통상 받음각이 14도 이상이면 양력이 사라지면서 비행기의 속도가 떨어지는 실속(Stall) 현상이 나타납니다. 보잉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엔진이 이런 문제를 일으킬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공기 감항 인증을 통과하기 위해 비행기에 MCAS를 달아 비행 특성을 개선하고자 한 것이죠. (*감향 인증. 일정한 범위의 수리 및 개조가 이뤄진 뒤 항공기가 비행에 적합한 안정성과 신뢰성을 갖고 있는지 구조, 강도, 성능을 검증하는 절차.)

 

 

MCAS의 오작동…조종사는 몰라 

 

MCAS는 항공기에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항법시스템, 자동비행시스템과는 다른 별도의 시스템입니다. 자동비행시스템은 비행기의 기수각(Heading angle), 고도, 대기속도(Air speed), 수직 강하율(Vertical rate) 등 총 4가지를 제어합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로스엔젤레스(LA)공항까지 운항한다고 할 때, 가는 동안의 방향, 고도, 속도, 수직속도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해주는 기본 시스템입니다. 


여기에 안정성과 조종성을 높이기 위해 부가적인 비행제어시스템이 복잡하게 추가됩니다. 안정성증강시스템(SAS·Stability augmentation systems)이나 조종성증강시스템(CAS·Control augmentation systems)이 대표적입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MCAS도 그중 하나입니다. 


보잉의 엔지니어들은 날개의 형상이 바뀌면서 양력 변화로 기수가 들려 받음각이 커질 것에 대비해 MCAS를 달았습니다. MCAS는 양력이 커지거나 비행기의 받음각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자동으로 수평 꼬리날개의 각도를 바꿔 받음각을 낮추고 기체의 머리를 다시 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일각에서는 엔진을 바꾸면서 기체를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지 않고 MCAS를 덧붙인 것이 ‘땜질 설계’라는 비판도 있던데요,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비행기를 설계하는 데는 10년 이상 걸리고, 소비자의 요구에 맞게 동일한 기체에 엔진만 바꾸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MCA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인도네시아 교통안전위원회의 사고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조종사는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는 기체 머리를 올리기 위해 추락 직전 30차례나 요크(조종간)를 당긴 것으로 돼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받음각을 측정하는 센서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당시 사고기의 센서는 실제보다 기수가 20도 높이 들린 것으로 측정했습니다. 보잉 737 맥스 8 기종에는 받음각을 측정하는 센서가 기체 머리 양옆으로 2개가 있는데, 인도네시아 사고기의 비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두 센서는 측정값이 서로 달랐습니다. 이 경우 어떤 센서의 측정값이 정확한지 알 수 없죠. 센서의 정확도를 높이고 센서의 오류를 판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둬야 했습니다. 


두 번째로 외신에 따르면 보잉은 MCAS의 기능과 고장 가능성을 조종사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이라면 이번 사고의 가장 큰 문제일 겁니다. 조종사들이 수동 조종 시에도 MCAS가 저절로 동작(그것도 오작동)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만약 알았다면 어떻게든 MCAS를 해제하고 추락에 대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보잉은 MCAS에 대해 충분한 훈련을 하지 않았고, MCAS를 비활성화 했더라도 다시 5초 뒤에 자동으로 활성화되도록 설계해 MCAS를 완벽하게 끌 방법 자체를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행기 설계 시 가장 중요한 건 ‘디버깅’ 

 


보잉은 대책으로 보잉 737 맥스 8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했습니다. MCAS가 활성화되기 전에 한 개 이상의 센서로부터 정보를 받고, MCAS가 여러 차례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한 차례만 작동되도록 바꿨다고 합니다. 또 조종사들이 조종간을 당기는 것만으로 완벽히 수동 조종이 되도록 했고요. 선택사양이었던 받음각 센서 오류 알림도 표준사양으로 만들었습니다. 


보잉은 소프트웨어를 수정한 이후 159시간에 걸쳐 96회의 시험운행을 마쳤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4월 16일 미국연방항공청(FAA) 비행표준화위원회는 업그레이드된 항법장치 소프트웨어에 대해 결국 ‘기능상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진작 이렇게 바꿨다면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각에서는 보잉과 함께 민항기 양대산맥을 이루는 에어버스가 전기신호로 비행을 제어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 방식을 더 적극적으로 도입했다고 차별화하던데, 글쎄요. 


다행히 에어버스는 그동안 큰 사고가 없었지만, 취재를 하면서 만난 전문가들은 그 어떤 비행기 설계도 완벽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비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무수히 많고, 전자 시스템은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디버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철저한 비행시험을 통해서 시스템을 검증하고 또 조종사에게 이를 철저히 숙지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말처럼 잘 지켜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하니까요. 


보잉이 유럽의 경쟁사인 에어버스에게 시장을 뺏기지 않기 위해 보잉 737 맥스 기종의 개발을 서둘렀다는 건 세간에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에어버스가 2014년 기존 모델보다 연료를 15% 가량 덜 쓰는 ‘A320네오’ 시리즈를 발표해 인기를 끌자, 유사한 콘셉트의 보잉 737 맥스 시리즈를 개발해 맞불을 놨습니다. 승객을 500명 이상 태울 수 있는 대형 항공기로 경쟁하던 두 회사가(A380과 보잉747) 이제는 상대적으로 작고 경제적인 여객기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보잉 737 맥스 8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현재는 전 세계에서 운항이 전면 중단된 상태입니다만, FAA로부터 기능상 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가을쯤에는 운항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도 이스타항공이 운항을 중단함으로써 현재 보잉 737 맥스 8을 운항하는 국내 항공사는 없지만, 대한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제주항공 등이 올해부터 2027년까지 약 114대를 들여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귀추가 주목됩니다. 

 

201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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