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동안 실험 잘 진행하셨나요? 실험을 잘 하는 것 보다는 재밌게 했는지가 더 중요해요.”
아직 더위가 가시기 전인 9월 중순,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내에 있는 하나과학관. 이 곳에서는 뇌과학 동아리 ‘뉴런(NEW LEARN)’의 정기 세션이 박지윤 씨(심리학과 3학년)의 사회로 진행 중이었다. ‘뉴러너’ 40여 명의 열띤 토론 현장에 들어가 봤다.
뉴런은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고려대 재학생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동아리다. 뇌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탐구한다. 뇌 신경세포인 ‘뉴런(neuron)’과 한국어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동아리 이름을 ‘뉴런(NEW LEARN)’으로 지었다.
‘뉴런’ 1호 발간하고 2호 준비
뉴런은 2014년 작은 스터디 모임에서 출발했다. 생명과학부에서 시작했던 소모임은 이듬해인 2015년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회원을 모집하면서 동아리로 판을 키웠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5년에 2기 회원 40명이 모였다. 지난해에는 3기 30명, 올해는 4기 40명을 정원으로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뇌과학 동아리지만 이공계열 학생만 모인 것은 아니다. 3년간 동아리 회원의 ‘출신 성분’은 스펙트럼이 꽤 넓다. 거쳐간 전공만 25개다. 컴퓨터과학과, 심리학과 등 뇌과학이 연상되는 전공자도 있지만, 서어서문학과, 철학과, 정치외교학과 등 뇌과학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인문사회계열 회원들도 있다.
윤기화 씨(국어국문학과 2학년)는 “1학년 겨울방학 때 노엄 촘스키의 ‘언어와 정신’ 강독에 갔는데, 여기서 언어학과 심리학의 교집합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후 신경 언어학으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신경과학에 흥미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뉴런에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아리의 기본 활동은 매주 진행되는 세션이다. 기획 담당 회원들이 방학동안 한 학기 분량의 세션 프로그램을 짠다. 내용은 다양하다. 뇌과학 관련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토론도 한다.
이날은 심리학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4~6명으로 조를 짠 뒤 주어진 키워드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주제는 조별로 달랐다. ‘비행기’ ‘고속도로’ 등 빠른 동작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본 사람은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 ‘달팽이’ ‘교통체증’ 등 느리다는 이미지를 풍기는 단어를 본 사람은 반응속도가 느려질까. 집중력과 반응 속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을까. 긴박한 상황에서는 체감 시간이 줄어들까, 늘어날까. 뉴런 회원들은 ‘이그노벨상’에 도전해볼 만한 실험 총 7개를 소개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축적된 결과는 뇌과학 잡지에 담는다. 동아리 활동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도록 편집에도 공을 들였다. 지난해 2월 ‘NEW LEARN’ 1호가 나왔다. 1호 편집장인 조영서 씨(컴퓨터학과 2학년)는 “1년 동안 열심히 활동했던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편집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발간에 필요한 자금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서 모금했다. 목표 금액은 인쇄에 필요한 최저비용인 55만 원으로 책정했다. 실제 모금액은 목표금액의 390%인 215만 원. 김지수 씨(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4학년)는 “비슷한 또래인 대학생뿐만 아니라 40~50대도 펀딩에 참가하며 응원해준 덕분에 더 열심히 잡지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뉴런은 올해 2호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1년 동안 활동했던 내용 외에 생명과학, 공학, 심리학, 의학 등 독자들을 위한 다양한 읽을거리도 담을 예정이다. 2호 발간에도 편집장을 맡은 조 씨는 “올해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목표 금액대비 181%가 모금됐다”며 “1호보다 더 발전되고 만족스러운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뇌파로 드론 조종할 수 있을까
뉴런은 매주 진행되는 세션 외에 소모임도 활발히 운영한다. 소모임은 3명 이상이 팀을 꾸려 자율적으로 돌아간다. 뇌과학 논문을 읽거나 독서 감상문 쓰기, 동물 뇌 해부와 뇌공학 디바이스 제작 등 활동 내용은 다양하다.
성과도 있다. ‘BD 스퀘어드’ 팀은 아두이노(제어용 기판)와 뇌파 측정기를 이용해 뇌파로 조종하는 드론을 제작했다. 드론을 조종하려는 의도를 가진 뇌파를 포착한 뒤 드론 조종기 없이 뇌파로 드론을 움직이면 어떨까.
이를 위해 환경생태공학부, 컴퓨터학과, 바이오의공학과, 심리학과,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생명과학부 등 다양한 전공의 회원들이 팀에 모였다. 뇌파 측정기와 드론을 연결하고, 이 과정을 프로그래밍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는 겨울방학까지 10개월 넘게 이어졌다. 비록 실험에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법이다. BD 스퀘어드 팀은 ‘고려대 크리에이티브 챌린지 프로그램’에 지원해 우수팀으로 선정됐다.
뇌파 측정기 개발을 맡은 강신영 씨(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4학년)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할지 알게 됐다”며 “현재 연구실에서 뇌파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식스 센스’ 팀은 무의식 학습을 주제로 실험을 진행했다. 금붕어가 뻐끔거릴 때 개 짖는 소리가 난다면 뇌는 이를 어떻게 인식할까. 식스 센스 팀은 기존 인식과 일치하지 않는 외부 자극이 무의식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기 위해 직접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데이터 분석을 위해 통계학도 공부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한국인지및심리학회’ 학술대회에서 포스터 발표로 선정돼 공개됐다.
국내 뇌과학 동아리 구심점으로
뉴런에서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다른 학교와의 연계 활동이다. 대학마다 뇌과학 동아리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만큼 뇌과학 동아리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들과 연합해 대학생 뇌과학 학술대회 개최하는 게 목표다. 현재 연세대 뇌과학 동아리와 연합을 준비 중이다. 한양대, KAIST 등과도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
고등학교 뇌과학 동아리와의 연합도 추진하고 있다. 일종의 멘티-멘토 활동이다. ‘뉴런 인 스쿨(NIS·New learn In School)’이라는 이름으로 방학을 이용해 뇌 해부 실험을 하는 등 뇌과학 연구활동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경기 양서고와, 올해는 서울 이화여고, 서라벌고와 진행했다.
4기 회장인 강윤영 씨(심리학과 3학년)는 “NIS에서 함께했던 고등학생들은 눈빛에서부터 뇌과학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져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며 “뉴런이 국내 뇌과학 동아리의 구심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