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의 기본 법칙에는 크게 제0, 제1, 제2법칙이 있다. 이 중 ‘엔트로피 법칙’이라 불리는 열역학 제2법칙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우지우스는 “열은 스스로 저온의 물체에서 고온의 물체로 이동할 수 없다”고 표현했으며, 영국의 물리학자 켈빈은 “역학적 일은 전부 열로 바꿀 수 있으나, 열을 전부 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엔트로피는 기본적으로 물리계의 무질서도에 대한 척도다. 열역학 제2법칙을 엔트로피로 다시 표현하면 ‘물리적 현상은 그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거나 일정하게 유지되는 방향으로만 일어난다’가 된다.
예를 들어 방 한구석에 있는 향수병의 뚜껑을 열어두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향수 분자들이 갇혀 있던 병을 빠져 나와 무작위 운동을 하면서 방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된다. 이 현상은 향수 분자가 질서있게 병에 갇혀있다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이며, 일단 방안에 퍼진 향수 분자들은 결코 원래의 병 속으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이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으면 미지근한 물이 되지만, 미지근한 물이 저절로 한쪽은 뜨겁고 다른 쪽은 차갑게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 개념으로 사회현상 해석
결국 열역학 제2법칙은 물리 현상에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리프킨은 이러한 엔트로피 개념을 바탕으로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 가능한 것에서 사용 불가능한 것으로 또는 질서있는 것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변화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석유와 같은 질서화된 에너지를 사용하면 그 결과로 무질서한 배출가스가 발생하고, 이 배출가스는 다시 모아져 사용 가능한 화석에너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엔트로피의 증가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감소’를 뜻하며, ‘공해는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 형태로 변화된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총량’을 의미한다고 봤다.
이런 관점에서 리프킨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얼마나 변했는가에 대한 척도를 바로 엔트로피라고 설정했다. 따라서 열역학 제2법칙은 인류의 에너지 사용 법칙에 해당하며, 인류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공해는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 양이 증가한 것을 나타내고, 동시에 엔트로피 총량이 그만큼 증가했음을 말한다.
엔트로피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과학 개념에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새롭고 흥미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이 모든 경제활동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며, 이 궁극적 원리를 인식하고 이에 따른 새로운 경제정책을 수립하지 못하면 세계는 곧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대담한 경고를 내리고 있다.
리프킨이 의도했던 바는 엔트로피 개념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관을 확립하고, 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를 무제한으로 소모하는 현대사회의 에너지 소비 경향을 서둘러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요지다.
‘엔트로피적 사랑’ 호소
“세상은 갈수록 혼돈의 와중에서 무질서해지고 있다”는 암울한 선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초반부는 변화와 발전의 그리스 시대 역사관에서 변화와 물질, 그리고 소유를 강조하는 근대적 역사관으로 변화됐음을 설명한다. 특히 뉴턴주의의 기계론적 패러다임이 정착하면서 사회는 이윤추구와 효율을 강조하게 돼, 도덕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엔트로피 법칙의 물리학적 의미와 그것이 우주론, 시간과 역사성, 생명현상 등과 관련해 갖는 포괄적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엔트로피 법칙의 개념에서 살펴본 역사, 과학기술, 에너지, 경제, 교육, 보건 등 인류사의 거의 전 분야에 걸친 강력한 현실비판을 광범위한 통계자료와 인용문과 함께 전개한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느낌이 바로 희망입니다. 이 책은 희망을 적은 책입니다”라고 밝힌 것처럼, 리프킨은 인류가 엔트로피 세계관을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암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마지막 부분 6장에서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는 ‘저에너지-저엔트로피 사회’를 지향해야 하며, “가능한 한 적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는 ‘엔트로피적 사랑’을 추구하자고 호소한다.
에너지 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 같은 현대사회의 문제가 심각함을 일깨워 주는 이 책은 우리 스스로에게 반성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우리는 지난 수백년 간의 눈부신 과학기술 및 물질문명의 발전에 대해 그것의 필연성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녕 발전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게 되는 것이다.
지나친 확대해석도
하지만 엔트로피를 기초로 한 리프킨의 문명비판은 때론 지나치게 편향적이고 비과학적이다. 구식 농업과 현대식 농업 비교에서 “현재 미국 농업 기술은 비료와 농약의 형태로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 땅은 더 심하게 쇠퇴하고 해충은 더 지독해지는 악순환 상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적은 인구도 먹여 살리기 힘들었던 구식 농업 체제에서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저엔트로피’ 농부의 삶이 인간적이거나 평등하지 못했던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엔트로피와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수많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요인에 복합적으로 적용시켜, 현대사회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려 한 리프킨의 시도는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엔트로피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낙관주의자, 실용주의자 또는 향락주의자로 보는 그의 시각 역시 객관적 주장이라 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저에너지-저엔트로피 사회에 대한 그의 주장은 과학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과학주의’(scientism)의 극단을 비판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무조건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식의 반과학주의 (anti-scientism)의 또다른 극단적 편향성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현대사회에 미친 과학기술의 영향에 주목한 사회과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 경영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터프츠 대학의 플레처 법과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사회과학자다. 그 후 워싱턴시의 경제동향연구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지냈다. 미국의 대표적인 문명비평가이자 행동가로 미의회 위원회 고문, 경제와 사회문제의 노사관계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카터 행정부 당시 미국 경제의 미래를 입안하는 12인의 경제 전문가의 일원으로도 참여했다.
과학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로 연구한 리프킨의 저서들은 16개국어로 번역돼 전세계의 수많은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엔트로피 이외에도, 그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인력,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14권의 저술을 남겼다. 대표적인 저술로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 ‘등장하는 질서’(The Emerging Order) ‘바이오테크의 세기’(The Biotech Century) 등이 있다. 이 책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 25년간 20여개국을 순회하면서 5백개가 넘는 대학에서 강연한 그는 미연방 정부의 정책에 가장 영향력을 많이 미친 1백50명의 인물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