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많은 이들이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이룬 학문적 업적을 깎아 내린다. 그러나 ‘복제자’와 ‘운반자’ 개념을 구분해 자연 선택의 단위가 결국은 유전자임을 밝혔다는 점, 그리고 곳곳에서 쏟아지던 신선한 발상들을 유전자 선택론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통합했다는 점에서 ‘이기적 유전자’의 학문적 공헌은 눈부시다.

 

 

 

‘사회생물학’을 쓴 미국 하버드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2014년에 낸 책 ‘인간 존재의 의미’에 이렇게 적었다. “과학 저널리스트 리처드 도킨스는 인기 도서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이론을 일반 대중에게 소개했다.”

 

잠깐, 과학 저널리스트? 지금 윌슨 교수는 도킨스가 과학자도 아니며 ‘이기적 유전자’는 남들이 다 한 연구를 일반인들에게 쉽게 해설한 대중서일 뿐이라고 공격하는 것인가? 믿기 어렵지만, 그렇다. 윌슨은 이후 한 인터뷰에서 분명히 말했다. “도킨스는 저널리스트예요.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죠.”

 

‘이기적 유전자’가 학계에 독창적인 공헌을 한 학술서가 아니라,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를 산뜻하게 포장한 대중서일 뿐이라는 인식은 윌슨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서 엿볼 수 있다. 고등학교 생물교사이기도 한 조진호 작가는 ‘판타스틱 과학 책장’이라는 저서에서 “‘이기적 유전자’의 주된 내용은 도킨스가 창조했다기 보다는 당시 신(新)다윈주의 학자들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중략) 도킨스만의 탁월한 글솜씨로 누구보다도 독자들과의 소통에 성공했다”고 평했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에드워드 윌슨과의 인터뷰(중앙일보 2013년 11월 30일자)에서 “‘이기적 유전자’는 사실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이론’을 세련되게 대중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틀렸다(지금 필자는 윌슨까지 싸잡아서 틀렸다고 하는 중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특별하다. 일반 대중을 고양하는 한편, 현대 진화이론을 근본적으로 혁신시키는 업적을 이룩한 책이다.

 

이 책의 독창적인 공헌은 두 가지다. 첫째, 불멸하는 ‘복제자(replicator)’와 반드시 죽는 ‘운반자(vehicle)’를 엄격히 구분해 자연 선택의 단위가 결국은 유전자(지구에서 진화한 복제자의 이름)임을 밝혔다. 둘째, 당시 곳곳에서 쏟아지던 신선한 발상들을 유전자 선택론이라는 하나의 개념적 틀 안에서 매끄럽게 통합했다.

 

 

불멸의 복제자와 덧없는 운반자를 구별하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은유가 무얼 뜻하는지 짚었다. 유전자, 개체, 집단, 종, 군집, 생태계 등 생명의 여러 수준 가운데 자연 선택에 의해 그 복제 성공도가 최대화되는, 따라서 도킨스가 ‘이기적’이라고 은유한 실체가 유전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선택의 단위가 유전자인지, 혹시 유전자 대신 개체라고 해도 상관이 없는지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연 선택은 복잡하고 정교한 적응을 만든다. 한 예로, 더우면 땀을 흘려 땀이 증발하면서 기화열을 앗아가 몸을 식혀주는 체온 조절 기제가 있다. 이때 선택의 단위는 무엇일까. 다시 은유에 기대어 말하면, 복잡한 적응은 누구에게 이득을 주게끔 설계됐는가. 유전자인가, 개체인가, 집단인가?

 

 

 

적응은 집단의 이득을 위해 설계됐다는 집단 선택론은 조지 윌리엄스가 1966년에 쓴 ‘적응과 자연 선택’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자연 선택은 잘 뛰고, 잘 날고, 잘 헤엄치고, 잘 짝짓기하는 개체를 만든다. 그러나 종을 보존한다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산아 제한을 하거나, 동종 개체와 싸울 때 살짝 때리는 시늉만 하는 개체를 만들진 않는다.

 

이제 두 개의 선택지가 남았다. 개체 선택론과 유전자 선택론이다. 둘 다 정답 아닌가? 복잡한 적응은 개체에 이득을 주게끔 진화했다고 해도 되고, 유전자에 이득을 주게끔 진화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더우면 땀을 흘려 체온을 유지했던 사람이 그렇지 못했던 사람보다 후손을 더 많이 남겼다는 말이나, 더우면 땀을 흘리게 했던 유전자가 다른 대립 유전자들보다 복제본을 더 많이 남겼다는 말이나 피장파장으로 들린다. 도킨스의 은유를 따르자면, ‘이기적인’ 유전자도 맞지만 ‘이기적인’ 개체도 맞을 듯하다.

 

그런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것이 도킨스의 독창적인 통찰이다. 유전자는 개체, 집단, 종, 생태계 등의 다른 실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연 선택은 어떤것은 살아남고 어떤 것은 죽는 과정이다. “이처럼 선택적인 과정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치려면 한 가지 조건이 더 충족돼야 한다. 각 실체가 수많은 복제본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 중 적어도 일부는 장구한 진화적 시간 동안에 - 복제본의 형태로 - 잠재적으로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번역서 85쪽)

 

복제본의 형태로 수십, 수백만 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기에 자연 선택이 그 중 더 ‘이기적인’ 버전을 마음 놓고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실체를 도킨스는 ‘복제자’라고 불렀다. 물론 지구를 장악한 복제자의 일종에게 붙여진 이름은 유전자다. 요컨대, 복제자는 잠재적으로 불멸한다. 그래서 선택의 단위가 된다.

 

반면, 개체나 집단은 잠시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진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덧없고 일시적이다. 수 많은 세대에 걸친 자연 선택의 체를 통과하기에는 기껏해야 한 세대는 너무나 수명이 짧다. 유성 생식은 복제가 아니기에, 내가 죽으면 나를 구성했던 독특한 유전적 조합도 함께 사라진다. 내 자식은 나를 구성했던 유전자들의 절반일 뿐이다. 손자는 4분의 1일뿐이다. 단 몇 세대만 지나도, 나로부터 유전자의 극히 일부만 물려받은 후손들만이 남게 된다.

 

집단의 유전적 조성은 구성원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더 빨리 변한다. 따라서 개체나 집단, 종, 생태계 등은 복제자가 아니다. ‘운반자’다. “운반자는 자신을 복제하지 못한다. 자기 몸속의 복제자를 퍼뜨리고자 일을 한다. 복제자는 행동하지도, 세상을 지각하지도, 먹이를 잡거나 포식자로부터 내빼지도 않는다. 복제자는 이 모든 일을 하는 운반자를 만든다.”(번역서 410~411쪽)

 

복잡한 적응은 유전자의 이득을 위해 진화한다는 ‘유전자의 눈 관점(gene’s-eye view)’은 윌리엄스의 ‘적응과 자연 선택’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지만, 복제자와 운반자를 명쾌히 구별하고 자연 선택의 단위는 복제자임을 처음 역설한 사람은 도킨스였다.

 

사실, 도킨스는 윌리엄스의 책이 나오기 전부터 자신의 동물행동학 강의에서 유전자는 ‘이기적’이라고 가르쳤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독자들이 못 믿을까 봐 유전자는 ‘이기적’이라고 적힌 옛날 강의록을 사진까지 찍어서 자서전에 실었다. 은근히 귀엽다).

 

 

신선한 발상들을 단일한 틀 안에 잇고 엮다


‘이기적 유전자’의 미덕은 선택의 단위가 유전자임을 밝힌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도킨스는 1960~1970년대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터져 나오던 신선한 발상들을 그러모아서 복제자의 선택이라는 개념적 우산 아래에서 탄탄하게 통합시켰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발상은 물론 해밀턴이 1964년 발표한 ‘포괄 적합도 이론’이었다. 복제자는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길 수만 있다면 자신이 당장 들어 있는 운반자(개체)에게도 서슴없이 손실을 떠맡길 수 있는 존재로 ‘이기적 유전자’에서 새로이 해석됐다.

 

물론 이전에 살펴봤듯이, 해밀턴은 논문에서 자기이론을 설명하면서 마치 유전자가 복제본을 많이 남기려는 의도와 목표가 있는 것인 양 종종 묘사하기는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였을 뿐, 해밀턴의 초점은 유전자가 아니라 개체에 맞춰져 있었다. “개체는 자신의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가 핵심이었다. 그렇게 말해도 되지만,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자신의 복제 성공도를 최대화한다”고 말하는 게 더 명료하고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도 적다고 도킨스는 강조했다.

 

자연 선택은 잘 뛰고 잘 사냥하는 개체가 살아남게 만들지만, 종을 보존한다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자연 선택의 단위가 종이나 개체가 아닌, 유전자임을 밝혔다.

 

 

 

둘째, 조지 프라이스와 존 메이나드 스미스가 창안한 ‘진화 게임 이론’이었다. 복제자의 진화적 성공은 그것과 함께 경쟁하고 있는 다른 복제자들이 무엇인가에 따라 아주 달라진다.

 

셋째, 로버트 트리버스의 ‘상호 이타성 이론’이었다. 과거에 자신을 도와준 상대만 선별적으로 도와주는 복제자가 선택된다.

 

그 밖에도 부모와 자식은 부모가 자식에게 자원을 얼마나 제공해야 하는지를 놓고 갈등한다는 트리버스의 ‘부모-자식 간 갈등(parent-offspring conflict)이론’, 암컷과 수컷의 협력과 갈등은 부모로서 자식에게 투자하는 양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트리버스의 ‘부모 투자(parental investment) 이론’ 등이 ‘유전자의 눈’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됐다.

 

요약하자. ‘이기적 유전자’의 학문적 공헌은 눈부시다. 복제자와 운반자를 구별해 자연 선택의 단위는 유전자임을 확립했고, 유전자 선택론의 토대 위에서 포괄 적합도, 상호 이타성,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등 당대에 쏟아지던 다양한 아이디어를 일관되게 통합시켰다. 도킨스가 지난 이십여 년간 과학의 대중화에 몰두했다고 해서 그가 일군 업적까지 깎아 내릴 필요는 없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에디터

    우아영
  • 기타

    [일러스트] 정재환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심리학
  • 사회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