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제우스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됐고,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는 엘브루스(Elbrus) 산에서 형벌을 받았다. 엘브루스 산은 러시아 코카서스 지역의 서쪽에 실제 존재하는 산이다. 201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소치에서 가까운 곳이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엘브루스는 프랑스의 몽블랑 산보다 훨씬 더 높은 유럽 최고봉(5642m)이며 휴화산이다.
마치 여의도 불꽃놀이 현장에서 터지고 있는 오렌지색 불꽃처럼 보이는 왼쪽 광물은, 엘브루스 산의 기슭에 위치한 엘브루스 비소 광산에서 태어난 웅황(Orpiment)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웅황이 산출되지만, 엘브루스 산 웅황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유화비소(As2S3)화합물로 굳기가 손톱(모스 경도 2.5)보다 약한(1.5~2.0)광물이다. 저온 열수 광맥이나 유황이 풍부한 온천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유화비소인 계관석(Realgar, As4S4)이 빛에 변질돼 노란 가루 형태로 변하면서 2차적으로 생성되기도 한다.
웅황의 형제 광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관석은 질 좋은 루비를 능가할 정도로 투명하고 붉은 결정체를 지닌 아름다운 광물이다. 필자도 방해석과 계관석 결정의 색상이 절묘하게 대비된 멋진 표본을 갖고 있었으나, 빛에 오래 노출된 바람에 노란 가루로 변해버린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단청의 화려함을 만드는 주인공
우리의 사찰이나 역사적 건축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화려한 단청이다. 그리고 그 화려함의 핵심은 바로 밝은 노란색 안료인 웅황이다. 웅황의 광물명인 orpiment는 황금(auro)색 안료(pigment)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의 궁전이나 국가적 대형 건축은 공사 내역을 정리해 둔 기록을 남겼는데, 특히 소요된 안료의 양과 비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여러 안료중에서도 웅황(석 자황, 석 웅황 등으로 표기돼 있다)은 사용량도 많고, 가격도 아주 비쌌다. 당시 웅황은 대부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광물에 대한 설명을 써 놓은 한 고문서에는 “석 자황은 음지에서 자라고, 석 웅황은 양지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돼 있다. 햇볕을 싫어하는 계관석(석 자황)은 음지에 존재하고 이것이 햇볕에 노출되면 웅황(석 웅황)으로 변하게되니, 화학적 지식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정확하게 관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의 미와 단순한 세련미가 돋보이는 수묵화의 가치가 높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주변에서 안료를 쉽게 구할 수 없고, 수입에 의존해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주로 먹을 이용해서 그렸던 게 아닌가 싶다. 반면 화려한 민화의 경우 이름 없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많지만, 광물에서 얻은 무기 안료 덕분에 화려한 경우가 많다. 민화의 안료는 주로 웅황과 남동석, 공작석, 조개껍질 등을 곱게 갈아낸 뒤 아교에 섞어 만들었다. 광물 안료는 기원전부터 벽화 등에 사용됐고, 오늘날에도 유화 등 채색화의 고급 안료로 쓰이고 있다.
약이자 독약
그런가 하면 웅황의 주 성분인 비소는 예로부터 독약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이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음식물 등에 섞어 상대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런 비소가 주 성분인 웅황이 한때 공공연히 한약재로 사용돼 왔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과거 한약재기록에는 전염병과 피부염, 종기, 습진 치료제로 웅황을 추천한 내용이 있고, 파리약이나 살충제로도 권했다. 하지만 몸에 바르는 등의 외용 약재로 사용을 권하고 내복약으로는 쓰지 말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부작용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아름답고 화려한 것에는 대개 독이 있다는 것을 이 아름다운 웅황이 잘 보여준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선물한 불이 가진 양면성처럼 말이다.